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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쓴것] 크로캅-벤너에 씌우는 애정의 월계관

밴너.JPG


입식격투의 대명사 K-1은 한때 MMA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지만 여러 악재와 마주하며 쇠락의 길을 걸었다.

MMA가 스탠딩-그라운드의 조화가 인상적이었자면, K-1은 서서 싸울 수 있는 최고의 입식 테크닉을 링에서 보여주는 매력이 있었다. 그만큼 팬들의 아쉬움은 상당히 크다. 그런 입식의 부활을 간절히 바랐던 팬들의 뜻이 닿은 것일까. 물론 예전 같지는 않지만 K-1이 재기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오랜 공백에도 K-1이 잊히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한편의 드라마 같은 명장면들이 무수히 쏟아지면서 팬들의 가슴을 적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으니 이른바 ‘무관의 제왕’이라 불리는 K-1의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타이틀만 없을 뿐, 챔피언 못지않은 대접과 인정을 받은 '무관의 제왕'들이 있었기에 K-1이 더욱 빛나고 또 다른 역사의 한 축을 완성할 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출중한 기량과 열정에도 운이라는 화룡점정의 마지막 한 수가 모자라 준우승에 그쳐야 했던 ‘무관의 제왕’들. 하지만 그들이 분루를 삼키며 투지를 불태웠던 뒤편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팬들이 사랑으로 만든 ‘애정의 월계관’이 빛나고 있다.

베르나르도-밴너-세포 ‘무시무시한 펀처들’

'무관의 제왕'으로 통하는 선수들 중에는 유독 펀처 스타일이 많다. 펀치를 주무기로 하는 파이터들은 공격적인 성향이 짙어 화끈한 KO를 자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당일 몇 경기를 치러야하는 월드 그랑프리 파이널 같은 무대에서는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맞으면 맞을수록 데미지가 쌓이는 로우킥 같은 기술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잦다. 토너먼트의 제왕으로 꼽히던 '미스터 퍼펙트' 어네스트 후스트는 이러한 약점을 가장 잘 파고든 대표적인 선수다.

'남아공의 철완(鐵腕)' 고(故) 마이크 베르나르도는 원조 무관의 제왕으로 꼽힌다. 한 올의 머리카락도 찾아볼 수 없이 깨끗하게 밀어버린 스킨헤드에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하얀 거구가 뿜는 강펀치로 화끈한 넉아웃 승부를 즐겼던 철권 파이터다. 우승 타이틀이 없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파이터였다.

통산 31승 가운데 판정승은 불과 5차례에 그쳤을 정도로 강렬한 경기를 펼쳤던 베르나르도는 피터 아츠와의 96년 3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 그를 선수 생활 최대의 슬럼프로 빠뜨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앤디 훅, 피터 아츠, 브랑코 시가틱, 프란시스코 필리오, 버터 빈 등 KO 능력이라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파이터들도 모두 그에게 KO 또는 TKO로 무너진 바 있다.

그랑프리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지만 당시 그의 존재감은 분명 챔피언 이상이었고,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초창기 '4대 천왕'으로 군림했다. 앤디 훅, 어네스트 후스트, 피터 아츠, 마이크 베르나르도 중 챔피언이 아닌 선수는 베르나르도 뿐이었다.

베르나르도 뒤를 이어 K-1의 대표적인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던 선수는 이론의 여지없이 단연 제롬 르 밴너다. 'K-1 싸움반장’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등 다양한 닉네임을 달고 다니는 밴너는 1995년 데뷔 이래 좀처럼 흥행전선 선두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K-1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모국 프랑스는 물론 일본과 국내에서도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비록 챔피언타이틀은 없지만 그가 K-1 역사의 한 축이라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심지어 여러 타이틀을 가져갔던 '플라잉 잰틀맨' 레미 본야스키나 '격투머신' 세미 쉴트 보다도 찬사를 받는 등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피터 아츠-바다 하리 등과 함께 큰 사랑을 받았다.

바다 하리.jpg


일단 밴너 경기는 이기든 지든 화끈하다. 어떤 상대와 맞붙어도 절대 물러설 줄 모르는 우직한 밴너는 맷집이 빼어난 것이 아님에도 난타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덕분에 대부분의 경기를 명승부로 연출했다. 하지만 그런 탓에 성적에서는 손해를 봤다.

베르나르도나 밴너에게는 약간 뒤질지 모르겠지만 '마오리족의 전사' 레이 세포 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돌주먹이다. 통나무 같은 몸통에서 뿜는 강력한 부메랑 훅을 무기로 웬만한 상대는 초반부터 박살내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돋보인다. 신예들에게 베테랑의 위엄을 보여주는 일종의 수문장 역할로도 유명했다.

한때 바다 하리와 함께 '차세대 신성'으로 꼽혔던 루슬란 카라에프는 상승세를 타려는 시점마다 번번이 세포에 당하며 K-1 위력을 절감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해 싸우고 경기가 끝나면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밴너와 달리 약한 상대에게는 조롱과 도발을 감행, 열성팬 못지않게 안티들도 많았다.

크로캅-하리 ‘2% 부족한 무관의 제왕’

'무관의 제왕'으로 표현하기에는 2% 아쉬운 '불꽃하이킥' 미르코 크로캅과 '악동' 바다 하리는 공통점이 많다. 펀치면 펀치, 킥이면 킥, 다양한 공격무기를 갖춘 이들은 빼어난 동체시력과 스텝을 바탕으로 난타전보다는 되도록 맞지 않는 아웃파이팅을 구사했다.

물론 이들이 펼친 아웃파이팅에는 '공격적'이라는 특징을 빼놓으면 안 된다. 맷집과 내구력이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무시무시한 화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상대를 격파하는 임팩트만큼은 밴너나 세포 못지않았다. 가드 안으로 날카롭게 뚫고 들어가는 펀치와 다양한 킥을 구사했다. 그들의 사냥 영역에 갇힌 상대는 그야말로 지옥의 공포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수려한 외모에 균형 잡힌 몸매 그리고 ‘차도남’ 이미지로 여성 팬들의 남다른 관심을 받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크로캅은 입식보다는 MMA쪽에서 더 이름값을 드높였지만, K-1에서 남긴 업적도 만만치 않았다. 천적 후스트에 연전연패하며 자존심을 구긴 것을 제외하면 크로캅은 어떤 정상급 강자에게도 밀리지 않았다.

데뷔전에서 밴너를 제압하며 성공적인 신고식도 치렀다. 피터 아츠-마크 헌트-레미 본야스키 등 파이널 우승 경력에 빛나는 강자들도 꺾은 바 있다. 특히, 2003년 K-1 무대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괴수’ 밥 샙을 낚으며 기존 입식 파이터들의 자존심을 지킨 경기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하리 같은 경우 '무관의 제왕'에 그쳐서는 안 되는 선수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의 경우 커리어가 끝났거나 은퇴를 바라보는 노장들이지만, 1984년생인 하리는 아직도 앞날이 창창하다. 신인시절 라이벌로 꼽혔던 카라에프는 베테랑들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하리는 차근차근 강호들을 눕히고 성장한 K-1의 마지막 슈퍼스타다. 데뷔 당시부터 거침없는 도발하며 ‘건방’ 이미지를 풍겼지만, 내뱉은 말은 꼭 이루면서 ‘공갈포’가 아님을 입증했다.

하리는 리벤지의 화신이다.

스테판 레코-피터 그라함-루슬란 카라에프 등과의 첫 대결에서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레코와 그라함에게는 백스핀킥으로 무참하게 넉 아웃됐고, 카라에프와는 사커킥 논쟁까지 일으키며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레코에게 백스핀킥의 악몽을 그대로 갚았고, 카라에프와의 승부에서는 역사에 남을 카운터를 작렬하며 리벤지에 성공했다.

비록 K-1 무대는 아니었지만 ‘난공불락’ 세미 슐트에게 믿을 수 없는 KO승을 거둔 것도 바로 하리였다. 그러한 놀라운 활약으로 앤디 훅의 ‘악당판’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리의 천부적 재능을 인성이 받쳐주지 못했다. 연이은 폭행 사고로 인해 인생의 절정기를 감옥에서 썩고 있다. K-1 부활의 중심에 서야 할 최고스타로서 너무나도 아쉬운 행보다.

-윈드윙-


댓글 2

  • 001. Lv.68 이가후

    13.01.20 23:37

    쌈반장 제롬... 팔이 부러져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려던 그 근성~
    전율의 하이킥 크로캅~! 평소에는 냉정해 보이지만 우승을 한 후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사나이..
    이제 모두 옛날 이야기네요 ㅠ.ㅠ

  • 002. Personacon 윈드윙

    13.01.24 13:10

    그러게요 ㅠㅠ 낭만이 있던 그시절이야기. 정말 그들은 감동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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