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윈드윙 님의 서재입니다.

노총각일기


[노총각일기] 무협 좋아하던 나, 서부 활극에 빠져든 이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총각은 최근 들어 틈틈이 영화를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일이 밤낮으로 주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래도 최소한의 여가생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이다.

물론 일부러 극장까지 가서 볼 상황은 안 되는지라(결정적으로 총각이 사는 지역에는 극장이 없다) 텔레비전으로 안방에서 시청하는 게 고작이다. 다행히 요즘은 케이블 방송이 워낙 잘 되어있어서 어지간한 최신 영화도 안방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예전에 그렇게 좋아했던 비디오가 필요가 없어졌다.

총각은 시청하고 나면 가슴이 잔잔해지는 그런 영화를 즐겨본다. 가슴 절절한 사랑도 좋지만 결말이 훈훈했으면 좋겠다. 특히 가족애가 느껴지는 영화는 외로운 총각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어서 매우 선호하는 장르다. 최근 본 영화 중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물씬 느껴지는 <프리퀀시>, 보는 내내 묘한 느낌을 주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반면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을 고문하고 괴롭히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공포영화는 피하는 편이다. <쏘우>,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우리네 인생살이에서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속출하는데 영화에서마저 비합리적인 공포와 나쁜 기분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그런 가운데 최근 들어 부쩍 좋아진 장르가 있다. 예전에는 큰 관심조차 없다가 2년 전쯤부터 확 꽂히게 된 장르다. 다름 아닌 서부영화다. 시작은 <매그니피센트 7>이다.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 등 호화 라인업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배우 이병헌이 출연한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총각 역시 평소 즐겨보지 않던 장르임에도 서부극에서의 이병현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 마음에 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병헌의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모두 보고 난 다음에 총각이 건진 것은 이병헌이 아니었다. 서부극 자체였다. 재미있었다. 서부극이 이리 재미있는지 정말 처음 알았다. 서부활극의 매력적 세계가 총각의 가슴에 쾅 하고 꽂히는 순간이었다.

무협영화처럼 정형화된 패턴, 그렇기에 더욱 재미있다

서부극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하는 생각에 다음 작품으로 <웨스턴 리벤지>를 봤다. 역시였다. 재미없는 영화를 접하게 되면 집중력이 극도로 떨어지는 총각이 끝까지 조금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집중해서 봤다. 흑인이 주인공이고 노예 문제도 섞여 있던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어떨까 싶었다. 꽤 장편이었지만 흥미진진했다.

(2) 퀵 앤 데드.jpg
 샤론 스톤 주연의 [퀵 앤 데드]는 여성총잡이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당시 더욱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 TriStar Pictures


얼마 전에는 샤론 스톤이 20여 년 전에 찍었던 여성 주연 서부극 <퀵 앤 데드>까지 시청하며 총각의 취향을 '확인 사살'(?)하는 시간을 가졌으나 결론은 또다시 '재미있다'였다. 그렇다. 총각 취향에는 서부활극 영화가 아주 잘 맞았다.

이러한 서부극 취향은 총각 스스로도 놀랐다. 액션을 구분 지을 때 총각은 총보다는 칼 쪽을 선호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총을 난사해 삽시간에 상황을 정리하는 것보다 '개인 대 개인'의 역량이 빛나는 쪽이 흥미가 더 갔다. 아무래도 전쟁 액션보다는 무협영화가 그런 부분이 강했고 자연스레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서부영화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다 보니 새로운(총각 입장에서) 사실도 알게 됐다. 서부극이라는 장르는 무협영화와 상당부분 닮아있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정형화된 패턴이 많은데 바로 그 점이 특유의 중독성을 일으킨다. 꾸준히 발전하기는 했으나 서부극, 무협은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큰 틀은 달라지지 않았다. 몇십 년 전의 작품 속 분위기를 지금도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올드도 이런 올드가 없지만 그러하기에 꾸준하게 마니아 층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해당 장르의 치명적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서부극 역시 무협처럼 이른바 '권선징악'이 주를 이룬다. 아주 드물게 여기서 벗어난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의와 악의 싸움이다. 작품성을 염두에 두고 서부극, 무협을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골치 아픈 생각 따위는 버린 채 킬링타임용으로 즐기고자 보는 케이스가 대부분인지라 일단 통쾌해야 한다.

총각 같은 일반 팬들에게는 악당을 물리치는 정의의 인물들의 활약상만큼 가슴이 뻥 뚫리는 소재는 드문지라 바로 그러한 기대를 가지고 서부극을 시청한다. 서부극 역시 거기에 걸맞는 내용과 액션으로 대리만족을 시켜준다.

문명사회가 더 안전하다는 걸 물론 알지만, 가끔은...

서부극은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던 개척시대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영화는 무대를 아주 좁게 쓴다. 특정 지역이나 마을을 중심으로 풀어나갈 때가 많다. 시대적으로 당시 각각의 마을은 계층을 이루어 잘 구성되어 있었던지라 그 안에서 얼마든지 디테일한 스토리 구성이 가능하다.

악역 역시 마을을 괴롭히는 일당이 주를 이룬다. 마을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인근 세력 혹은 마을에서 터를 잡고 횡포를 일삼는 힘을 앞세운 지배자 등이 그것이다. 하나같이 잔악무도하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없이 총을 빼 들어 생명을 앗아가 버린다. 완전히 체계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웠던 당시 국가적 배경상 어지간한 일 처리는 마을 내부에서 이뤄졌던지라 가능한 구성이 아닐까 싶다.

악당과 맞서는 주인공은 주로 갑자기 흘러들어온 외부인인 경우가 많다. 우연히 혹은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마을에 온 주인공은 그곳을 힘으로 지배하고 있던 세력과 마찰을 일으키고 결국 한판 승부를 벌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을사람들이 각성해 함께 싸우기도 하고 혹은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소수의 팀을 이뤄 결전을 벌이기도 한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특별한 변화 없이 이어지던 일상의 적막을 깨고 사건을 만들어가고 해결하는 것은 역시 주인공이다.

(1) 퀵 앤 데드.jpg
 서부영화는 주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 TriStar Pictures


무협작품에서 술과 음식을 파는 식당은 스토리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엑스트라 혹은 단역 정도 비중밖에 차지하지 않는 인물들이 "자네 그 얘기 들어봤나?"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디테일하다. 보통은 그렇게까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얘기를 나눌까 싶다. 그렇다. 실상은 작가나 연출가가 작품을 보거나 읽는 이들을 위해 그들의 대화신을 설명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서부극에서의 주점(식당) 비중은 더 크다. 어차피 좁은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일 곳은 주점밖에 없는지라 상당수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언뜻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에 주인공이 발을 내딛고 맨 먼저 들르는 곳은 주점이다.

스위닝 도어를 열고 주인공이 주점에 들어서면 여러 개의 시선이 쏟아진다. 무심한 듯 힐끗 쳐다보는 이부터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시선까지…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운이 교차한다. 주인공은 카운터에 술과 간단한 먹거리를 주문하고 주점 주인은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거나 혹은 넌지시 말을 건넨다. "이것만 먹고 떠나는 게 좋을 거야" 등 협박성 말투에서 심상치 않은 마을임을 느끼게 해준다.

현대사회는 살기는 무척 편해졌지만 사방에 CCTV가 깔린 듯 자유로운 행동에 제약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더 안전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총각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무한의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느낌이 밀려들 때도 있다.

서부영화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자유 판타지를 안겨준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문피아독자 윈드윙


댓글 0

  •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글목록
번호 제목 작성일
10 노총각일기 | 여행아가씨 별이의 '텔미' *4 15-06-05
9 노총각일기 | 상대편 눈에 향수 뿌리고... '추억 돋는' WWF 스타들 15-06-03
8 노총각일기 | 1인자가 부담스러워? 2인자가 더 어렵다! 15-05-25
7 노총각일기 | 어린 시절의 종합판타지, 대본소 무협만화 *2 15-05-08
6 노총각일기 | '불금'에 혼자 삼겹살을? 다 이유가 있습니다 *4 15-04-26
5 노총각일기 | 고2 때 처음 먹은 햄... 정말 놀랐어요 *6 15-04-10
4 노총각일기 | ‘리얼논쟁’ 송가연… 난 20살 때 뭐했나? *2 14-08-16
3 노총각일기 | "고양이 새끼한테 무슨 애정을 쏟아... 외로워?" 14-08-12
2 노총각일기 | 질투의 대상? 친한 사람은 나의 힘! 14-06-29
1 노총각일기 | 내 인생의 유일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20 12-12-25

비밀번호 입력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