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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님의 서재입니다.

실크로드 엔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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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ky
작품등록일 :
2018.04.10 17:39
최근연재일 :
2018.04.1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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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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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퀵 서비스

DUMMY

하늘은 한없이 맑은데, 멀리서 천둥이 아련한 북소리처럼 울려온다. 남해안에 형성된 장마전선이 북상중이라는 라디오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중부지역에도 오늘 저녁, 아니면 밤중에 집중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여성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한 옥타브 올라간 느낌이다.


나는 간혹 가다가 라디오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조금은 애잔한 목소리에 휘발성이 느껴지는 듯한 음색이다. 봄날 들판의 아지랑이 같은 목소리가 공중으로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느낌보다는 목소리에 조금은 피곤한 신경질이 묻어 있는 듯하다. 날씨 때문에 그녀는 철야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짜증스러운 기분이 그 목소리에 무늬처럼 묻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생리불순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는다. 왜 여성 기상캐스터의 목소리에서 생뚱맞게 생리불순을 떠올린 것일까. 꽉 막힌 도로 때문에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도로야말로 생리불순처럼 아침저녁의 러시아워와 관계없이 아무 때나 막히고 예상치 못한 시각에 뚫린다.


차는 아까부터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앞에 늘어선 차량들만 보고는 왜 이 시간에 정체가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교통방송에서도 그걸 알려주지 않는다.


세라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신경질이 묻어 있다. 세라도 생리불순인가. 전화 내용으로 보아 공연 순서를 뒤쪽으로 빼달라는 것 같다. 그러나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하긴 그쪽 입장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뒤쪽은 이미 인기 최고의 가수들로 채워져 있게 마련이다. 떠오르는 신인도 아니고, 이미 한물 간 가수로 갑자기 펑크 난 것 때우기 위해 가는 입장이다. 그러니 도로 사정을 핑계로 공연 순서를 뒤쪽으로 옮겨달라는 것도 낯 뜨거운 노릇이다.


“이래 가지고 인천까지 언제 가? 에이 씨, 사고 난 거 아냐?”


운전석의 춘배가 차창 밖으로 목을 내밀더니, 앞쪽에 빽빽하게 밀려 있는 차량의 행렬을 바라보며 투덜댄다.


나는 조금씩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심리적으로 초조해지면 등이 가렵다.


“야, 세라야. 나 등 좀 긁어줘.”


나는 옆에 앉은 세라에게로 등을 돌린다.


“영감 다 된 것처럼 왜 그래?”


세라가 살짝 흰자위를 보이며 눈을 흘긴다. 밉지 않은 표정이다.


한때 세라는 내가 속했던 팝그룹 ‘B앤W’의 백댄서였다. ‘B앤W’는 ‘블랙(Black)’과 ‘화이트(White)’에서 따온 그룹명이다. 20세기 패션 디자이너의 아이콘인 프랑스의 코코 샤넬이 잡스러운 원색 없이 흑과 백의 조화만으로 여성의 드레스를 선보여 공전의 히트를 친 것처럼, 그렇게 ‘B앤W’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길 원했던 것이다.


처음 데뷔할 때 외국 유명 자동차 회사명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비웃음을 샀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때 흑과 백을 조화시킨 무대의상을 선보여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인기 그룹으로 급부상했다.


시작은 화려했으나, 멤버들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데뷔 3년 만에 해체되었다. 한 명은 해병대에 지원해 군대로 가버리고, 다른 한 명은 작곡 공부를 더 하겠다며 미국 뉴욕으로 도망쳤다.


어정쩡하게 국내에 남아 있던 나는 솔로 가수로 다시 활동을 재개했으나, 반응은 신인 가수보다도 못하다. 그것이 늘 나를 초조하게 만드는 아킬레스건이다.


내가 솔로 가수로 활동을 재개할 때, 백댄서였던 세라는 내 매니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세라는 귀여운 여자였다.


“여기?”


세라가 내 등을 긁으며 묻는다.


“아니, 조금 더 아래.”


“그럼 여기?”


“그래 거기, 거기. 조금 더 세게.”


나와 세라가 하는 짓거리를 귀로 듣던 춘배가 툴툴거린다.


“제에길! 다른 사람이 들으면 뭐 하는 줄 알겠어요.”


“하긴 뭘 해 임마! 에이 씨, 이 차엔 프로펠러도 없냐?”


나는 무르춤한 기분이 되어 엉뚱하게 차를 타박하고 나선다.


“춘배 씨도 억울하면 등 굵어줄게.”


세라가 새침해진 표정으로 한 마디 톡 쏘았다.


“어이, 참! 형도 빨리 돈 벌어서 전용 헬리콥터라도 하나 마련하든지. 미국 대통령은 에어 포스 원이 있고, 우리나라 대통령도 전용비행기 마련하려고 국민들 눈치 보고 있잖아?”


“야 이놈아! 어떻게 나를 대통령과 비교하니?”


“아님 말고. 이거 원, 속 터지니까 헛소리가 다 나오네! 그리고 세라 씨, 난 등이 아니라 엉덩이가 근질거려. 쓰바, 좀이 쑤셔 못 배기겠네!”


춘배는 꽉 막힌 도로에다 투정을 부려댄다.


“야, 세라야! 안 되겠다. 퀵에 전화 걸어 오토바이라도 불러라. 쓰바, 짐짝이 되어서라도 공연 시간에 맞춰 가야만 해.”


춘배 흉내를 내어 내가 욕지거리를 하면서 무심코 내뱉은 말에, 의외로 세라가 엉덩이까지 들썩대며 반색을 하고 나선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내가 당장 퀵 부를게!”


세라는 더 이상 묻지도 않고 휴대폰으로 퀵 서비스 전화번호부터 검색한다.


초조하기는 세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곡을 내고도 별로 공연 요청을 해오는 곳이 없었다.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국 PD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사정한 끝에 겨우 두 군데 라디오 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인천에 있는 큰 기업인데, 창업 30주년을 맞아 사원과 사원 가족들을 위한 기념 공연을 갖겠다는 것이다. 급하게 요청이 온 것을 보면 아무래도 초청 가수들 중 누군가의 스케줄이 맞지 않아 급히 대타로 나를 찾게 된 모양이었다.


세라는 당장 퀵 서비스에 전화를 걸려고 번호를 누르고 있다.


나는 그런 세라에게 좀 서운한 느낌이 들어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세라야! 내가 정말 짐짝이 되어도 좋단 말이지?”


“지금 짐짝이 문제야? 이 공연 펑크 나면 우린 망해. 오빠! 이 세계에서 소문 한 번 잘못 나면 끝장이란 거 몰라?”


“그래, 좋다! 오늘 짐짝 한 번 되어보자.”


나도 결심을 굳혔다.


세라는 곧 퀵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오토바이로 짐짝이 아닌 사람을 실어 날라야 된다는 구구한 사정을 설명한다.


“도준하 몰라요? 전에 비앤더블류 리드싱어였던. 네? 뭐 자동차회사···참, 나! 그런 거 따질 것 없이 빨리 와주세요. 여긴 당산동이구요, 동인천까지 갑니다. 지급을 요하니까, 요금은 따블로 드릴게요.”


세라의 전화 통화를 들으며 춘배는 킬킬대고 웃는다.


“춘배야, 너 지금 웃을 기분이냐?”


나는 뱃속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구역질 같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춘배를 향해 인상을 쓴다.


“세라가 형을 정말 짐짝 취급하니까 그렇죠. 세라야! 아무리 급해도 지급이 뭐냐, 지급이? 소포나 전보도 아니고.”


춘배는 여전히 말끝에 웃음을 빼어 문다.


“소포고 전보고 다 좋다. 퀵 오토바이는 오는 거지?”


내 초조감은 극도에 달해 있었다. 심리적으로 쫓기다 보니 이상하게도 오줌이 마렵기까지 했던 것이다.


“곧 올 거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퀵 서비스를 수배했으니까.”


“그러면 얼른 공연복 줘. 여기서 갈아입게.”


그때서야 세라는 제 정신으로 돌아와 공연복을 챙긴다.


나는 세라가 주는 공연복을 갈아입는다. 차 뒷좌석의 좁은 공간에서 나는 몸을 비비적대며 벌레처럼 사지를 버둥댄다.


세라가 그런 나를 도와 옷을 입혀준다. 그녀의 입김이 내 코끝에 와 닿는다. 내 눈 밑에 그녀의 가슴이 다가와 있다. 타이트한 그녀의 흰 와이셔츠 속에서 봉긋한 두 봉우리가 숨을 쉰다. 그것을 보자 갑자기 나의 욕망이 꿈틀댄다. 나 생리기간이야. 어젯밤 그녀를 안으려고 했을 때, 풍선 바람 빠지는 것 같은 그 소리 땜에 기분 잡쳤던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곧 헬멧을 쓴 퀵 오토바이 기사가 나타났고, 나는 공연복을 입은 채로 차에서 뛰어내렸다.


“곧 뒤따라와야 해.”


“알았어. 오빠, 조심해!”


나와 세라의 짤막한 대화가 거기서 끊겼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클랙슨 소리가 뒤범벅이 된 데다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할 만큼 복잡하다.


퀵 오토바이는 도로를 벗어나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다.


“방금 퀵 부른 가수예요?”


오토바이 기사가 헬멧을 벗으며 묻는다.


“그렇습니다. 동인천까지 빨리 갑시다.”


나는 오토바이 뒤에 올라탄다. 기사가 예비로 가지고 다니던 헬멧을 건넨다.


“헬멧은 써야 돼요. 교통한테 걸리면 직방입니다.”


나는 기사에게서 헬멧을 받아 머리에 쓴다. 갑갑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부르릉, 오토바이 시동을 걸며 기사가 뒤쪽에 대고 소리친다.


“허리 꽉 붙드세요.”


“알았습니다. 내 참, 짐짝이 되어보긴 처음이네.”


“급하면 어쩔 수 없죠. 나도 가수 태워보긴 처음입니다. 예식장에 가는 주례 선생님 태워본 적은 두어 번 있었지만.”


그러더니 오토바이 기사는 곧 출발한다. 오토바이는 일단 인도로 달린다. 차도는 자동차들로 꽉 차서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기조차 힘들다.


부르릉, 덜커덕!


오토바이는 마구 달리다 급정거를 하다 다시 달리기를 거듭한다. 이면도로로 접어들자 고속 방지턱에 걸려 오토바이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다 쿵, 하고 내려앉는다.


“거, 조심하쇼. 엉덩이 아파 죽겠네.”


나는 오토바이 기사의 허리를 더욱 힘줘 끌어안으며 소리친다.


“급하다는 양반이 잔소리는···, 염려 붙들어 매고 눈 감은 채 기도나 드리쇼.”


오토바이 기사는 입 다물고 있으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 웃기는 친구다. 나는 그의 등 뒤에서 피식 웃음이 나오는 걸 애써 참는다. 정말 눈 감고 기도나 드려야 할 판이다. 옆으로 휙휙 지나쳐가는 집들과 전봇대와 상점 간판들이 무섭다. 오토바이의 속도가 내 시선의 움직임보다 빠르다. 그래 기도나 드리자. 나는 눈을 감아버린다.


나는 오토바이의 속도감에서 하늘로 붕붕 뜨는 듯한 기분에 취한다. 춘배의 말처럼 자동차에 프로펠러를 달지는 못할망정, 오토바이에 날개를 달고 하늘을 붕붕 날고 있다는 상상을 해본다.


어린 시절 나는 자주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했다. 두 발을 버둥거리면 저절로 몸이 붕붕 떠오른다. 높은 하늘에서 막 추락하려고 하면 나는 더욱 빨리 자전거 페달을 밟듯 발을 재게 놀렸다. 하늘을 날 때 나는 늘 무엇엔가 쫓기곤 하였다. 비행기도 아니고, 그 보다 더 큰 독수리가 나를 채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독수리의 시커먼 그림자가 내 작은 몸뚱이 위로 스쳐갔다. 아마도 그 날갯짓에 내 몸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앗! 저 새끼가?”


오토바이 기사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다.


끼이익, 쾅!


내 몸이 다시 붕 떠오르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다. 추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내 몸통은 보이지 않고 두 발만 허공에서 버둥대는 느낌이다.


바로 그 순간 내 눈앞에 영사막처럼 떠오르는 그림들이 보인다. 내 어린 시절이 동영상으로 지나간다. 나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도 여전히 허공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듯 마구 발을 구르고 있다. 그 지극히 짧은 순간에 내 인생의 파노라마가 스치고 지나간다.


나는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직감한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외국의 한 알피니스트가 바위절벽을 오르다 떨어져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짧은 순간에도 죽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려고 안간힘을 썼다는 것이다. 정신의 줄을 놓는 순간, 그는 자신의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끝까지 그 줄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서 끝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다. 퍼뜩 그 알피니스트를 떠올리는 순간, 나도 그처럼 정신의 줄을 놓지 않고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치 달리는 말의 고삐를 잡듯이 정신의 줄을 꼭 붙든다. 허공에 뜬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나는 죽는다고 생각하며, 마구 두 발을 버둥거리며 헛발질을 해대고 있다.


작가의말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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