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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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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18.04.10 12:45
최근연재일 :
2018.05.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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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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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1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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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어둠의 잔상(5)

DUMMY

한동안은 평화로운 나날이 반복되었다.

평화롭다고 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못 하지만 어찌됐든 별다른 일 없이 느긋하고 기분 좋은 하루하루였다고 봐야겠다.

따지고 보면 이전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S급 던전을 찾아다니며 있다면 클리어 해서 보상을 챙기고, 없다면 아쉬운 대로 돌만한 A급 던전 들락날락 했다.

뭐, 말로만 들으면 세상이 무슨 던전으로 가득 덮여서 어딜 가든 발에 치일 정도는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특히나 급이 높은 던전일수록 숫자가 적기 때문에 강해질수록, 여러 차례 던전을 클리어 하고 다닐수록 조금씩 갈 곳이 줄어들었다.

딱히 어딘가에 가야 한다면 S급 던전을 찾아다니며 ‘드레인 도어’의 실현을 막아야 한다는 거였지만 막상 한국의 S급 던전을 정복해 나가니 약간의 여유를 느낀 게 사실이었다.

나유영의 절실한 경고로 수도권 쪽은 제대로 건드리질 못 해서 그쪽만 마무리 지으면 한국은 확실하게 정복하는 거였다.

-딱!

바람을 가르고 휘둘러진 골프채에 적중당한 골프공이 휘익 날아가 홀 근처에 떨어졌다.

“하하, 좋구요!”

선글라스를 낀 김기만이 히죽 웃으면서 멀리 내다보았다.

“형씨 차례요.”

그가 자릴 내주자 약간 어설픈 자세로 나선 나는 어떻게 눈동냥한대로 골프채를 휘둘러보았지만 훅 허공을 갈랐다.

“풉, 푸하하하!”

김기만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터트렸다.

“내 상상한 대로라 너무 웃기구만. 형씨는 역시 이런 쪽으론 영 잼병이구만.”

“고, 골프 같은 건··· 칠 일이 없었으니까!”

뭔가 부끄러워서 큰 소리로 외쳤다.

“괜찮으니까 연습하쇼. 시간은 많소. 아무리 멀지 않은 시기에 세상이 멸망한다고는 해도 말이지. 안 그렇소?”

“···그렇지.”

나는 김기만이 데려온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알아들은 척만 하는 거다. 여전히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다.

“그나저나 어떻게 되고 있소?”

“뭐가.”

김기만이 예의 고리에 검지를 슉슉 찔러 넣는 동작을 해보였다.

“같이 다니던 미스테리어스 아가씨랑은 잘 되었소?”

“커흠! 민망하게 그런 손동작은 하지 마.”

“반응 보니 이미 할 거 다 했구만.”

눈치 빠른 김기만에겐 어설픈 내 반응이 이실직고와 다름없었다.

“그 아가씨의 이명이 왜 ‘미스테리어스’인 줄 아쇼? 도무지 밝혀진 게 없어서요. 나유영이란 여자의 능력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요.”

“예지 능력자라는데?”

“아, 그렇소? 엄청나구만.”

툭 던지듯 말한 나와 마찬가지로 김기만 역시 그다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예지라··· 내가 그 아가씨랑은 별로 접점이 없어서 이렇다 말할 게 없는데, 형씨가 그리 대놓고 말하는 걸 보면 약간 그럴 듯 하지만 결국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거구만. 맞소?”

“예리하네.”

“눈칫밥 없으면 여러모로 힘든 위치에 있으니까. 형씨도 조금은 눈썰미를 기르는 게 좋을 거요. 내가 보기엔 형씨는 너무 단순한 감이 있어.”

“내가 단순하다고?”

김기만은 내 날이 선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마쇼. 그냥 내 느낌이니까.”

“아냐. 나도 대인배가 되기엔 틀렸네. 겸허히 듣고 수용하지를 못 하겠어.”

“뭘 또 진지해지는 거요? 하하.”

나와 김기만은 일상적인 잡담으로 넘어갔다. 헌터라서 그와 관련된 요소가 ‘일상적인’ 수준이란 것이 일반인과 다를 뿐이다.

“아, 그러면 이제 새로운 던전을 찾아 떠날 필요가 있겠군.”

“어. 여기의 S급 던전들은 이제 어려운 게 없어.”

단독 보스존 던전은 클리어하면 소멸해버리니까 더 이상은 없다. 인스턴트형은 전자보다 난이도가 낮으니 안 그래도 ‘신의 공략집’을 가진 내겐 심심풀이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신해준 말이요?”

던전과 헌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쪽으로 연결이 되었다.

“듣자하니 내게 상당한 불만이 있다던데.”

“공개되지 않은 S급 던전을 골라 해치우고 다닌데다가 ‘드레인 도어’에 대한 비밀유지를 위해 형씨는 가진 힘에 비해 무명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불만인 게지.”

김기만은 가이드가 넘겨진 물을 받아 꿀꺽꿀꺽 들이키고는 키야아- 요란한 소릴 내뱉으며 손을 뻗어 그 가이드의 엉덩이를 살살 주물렀다.

“이게 바로 진국이지~”

나는 그의 대범한, 아니 공공정신이 결여된 행위에 어이가 없었다.

“형씨도 어떻소? 함 만져볼라우?”

“아, 아니. 난 됐어.”

“하하하, 형씨는 어여쁜 마누라가 있으니 그럼 안 되지!”

어느 모로 보나 틀린 말이었지만 어차피 동네 조폭 출신이니 그러려니 했다.

가이드도 멋대로 성추행을 당했는데도 아양을 떨며 웃는 모습을 보니 돈과 권력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신해준··· 점마가 진짜 세긴 세서 말이요. 진짜 우리 중에 대빵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한 놈이요.”

김기만은 신해준이 얼마나 센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지옥불’이라는 이명답게 불을 다루는 능력자인데 강력한 열기를 몸에 둘러 상대의 능력까지 상쇄시키는 기행을 벌인다고 했다.

“형씨가 나타나기 전까진 숨겨진 S급 던전을 여럿 해치운 강자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점마는 자신의 지위가 새로운 인물에게 흔들리는 건 아닌가 위협을 느낀 건지도 모르겠소.”

“어떻게 보면 속이 좁은 자로군.”

“그럴지도 모르겠소. 하하하하.”

우리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골프공을 쳐댔지만 실상은 온갖 화제로 떠드는 시간이라고 봐야 했다.

김기만은 말이 아주 많고 입담도 있어서 내가 무언가 툭 던지면 거기에 대해 아주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정원석 그 놈은··· 어딘가 우유부단한 면도 있고 약삭빠르다고 해야 하나? 아마 여자랑 같이 드러누우면 서지도 않을 놈이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농담을 되는 대로 내뱉기도 했다.

“이연경은 완전 여장부지. 난 그런 여자가 취향이요. 밤일도 아주 끝내주게 잘 할 것 같던데 누가 먼저 쓰러지나 내기를 해보고 싶소.”

“너는 분명 복상사로 죽을 거다.”

“아, 그것도 괜찮지. 난 여자를 아주 좋아하니까.”

나는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음탕하게 노는지 상상이 안 가서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쇼. 임자 있는 여자는 안 건드니까. 그게 내 철칙이요. 아랫도리 잘못 놀리면 칼빵 맞으니까.”

충분히 잘못 놀리고 있는 것 같은데 본인의 기준엔 아닌 모양이다.

“신해준이 두 눈에 불을 켜고 버티고 있으니 아직 수도권 쪽은 정리가 덜 됐다는 거요? 으음, 그건 좀 그렇군.”

“김기만. 김철수는 어때?”

“김철수? 그놈은 신해준 따까리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놈인데 S급 헌터가 맞는지도 의심이 된다니까. 신해준의 그림자만 아니면 다 까발려질 텐데.”

“···놈의 ‘이명(異名)’이 뭐였더라?”

“그게 ‘매지션’일 거요. 특정한 한 가지에 국한된 게 아니라 막 화염구도 쏘고 바람도 일으키고 해괴하던데.”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김기만.

김철수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제발 멀리해 달라고 울부짖던 나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확실히 신기한 능력이긴 하지만 그리 강하진 않소. S급 던전 클리어 경험도 우리 중에선 가장 적기도 하고.”

“알겠어.”

어차피 S급 헌터들끼린 암묵적인 규칙 같은 게 있어서 서로의 영역은 존중해 주는 편이어서 더 이상 자세히 알아낼 순 없었다.

우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골프장 아래쪽에 위치한 한우식당으로 이동하였다. 대화는 그 와중에도 계속되었고 다시 신해준으로 넘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신해준 역시 ‘드레인 도어’에 대해 알고 있으니 잘 말해보면 될 거요. 점마도 멍청이는 아니니까 형씨가 얼마나 유용한 인재인지 알아봤을 테니.”

최고급 한우가 곧 지글지글 구워지며 맛있는 냄새를 피워냈다.

“으음, 역시 한우야. 외국산 쇠고기보다는 역시 신토불이가 최고지!”

확실히 한우가 더 맛있는 건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꿀 진수성찬의 명단에 들어갈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가 있다.

“대충 낌새는 느꼈는데, 둘이 어쩌다가 만난 거요?”

김기만은 나와 나유영의 관계로 흥미를 옮겼다.

“내 싹수를 알아보고 유영이가 먼저 함께 하자고 제안한 게 시작이었어.”

“오호, 그렇군. 사업가는 사업가라는 건가.”

고기 한 점, 술 한 잔. 맛이 아주 좋다.

“뛰어난 피지컬과 동레벨의 각성자도 압도하는 스펙으로 슈퍼루키로 불린 그 아가씨도 참으로 대단하지.”

김기만은 내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고유능력이 끝내 밝혀지지 않아 ‘미스테리어스’라고 불린 건데.”

“그런 거였어?”

“그럼 뭔 줄 알았소?”

“신비한 느낌의 여자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형씨. 너무 겉으로만 판단했소.”

우리의 대화는 한동안 더 이어졌고 술과 고기도 계속해서 넘어갔다.

대충 자리가 정리됐을 무렵은 해가 지고 어둠이 깔렸을 때였다.

“아이고, 잘 먹었다. 배부르네~”

자기 배를 땅땅 두드린 김기만이 내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합시다.”

“어. 다음에 만났을 땐 골프 말고 다른 거나 하자.”

“하하, 알겠수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갔다. 술을 거하게 마시긴 했지만 이전과는 달리 정신은 멀쩡해서 움직이는 데에 무리는 없었다. 높아진 정신력 덕분이겠지.

이제 가진 돈도 많으니 멋드러진 차나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버스 특유의 승차감과 어둠이 깃든 내부의 분위기는 솔솔 잠을 불렀고 나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

도착해서 핸드폰을 확인한 나는 박찬일로부터 전화가 수도 없이 와있음을 확인했다. 시간은 김기만과 술을 퍼마시고 있을 때였다. 평소에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놓는 덕분에 알아채지를 못 했다.

“뭐지?”

번호를 눌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박찬일 씨?”

[아, 이재호 씨? 지금 어디 계십니까?]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입니다만.”

[서둘러서 이쪽으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왜요?”

언제나 담담하고 기복이 없는 박찬일의 목소리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가씨가··· 어디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그 박찬일이 저런 식으로 이상함을 알리는 전화에 결코 농담을 덧붙일 수 없었다.

“알겠어요. 바로 가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도착하면 해드리겠습니다.]

“네.”

다리에 힘을 주었다. 신체 스텟이 월등해진 나의 몸은 마음만 먹으면 차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단지 국가에서 헌터전용 법을 제정해서 이것저것 제한한 덕분에 그래선 안 됐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 달리면 15분 정도 걸리겠군.”

힘껏 이를 악물며 강남의 번화가로 내달렸다.


작가의말

이제 종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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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플레임 브레이크(1) 18.05.13 728 9 9쪽
» 어둠의 잔상(5) 18.05.12 75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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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어둠의 잔상(2) 18.05.09 838 12 10쪽
32 어둠의 잔상(1) 18.05.08 870 12 9쪽
31 뒤바뀐 운명 18.05.06 912 9 11쪽
30 인형극의 거장(5) 18.05.06 923 15 8쪽
29 인형극의 거장(4) 18.05.05 888 13 10쪽
28 인형극의 거장(3) 18.05.04 925 10 11쪽
27 인형극의 거장(2) 18.05.03 963 14 11쪽
26 인형극의 거장(1) 18.05.02 1,046 12 11쪽
25 네 개의 술잔 18.05.01 1,001 15 9쪽
24 파상공세의 생물병기(4) 18.04.29 1,050 12 10쪽
23 파상공세의 생물병기(3) 18.04.29 1,077 14 8쪽
22 파상공세의 생물병기(2) 18.04.28 1,050 12 9쪽
21 파상공세의 생물병기(1) 18.04.27 1,149 13 10쪽
20 한 번 죽었던 자 +2 18.04.26 1,192 10 10쪽
19 불사의 괴물(5) 18.04.25 1,150 13 9쪽
18 불사의 괴물(4) 18.04.24 1,180 13 10쪽
17 불사의 괴물(3) 18.04.22 1,205 14 8쪽
16 불사의 괴물(2) 18.04.21 1,222 14 10쪽
15 불사의 괴물(1) 18.04.20 1,288 13 11쪽
14 검은 하늘(3) 18.04.20 1,381 1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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