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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킹 님의 서재입니다.

신의 공략집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리자드킹
작품등록일 :
2018.04.10 12:45
최근연재일 :
2018.05.18 13:35
연재수 :
4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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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84
추천수 :
619
글자수 :
174,136

작성
18.05.0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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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뒤바뀐 운명

DUMMY

“컥!”

목을 칼에 찔린 한 사내가 있었다.

날카롭고 차가운 쇠붙이가 사정없이 파고든 목덜미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생명이 쉴 새 없이 소모되었다.

“크억, 억···”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탓에 목구멍에선 피만 울컥댈 뿐이었다.

제대로 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생명이 다한 그는 앞으로 기우뚱하며 무너지려 했으나 사내를 칼로 찌른 청년이 중간에 붙잡았다.

최대한 조용히 바닥에 눕혀진 시체는 잠시 움찔거리다가 곧 조용해졌다.

“야! 뭐해?”

바깥에서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문을 열어젖힌 남자는 방 안의 참상을 확인하고 뛸 듯이 놀랐다.

“뭐야, 씨발! 야! 이두찬!”

바닥을 선홍으로 물들인 채 엎어져 죽어있는 두 남자.

한 명은 자신의 동료인 이두찬이고 다른 한 명은 오늘 죽이기로 계획한 이재호라는 놈이었는데 둘 다 피칠갑을 한 채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머저리 같은 새끼. E급이라고 방심한 거가?”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둘 다 죽음에 이르려면 무언가 자그마한 몸싸움이라도 있었을 텐데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 했다.

오밤중에 이런 냄새 나는 옥탑방으로 누가 온다고··· 괜히 감시한답시고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까?

어떻게 된 일인지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열심히 추리를 하는 그때였다.

“크억?”

눈을 감고 누워있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 목덜미에 칼을 꽂아 넣었다.

쭈그린 채 무방비하게 있던 터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짓쳐들어온 칼날에 속절없이 목을 내준 그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크윽, 크으···”

그래도 아직이다. 치명상까진 아니었다. 구멍이 뚫린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긴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

“죽어 새끼야!”

하지만 상대는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자신이 불리하다는 걸 알고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툭.

목을 다시 한 번 찔린 남자는 피를 한 웅큼 토해내며 숨을 거두었다.

“하아, 하아···”

완전히 피칠갑을 한 청년, 이재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씨발. 개 같은 것들.”

새빨간 괴물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의 이재호는 뒤집어 쓴 피를 뚝뚝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피바다로 변한 자신의 자그마한 옥탑방.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모를 시체 두 구.

어쩌다보니 살인을 하게 됐다.

“씨발, 씨발···”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자신이 죽었다. 이재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신의 공략집’이라는 고유능력을 각성하여 ‘카르사스의 미궁’이라는 던전 안에서 동사(凍死)와 아사(餓死)의 사이에 껴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고 이제 자신의 앞날엔 창창한 미래가 있을 거라 여겼다.

문제는 그때 살아남은 C급 헌터들이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져버리고 낙오시킨 자가 살아남자 치부가 드러날까봐 두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남몰래 이재호의 거처를 알아내 숨어들어와 조용히 처리하려 했다.

단지 오래도록 진흙탕을 굴러온 이재호에게 그 정도의 미래는 예상하기 어려운 게 아니었고 미리 식칼을 숨겨놓고 있다가 E급 헌터, 즉 보잘 것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하여 방심하고 있던 상대의 모가지에 칼침을 놓았다.

그렇게 두 명을 나란히 처리한 이재호였고 당장은 살 길이 열렸지만 이제부터가 진정한 위기의 시작이었다.

“어쩌라고··· 안 죽였으면 내가 죽었을 텐데.”

시작부터 꼬여도 너무 꼬였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이렇게 되지 않았으려면 어떤 식으로 미궁을 탈출했어야 했던 거지?

됐다.

이제 와서 그런 걸 생각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재호는 들고 있던 식칼을 힘없이 떨어트리고 잠시 옥상으로 나갔다. 너무 갑갑하고 더워서 찬바람을 쐬고 싶었다.

“이야, 대단하군요!”

“?”

옥상의 한켠에서 어둠을 뚫고 다가온 한 남자의 존재로 이재호는 얼어붙었다.

아직도 있었어?

“당황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멀끔하게 생긴 상대는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젊은 남자였다. 척 보기엔 실없어 보이는 비실이 같았다.

“너는···”

이재호는 잠시 그를 째릿 노려보다가 정체를 파악했다.

“S급 헌터··· 김철수?”

“오, 절 알아보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대한민국의 S급 헌터 5인방을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라고. 특히나 이 바닥에 몸담고 산다면 더욱.”

“그렇긴 하네요.”

김철수는 싱긋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뚜벅뚜벅 다가왔다.

“나, 나를··· 죽일 셈이냐?”

상대는 S급 헌터다. 이미 두 사람을 죽이고 나온 자신을 관찰하고 있던 것 같고··· 요행 따위는 바랄 수도 없다. 저자가 살의를 가지고 있다면 꼼짝없이 죽어야 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진가.

이재호의 가슴속에 뜨거운 분노와 안타까움이 치솟았다. 고생만 하다가 겨우 빛을 보나 했는데 일이 꼬여도 너무 꼬였다.

이대로 죽는다면 한 맺힌 귀신이 될 것 같았다.

“네?”

“어?”

절망적인 상황에 좌절하는데 김철수의 반응이 묘했다.

“제가 왜 당신을 죽입니까?”

“아니, 저 자들은 네 부하 아닌가?”

“개미 하나 죽이는데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제 부하긴 합니다만.”

이재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개미 한 마리인가···”

그리고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그런 개미한테 무슨 볼일인데?”

“제 눈썰미가 워낙 좋아야죠. 당신은 개미긴 하지만 특별합니다. 제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 정도로요.”

김철수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살근살근 이재호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저는 ‘카르사스의 미궁’이 클리어 됐을 때 당신을 주목했습니다.”

모두들 던전이 어떻게 클리어 됐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낙오되어 있던 자는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었다는 것.

“제 모자란 부하 놈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였을 때 확신했죠. 역시 뭔가가 있구나.”

-뚝. 뚝.

잠깐 바람 쐬러 나왔을 뿐인데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이재호는 피칠갑 상태로 서있었다. 그래서 바닥엔 조금씩 핏방울이 모이고 있었다.

“오늘 일어난 일들은 제가 말끔하게 처리해드리겠습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요. 어떻습니까?”

“······.”

이재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의심스럽습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까? 흐음,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닌가 보군요. 좀 더 생각하고 머릴 굴려보세요. 지금 상황이 뭘 뜻하는지.”

그렇게 말해도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이재호는 입술을 깨물며 김철수를 응시했다.

“말하자면 저는 당신의 재목을 높이 평가한 겁니다. ‘카르사스의 미궁’을 돌파한 건 ‘이재호’라는 남자이고 평범한 짐꾼이었던 그가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요.”

김철수는 슥, 검지를 들어 건너편 방을 가리켰다.

“저기에 죽어있는 두 쓰레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어서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저 둘에게 죽었다면 그걸로 끝났을 이야기입니다만,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아 주시면 제가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하는 게 뭐야? 나 같은 건 일격에 죽일 수 있으면서 뭔 생각이야?”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요. 하긴, 의심이 많았던 덕에 오늘 살아남은 거겠죠.”

김철수는 피를 뒤집어쓴 몰골인데도 불구하고 가까이 다가와 탁탁 어깨를 두드렸다. 자연스레 그의 손에도 피가 묻었다.

“저와 함께 갑시다. 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을 줄 테니.”

···············.

·········.

···.

“허억!”

급히 상체를 일으킨 나유영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인 것을 깨달았다.

“오랜만이네.”

이런 꿈을 꾼 것은 오랜만이다.

죽음 이후 회귀한 직후에는 엄청 많이 꾸었다. 오죽하면 잠드는 게 두려울 정도로 이런 섬뜩한 꿈들이 매일매일 이어졌다.

꿈에서 나온 장면은 아마··· 1회차의 이재호가 겪은 일일 것이다.

이따금씩 꾸었던 꿈을 또 꾸기도 하는데 특히나 자주 반복되는 게 바로 오늘의 꿈이기도 했다.

생각을 해봤는데, 이 꿈이 정말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수차례 반복되는 거라 여겨진다.

아마도, 꿈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이재호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을 테니까.

“그래도 잘한 거겠지?”

나유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2회차 때는 이 일을 막기 위해 진작부터 움직였고 박찬일을 보내 이재호가 살인하는 것을 막았다.

놀라운 점은 똑같은 장면에 마땅히 있어야 할 김철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철수···”

그는 대한민국 S급 헌터 5인 중 한 명이지만 가장 미스테리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쩐지 불길하고 두려운 느낌이 나서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전의 삶에서는 수차례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좋은 느낌을 갖진 못 했다.

“후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어젯밤 ‘화이트 하우스’를 해치운 뒤 벌인 연회를 마무리 짓고 이연경이 멋대로 합방을 마련해주었지만 이재호가 마지막에 각방을 쓰자고 해서 결국 나눠졌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1회차에서 본 이재호는 말 그대로 악귀였다. 몸에 피가 흐르긴 하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냉혹하고 잔혹했다.

하지만 지금은 무척 인간적이고 정감이 갔다. 약호감일 정도로.

“안 돼, 안 돼.”

나유영은 방금 생각은 애써 떨쳐냈다.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어내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술에 취해 그대로 잠들었더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 있었다.

딱히 숙취에 고생하거나 하는 체질이 아니었지만 정신적인 피로도가 상당하긴 했다.

“부디 올바른 미래로 이끌어 주세요, 인가.”

2회차 인생이 시작되기 전, 무의식 속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여성의 형상을 한 존재가 해온 부탁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자신에게 벌어진 일은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금 이렇게 숨을 쉬며 피부로 느끼는 게 그 자체인데.

“그냥 싸그리 무시하고 내 멋대로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1회차랑 비슷하게 갔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덕분에 이재호의 운명이 달라졌다고 봐야 한다.

“역시 막아야겠지?”

누군가 죽을 것이라 안다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의 사고인 것처럼 세계가 멸망할 것을 안다면 막아야 한다.

무언가 할 수 있다면 더더욱.


작가의말

사실 1회차 때의 주인공이 좀 더 사이다패스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2회차 때는 박찬일이 끼어듦으로 인해 호구상을 연출했죠.

슬슬 결말을 위한 떡밥을 던져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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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약속된 운명 18.05.18 720 5 8쪽
41 플레임 브레이크(5) +1 18.05.17 696 6 8쪽
40 플레임 브레이크(4) 18.05.16 670 6 9쪽
39 플레임 브레이크(3) 18.05.15 700 5 9쪽
38 플레임 브레이크(2) 18.05.13 993 9 13쪽
37 플레임 브레이크(1) 18.05.13 728 9 9쪽
36 어둠의 잔상(5) 18.05.12 756 8 11쪽
35 어둠의 잔상(4) 18.05.11 777 11 8쪽
34 어둠의 잔상(3) +1 18.05.10 837 14 11쪽
33 어둠의 잔상(2) 18.05.09 838 12 10쪽
32 어둠의 잔상(1) 18.05.08 870 12 9쪽
» 뒤바뀐 운명 18.05.06 913 9 11쪽
30 인형극의 거장(5) 18.05.06 923 15 8쪽
29 인형극의 거장(4) 18.05.05 888 13 10쪽
28 인형극의 거장(3) 18.05.04 925 10 11쪽
27 인형극의 거장(2) 18.05.03 963 14 11쪽
26 인형극의 거장(1) 18.05.02 1,046 12 11쪽
25 네 개의 술잔 18.05.01 1,001 15 9쪽
24 파상공세의 생물병기(4) 18.04.29 1,050 12 10쪽
23 파상공세의 생물병기(3) 18.04.29 1,077 14 8쪽
22 파상공세의 생물병기(2) 18.04.28 1,050 12 9쪽
21 파상공세의 생물병기(1) 18.04.27 1,149 13 10쪽
20 한 번 죽었던 자 +2 18.04.26 1,192 10 10쪽
19 불사의 괴물(5) 18.04.25 1,150 13 9쪽
18 불사의 괴물(4) 18.04.24 1,180 13 10쪽
17 불사의 괴물(3) 18.04.22 1,205 14 8쪽
16 불사의 괴물(2) 18.04.21 1,222 14 10쪽
15 불사의 괴물(1) 18.04.20 1,288 13 11쪽
14 검은 하늘(3) 18.04.20 1,381 1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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