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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환생자와 8명의 아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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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나무램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5
최근연재일 :
2022.11.01 20:3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11,243
추천수 :
267
글자수 :
732,747

작성
22.09.12 20:30
조회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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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가출형 공작영애

DUMMY

***


아벨이 임페리얼 로어에 개선하기 나흘 전, 레이나는 하늘을 나는 지팡이에 걸터앉아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쯤 애들이 내가 남긴 쪽지를 봤겠지···’


깜짝 놀라서 허둥대는 동생들, 특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엘렌의 얼굴을 상상한 레이나가 울적한 눈으로 멀리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우스쇼어에 속한 에타스 남작령. 높지는 않지만 제법 험준한 산악지대에 자리 잡은 한적한 시골영지이자 그녀의 약혼자가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그녀가 에타스 남작령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이정표로 삼고, 그것의 북쪽으로 뻗어있는 골짜기로 내려갔다.


‘찾았다.’


협곡의 중간쯤에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발견한 레이나가 설레는 기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속도를 높였다. 쏜살 같이 날아가는 지팡이가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고도를 낮췄다.


‘우리 마을 뒷산 너머에 있는 협곡엔 특이한 나무가 있어.’


그녀가 땅에 발을 디디면서 약혼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아벨과 나누었던 잡담을 떠올렸다.


그건 나무의 외양에 대한 말이 아니었다. 수십 명이 팔을 이어야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줄기가 굵고, 가지와 잎이 궁전의 지붕처럼 울창하단 것을 빼면 평범하게 생긴 나무였다.


‘바람이 잘 부는 날 그 나무 앞에 앉아 있으면, 굉장히 듣기 좋은 음악이 들려.’


‘나무에서 음악이 들린다고?’


‘그래. 그게 어떤 건지 표현하기는 어렵네. 악기 소리보단 자연의 소리에 가깝거든. 그래도 직접 들어보면 왜 내가 그걸 음악이라고 하는지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설마··· 자세히 말해봐.’


그때의 놀라움이 지금 이 순간 레이나의 가슴 속에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그녀가 지팡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협곡에 부는 바람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샤아아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음악회가 시작하기 전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를 닮은 소리였다.


이어서 깊은 달밤의 비, 밀밭을 달리는 바람, 먼 바다의 폭풍우, 그밖에 여러 다양한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얼핏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정교한 음률을 갖춘 그 소리 안에서, 레이나는 초월적인 존재가 남긴 신비를 찾아내고 조용히 감격했다.


‘정령의 오르골이 정말 여기에 있었어. 이건 세기의 발견이야.’


소중한 보물을 잃고 분노에 미쳐 날뛰는 화룡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나히타가 바람의 정령왕 엔릴의 도움을 받아 키워냈다는 전설의 악기. 천 년 넘게 종적이 묘연했던 그것이 지금 레이나의 눈앞에 있었다.


연회신교에 알리면 새로운 성물의 발견자로서 큰 영예를 얻겠지만, 레이나는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일단 정령의 오르골을 혼자서 연구해보고 싶었다.


‘머리가 부산하고 마음이 혼란스러울 땐 평소와 다른 주제를 연구해보는 게 최고니까.’


무엇보다 오르골의 소리에 듣는 이의 기분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벌써부터 그동안 자신의 가슴을 옥죄던 불안감이 많이 가라앉은 걸 느낀 레이나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엘렌이 종종 아벨에게 무릎베개를 해주면서 부르던 노래, 듣기론 아벨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주 불러줬다는 자장가라고 했다.


그 선율이 무척 아름다워서 레이나도 몰래 기억해뒀다가 혼자 있을 때 종종 불렀다.


그렇게 그녀가 노래 한 곡을 다 불렀을 때,


짝짝짝-


난데없이 박수소리가 들렸다. 레이나가 경악으로 뻣뻣하게 굳은 목을 억지로 움직여 시선을 올렸다.


“안녕?”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의문의 여인이 싱긋 웃으며 레이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 누구세요? 대체 언제부터 거기에···?”


여인의 외모는 레이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였으나,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한 목소리와 눈빛에선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연륜이 느껴졌다. 그래서 레이나는 저도 모르게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언제부터 있었냐면··· 음, 한 2시간 전부터인 것 같은데? 산책하고 낮잠을 자는 중이었거든.”


“그러셨구나··· 시끄러운 소리로 주무시는 걸 방해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목소리도 예쁘고, 노래도 정말 잘 불러서 귀가 즐거웠어. 그리고 또 내가 누구냐고 물었지?”


여인이 그대로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렸다. 본인 키의 몇 배나 되는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착지는 깃털처럼 사뿐했다.


그녀가 레이나 바로 앞에 다가와 조금 짓궂은 투로 속삭였다.


“나는 방금 네가 부른 노래를 만든 사람이야.”


“?!”


아까보다 훨씬 더 놀라서 입만 벙긋거리고 있는 레이나를 보고 안나가 작게 웃었다.


“마침 잘 왔어. 우리 귀염둥이들이랑 소풍을 할 건데 너도 같이 놀자, 레이나.”


“소, 소풍? 잠깐만요 어머님! 설마 다른 애들도 이쪽으로···!”


때마침 저편에 있는 숲속에서 보라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여인이 소풍 바구니를 들고 나왔다.


“어머님~ 저희 왔어요!”


이어서 분홍색, 검은색, 하얀색 머리카락의 여인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응? 누가 어머님이랑 같이 있는데?”


“예쁜 빨간색 머리카락. 오빠가 그랬어. 레이나 언니 머리색도 저렇다고.”


“혹시 진짜로 레이나 언니가 온 거 아닐까? 카밀라 언니, 자세히 한번 봐봐!”


“에이 설마~ 언니가 지금 여기 있을 리가···”


카밀라가 손차양을 하고 그쪽을 바라보았다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있네?!”


***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정령의 오르골이 있는 장소는 아벨의 본가와 무척 가깝고, 레버넌트 일가가 옛날부터 자주 나들이를 나갔던 곳이다.


레이나는 자신이 아벨로부터 그런 얘기를 들었음에도 예비 시어머니나 다른 자매들을 마주칠 가능성을 미리 고려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 어쩌다 이렇게 멍청해진 걸까···’


침울한 기분과는 별개로 그녀는 지금 무척 행복했다.


“아으읏···! 타냐, 조금만 살살···”


“아파도 조금만 참아. 여길 풀어야 다른 곳도 제대로 풀려.”


타냐가 레이나의 어깨를 꾹꾹 주무르면서 말했다. 이어서 그녀의 손길이 목으로 올라가고, 레이나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소리를 냈다.


“와아아··· 엄청 시원해···”


본인이 직접 만든 천연 도료로 레이나의 손톱을 칠하던 이리스가 작업을 끝내고 이마의 땀을 훔쳤다.


“다 됐다. 어때? 마음에 들어?”


레이나가 자신의 손끝에서 빛나는 연분홍빛 은하수를 보고 감탄했다.


“대단해, 이리스. 예술작품이 따로 없네.”


“헤헷,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


이어서 라네즈가 봄꽃을 엮어 만든 화환을 레이나의 머리에 씌웠다. 그리고 무척 만족스러워하며 방긋 웃었다.


“언니 진짜 예쁘다. 그러고 있으니까 봄의 요정님 같아.”


레이나가 화환을 살짝 만져보고 라네즈를 따라 웃었다


“고마워, 라네즈. 나중에 엘렌이랑 루나한테도 꼭 만들어줘. 걔네들은 진짜 요정이잖아.”


“응!”


그때 카밀라가 안나와 함께 차와 간식을 들고 자매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간식 먹어. 차는 어머님이 끓여주셨어.”


안나가 자매들의 잔에 손수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너희끼리 편하게 이야기 나누렴. 난 잠깐 주변을 걷고 올게. 나무 위에서 낮잠을 잤더니 몸이 좀 찌뿌둥하네.”


그렇게 안나가 자리를 비켜주자, 카밀라가 조심스레 계속 궁금하던 의문을 꺼냈다.


“있잖아, 언니··· 혹시 무슨 일 있어? 서방님이랑 다른 언니들 없이 왜 혼자 온 거야?


아벨이 군영에 있는 동안 레이나가 아무 이유 없이 에타스에 있는 자매들을 만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원래 자매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던 일정은, 아벨이 돌아온 다음 레이나를 비롯한 수도의 자매들을 데리고 본가에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가 정실로서 레버넌트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계승할 여인들을 어머니에게 정식으로 소개해야 예법에 부합했다.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벨의 여자들이 예법 좀 어긴다고 뭐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모범을 보이자고 다 같이 뜻을 모았다.


맏언니면서 그걸 멋대로 어겨버린 부끄러움 때문에 레이나가 고개를 수그렸다.


“미안해 얘들아, 나 사실···”


레이나가 동생들에게 자신이 가출 중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디아나, 엘렌, 루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세한 이유는 말하지 못했다. 그냥 지금은 아벨의 얼굴을 보기 힘들다는 정도로만 설명했다.


네 명의 동생들은 무척 놀라워하면서도 우선 큰언니의 기분을 달래주는데 집중했다.


카밀라가 레이나 옆에 붙어 앉아서, 제국 최고의 가희다운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언니를 위로했다.


“괜찮으니까 미안해하지 마. 결혼 전에 우울증을 겪는 건 흔한 증상이라고 하잖아.”


“맞아, 큰언니.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여기서 원하는 만큼 맘 편히 쉬어. 우리가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언니를 못 찾을 거야.”


이리스의 그 말이 의도치 않게 레이나의 가슴 한구석을 쿡 찔렀다.


“그래··· 결혼식 준비하다가 예비 시댁으로 도망친 신부라니, 아무도 상상 못하겠지. 나중에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될 거야···”


“으엣, 이거 말로는 안 되겠네. 이럴 땐··· 타냐!”


타냐가 이리스의 부름에 호응하여 잽싸게 고양이로 변신했다. 이리스가 타냐를 집어 들어 레이나에게 내밀었다.


“짜안~ 이거 봐, 언니. 고양이 타냐야. 쓰다듬기만 해도 엄청 기분이 좋아져.”


“냐아아앙~”


레이나의 무릎에 올라간 타냐가 배를 뒤집고 뒹굴면서 애교를 부렸다. 그 덕분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진 레이나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걸렸다.


“너무 귀엽다···”


타냐가 큰언니에게 예쁨받는 걸 부럽게 쳐다보던 라네즈가 아껴줬던 비장의 개인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언니, 기분이 꿀꿀할 땐 힘껏 소리를 질러봐. 이렇게 크와아아아아-!”


화아아아악-!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소리를 지르는 라네즈의 입에서 맹렬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레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늘 저 멀리까지 날아가는 불꽃을 보다가 해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진짜 굉장해, 라네즈! 근데 미안, 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너처럼 불은 못 뿜어. 그냥 구경하는 걸로 만족할래.”


“괜찮아! 내가 언니 몫까지 해줄게!”


라네즈가 불티 섞인 콧김을 내뿜고 다시 입을 벌렸다. 그리고 아까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불을 쏘아냈다.


“크와아아아아-!”


“잘 한다, 라네즈!”


“우리 막내 최고!”


카밀라와 이리스가 박수를 치며 응원해주자 라네즈는 더욱 신이 났다.


그녀가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불꽃을 점점 키웠다. 동시에 허공에 이런저런 다양한 모양을 그리는 묘기를 부렸다.


타냐가 그 광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한소리 했다.


“덜렁이 라네즈. 발밑 조심해. 그러다가 또···”


“흐앗?!”


타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라네즈가 돌부리에 걸려 뒤로 꽈당 넘어졌다.


“괜찮니 라네즈?!”


레이나를 선두로 언니들 셋이 넘어진 동생에게 달려갔다.


“우우···”


드래곤의 피를 물려받아 튼튼한 라네즈의 몸은 그 정도론 전혀 다치지 않았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민망함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때렸다.


라네즈의 상태를 파악한 언니들이 애써 웃음을 참았다. 그녀들이 풀 죽은 라네즈가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열심히 토닥여주는 동안, 고양이 타냐가 어느새 돌아온 안나의 무릎 위에 웅크려서 하품을 했다.


그 작은 소동 덕분에 레이나의 근심이 잠시 의식의 바깥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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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꿈의 종막(2) -完- 22.11.01 47 2 16쪽
116 꿈의 종막 22.10.31 26 1 12쪽
115 북쪽의 환란(4) 22.10.28 27 0 19쪽
114 북쪽의 환란(3) 22.10.27 31 0 14쪽
113 북쪽의 환란(2) 22.10.25 30 0 12쪽
112 북쪽의 환란 22.10.24 27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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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어둠 속의 은둔자 22.10.20 32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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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12) 22.10.11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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