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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환생자와 8명의 아내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완결

나무램프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5
최근연재일 :
2022.11.01 20:30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14,255
추천수 :
280
글자수 :
732,747

작성
22.09.0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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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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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업의 낙인

DUMMY

***


프로즌아크에서 머문 지 나흘 째 되는 날의 새벽, 아벨이 자신의 양옆에 누워있는 연인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우움···”


라네즈가 아벨의 빈자리를 더듬다가 타냐를 건드렸다. 그러자 타냐가 라네즈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고 등을 토닥거렸다.


매일 둘이서 아옹다옹 다투는 게 일상이어도 역시 사이가 참 좋다고, 아벨이 그렇게 생각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동시에 줄곧 그의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의문이 스르륵 머리를 들었다. 전생의 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연인들을 두고 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일까?


그가 답답함을 희석시킬 맑은 공기를 찾아서 밖으로 나왔다.


긴 복도를 지나 프로즌아크의 정문 위쪽으로 나있는 발코니에 이르니, 남녀 두 사람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명은 레베카였고, 한 명은 라네즈처럼 하얀 머리에 드래곤의 뿔이 돋아있는 사내였다. 그들이 지혜로운 드래곤의 필수 소양으로 여겨지는 보드 게임 ‘용혈 전쟁’을 즐기고 있었다.


“좋았어!”


게임판 구석에 있는 카드꾸러미에서 카드를 한 장 뽑은 레베카가 득의양양하게 소리쳤다.


“난 이번에 뽑은 ‘광란의 뿔피리’를 발동시키겠어. 이제 3회차 안에 네 최전방 요새를 박살내줄 거니까 각오하라고.”


게임판 위에는 드래고닉 레기온의 다양한 병종을 본 따 만든 장기말들이 두 패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중 레베카 쪽에 진을 치고 있던 군대가 붉은 기운에 휩싸인 채 상대편 진영으로 우르르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젤리두스가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자기 앞에 있던 카드를 뒤집었다.


“난 ‘겨울 폭풍’을 발동시켜 지금 네가 움직인 병력이 3회차 동안 멍청하게 얼어붙어 있는 걸 구경하겠다.”


차가운 바람이 게임판 위로 휘몰아치고, 레베카의 병력이 얼음덩어리 속에 갇혔다. 과감하게 전 병력의 80%를 내질렀던 상황이라, 레베카가 머리를 부여잡고 씩씩거렸다.


“아 씨···! 너 자꾸 이딴 식으로 졸렬하게 게임할래? 드래곤 로드씩이나 되면서 쪽팔리지도 않냐?”


“전혀. 전부 네 덕분이다. 그날 네가 편지 한 장 없이 사라지고, 난 쓸데없는 자존심에 얽매여 판단을 그르치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를 수백 년 동안 곱씹을 수 있었다.”


“윽···”


그 말에 레베카가 양심이 찔린 얼굴로 입술을 우물거렸다.


“아니,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


“드래곤은 절대 과오를 잊지 않고, 또한 반복하지 않지.”


“쪼잔하긴. 그땐 네가 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줄 몰랐지. 보수금 안 받고 조용히 떠나면 네가 돈 굳었다고 좋아할 줄 알았다고··· 이번 판은 내가 졌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레베카가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한쪽에 가만히 서있는 아벨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후배님! 일찍 일어났네. 산책 나왔어? 애들은 아직 자?”


“네, 저만 먼저 깨서 잠깐 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두 분께서 이 시간에 여기 계실 줄은 몰랐군요.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젤리두스가 아벨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방해라니, 당치도 않소. 오히려 내 완벽한 승리의 증인이 되어줘서 고맙군.”


레베카가 의기양양한 남편의 얼굴을 흘겨보고 한숨을 쉬었다.


“제발 나잇값 좀 해. 어떻게 이 애 같은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냐.”


“틀리지 않은 지적이나, 네가 할 말은 아니다.”


유치한 말다툼으로 부부 사이의 금슬을 자랑하는 건 이쯤 하기로 하고, 레베카가 다시 아벨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네. 뭔가 고민이라도 있어?”


“······”


아벨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처형신교엔 과거를 엿보는 비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거 혹시, 전생도 가능합니까?”


“일반적으론 전생까진 무리지. 하지만, 모리유 님이 직접 쓰셨던 물건처럼 격이 높은 성물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져.”


아벨이 모리유의 주문 단검을 꺼내들자 레베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바로 그런 거. 뭐, 그게 있어도 엘리시움에 있었던 시절은 금기에 막혀 안 되겠지만.”


단검을 내려다보는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지금 이 상황조차 신들의 안배인 겁니까?”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그의 반응에 레베카가 킥킥 웃었다.


“신들의 안배라고 해봤자 거창한 건 아니야. 대단한 분들이긴 해도 전지전능하진 않으니까. 그저 남들보다 먼저 미래를 보고 대비를 해두는 것뿐이지.”


“그 정도만 할 수 있어도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유도하는 건 쉬운 일 아닙니까?”


“후배님처럼 어마어마한 거물이 대상이라면, 꼭 그렇지도 않아. 후배님이 황제였던 시절을 생각해봐. 시골 소작농 하나의 인생 정도는 말 한마디로 쥐락펴락할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공작쯤 되는 대귀족은 어땠어?”


아벨은 자신이 공작으로 임명했던 신하들을 떠올렸다. 적으로 상대했을 땐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놈들이었고, 아군이 되어서도 그 행보 하나하나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귀중한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선배 행세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그래서 어떻게 할래? 아직도 전생의 자신을 마주해보고 싶어?”


아벨이 짧은 침묵 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아벨 레버넌트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소중한 연인들을 버릴 수 있는 사내가 아니다. 하지만 전생의 아벨, 지크 체르타멘 또한 그런가?


아벨 레버넌트의 입장에서 불완전한 기억을 뒤적여 보는 것만으론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그가 결정을 내렸다.


“예. 전생의 자신을 마주해야만 제가 안고 있는 의문의 실마리가 나올 것 같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선배님.”


***


프로즌아크엔 손님용 방이 많았다. 드래곤 로드의 손님은 대부분 드래곤인 게 당연했으니, 방 하나하나의 크기가 어지간한 인간의 대저택보다 컸다.


레베카는 그중 하나를 골라잡고 의식을 준비했다.


“엄마, 이쪽 마법진은 다 그렸어.”


“화로의 배치도 끝났어요, 스승님.”


직경이 30m가 넘는 거대한 원 안에 작은 마법진 수십 개가 얽혀있는 초대형 마법진, 그 위쪽 곳곳에 청록색 불꽃이 타오르는 화로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레베카가 마법진 전체를 한 번 쭉 둘러보고 타냐와 라네즈를 칭찬했다.


“둘 다 수고했어.”


이어서 그녀가 옆에 있는 아벨에게 물었다.


“마음의 준비는 됐어, 후배님? 바로 시작할까 하는데.”


“그러죠. 잘 부탁드립니다.”


아벨이 고개를 끄덕이고 앞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 타냐가 쪼르르 달려와서 그의 팔에 매달렸다.


“행운을 빌게요, 오라버니.”


타냐의 입술이 아벨의 볼에 찐하게 붙었다 떨어졌다. 라네즈도 질세라 그의 반대쪽 볼에 입술을 대고 쪽쪽 소리를 냈다.


“힘내 오빠, 응원할게!”


“둘 다 고마워.”


아벨이 그녀들을 한 번씩 꽉 안아주고 마법진 바깥으로 내보냈다. 이윽고 그가 마법진의 중심에 도착했다.


레베카가 옆에 서있는 젤리두스의 등을 두드리며 힘차게 말했다.


“자, 이제 네 차례야 남편. 오랜만에 멋진 모습 좀 보여줘.”


“이만한 의식을 인간 시절에 홀로 다뤘다니··· 데우스라는 건 정말 터무니없는 괴물이로군.”


젤리두스가 감탄과 경악이 적당히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고 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우우우웅-!


천 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강대한 드래곤의 마나가 대양의 파도처럼 주위를 휩쓸었다. 마법진이 그것을 머금고 찬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아벨이 모리유의 주문 단검을 오른손에 쥐고 눈앞에 들어올렸다. 단검의 칼날에 기이한 무늬가 흘렀다. 악필로 쓴 일기장을 빠르게 넘길 때 보이는 모양새였다.


아벨이 왼손을 명치 높이까지 들어올리고, 주문 단검으로 왼쪽 손등을 찍었다.


화아아악-!


높이 치솟은 화로의 불꽃이 연기가 되어 주위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연기는 곧 어둠이 되었다.


***


처형신 모리유의 고유 은총, 업(業)의 낙인.


일시적으로 뇌기능을 향상 시켜 기억을 되살리는 주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대상의 영혼에 귀속된 과거의 시간을 직접 들여다보는 비술이었다.


생전의 모리유는 적이 보낸 간자를 색출하는 일에 이 주문을 즐겨 썼다고 알려져 있었다.


‘성공인가?’


아벨이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그 일대를 빼곡히 채운 막사 사이로 무수한 군홧발이 오가며 땅을 짓밟고 있었다.


“그건 저쪽으로 옮겨라!”


“빨리빨리 움직여-!”


높은 산봉우리의 시리고 깨끗한 바람이 악에 받친 그들의 목소리와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제대로 왔군.’


천붕전쟁의 막바지, 하이호른 산에 진을 친 아카드 제국군의 본영이 틀림없었다.


오가는 이들의 얼굴은 대부분 흐릿해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과거의 내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던 대상일수록 완벽하게 구현된다고 했지.’


그들의 얼굴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건, 당시의 아벨이 그들의 기척까진 인지하고 있었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중엔 기척만으로도 누구인지 알만큼 친숙해서, 얼굴까지 명확하게 구현된 자들도 적지 않았다.


“소금 좀 작작 처넣어라 이 미개한 새끼들아! 전투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르니까 아껴야 된다고 몇 번을 말해! 한번만 더 이 지랄을 하면 그 쓸모없는 대가리를 염장해버리겠다!”


황제가 있는 곳이 곧 황궁이라며 늘 전생의 아벨을 따라 전쟁터를 누볐던 용감한 요리사, 궁정주방장 트레즈 백작이 국자를 맹렬하게 휘두르며 조리병들을 갈구고 있었다.


황제의 식사뿐만 아니라 전군의 배식을 관리하며 사기 유지에 기여했던 그 듬직한 모습을 다시 보니, 아벨은 저도 모르게 푸근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황제였던 시절에 딱히 아쉬움은 없지만, 그가 차려주었던 식사만큼은 무척이나 그리웠다.


‘마지막 생일선물을 그렇게 전해줘서 미안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수고해준 주방장을 위해, 전생의 아벨은 질 좋은 철로 만든 보검 한 자루를 녹여 식칼로 만들고 트레즈 백작의 예순 번째 생일선물로 하사하려고 했다.


근데 하필이면 트레즈 백작의 생일 바로 전날에 죽는 바람에, 모처럼 준비한 선물이 유품이 되었다.


제국의 역사서엔 백작이 그 후로 단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 사실이 못내 미안해서, 아벨은 느린 걸음으로 트레즈 백작을 지나쳐 군영의 중앙으로 향했다.


바짝 날이 선 근위대 기사들이 다른 것보다 몇 배는 큰 막사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아벨이 습관적으로 그들의 어깨를 두드려 격려해주려다, 견갑을 쓰윽 통과하는 자신의 손을 보고 멋쩍게 웃었다.


‘지금 보이는 게 전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데도 이러는군. 너무 잘 만들었어.’


아벨이 막사의 벽면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아벨의 전생이자 아카드 제국의 초대 황제, 지크 체르타멘이 널찍한 원탁에 홀로 앉아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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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꿈의 종막(2) -完- 22.11.01 99 2 16쪽
116 꿈의 종막 22.10.31 46 1 12쪽
115 북쪽의 환란(4) 22.10.28 45 0 19쪽
114 북쪽의 환란(3) 22.10.27 48 0 14쪽
113 북쪽의 환란(2) 22.10.25 51 0 12쪽
112 북쪽의 환란 22.10.24 46 0 16쪽
111 어둠 속의 은둔자(2) 22.10.21 47 2 17쪽
110 어둠 속의 은둔자 22.10.20 61 0 14쪽
109 가족 나들이(2) 22.10.18 55 0 15쪽
108 가족 나들이 22.10.17 59 0 12쪽
107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14) 22.10.14 49 0 12쪽
106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13) 22.10.13 44 0 13쪽
105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12) 22.10.11 47 0 13쪽
104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11) 22.10.10 46 0 14쪽
103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10) 22.10.07 61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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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8) 22.10.04 4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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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외전: 호수의 요정과 이름 없는 기사 22.09.22 66 1 15쪽
93 특별 공연(2) 22.09.20 84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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