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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내 일상


[내 일상] 잘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생겨나는 슬럼프

문피아에 소설을 연재한 지 1년이 되어 갑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입니다.

글 쓰는 일이 즐거울 때도 있었고

영 내키지 않지만 의무감에 자리를 지킨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겨울 때조차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는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장편이 되어버린 루시엘이 결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근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저는 지독한 슬럼프를 경험했습니다.

그 동안 글이 잘 안 써질 때도, 쓰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를 슬럼프라고 생각했는데,

근 한 달 동안의 무력감과 비교해보니 그것들은 모두 귀여운 수준이었네요.

최근 저는 글을 쓰는 게 지겨운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러웠습니다.

제가 쓴 글을 보는 것도 싫어 퇴고 과정에서 눈에 뻔히 보이는 오류조차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이유를 알기에 이 슬럼프가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스토리를 짜는 과정을 저는 점을 찍는 작업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머릿속에 굵직굵직한 사건들, 장면들을 그려두는 과정이죠.

그리고 글을 쓰면서 그 점들을 뼈대로 살을 붙여 소설이 완성되는 거죠.

그 점들.... 중요한 사건들, 인상적인 장면들이 제 머릿속에 섬과 같은 형태로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 섬과 섬을 연결할 다리를 올리는 것이 저의 작업입니다.

물론 저는 설계를 한 장본인이기에 아무리 길이 험해도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놓은 다리를 따라 여행을 시작한 독자분들 또한 무사히 건널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이것이 슬럼프의 시작이었습니다.


걱정은 새로운 걱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처음에 구상한 섬은 파란색이었는데

독자의 눈에 빨간색으로 보였으면 어떻게 하지?

최근의 작업에서는 심지어 설계자인 제 눈에도

오래 전부터 몇 번이나 구상한 장면들이 그 때 계획했던 색깔과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별 의미없이 지나가기도 했고

막상 글로 옮긴 결과물이 제가 생각했던 만큼의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소설은 이제 결말로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결말과 달라진다면....

처음에 기획했던 것 만큼의 감동을 줄 수 없다면....?

최근의 제가 쓴 내용이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두려움은 더욱 커졌습니다.

저는 요즘 풍선이 한껏 부풀기 전에 터뜨리는 실수를 자꾸 저질렀으니까요.


일년 동안 써왔던 작품이었기에 이 두려움은 가벼이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슬럼프가 저는 불쾌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에서 초래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일주일 동안 푹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뾰족한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닙니다.

다만 풍선을 끝까지 불어 제대로 터뜨리겠다는 마음가짐만 더 가다듬었을 뿐입니다.

또 다시 슬럼프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 슬럼프가 결말을 제대로 내고 싶다는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결말을 제대로 짓지 못하게 방해하지는 않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봅니다.


공공연하게 밝혔지만 저는 제 자식과도 같은 이야기를

모자란 글솜씨 때문에 미완성된 형태로 소개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좀 더 실력을 닦은 후에 손질하겠다는 생각으로 미숙함을 외면한 채

일단 이야기를 쌓아올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무책임한 태도가 이 슬럼프를 가져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모자란 글이나마 봐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시고,

음식이 다 익지 않았는데도 초조한 마음에 일단 내놓고 보는 버릇이 생긴거죠.

연재라는 형태가 불러올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지독한 슬럼프도 소중한 경험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 때문에 생겨난 것이니까요.


댓글 8

  • 001. Lv.5 그믄디아

    14.09.13 19:33

    어스름달님이 나름의 방법으로 슬럼프를 이겨내셔서 다행입니다.

  • 002. Lv.5 그믄디아

    14.09.13 19:5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3. Lv.24 어스름달

    14.09.14 13:33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4. Lv.5 그믄디아

    14.09.16 16:15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5. Lv.24 어스름달

    14.09.18 00:12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 006. Lv.24 어스름달

    14.09.14 13:23

    예전에 한 선배가 해줬던 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발전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냐?"
    당시에 저는 그 말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의 슬럼프가 내심 기쁩니다.
    욕심에 비해 부족한 저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그 욕심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이 슬럼프가 저를 더 발전시킬 계기가 되어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 007. Lv.18 메틸아민

    14.09.16 23:01

    으음...
    힘내시길 바랍니다.
    사족으로 섬 얘기에서 느껴지는게 있네요.
    글을 읽다보면
    중반까지는 암 생각없이 따라가다
    결말 부분쯤 가면 제 머릿속에서 전개가 이루어진다고 해야 하나요?
    극중 캐릭터가 제 예상대로 안 움직여서 실망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이것도 결국 용두사미네 하고 실망할 때가 있었는데
    작가 입장에선 또 다르네요.

  • 008. Lv.24 어스름달

    14.09.18 00:13

    댓글을 읽으면서 제 얘기다 싶었습니다.
    저도 영화같은 거 보면서 중간부터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하거든요 ^^;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글을 쓸 힘이 솟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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