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함 계획20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울음 소리는 두 번 들렸다.
“경하드립니다, 전하. 쌍둥이라니... 왕실의 큰 복이로군요.”
쌍둥이...?
진짜?
서연이랑 농담처럼 말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게 현실로 일어날 줄은 몰랐지
“전하, 이제 들어오셔도 될 것 같습니다.”
조심스레 수술실로 들어가니 서연이 옆에 흰색 천으로 감싸진 아이가 두 명
“왔어...?”
서연이는 살짝 웃으면서 내게 아이들의 얼굴을 보이게 했다.
나는 혹시나 부서질라,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연실 꼬물대는 아이들
이 작은 손가락이, 몸이, 나와 같은 생명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 작은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다.
나와 서연이의 아이.
문득 서연이를 바라보니 세상을 다 가진 양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색이 영 좋지 않음에도 서연이의 웃음이 방 안을 환히 비추는 것 같았다.
“... 고마워”
나는 두 아이를 낳았다고는 믿기지 않는 작은 그녀의 몸을 껴안으면서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찾아갔어야 했는데...”
“학생이 그렇게 쉽게 자리를 비울 수야 있나”
연신 사죄하는 궁복의 모습에 이사달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애초에 궁복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도 국왕의 명령이 있어서다.
그리고 보아하니 그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듯 했고...
“우선적으로 급한 사안부터 묻겠다만”
“말씀하시지요.”
“원정군을 보조할 수송능력은 충분한가?”
그가 이런 말을 하는 데에는 1군단이 처음 원정을 갈 때 약간의 보급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수송선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던 상황인지라 일부를 육로로 보급했고 나라 안의 배를 끌어다 모아다 수송을 했으니까.
하물며 이번에는 육로 보급이 아예 불가능했다.
“계획에 따르면 13년형 수송함 250척을 동원하여 보급할 예정입니다. 부족할 경우 민간으로 돌렸던 6년형 수송함 역시 끌어다가 보급할 예정이지요. 거기에 탐라국까지의 항로는 해군들이 잘 숙지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수송함 250척이라... 그래, 그 정도면 모자라지는 않는다는 말이지.”
“예, 물론 원정 도중에도 수송함은 계속해서 건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누가 그런 말을 했냐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이런 말을 할 사람은 단 한 명 뿐이었으니까.
“... 알겠다. 제일 중요한 보급의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확인은 했으니 이만 가보지.”
궁복이 인사를 하려 했으나 그보다 빠르게 이사달은 이미 문을 닫고 나간 뒤였다.
그는 그 자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엄청 바빠 보이시네...”
사실 이렇게 모두가 바빠진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영이 출산 이후 오후 3시 퇴근을 감행했기 때문이였다.
아내의 몸조리를 돕고 같이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하는데 그걸 막을만한 간 큰 인간은 적어도 정부에는 없었다.
정치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무어라 태클 걸 여지가 없는 터라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렇다 보니 적어도 오후 시작하고 나서 서류를 검토받지 않으면 적어도 그 날에는 그 서류에 대한 국왕의 재가를 받을 방법이 도무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모두들 조금 더 바빠진 것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이었기에 그런거 신경 1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러니까... 이게... ‘예의’라는 말씀이십니까?”
한 연구원의 질문에 구진현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악... 후우... 물론이지요. 흐흐흐...”
다시 생각해보니 당당하다기보다는 나사가 열 개 쯤 빠진 것 같지만 아무튼 대답했다.
“어... 예”
구진천의 후손, 구진현
본격적인 지원을 받자 그야말로 날라다니기 시작했다.
뛰어난 손재주와 비상한 두뇌, 그리고 구진천이 남긴 여러 가지 유산까지.
거기에 한국이 그간 쌓아온 자료와 교육을 받고 온 인재들, 그리고 좋은 재료까지.
재료도, 도구도, 요리사도 모두 좋으니 어지간해서는 망한 음식이 나올 리가 없었다. 만일 조리한 음식이 영국 전통음식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지만.
문제라면...
신은 공평했다.
그에게 뛰어난 능력을 주었지만 그 대가로 정신머리를 다 가져간 것도 아니고 아이스크림 한 스푼 떠가듯이 애매모호하게 떠가서 저런 사람이 완성되어 버렸다.
“후후... 흐흐흐...”
웃음만으로도 반경 3미터 안에는 사람조차 접근하기 싫어지게 만드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구진현은 참으로 재주가 많은 사내였다.
“이거... 진짜냐?”
“확증은 아니고 정황이긴 한데...”
“하긴... 확증이 그렇게 딱딱 나올 리가 있나”
중년의 남성은 작게 푸념했다.
“제가 확 들어가 볼까요?”
“저거, 누가 뽑았어?”
“... 농입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곳에 침입하면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된다는 것 정도는 잘 안다구요.”
잠입도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하는 법.
정보가 아쉽다고 발정난 개처럼 돌아다니면서 들쑤시면 그동안 만들어놓은게 무로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우선은... 본국으로 서신을 보내지.”
“흐흐... 드디어 저도 승진하는 겁니까?”
“몰라, 임마”
기쁜 얼굴로 시시덕대는 젊은 사내를 바라보고는 작은 한숨을 내쉰 중년의 남성은 종이에 무어라 글을 휘갈겼다.
“흠... 이게 진실일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 일리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유는?”
“중원에서의 소식과 이곳에서 보인 행동이 어느정도 일치합니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음...”
음... 어느정도 아귀가 맞긴 한다.
우선 조회 때 황제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
황궁으로 향하는 약재의 양이 많아졌다는 점.
우리한테서 요구하는 홍삼의 양이 늘어났다는 점.
그걸 조합하면 황제의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기는 한다.
“기왕이면 사실이었으면 좋겠군”
현 황제는 나름 유능한 인물이다.
혼란스러웠던 당나라를 조금씩이나마 안정시키고 있었다.
이대로 기반을 닦아간다면 후대의 황제들이 당을 다시 일으키기란 이전보다 쉬워지겠지.
아닌가? 어차피 망할 당이라면 시간을 벌게 그가 조금 오래 황제 자리에 있는 게 좋나?
아니... 뭘 상상해도 의미 없지. 어차피 당나라는 당분간 우리를 치지 못할 테니까.
[하남 산업단지 완공]
인류 대신 기계가 일하는 세상, 그 첫 삽을 뜬 하남 산업단지가 완공되었습니다! 표준화된 공정과 기계, 분업은 물건을 보다 빠르게, 싸게 만들 것입니다. 위대한 한국 산업의 첫 승리입니다!
>이걸로 한국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것이다.<
좋아.
드디어 하남 산업단지가 완공되었다.
달리 말하면 대량생산에 조금 더 가까워 졌다는 의미다.
기존의 공장들은 군납용이나 국가에 써먹을 물건을 조금씩 찍어내는 작업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진 하남 산업단지는 이 시대 기준으로 대규모로 물건을 찍어낼 수 있었다.
그 말이 뭐냐
물건 값이 싸진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곧 구매층의 증가로 이어진다.
조금씩, 조금씩 상업 발전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 슬슬 한국의 기업인들과도 한번 만남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사실 이전에도 가질 순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가지지 않았었다.
가장 큰 이유라면 그들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상업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수익이 늘고 조금씩 구매층이 늘어나면서 상업의 규모가 이제 어느정도는 커졌다.
“비서실장”
“예, 전하.”
“...”
“전하?”
비서실장만 보면 그때 맞았던 뒤통수가 아려오는 듯 하다.
이게 그 몸은 솔직하다 뭐 이런건가?
“사장들과 모임을 가질 생각이다.”
“지난번의 계획대로 준비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그게 낫겠지.”
내가 모든 사업가들을 다 만날 순 없지
내가 손오공도 아니고... 내 몸은 하나다.
그래서 그 이름도 익숙한 전경련을 만들어 일부 사장들만 초대할 계획이다.
어차피 윗물이 흐르면 아랫물도 자연스럽게 흐르게 되어 있는 법.
대기업인 그들이 시작하면 자잘한 중소기업들은 알아서 따라오겠지.
적어도 이 시대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이다.
뭐든지 규모가 작은 시대니까
국왕이 거상들을 초대했다!
이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몇몇 사람들은 거상들이 왕가와 연결이 되어있나... 라는 자그마한 추측을 해보았지만 진실을 모르고 있는 건 거상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번에 기업 설립에 관한 법이 제정되어 상업 활동에 약간의 편의가 더해지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국왕쯤 되는 사람이 자신들을 부를 리가 없다는게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그도 그럴게 서로 너무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거상들이 약간의 재력을 가졌기는 하나 그건 지영 역시 미르를 운영하며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다.
아니, 애초에 이 시대의 국왕은 국가와도 같다, 특히 중앙집권을 강하게 이루어낸 지영이라면
그들의 부와 국가의 부, 두 개가 부딪히면 그들의 부는 산산조각이 날 게 뻔했다.
거기에 현 국왕인 지영은 절대권력에 가까운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굳이 지영이 그들과 연결될 이유가 없다는게 대부분의 생각이었고 실제로도 그리 틀린말은 아니었다.
소문이야 어쨌건 국왕이 직접 호출했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빠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그들은 온갖 감정을 느끼며 왕궁으로 향했다.
어떤 사람은 배를, 어떤 사람은 철도를, 어떤 사람은 걸어서 왕궁에 있는 한 장소에 도착했다.
“음... 여기는 꼭 식당 같네요.”
“자네도 그리 생각했나?”
그들의 눈에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식당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음식들이 상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다들 왔나?”
“““전하를 뵙습니다!”””
지영은 간단한 손짓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고는 웃으며 말했다.
“우선 밥부터 먹고 이야기하지. 음식 식기 전에”
배고팠던 건 상인들 역시 매한가지였던지라 군말 없이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들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음식은 맛있었다.
상인들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어느정도 소화도 시켰을 무렵 지영이 말했다.
“이제 일 이야기를 해 볼까? 비서실장, 서류를 나누어주도록”
- 작가의말
쌍.둥.이
본가 이사 좀 돕고 하느라 좀 늦었어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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