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함 계획19
“전하께서 이렇게 쉽게 허락해 주실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저야 여단 하나 더 끌고 가고 좋지요.”
얼마 전 사혁은 조심스럽게 육군 상비여단을 11개로 확장하자는 주장을 펼쳤고 아마 무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영은 쿨하게 허락해 주었다.
사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면밀하게 생각해보면 특별히 이상할 건 없긴 했다.
우선 한국의 영역은 한반도 본토 8도에 이번에 편입된 연해도까지 총 9도이다.
특히나 이번에 합병한 연해도의 땅은 참 컸다.
당연하게도 이들 땅을 제대로 방어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군대가 필요한 법이었는데 한국군은 그 수량이 모자랐다.
본래 9개의 상비여단을 보유한 한국이었지만 그중 하나는 경기도 일대를 방어하는 수도방위여단이고 또 하나는 오로지 국왕만이 움직일 수 있는 근위여단이었다.
즉, 평시에 움직일 수 있는 여단은 총 7개 여단, 전투병력 약 3만 5천 명이었다.
그런데 해외 원정을 이리 저리 나가다 보면 보통 군단 편제를 임시로 짜서 나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본토에 가용가능한 병력이 절반 혹은 그 이하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나마 연해도 정벌 때야 본토와 연결되어 있으니 빠른 귀환이 가능했다지만 이번 탐라국 원정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유사시에 상대해야 할 적국이 당나라인 이상 솔직히 한국의 3만 5천 병력도 큰 병력이 아니었는데 그걸 반으로 나누어 상대한다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물론 고구려의 병력과 방어선이 있긴 했지만 한국은 해운이 발달한 나라였다.
반대로 말하면 적들이 배 타고 쳐들어오기 참 좋다는 말이다.
실제 역사에서 백만 명씩 동원한 수나라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당나라라고 해도 해군 몇 만 이상은 손쉽게 동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쉽게 가능했다.
“쯧, 그런가. 원래는 기존의 여단을 포함시켜주려 했는데...”
“괜찮습니다. 신병 그대로 데려가는 것도 아니고 최소 1~2년은 훈련시켜서 데려가는 건데요. 그리고 새로 모집한 여단들도 실전을 한 두 번 정도는 겪어 봐야죠.”
“자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구만... 하아...”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사혁은 아까보다 더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들놈이 요즘 말썽이야.”
“아드님이시라면...?”
“내 첫째놈 말이야. 그동안 잘 해오다가 갑자기 뭘 만들겠답시고 재산을 좀 나누어 달라는데... 안 줄 수야 있나.”
백미 삼천 석은 결코 적은 재산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사혁에게 굉장한 부담이 되는 규모는 또 아니었다.
우선 권력 서열로 따지면 한국 서열 3위권에 위치하고 있는 사혁이다.
거기에 지영하고 누구보다 밀접하게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서 간간히 떨어진 아이디어들을 주워다가 이런저런 사업도 하고 있었다.
특히나 군용 물품은 신뢰성 높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특징이 있는데 사혁은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조금씩 주워다가 나름 괜찮은 물건들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대표적인 물건이 바로 반합이나 배낭 같은 것들이었다. 기차나 자동차 등의 이동수단이 나오기 전까지의 육상 이동수단은 끽해야 말이나 가마, 한국에서 운용하는 마차철도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조금 먼 거리를 간다고 치면 노숙을 해야 하는 상황도 생각보다 자주 찾아왔고 그에 따른 물품들도 어느 정도는 준비를 해야 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는 반합이나 배낭은 이러한 여행자들에게는 필수적인 물건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보면 빈틈을 잘 파고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지영이나 다른 상단들은 아직까지 그 분야에 진출하지 않았으니까.
거기에 장관급 관료의 월급 역시 적은 게 아니었으니 사혁의 재산은 한국에서 백 위 안에 들만한 것이었다.
“사 대령이야 지금껏 잘해 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겁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구만”
“허... 도저히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한탄 섞인 그 목소리에 장인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한국 철의 제철방법을 따라가기 위해 전국의 장인들을 모두 모았다. 일본에서 철로 좀 한다 하는 장인들을 싸그리 모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한국의 철을 따라갈 수 없었다.
심지어는 고구려의 철광을 수입하여 제련하기도 해 보았으나 한국의 철에는 미칠 수가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 만족할 만한 물건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는 것들이었고 그걸 항상 뽑아낼 수는 없었다.
다들 한가락 하는 장인들이니만큼 가진 자부심들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물론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존에 비해 철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제철방법을 고안한 것은 분명히 큰 성과였다.
하지만 역체감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국의 강철을 맛보고 나니 허접한 자신들이 만든 철은 쳐다도 보기 싫을 지경이었다.
“돈과 시간을 더 투자하면 되겠는가?”
“...”
“아니면 장비나 원자재가 모자란 것인가?”
묻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그게 아니란 것을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묻고, 듣고 있었다.
진짜로 그게 아니라 방법의 차이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말하게 되면 일본에서는 강철을 제련할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 아닙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노릇, 장인들의 대표격인 사내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내뱉을 때마다 자신의 자존심과 자부심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외람된 말이오나... 자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 그런가”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하여 아직까지 병부경 자리를 지키고 있던 오시무라 아키타카(押村 哲尭)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물었다.
“그러면 어찌하면 좋겠는가?”
안 되는 거는 안 되는 거다. 그렇다고 질 좋은 강철의 수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질 좋은 철은 군용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농기구를 비롯한 민간 분야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특히나 질 좋은 농기구가 보급되면 그건 곧바로 농업 생산력의 향상으로 이어진다. 과거 국가 경제의 대부분이 농업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한국에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그들이 알려 주겠는가?”
분명 한국-일본 양국은 든든한 동맹관계였다.
매년 무역양도 증가하고 있으며 슬그머니 군사적인 부문에서까지 협력을 할 것 같았으며 무엇보다도 한국 국왕과 일본 천황과는 사돈관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이 자신들의 최고급 기밀인 강철 제련법을 꺼내주는 ‘간이고 쓸개고 다 꺼내주는’ 호구가 되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었다.
일본으로서는 적어도 안정적인 강철 수급이 필요했다.
한국이 강철 생산량을 늘리고는 있으나 원래 모자란 수요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었고 무엇보다 북방에서 난리 한 번 난다거나 한국이 군비 증강을 하면 일본에의 철제 물품 수출량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었다.
거기다 한국놈들은 미쳐서 국토에 철을 발라대는 기행을 벌이고 있으니 일본으로 가는 철은 더더욱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는 한국이 일본에 강철제 물품들을 팔기 싫어한다기보다는 그냥 자기들 쓸 물량도 모자랄 때가 있어서 해외수출이 불가능해지는 경우였지만 대체재가 없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날벼락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아키타카는 이미 생각해 둔 복안이 있기는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 내에서도 이런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으며 특히 철의 품질은 곧바로 군사력으로 이어지기에 병부경인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다.
‘차라리 아국에 한국식 제철소를 건설하고 그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여 생산되는 철의 일부를 받아오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한국 입장에서 저 의견은 딱히 땡기는 의견은 아니라는 것.
우선 한국의 항해기술이 날로 발달하고 있어서 조금씩이나마 유통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외국에 제철소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보안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일본이 그런 의견을 넌지시 제시하면 한국은 차라리 투자금만 받아 자국에 제철소를 건설한 뒤에 투자 비율대로 철을 판매하거나 제공하는 방법을 쓸 것이 뻔했다.
‘어찌한다...’
아키타카의 고민을 당연히 모르는 한국에서는 조병창이 열심히 불꽃을 튀기며 일하고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인원수로 따지면 거의 만 이삼천 명에 해당하는 군인들이 새로이 모집될 예정이었고 거기에 해군 인원수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으니 철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 아예 후방 방어는 포기하는 겁니까?”
“아예... 까지는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철판 대신에 가죽판이 붙어 있습니다. 또한 방어력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유사시 벗기 쉽게 했습니다.”
해군이 제시한 갑옷은 현재 새로 육군이 만들고 있는 롱코트형 갑옷에서 급소 부위를 중점으로 철판을 배치하고 그 이외의 부분에는 가죽판으로 방어를 해 무게를 줄이려는 심산이었다.
거기에 육군과는 다르게 유사시 한 번에 벗어던질 수 있게 금속제 단추가 아닌 천으로 된 매듭단추를 오른쪽 옆구리 라인을 따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물에 빠졌을 때 왼손으로 오른쪽 옆구리 부분을 잡고 확 잡아당기면 갑옷이 한 번에 벗겨지게 설계되었다.
본래는 전면에 설계하려 했으나 그렇게 설계하면 실전에서 벗겨질 위험이 너무 높아서 측면에 배치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팔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만약에 팔 부분이 있으면 유사시에 한 번에 벗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군은 육군이 예전에 쓰던 팔 부분 갑옷을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 써먹을 요량이었다.
“과연... 직접 해 보니 괜찮군... 그런데 이러면 적군이 잡아당기면 문제가 되지 않나?”
“그래서 이 끈을 두릅니다. 한 번에 풀릴 수 있게 두르고 그 끝을 옆구리 부분에 고정한 다음에 벗을 때는 옆구리 부분의 끈 부분을 붙잡고 당겨야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음... 이러면 바바리맨같은 상황은 덜 연출 되겠구만. 다만 갑옷 벗는 연습은 평소에도 조금은 해 두어야 할 것 같기는 했다. 안 그러면 막상 끈 위치를 잊어먹을수도 있으니까.
“전하, 전하!!!”
“... 비서실장, 뭐 급한 일이라”
“왕비께서 산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ㅅ발. 어쩐지 오늘 출근하기 싫더라니
나는 비서실장을 따라 정신없이 뛰었다. 그 덕에 뒤에서 뭔가 떨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
“전하!”
“전하!”
“상황, 상황은?”
“이미 의료진이 모두 들어갔습니다. 전하의 당부대로 모두 손을 깨끗하게 씻고 열탕소독을 마친 의료복으로 환복한 후 들어갔으니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후... 나는 숨을 고르고 수술실 문을 바라보았다. 지금 내가 들어가 봐야 별 도움도 안 될 테니 우선 손부터 좀 씻고...
“아아아악!!”
썩을
내 몸은 어느새 문을 향해 있었고 그와 동시에 내 얼굴과 지면은 충돌했다.
“이거... 놔!”
“전하께서 들어가봐야 오히려 의료진들의 방해입니다! 호위단장! 전하를 좀 꽉 잡아 주시오!”
“비켜 ㅅ발!”
“왕비께서도 고통을 이겨내고 계시는데 오히려 짐이 되실 생각이십니까!”
“왕비께서도 의연하게 이겨내실 겁니다, 조금만 고정하십시오!”
닥쳐!
니들이 뭘 알아!
아내가 출산하는데 곁에 있어 주지도 못한다고?
그게 무슨 남편이야...
한순간이지만 압력이 좀 느슨해졌고 나는 곧바로 문을 향해 움직였다.
“에잇, 싯팔 모르겠다!”
... 어라?
나 어째선지 눈이 감긴다...?
“이런 미친! 비서실장, 뭐 하는 짓이오!”
“당장 체포해!”
“전하! ㅈ...ㅓ....ㄴ....”
...
......
.........
“... 내 방?”
“아이고, 전하! 괜찮으십니까?”
나... 아까까지만 해도 수술실 앞에 있지 않았나?
“아... 그것이...”
“됐소. 다시 수술실 앞으로 갑시다. 머리가 좀 띵하긴 한데... 그래도 덕분에 개운해졌소. 그런데 비서실장은?”
“저... 그... 왕족 시해죄로 지금 감옥에...”
“... 아”
내 뒤통수
누가 갈겼나 했더니 비서실장이었구나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데려오시오”
지금은 잠깐 진통이 멈춘 탓인지 수술실 앞은 비교적 조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실장(이었던 것)은 꽁꽁 묶인채로 내 앞에 버려졌다.
“됐다, 풀어라”
“허나, 전하...”
“내가 두 번 말해야겠나?”
줄이 풀리자마자 비서실장은 바로 엎드려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 시작했다.
“그만, 내 너무 긴장해 잠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지, 그렇지 않소?”
“아... 성은이 망극...”
“뭐, 내가 긴장한 것하고 성은이 망극한 것하고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하고 앉기나 하시오.”
간간히 들리는 비명소리와 그에 맞춰서 독려하는 듯한 의사들의 목소리, 그리고 들리는 발걸음 소리들.
그것들이 젤리같이 굳어버린 시간 안에 섞이고 녹아서 내 몸에 질척하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서연이는 원채 건강하던 애였으니까.
무사할 거다, 분명.
분명히, 그럴거야.
- 작가의말
이번 화처럼 안써진 건 처음이네요;;;
뭘 어떻게 써도 맘에 드는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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