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함 계획18
“충성,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군단장님. 저는 이번에 부군단장으로 임명받은 소장 노진이라고 합니다.”
“충성. 아...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고구려 군사고문단으로 오래 일하셨다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아,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시죠. 할 이야기도 많은데...”
노진과 이사달은 담소를 나누며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군단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번 1군단은 2여단, 4여단, 5여단 세 개의 여단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대규모 기병의 지원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기병 세 개 대대... 수색대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씁... 궁기병 여단의 힘을 빌렸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한국군 전부가 훌륭한 병사이기는 했지만 궁기병은 그 중에서도 더욱 정예였기에 그들의 공백이 이사달로서는 너무 아쉬웠다.
“뭐, 어쩔 수 없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리고 대규모 말까지 해상 수송을 하려면 수송능력에 큰 무리를 주게 된다.
수송선이 있다고는 하지만 현대 기준으로 100톤짜리 통통배들이 전부인지라 그 정도까지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말 자체가 해상 운송하다가 죽어버리는 경우도 많았기에 전력에 누수가 나지 않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수량을 운송하는 건 굉장히 곤란한 일이었다.
“대신 이번에 새로 개발되는 무기들을 최우선적으로 보급해 준다고 하니 다행인 일입니다.”
무기나 방어구에 있어 그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실전에서다.
그런 이유로 1군단의 탐라국 원정은 높은 확률로 대규모 무기 시험장이 될 예정이었다.
이들이 군단의 일을 하나씩 토의하고 있는 동안 신무기를 만들기 위한 논의는 그 동안에도 착착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형 쇠뇌 말입니까?”
“음, 사실 알다시피 우리는 굳이 궁병을 쇠뇌로 무장시킬 이유가 전혀 없다네”
지영의 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원래 그 뿌리가 북방민족이라서 활을 잘 쏘는 데다가 그 문화를 계속해서 계승해온 한국이었다.
거기에 기존의 유학의 풍습으로 예의가 되어버린 활쏘기를 지영은 작정하고 홍보했다.
‘활쏘기를 연마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깨끗해지니 이만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수련이 없다.’
라는 명목으로(실제로도 그게 들어맞긴 한다. 어쨌건 과녁을 맞추려면 침착히 집중해야 하니까) 활쏘기를 일종의 ‘교양’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권장하고 여러 공식적인 대회도 열어 상금도 주니 ‘교양있는 한국인’ 이라면 활을 쏘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런지라 집집마다 허접하나마 목궁 하나씩은 있게 되었고 대부분 활쏘기의 기초는 뗀지라 굳이 이제와서 쇠뇌병을 양성할 필요는 없었다.
작정하고 궁수를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 일 년은 필요했고 활쏘기의 기본을 다지는 것만 한 달 정도 이상은 걸린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대다수 한국인들은 이미 기초적인 궁술을 가졌으니 정 급하면 당장 징집해서 궁병으로 욱여넣어도 그냥저냥 써먹을 순 있기는 했다.
어차피 모자라는 명중률은 집단 운용으로 충분히 커버를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한국인들이 당겼던 활은 전쟁용 활이 아니라 시합용이나 습사용이었기 때문에 예비군을 모은다고 하면 대부분의 궁병에게는 쇠뇌를 줄 예정이었으나... 그보다 우선적으로 보급되어야 할 대상이 있었다.
“하지만 의무병이나 보급병들은 조금 다르지”
각자 일 하기도 바쁜 사람들인데 궁술 훈련을 시킬 여유 따위는 없었다.
특히나 의무병은 기초 검술을 다지는 것도 빡빡했다.
“그런 이들에게는 쇠뇌야말로 정말 훌륭한 무기라네”
우선 활보다 휴대하기 좋고 하루... 아니 솔직히 십 분이면 기초는 다 익히고도 남았으며 무엇보다 미리 장전을 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제 휘하 연구원들과 함께 만들어 보겠습니다.”
어차피 의무병, 보급병, 공병 정도의 사람들에게만 보급해도 2,000개는 넘게 보급해야 했기에 그리 적은 수는 아니었다.
‘마침 만들고 있는 그것과 함께 완성해서 드리면 되겠군...’
구진현이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되고 인계받은 자료들은 그야말로 놀라운 양이었다.
정말 온갖 자료들이 모아져 있었고 구진현은 그 중 재미난 자료를 하나 알게 되어 지금 열심히 써먹는 중이었다.
그 무기가 만들어져 전장에서 그 위용을 보일 것을 생각한다면 그 상상만으로도 온 몸이 흥분과 쾌락으로 부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젊고 건강한 사내가 그렇게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입을 벌리며 볼을 잔뜩 붉힌 채 다리를 떠는 그 모습을 지영은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잊기로 결정하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다 때려치고 그냥 사랑하는 아내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허... 천자께서 부족하기 그지없는 동방의 삼을 이리도 어여삐 여기시니 크나큰 영광이나... 안타깝게도 그리 할 수 없소.”
“그 이유를 감히 여쭈어도 되겠나이까?”
말투가 꼭 우리가 일부러 삼을 안 판다는 어투인데 그건 정말로 큰 착각이다.
“아니, 삼이 다 자라야 만들어 바치거나 팔 것 아니오. 다 자라지도 않은 삼을 천자께 바치란 말이오? 그것이야말로 오히려 불충 아니오?”
삼 심으면 뭐 그냥 쑥쑥 나오나?
물론 생활수준이 나아짐에 따라 점차 상품 작물을 기르는 면적이 넓어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그 면적이 작을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 인삼은 일 년에 한 번씩 수확하는 작물이 아니라 최소 4년은 기르고 나서야 수확하고 홍삼을 만들어서 판다.
그리고 최고급품은 대부분 6년근 삼이었기에 그 수량이 절대 많은 수가 없었다.
“지금도 생산하는 삼 중 대부분은 당으로 보내고 있소. 그렇다고 하여 백성들을 굶기면서 삼을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이들도 다 천자의 백성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불충을 저지를 수는 없소.”
여기서 더 생산하라고 하면 그 즉시 천하의 개자식이 되어버리는지라 당의 사신도 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독촉하여 심어봐야 최소 6년은 있다가 공급될 터이니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압박이기도 했고.
아마 진짜 목적은...
“그러하면 후한 은사를 내줄 터이니 천자께 조공하시지요.”
“내 그리하라 이르겠소”
뭐 어차피 비슷한 값을 쳐주는 데 굳이 어깃장을 놓을 이유가 없지.
그리고 실제로 시장에 풀리는 물건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값이 올라갈 여지도 충분했다.
“그리고 천자께서 한국의 여러 물품을 칭찬하신 바 있는데 그 중 특히 철에 대해 칭찬을 하셨소이다. 하여 그 철을 왕께서 충심으로 조공하신다면 천자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오.”
... 미쳤냐?
그나마 우리가 당나라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병사의 훈련도와 보급, 그리고 장비의 우월성이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장점 중 하나를 포기하라고? 어림도 없지.
나는 정말 안타깝다는 듯 답했다.
“천자께서 그리도 누방의 토물을 아껴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소. 허나 안타깝게도 아직 백성들의 삶이 곤궁하여 아직까지도 나무나 돌로 된 농기구를 사용하는 백성들이 많소이다. 그러한 까닭에 삼의 생산도 적은 것이니 정말이지 개탄스럽기 그지없소. 또한 근래 큰 홍수가 나 수많은 밭이 수몰되어 더욱 삶이 곤궁해졌소. 허나, 나는 그럼에도 천자를 충심으로 섬기니 부족한 토물이나마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면 곧바로 바쳐 올리도록 하겠소.”
저 말을 일곱 글자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언젠가는 바칠게
이 글자를 네 글자로 요약하면
안 줄건데?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핑계랍시고 댄 것들이 하나같이 절대로 무시하지 못 하는 핑계들인지라 막 밀어붙일 수도 없다.
거기에 니들이 부들대면, 뭐 어쩔건데?
자기나라 안 상황도 반 환자나 마찬가지면서 이를 박박 갈고 있는 고구려를 거쳐서 한국까지 오시겠다?
나라 상황 멀쩡해도 하기 힘든 일이다.
사실상 우리 한국같은 국가는 말만 조공국이지 언제라도 당나라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준비가 되어 있는 국가였다.
그리고 당나라 뒤통수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양 침을 뚝뚝 흘리는 고구려는 우리의 든든한 사돈이었고.
사신으로 올 정도면 멍청한 사람이 아닌지라(특히나 이런 시국에는 멍청한 사람을 보냈다가는 큰일 난다) 그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답을 골랐다.
“왕께서 천조에 대한 충심이 이리 깊으시니 참으로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치? 기뻐 죽겠지?
정말로 기뻤는지 어쨌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는 아까부터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저 정도로 웃고 있으면 얼굴 근육이 땡기지 않을까
“아, 그리고 왕비께서 곧 산달이시라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경하드립니다.”
“아... 고맙소.”
“천자께서도 이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뻐하시며 은급을 내리셨습니다. 신 역시 기쁜 마음으로 보잘것 없는 예물을 조금이나마 준비했으니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허... 무슨 이런 걸 다”
뭐... 준다니 고맙게 받아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출산 축하한다는 좋은 뜻으로 이런 저런 예물을 웃으면서 주는데 거기에 침 뱉을 정도로 못돼먹은 놈은 아니다, 나는.
미역국을 끓여먹어야 할 사람이 늘었구만.
“천자의 황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전해 주시오. 외신도 고맙소, 굳이 이렇게까지 준비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한국은 든든한 제후국이 아닙니까? 그런 곳의 국왕 전하의 왕손이 탄생하는 걸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양국 간에 기쁜 일만 가득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야 물론이오. 앞으로도 이와 같이 웃으며 나아간다면 서로간의 본분을 다하면서 꽃길만 것을 것이 자명한 일이오.”
원래 웃는 낯에 침 뱉기란 좀 뭐하다고 저렇게 웃으면서 다가오니 무어라 날선 반응을 보이기가 좀 그랬다.
그리고 이번 천자의 조서라는 것도 예전처럼 강압적인 무언가도 아니었고 많이 부들부들 해졌고...
아무래도 당은 우리와 관계의 개선을 원하는 모양이었고 나는 그걸 가로막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나라는 적으로 돌리기엔 너무나 피곤한 국가다.
할 수 있으면 좋게 좋게 지내면서 바닷길을 개척하며 힘을 기르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지내다가 언젠가는 ‘본분’을 다해 여러개의 중국을 만들어야지.
- 작가의말
수상할 정도로 활을 잘 쏘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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