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함 계획2
“이야... 상당히 괜찮은데?”
“그렇지? 나름 설계하면서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긴 했다 하더라고.”
해군들은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떠들어댔다.
“나름 침대도 있더만”
“아... 그 구석에 우겨넣은 침대 말이지?”
정확히는 2층 침대였다. 원래는 1층 침대로 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할 경우에는 배의 공간이 부족할 게 뻔해서 2층 침대를 다닥다닥 배치해 놓은 것이었다.
그곳에 누워본 결과 마치 수납장 안에 몸을 넣어 자는 것 같았으나 원래 계획인 해먹에서의 하룻밤을 체험한 결과 해군 장병들은 기쁘게 2층 침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해군 특성상 아무래도 육군에 비해 더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음식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제한적이다.
그런데 비해 일은 고되고 사람은 많이 없으며 생활 환경은 불편하기까지 하다.
거기에 가장 큰 문제점은 배가 가라앉으면 높은 확률도 해군들도 같이 물고기 밥이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 해군은 천역으로 분리가 되었겠는가. 다 이유가 있어서다.
해서 지영은 최대한 해군의 불편함을 덜어주려 무진 애를 썼다.
호위함의 설계가 조금이나마 늦어진 것에 이런 이유 역시 포함되어 있었으니까.
해군의 편의성을 위해 설계시간을 희생한 것이다.
덕분에 나름 합리적인 수면공간과 벌레가 꼬이지 못하도록 얇은 금속으로 마감된 식량창고, 역시 금속으로 마감되어 있는 취사실 등이 있었다.
덕분에 해군으로서도 며칠에 한 번씩은 취사실에서 밀가루나 쌀가루를 이용한 음식과 보급나온 따뜻한 훈제 고기 등을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배의 규모가 규모인지라 취사실이 아주 작았으며 이마저도 교대로 돌아가며 먹어야 했고 주식은 여전히 건빵과 차가운 훈제 고기였다.
하지만 해군들에게는 이조차도 감지덕지였다. 어찌 되었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침대야 뭐... 피곤하면 그곳이 곧 침대지 뭐”
“그건 그래. 피곤하면 베개 베는 순간에 기절해버리니까”
“... 니들 곧 사격 훈련 있는 거 알지...?”
“아, 기껏 쉬는 시간에 뭔...”
“... 그거 수석하고 차석은 외박권 준다더만”
외박권이라는 소리에 시시덕대던 이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어이구야! 군인 된 이로서 당연히 훈련 준비 해야지!”
“아이고- 간만에 몸 좀 풀어 볼까!”
이들이 외박을 나가면 높은 확률로 사창가로 빠진다는 걸 알고 있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엥간히 해라... 뼈 삭는다.”
“매일같이 해도 뼈가 안 삭는 게 바로 젊음이다! 음핫핫!”
“거... 중사 양반, 좀 약하우?”
나름대로 인격자였던 중사는 남자의 자존심을 건든 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딱 대, 이 시발것들아”
“해군 장병들의 사기가 그리 높아졌다지?”
“모든 게 전하 덕분입니다.”
“일찍 건조 허가를 내지 못해 유감스러울 뿐이지... 여튼간에 이번 작전이 마무리 되면 본격적으로 해군에 투자를 시작할 걸세. 그에 따른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예, 전하. 장병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으니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음, 훈련도 좋지만 바다에서의 훈련은 항상 위험을 동반하는 법이니 이에 따른 대비도 철저하게 해야 하네”
“물론입니다, 전하. 훈련 때는 작은 조명정을 이용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상대적으로 육군에 비해 해군은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만들어진다.
기본적으로 ‘바다’라는 환경에 적응하는데 드는 시간부터가 길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니 애초부터 손실이 안 나게 잘 운용해야 하는 것이고.
그 ‘잘 운용’의 기본은 훈련에서부터 시작된다. 좋은 점이던 나쁜 점이던 간에
그리고 이 해군차관 최명호는 원칙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자면 원칙을 지키며 자기 할 일 정도는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원칙을 고집하며 아무런 특색 없이 군을 운용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최명호의 성격은 상당히 쓸만했다.
원칙을 지키고자 하고 그걸 어느 정도 지킬 능력이 있다는 건 적어도 큰 사고는 어지간해서는 나지 않을 테니까.
생각해보면 해상 전투 훈련만을 하지 못 했을 뿐 해상 적응은 다 된 병력, 그것도 배 열 척 짜리 해군에서 내가 걱정할만한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기는 하네.
“그거 안심이 되는군. 헌데 차관, 해군 전용 갑옷이라고 했나?”
“예, 아무래도 육군의 갑옷은 너무 육중합니다. 방어력이 살짝 떨어지더라도 육군에 비해 가볍고 벗기 쉬운 갑옷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너무 무거우면 물에 빠졌을 때 그대로 익사할 테니...”
“말씀대로입니다. 그리고 장병들이 해군이라는 일체감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긴, 해군 제복에 로망이 있긴 했었지.
물론 미쳤다고 군대를 해군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감성과 실리의 영역은 완전하게 다른 법.
정말 끝내주는 운의 소유자이거나 혹은 빽이나 집안 사정의 문제를 제외하고서는 어지간하면 군대는 기술행정병으로 가는 게 속 편하다.
물론 이조차도 운빨ㅈ망이기는 한데 적어도 어중간한 육군을 가느니 기술행정병으로 가서 행정이나 최소한 비전투 병과로라도 빠지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예를 들면 운전병이라던가? 혹은 보급병, 취사병은... 조금 그렇네.
여튼 해군의 힘든 복무에 힘이 되어주는 해군 제복... 이라 카더라.
자세한 건 모른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해군 전용의 갑옷과 제복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차관의 말이 옳다. 정식으로 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예, 전하”
“참으로 기나긴 시간이었도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의 황제.
하늘의 아들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천자라고 불리는 자.
덕종 이괄은 자신의 머리가 어느새 희끗희끗 해진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나이가 늙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당의 사정이 워낙에 개판이어서 매일같이 과로를 해버린 탓이 컸다.
그리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한탄했지만 사실은 당은 완전히 회복되지 못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몇십, 혹은 백 년 넘는 시간 동안 망친 나라를 고작해야 몇 년으로 되살릴 수는 없다.
원래 새로 만드는 것이 중간에 보수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법, 나라라고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지영이 이곳에 오자마자 그때 당시 인구의 약 3%에 달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하거나 험한 일에 쓰다가 그대로 골로 보내버린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고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이 있듯이 반쯤 붕괴되었다가 임시 조치만 해놓은 탑이라고 해도 그 탑의 규모가 워낙에 크다 보니 이러한 개혁으로 어느정도 숨통이 트인 것도 사실이었다.
당장 세수가 두 배로 늘었고 수도와 강남지역의 민생과 치안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어중간한 이민족들이 간보는 게 상당히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남조국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다시금 잠잠해졌고 고구려 역시 그저 성곽을 보수하며 방어에 힘쓰려고 하는 것 같았다.(실제로는 만주를 개발하며 왕권을 강화하느라 당에 공세적으로 나갈 정신 자체가 없었다.)
한국? 그 황금에 미친 종자들은 어련히 조공을 받고 답례품을 하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일본은 애초에 고려 대상도 아니었다. 사실관계야 어찌 되었건 현재의 일본은 한국보다 한 두수 아래로 평가되고 있었다. 조금 더 거칠게 표현하면 반문명국에서도 문명화가 덜 된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런 일본이 당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해적이야 원래 드문드문 있었으니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고.
토번은 어찌 되었건 당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적어도 전면적인 침공은 하지 못할 것이었다.
약간의 세폐같은 것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사돈의 나라를 친다? 심지어 결혼을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적어도 지금 시기의 동아시아에서는 감히 시도하기 힘든 일이었다.
위구르는 어찌 되었건 지금 당장은 동맹이고 토번이라는 암묵적인 적이 있으니 당분간은 안심해도 된다. 거기에 당은 위구르의 목줄을 어느정도 잡고 있으니까.
조금 비약적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지금의 당에 강대한 외부의 위협은 없다.
문제는 내부지.
절도사의 힘은 아직도 강성했다.
심지어 운하를 타고 올라오는 조운선을 절도사 놈들은 좋다고 털어먹을 때도 있었다.
경제적인 면에서나 군사적인 면에서나 이들은 당나라의 암덩어리나 마찬가지였고 반드시 잘라내야 했다.
문제라면 현재 이괄의 몸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몇 년씩이나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몸을 혹사시키고 과로를 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도 당나라 천자의 고민이 깊어져만 갔다.
“후아... 엄청 복잡하네요”
“보급이란게 수레에 짐 실어나르기만 할 줄 알았지? 천만의 말씀. 생각보다 엄청 복잡하다고, 후배님.”
궁복은 그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하게 수레에 짐을 실어나르는 것도 다 절차가 있었다.
예를 들면 도로와 야지, 그리고 산길에서 실어나르는 보급품의 양이 모두 달랐다.
그리고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실어나르는 보급품의 양은 또 달랐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했는데 바로 낙타나 말의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낙타나 말이 부상당하면 짐을 적게 실어나르는 것보다 손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어서 이것도 그냥 양 꽉 채워서 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거든? 내가 책 쓰고 있는 거 봤지? 나중에 그거 한 권 줄게”
“그렇게 귀한 걸... 주셔도 괜찮으신가요?”
“어차피 나중에 그거 가다듬어서 보급 교본으로 나올 수도 있고... 나도 내 아는 사람들한테 몇 권 나눠주고 그래야지.”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선배님”
“음음, 나중에 잘 되면 입소문도 좀 내 주고 그래. 그래야 나도 인맥도 쌓고 진급도 하고 좀 잘 먹고 잘 살지”
사휴의 노골적인 말에 궁복은 그저 어색하게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말은 저렇게 농담처럼 해도 반 정도는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 작가의말
당나라 열심히 심폐소생술 중...
집안 사정으로 인해 내일은 하루 쉽니다.오탈자 지적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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