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은 낭만을 싣고26
건국력 143년(서기 922년) 겨울
서울, 경복궁 국무회의실
“마지막 안건입니다. 옥해도 총독부에 육군 배치 건의. 방위성에서 나온 의견이로군요.”
수석비서의 눈짓에 방위성 총리 이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육·해 군부 및 옥해도 총독부는 근시일 내 옥해도에 육군 병력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쨌건 우리는 제해권 경쟁에서 우세를 점했고 또한, 적들의 문명 수준은 그저 원시 부족이 있는 것을 넘어 국가라고 불러줄 만한 고등한 문명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조사 결과 그들의 문명은 화약이 없을 뿐, 강대했으며 해군으로는 목을 조를 뿐, 결정타를 날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옥해도 총독부가 넓어질수록 국경선을 담당해줄 육군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옥해도 총독부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육군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한 개 대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병력입니다. 그것도 전투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력을 겸하는 병력이고요.”
왕건은 속이 쓰리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는 듯 포기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옥해도에 얼마나 병력을 배치할 생각입니까?”
“방위성 자체적으로 논한 결과 한 개 사단을 배치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왕건은 얼굴을 있는 대로 구겼다.
“한 개 사단? 실례지만 발해가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단이 네 개 사단인 건 아십니까?”
발해 육군은 1, 2, 3, 4사단, 수도방위여단과 근위연대, 그 외의 자잘한 병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수도방위여단과 근위연대, 그 외의 자잘한 병력은 모두 제 자리를 지켜야 하는 병력이니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완편 네 개 사단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북방의 방어선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한 개 사단은 북방에 주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실질적으로 움직일만한 사단은 세 개에서 두 개 사단인 셈이었다.
“물론입니다.”
“한 개 사단이 대략 만 명인 것도 아시고요? 그리고 옥해도 총독부의 인구가 다 합쳐야 이만여 명이 채 안 되는 것도 아시는지?”
“재무부 장관님.”
비서실장, 조경의 말에 왕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합니다. 후...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모두 사실입니다. 인구 이만 명이 사는 곳에 일만의 군대를 밀어 넣고 장기 주둔을 하겠다니요. 아무리 봐도 기반이 받쳐주질 못할 것 같습니다만.”
“조립식 건물이 있지요. 그걸 가져갈 생각이었습니다.”
“아, 기반이 없으니 아예 만들어서 가지고 가시겠다? 또, 발해의 수송대란 수송대는 다 끌어다 쓰실 생각이십니까?”
상상만 해도 예산이 펑펑 나가는 듯한 느낌에 왕건은 쓰린 속을 달랠 겸 냉수를 들이켰다. 그래도 재무부 장관이어선지 속에서 올라오는 불길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당연히.”
“실례지만 거기에 드는 예산은 조상님이 대주시는 게 아닙니다. 안 그래도 방위성에서 잡아먹는 예산이 얼만지 아십니까?”
“산자부에서도 반대입니다. 그정도의 예산을 방위성에서 끌어다 쓴다면 분명 산업에도 큰 영향이 있을 겁니다.”
산자부 장관 이기민은 그리 말하며 편안한 기색으로 차를 홀짝였다. 산자부가 중요한 기관인 것은 맞으나 이전보다는 아니다. 무엇보다 왕족이 군권을 잡는 참사는 없어졌지 않은가.
“무리한 요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단순히 톤도 왕국을 멸망시키는 것이라면 이런 무리수를 두지 않았을 겁니다.”
이 말이 뱉어진 시점에서 이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순히 톤도 왕국을 점령하고 끝날 것이라면 적당한 군사력을 투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적어도 톤도 왕국을 넘어 발해의 목표인 루손 섬의 점령과 주변의 안정이라면 초장부터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가는 것이 편하다.
“애매하게 승리하는 것으로는 적을 뭉치게 할 가능성이 있지요. 톤도 왕국은 분명 큰 왕국이지만 그렇다고 톤도 왕국을 제외한 섬을 압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인 줄은 알겠습니다. ... 음, 저는 찬성하지요.”
왕건은 그렇게 말하고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전 반대입니다. 전염병 등을 고려한다면 그토록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왕건과 고천득을 시작으로 각 부 장관들은 제각기 의견을 들어 찬성이니, 반대니 의견을 던졌다.
“폐하께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장관의 의견이 어쩌구, 총리의 의견이 어쩌구 해도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지영이었다. 표결이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이상은 장관과 총리의 의견은 중요한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극단적으로 치우친다고 해도 지영이 밀어붙이면 어지간한 일은 진행되었으니까.
“중국이 합쳐지면 골치 아프지. 그 전에 체급을 확장해야 하는 게 맞고. 지금은 조금 과감하게 움직일 때일세.”
그 말에 방위성 총리, 이권의 얼굴이 환히 펴졌다.
“투입 계획도 이미 짜 두었으니 변동사항이 없다면 이대로 진행하면 되겠군. 그런데...”
지영은 옥좌의 팔걸이를 두들기다가 미심쩍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육군의 개인화기가 이런 대 유격전에 적합하오?”
화석식은 분명 나쁘지 않은 총기였다. 나름 비용이 저렴한 편에 속했고 수석식 소총과 비슷한 속도로 발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밀집 대열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하지만 대 유격전으로 한정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총을 쏘기 위해서는 전용 집게로 달궈진 돌을 조심스레 끼워야 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면 사거리의 우위를 상실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대대 단위로 움직일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창병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니 안전합니다.”
“밀림에서 그 정도의 대단위 병력을 운용하겠다고? 가능하겠나?”
“그래서 어지간하면 밀림에는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분명 밀림은 까다로운 지형이지만 한계가 명확합니다. 적들이 밀림에서 충분한 전투력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육군에서 신형 개인화기 개발 사업이 있으니 밀림을 소탕하는 것은 아마 그 이후가 될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주요 거점을 확실히 장악하고 지켜 적의 전쟁 수행능력을 떨어뜨릴 예정입니다.”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재란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이로써 발해의 육군 투입이 결정되었다.
건국력 143년(서기 922년) 겨울
서울, 왕립 서울 조병창
“신기하군요. 화약을 쓰지 않는 총이라...”
2차 예선 당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공기총이었다. 수석식이니 화석식의 개량이니 많이 나오긴 했지만, 화약을 쓰지 않는 총처럼 주목을 받을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래도 성능은 좋습니다. 명중률도 높고 무엇보다 후미장전식이라 장전 속도도 빠르고 장전의 제약도 적네요.”
이들이 본 공기총의 장점은 크게 다음과 같았다.
하나, 화약을 쓰지 않는다. 화약 자체가 전략물자인 만큼 개인화기에서 화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여러 부분에서 엄청난 이익을 가져온다.
둘, 명중률이 높다. 화약의 폭발력으로 인한 명중률 저하가 없어 같은 활강총이라고 하더라도 명중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셋, 후미장전식이다. 그것도 화약의 가스가 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후미장전식은 굉장히 귀한 물건이었다. 장전 속도가 빨라지고 다양한 자세에서 장전할 수 있다는 건 덤이었다.
넷, 대량생산 및 유지보수가 쉬워진다. 총열이 화약의 힘을 견디지 않아도 되기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총열 역시 소모품이니 이 역시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다섯, 연기와 소음이 적다. 기존의 총에 비하면 사실상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는 전술상의 이점을 가져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공기총은 참 좋은 물건이었지만 시험이 계속될수록 단점 역시 도드라졌다.
“뭐? 공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최소 한두 시간은 공기를 채워야 한다고? 대체 언제 그러고 있나?”
“발포하면 할수록 위력이 떨어집니다. 초탄조차도 현존하는 총기와 비교하면 위력이 한참이나 떨어집니다. 활보다는 강한 것 같지만... 살상력을 가지는 것은 세 발에서 네 발 정도가 고작이겠군요.”
그것도 가장 큰 문제인 전투력의 유지와 화력 면에서 걸렸으니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굉장히 묘해졌다.
분명, 공기총의 장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지만 어쨌건 그 공기총이 위력을 발휘하려면 우선 총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공기야... 그래. 고무가 있으니 공기통을 여러 개 만들어서 보급하고 교체하는 식으로 한다고 칩시다. 어차피 후방에서 기계로 충전하면 그만이니. 문제는 위력, 이거는 답이 없는데요?”
공기총의 위력은 절대적으로 보면 나쁜 게 아니었다. 우선 활보다는 좋지 않은가?
하지만, 중무장한 병력을 상대로는 영 불안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로 약 100m 거리에서 발포된 초탄은 두정갑을 뚫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그 총검이라는 물건을 쓰게 되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일반 총보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니...”
이런 이유로 제식 화기로는 부적합! 이라는 딱지를 딱 붙이려 했으나 여기서 의외의 집단이 나타났으니.
“우리 총기병대는 그 총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 총 해군에서 함 써볼까?”
바로 총기병대와 해군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근접해서 싸워야 하고 말 위라서 장전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좋더라.”
총기병대는 마상이라는 특성상 후미장전식의 수혜를 더 크게 누릴 수 있었고 일반적인 소총병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교전하는 특성상 공기총의 위력과 사거리에서 오는 단점이 줄어들었다.
“근데 해군은 왜...?”
“아니 배 위에서 중무장한 병력이 얼마나 있다고? 그리고 붙기 전에 탄 다 털고 쪽수로 백병전 하는 게 나아.”
해군도 제 나름의 이유로 공기총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던 터라 시범 도입에 거리낌이 없었다.
당연하겠지만 가장 큰 손인 육군은-
“너무 불안정하오. 일부 수색대나 총기병대에게는... 유용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전군에 도입하긴 어렵소.”
라며 거절했다.
“우리는 수석식의 개량형을 도입할 예정이오. 제대로 양산할 수 있다면, 말이지.”
- 작가의말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공기총의 모티브는 오스트리아의 지란도니 공기총에서 따왔습니다.
원래라면 발해의 기술력으로는 양산이 불가능한 총기지만 갓-고무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했고 탄창 포기한 것도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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