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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님의 서재입니다.

다시쓰는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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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쉘오리진
작품등록일 :
2021.05.1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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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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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범선은 낭만을 싣고22

DUMMY

건국력 142년(서기 921년) 봄

발해, 옥해도


밤을 틈타 항구를 벗어나는 선박들을 보며 참모장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이라도 증원을 하는 건 어떠십니까.”


“어째서”


“아무래도 불안하시지 않습니까? 고작해야 다섯 척으로 적의 본진을 치다니요.”


초원택 제독은 고개를 저으며 배를 가리켰다.


“우리의 배로 해상에서 적과 맞상대가 될 것 같나?”


“제독 그 말씀은-”


“병사 앞에서는 못할 이야기지만 윗대가리라면 알고는 있어야지. 사실 자네도 알 거고.”


이미 증명된 이야기 아닌가. 초원택은 그리 덧붙이며 말했다.


“들키지 않는 건 너무 도박이야. 차라리 위장하는 편이 훨씬 낫겠지. 어느 미친놈이 그렇게 힘든 전투를 치르고 고작 다섯 척으로 적의 기지를 치리라 생각하겠나?”


한두 척은 너무 적은 데다 정탐선이라고 인식될 위험이 있다. 다섯 척을 넘어 열 척, 스무 척이 되면 군대인 것이 들킨다.


“적도 전투를 치렀으니 고작해야 다섯 척에 탑재된 대포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 걸세. 하지만 다연장포라면 어떨까. 본래 시설물을 타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야. 사거리도 길고 짧은 시간 안에 압도적인 화력을 퍼부을 수 있지. 한 척당 네 문에서 여섯 문의 다연장포를 준비했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부러 지급받은 함선 중에서 구형 함선만을 차출했고 그도 모자라 다 쓰러져 가는 상선 한 척을 그 자리에서 결제해 징발하기도 했다.


“들키지 않을 순 없어. 그냥 들켜도 상선인 척 넘어간다면... 가능성이 있지.”


“하아...”


“뭐, 어쩌겠나. 정공법으로는 가망이 없어. 하지만, 이건 단, 한번이라면 먹힐 수도 있는 도박수지. 안 할 이유는 없네.”


참모장이나 초원택 제독이나 그 도박수가 먹히지 않을 때의 미래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행동하지 않아도 결과는 비슷할 테니까.



건국력 142년(서기 921년) 봄

당나라, 장안


“폐하, 우선 내실을 다지는 것이 우선이옵니다. 피폐해진 농지를 개간하고, 도로를 정비하며, 장인들을 다독여 물산을 흥하게 한 뒤라야 대군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허, 상서복야께선 어찌 역적들을 두고 내실을 다지고자 합니까? 다행히 황조의 세력이 역도보다 강력하니 기세를 놓치지 말고 몰아 쓸어버린다면 자연스레 황은이 천조 곳곳에 닿아 내실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나라의 내외를 맡는 주전충과 이존욱이 으르렁거리며 싸우자 이엽은 용상 팔걸이를 두어번 두드리며 그들의 다툼을 저지했다.


“그만, 그만하시오. 황조가 경각에 달려 있거늘 황조를 떠받치는 양 기둥이 이리 다투면 짐은 도대체 누굴 믿고 황조를 재건한단 말이오?”


황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둘은 그제야 다툼을 멈췄다. 이엽으로선 둘 모두 능력이 출중하고 놓칠 수 없는 인재들이라 이리 끌어안았으나 이리 다퉈대면 자신의 후대에서는 도대체 어찌 될지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상서복야.”


“예, 폐하.”


“짐이 경의 의견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이것 하나만 묻겠소. 지금 내치를 다진다면 우리가 우세를 점할 수 있소?”


“... 송구하나 폐하. 이는 우세를 점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황조가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옵니다.”


“무례하오, 상서복야!!”


이존욱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물어뜯고자 달려들었으나 이엽은 그를 제지했다. 욕심이야 어느 정도 있을지언정 이엽이 아는 주전충은 그리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 불가능한 야심을 깨끗히 접고 자신의 측근이 된 것만 봐도 그걸 짐작할 수 있었다.


“경이 허튼 말을 하진 않을 것이라 믿소. 장군, 만일 상서복야의 말이 헛되거든 그 이후에 벌하면 그만일 것이오. 그러니 우선은 들어 봅시다.”


황제의 재가가 떨어지자 주전충은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아뢰옵기 황송하나 씨가 말랐나이다. 철을 정련하고 도구를 만들려고 해도 대장장이가 없고 광산을 운영하려 해도 인부가 없습니다. 그뿐입니까? 천을 짜려고 해도 직조공이 없고 수레를 만들고 수리시설을 보수할 기술자도 없으니 나라에 농민의 탈을 쓴 유랑민만 돌아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대체 역도를 토벌할 군사들의 갑옷과 피복은 어찌 구할 것이며, 막사를 만들 천은 어디에서 구하겠습니까? 또한, 병사들의 창칼이 상하고 활과 화살이 헐거워지고, 무뎌져도 이를 만들거나 보수할 대장장이가 없으니 차라리 죽창을 들고 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일 지경입니다.


만일 이런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몰아 역도를 친다면 제아무리 한신과 손자가 살아온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으며 제갈무후가 살아온다고 해도 보급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니 지금은 마땅히 때를 기다리며 황폐해진 백성의 삶을 위무해야 할 것입니다.”


주전충의 말에 꼬투리를 잡으려던 이존욱도, 한번 들어 보자는 심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이엽도 모두 말을 잃었다. 무려 한 나라의 상서복야. 즉, 행정부의 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목을(진짜 목) 내놓고 한 말이니 마냥 허황되었다고 치부할수도 없는 것이었다.


“... 상서복야께서 너무 과장하신 것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장군, 제가 한 달전 전국의 대장장이를 찾아 모은 적이 있었습니다. 장군도 기억하실 텐데. 그때 찾아 모인 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흠, 환란이 있다 해도 몇백은-”


“채 스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 무슨! 말도 안 되오! 역도들이 차지한 땅을 제외해도 황조가 다스리는 영역은 넓거늘!”


“그뿐만이 아니지요. 철의 생산량은 작년 만 근을 밑돌았소.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오. 장군, 묻건데 이 정도 철로 대체 몇만의 군대나 무장하고 이를 움직일 수 있겠소?”


이 충격적인 이야기에 이엽은 자연스레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환란이 계속되었다고는 하나 이건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그리고 이 의문은 두 사람의 문답에 곧 풀리고 말았으니


“상서복야, 이게 말이나 되오? 대체... 지난날 중원을 덮쳤던 무수한 난에도 이 정도로 흉참한 일은 없었소이다. 이는 절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것이오.”


“장군, 우리가 흔들리면. 누가 좋아하겠소?”


세 사람은 모두 한 국가를 떠올렸다.


“망할 동이 놈들의 소행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게 말이 되오?”


중국은 넓었다. 그것도 더럽게 넓었다. 그런데 그런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기술자들을 쏙쏙 빼갔다고? 이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에 속했다. 막대한 시간과 비용, 인력을 투자하고 현지인의 적절한 협조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그리고 이들은 발해가 그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문제는 발해는 그 모든 조건을 갖추고 꾸준히 일을 진행시켰다는 점이지만. 아무튼,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장군, 이건 더 머뭇거릴 문제가 아닐 것 같구려.”


이걸 방치하면 그대로 나라가 공중 분해되거나 아니면 석기 시대로 돌아가게 생겼다. 아무리 그래도 이 시대에 돌을 갈아서 농기구와 병장기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상서복야, 상세한 상황을 조사 후 최대한 빠르게 보고하시오. 우선... 나라를 나라 꼴로 만들고 봅시다.”



건국력 142년(서기 921년) 봄

서울, 왕립 중앙대학교


“이, 이게 무슨... 정말 발해에서는 이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건가?”


일본 출신 유학생 고토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왕이, 황제가 고작 계약의 산물이라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코, 왜 그러나? 아... 신 교수님의 사회계약론이군.”


이건 유학생들이 당황할 만하지, 라고 덧붙이며 대학생은 킬킬댔다. 신강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분석이라는 논문은 여러 편집을 거쳐 사회계약론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고토는 이를 처음 접한 외국인이 된 것이었다.


“이건 그야말로...”


“이미 정식으로 출간된 지가 몇 달이라네.”


“이런 게 국가의 허락을 받았단 말인가?”


발해는 딱히 검열이라고 말할 것을 시행하고 있지는 않았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거 다 검열할 행정력으로 다른 거나 하지?”


수준 높은 중앙집권화를 위해서는 저런 ‘사소한’ 것에 행정력을 쏟을 틈이 없었기도 했고


“검열이란 자국 문화를 스스로 죽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지영이 ‘검열’하면 학을 떼며 반대했기 때문도 있었다.


그렇기에 발해의 법률에는 그나마 검열과 관련된 내용은 딱 세 줄이 전부였다.


“실존 및 사망한 인물에 대한 지나친 인격 모독과 허위사실 유포는 엄히 금하며, 수정 권고에 응하지 않는다면 관련 형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


“타국, 혹은 내란세력의 사주를 받고 국가와 사회에 선동을 통해 혼란을 조장한다면 처벌받을 수 있다.”


“학술지는 비록 그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이 충분히 설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발해의 사람들이 ‘검열’이라고 느낄 만한 구석은 사실상 없다시피 했다.


첫 번째 조항은 검열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 누명을 씌우지 말자는 법률의 연장 선상에 가까웠으며 두 번째 조항은 스스로가 반란 세력임을 인지하는 꼴이었다. 세 번째는 법률 이전에 학문으로서의 상식선의 조항이었는데 당연히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연구를 했고, 이 주장의 근거는 뭐고, 이게 당연히 드러나야 했다.


“아무튼, 이 사회계약론은 한창 뜨거운 주제일세. 아니, 생각해보면 이런 비슷한 주장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지 않나? 맹자만 봐도 알 것인데.”


사회계약론이 생각보다 별 탈 없이 받아들여진 데는 맹자의 역할이 컸다. 맹자의 주장인 ‘민심은 천심이며, 천심을 거스른 왕은 바뀌어야 한다.’ 가 이미 있으니 사회계약론은 이것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는 말이 나온 것.


아직 맹자가 조명받는 때는 아니었지만 이전의 근거가 있고 없고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크흠. 아, 아무리 그래도...”


“아, 그러고보니 곧 점심때인데. 밥이나 먹지 않겠나?”


그는 고토의 처지를 이해했는지 더는 권하지 않고 점심이나 먹자는 제안을 했다.


작가의말

나라에...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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