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은 낭만을 싣고12
건국력 139년(서기 918년) 봄
일본, 쿄토 황궁
“돈이 없다...!”
“돈이... 없어!”
내전 초기에야 다이고 천황이나 데이효 천황이나 의욕이 앞서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고 군사적인 행동을 지시했으나 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바닥나는 국고에 기겁했다.
애초에 전쟁이라는 건 밑 빠진 독에 예산을 들이붓는 행위와도 같건만 그걸 나라가 반쪽이 되고서 하고 있으니 이제는 국고랄 것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일본은 중앙집권이 되지 않아서 그 체급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기초적인 체급이 큰 당나라나, 체급도 적당하고 채권으로 영끌하는 발해에 비빌 것이 못 되었다.
특히나 북조의 예산 문제는 심각한 편이었는데...
“젠장... 화약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군...”
현대의 탄이나 포탄처럼 조건만 맞다면 몇십 년도 보관할 수 있는 현대의 화약 무기와 달리 이 시대의 흑색화약은 여러모로 까다로운 물건이었다.
만들기도 힘들 뿐더러 충격에도 약했고 조금만 오래 보관하면 습기를 머금어 버리기 일쑤였으며 재활용도 힘들었다.
그러니 쓸 때마다 발해에서 사와야 했는데 이 시대의 해상 운송비라는 건 현대처럼 싸지도 않았다.
그런 화약 무기를 발해보다 더 많이 운용하고 있으니 애초에 경제력이 부족했던 북조가 자금난에 허덕이는 수밖에는.
발해야 이제 한 개 보병사단을 겨우 만든 정도였으나 그 중에서 총을 쓰는 부대는 아홉 개 보병중대와 한 개 총기병 대대에 불과했다. 그 수를 다 합해봐야 천 이백여 명 정도.
포병을 끼운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어쨌건 세계에서 총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나라는 놀랍게도 일본이었다.
“폐하, 이대로라면 총을 만들어도 쏠 화약이 없을 것입니다.”
타이라 요시마사의 말대로였다. 총기 생산이야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지만 화약은 사오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조총부대가 무조건적인 승리를 가져오면 문제가 없겠지만 실상 그것도 아니었다. 위력적인 무기도 맞고 훈련을 빠르게 마칠 수 있다는 장점 역시 존재했지만...
“폐하, 또한 조총부대를 보호해줄 장창 부대가 필요합니다.”
“장창 부대라...”
발해와는 다르게 일본에는 발해의 육군 전통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발해는 조총 도입 이전에 탄탄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창총방진을 구성할 때 별다른 문제가 없던 것이다. 화석식이라는 애매한 총기 매커니즘을 채택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하지만 일본에는 대규모 장창 부대를 운영한 경험이 없지 않은가. 원역에서는 전국시대나 되어서야 이루어진 일이다.
“장창부대 없이는 조총병은 고작해야 한두 발의 총알을 발사하는 역할밖에 수행할 수 없나이다.”
총검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발해에도 없는 물건이 일본에 있을 리가 있겠는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경도 알지 않은가...”
결국 모든 문제는 돈. 장창부대를 훈련시킨다? 이것도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다. 장창 부대는 결국 대열 싸움인데 죽음 앞에서 이 대열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잖은가.
결국 답은 하나뿐이었다. 마치 타국을 대하듯 국경 요새선에 일부만 배치하고 군사 활동을 잠시 중단하는 것.
문제라면...
‘이걸 처음 제안한 사람은 무조건 끝이다.’
평범한 적국이었다면 문제가 없겠다만 이건 엄연히 정통성을 건 내전 상황. 이럴 때 타협을 제안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건국력 139년(서기 918년) 봄
서울, 경복궁 국무회의실
“정말 적응이 안 됩니다.”
“어허, 폐하의 뜻이잖나.”
장관들이 몰래 속삭이는 이유를 말하자면 바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소녀, 이다연 때문이었다.
사실 여성이 관직에 오르는 건 이제 발해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여성이 장차관급 인사에 오르는 것도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말이죠. 저분은 계승권자잖습니까!”
계승권자, 소위 말하는 왕위 계승 서열 5순위 안에 드는 진짜배기 왕족들. 심지어 다연은 보통 계승권자도 아니고 2순위 계승권자가 아닌가. 그런 그녀가 어린 나이부터 이런 자리에 출석한다는 건 엄청난 정치적 의미를 함유하고 있었다.
“크흠, 설마 왕태자께 무슨 문제라도...”
“헛소리. 왕태자께선 멀쩡하시네. 그건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런데 왜 이런...”
현 왕태자, 이서민. 그는 그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지만 각 관료들이 보기에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충분히 이성적이었고 신중했으며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였기에 좋은 왕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판단되었던 것이다.
이를 조금 바꿔 말하면 왕위를 계승하기에 하자가 없는 인물이었고 굳-이 질서를 깨가며 이다연이라는 인물을 경쟁자 위치에 올려놓을 필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 더 이상 논의하는 건 불경하네. 곧 폐하도 오실 테니. 그 전에 냉수라도 하지 그러나.”
하지만 그의 만류는 별로 소용이 없었다. 국무회의가 끝나고 장관들이 우르르 지영을 찾아갔던지라 어쩔 수 없이 그도 함께하는 수밖에는.
“흠, 다연이가 왜 회의실에 들어왔는지 궁금해하는군. 하긴, 그럴 때도 되었나...”
“폐하, 감히 말씀드립니다만 쉬이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무려 왕태자의 자리입니다. 현 왕태자께서 어떠한 문제도 없는데 어째서 이런...”
보건부 장관 고천덕의 말이 마중물이라도 되듯 여러 장관들의 입이 활짝 열렸다.
“신 역시 동의합니다. 현 왕태자께서는 훌륭하신데 굳이...”
“맞습니다. 아무리 공주 전하의 재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나는 장관들을 죽 둘러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뭐, 경들의 말이 맞소만 제가 싫다는 걸 뭐 어쩌겠소?”
“... 예?”
“본인이 왕태자 노릇 하기 싫다는데 짐이 뭐 어쩌냔 말이오. 억지로 시킬 이유가 없잖소? 공학자로 살아가고 싶다니 그 의사를 들어 줘야지.”
“아니, 하지만-”
“서민이가 그런 거 하나 생각 못할 아이는 아니잖소. 이제 성인이기도 하고... 스스로 선위하는 것이라면 문제는 없소. 왕태자 자리를 선위한다는 게 옳은 표현인가 싶다마는”
“...”
“짐도 놀랐소. 하지만 본인이 깊게 생각하고 말하는 거니... 뭐 어쩌겠소? 정 뭐하거든 경들이 서민이를 설득해 보구려. 다연이는... 흠, 내 딸이긴 하지만 욕심이 많지. 욕심 채울 능력도 있고. 아마 그 아이는 왕태자 자리를 포기 못할 거요. 이 경우엔 왕태녀겠지만.”
내 말에 장관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지가 포기한 거 다시 설득하긴 힘들지. 그리고 얼마 전에 대화해 보니 아주 단단히 마음 먹었더만.
“아, 참 오늘 대화는 비밀이오? 아는 이들은 장관에 비서실장밖에 없으니... 이 대화가 새나가지 않을 것이라 믿소.”
새나가면... 알지? 친절한 비밀경찰국 친구들의 가정상담이 기다리고 있다고?
건국력 139년(서기 918년) 여름
진나라, 하북도 일대
“칸이시여! 이대로는 안 됩니다, 병력을 물리심이 어떠한지요.”
야율아보기는 난처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보기에도 현 상황이 딱히 좋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임유관을 뚫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존욱의 활약으로 하북도 일대에서 막혀버리고 말았다.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하북도의 7할 정도를 얻어냈으니. 하지만 거기까지, 이존욱의 방어는 매우 견고했고 키탄과는 다르게 이러한 방어에는 다른 절도사, 혹은 당나라 조정의 암묵적인 협조가 있었다.
이존욱과의 관계나 평판과는 상관없이 어쨌건 그가 키탄이라는 오랑캐를 막아주는 방벽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었고 이들은 오랑캐가 중원의 땅을 더 먹어치우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키탄의 위에는 다른 부족들도 있었던 뿐더러 뒤에는 발해가 있었다. 사실 발해는 굳이 키탄을 압박할 생각이야 없었지만, 국경의 요새를 점검하고 병력을 증강하는 꼴이 키탄에는 어떻게 보이겠는가.
발해야 그간 비어있던 국경 방어선을 점검하는 등 제 할 일을 한다지만 타국이 보기에는 전혀 그런 그림이 아니었다. 또한, 참으로 공교롭게도 발해는 지난 전쟁의 여파를 극복하고 다시 군비를 증강하고 있었으니 오해하기가 좋지 않은가.
“으음... 하지만...”
원 역사였다면 이존욱에게 패배하고 목표를 발해로 돌려 국가의 체급을 키운 그였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발해를 쳐들어간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발해가 고구려랑 투닥거리면서 힘이 빠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것도 이제 십 년 정도 지났다. 멀쩡한 국가라면 이미 손해를 복구하고도 남는 상황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조 장군에게 소식은 없는가?”
“일부 한족 인사를 등용하기는 했습니다만... 마냥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야율아보기에게 투항한 조사온은 매우 유능한 인재였다. 뛰어난 장군이기도 했고 한족 출신이기도 해서 후방 지역을 안정시키고 한족 인재를 등용하기에는 이만한 장군이 없던 탓이었다.
절도사끼리야 정권이 교체되고 나라가 망해도 그 밑의 관료층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절도사끼리의 일. 이민족인 키탄에는 애매하게 적용되거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경도 불안불안한데 후방 안정화에 힘까지 쏟으니 제아무리 야율아보기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상대도 어지간히 만만치 않은 이 아니던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후방 안정화 작업에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기는 하다는 거였다. 야율아보기가 중원에 들어오고 그와 동시에 기근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민심이 나빠진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방 토호들이나 관료들도 민심의 영향을 받으니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좋아졌다.
‘처음에 발목만 잡히지 않았어도...!’
발목만 잡히지 않았다면 적어도 이 지긋지긋한 하남도에 묶여 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건국력 139년(서기 918년) 가을
인천, 왕립 인천 조선소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진수식까지 마친 새누리급 전투함은 인천 조선소의 건선거를 혹사시키며 태어나지는... 않았다.
“우선 일차 양산분인 서른 척은 다음연도 봄까지 인계해드리겠습니다. 대포 생산 문제도 있고 겨울이라 작업속도가 아무래도...”
“그거는... 어쩔 수 없지요.”
서른 척이면 대포만 해도 육백 문이다. 거기에 육군에게 할당되는 대포도 생각을 해야 하니 생산량을 무작정 늘릴 순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부산 조병창과 육군에도 부탁했으니 아마 대포를 우선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을 겁니다.”
옥해도에서의 완전한 해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신형 함선이 반 필수적이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천공기와 조선소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 작가의말
함선은 대포 잡아먹는 귀신이죠. 대항해시대 프리깃만 해도 나폴레옹 시대의 한 개 사단에 배속되는 포병대대와 비슷한 혹은 더 많은 포를 필요로 했으니까요. 여기서 중 프리깃, 슈퍼 프리깃, 전열함까지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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