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은 낭만을 싣고3
건국력 134년(서기 913년) 봄
서울, 경복궁 국왕 집무실
“병력이 몇 개 사단인지는 중요치 않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병력이 몇 개 사단인지가 중요하다.”
견훤이 북방 전쟁을 겪고 군제 개혁을 하면서 저술한 책, 공격론 첫 장에 적힌 글귀였다.
“내가 실제 북방 전쟁에 참전했을 때, 우리 군대는 모두 정예였지만 공격의 핵심은 언제나 포병 화력이 집중된 일부 사단이었다.”
“우리의 포병대는 전술, 전략적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단에 배속되고 재배치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500kg 이하의 대포를 가진 포병대가 하루에 30km 정도는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핵심 부대의 기동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적은 너무나 거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동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의 전략적 기동이 빠르면 빠를수록 인력과 물자를 대체할 수 있다.”
“시간 하나만 적에게서 빼앗아도 적에게 확고한 열세를 강요할 수 있다.”
나는 원고를 내려놓고 견훤을 바라보았다.
“장군도 육군 사령관 자리가 욕심이 나는 모양이오?”
“흠흠.”
“뭐, 좋소. 장군은 충분한 능력이 있으니. 공격론은 감명 깊게 읽었소. 모든 초급장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군. 아무튼, 장군이 말한 이러한 부대야말로 내가 원한 것이오. 장군이 원고를 가져왔다는 건 이미 그러한 부대를 만들었거나 혹은 계획이 있다는 뜻이겠지?”
“예, 전하. 현재 아군 사단은 보병 연대에 6문의 포와 18문의 박격포를, 사단에는 총 36문의 포와 54문의 박격포, 그리고 12문의 다연장포가 있습니다. 저는 이 중에서 사단에 배속된 포병대대, 18문의 포대를 기동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 그건 좋은데 돈이 장난 아니게 깨질 텐데? 알겠지만 말은 결코 싼 장비가 아니다.
포 하나당 못 해도 열 두 마리의 전마가 붙어야 할 테고 포병대대(18문) 정도 되면 말만 200마리가 넘어가지.
기병중대 하나가 총 92명인 걸 생각하면 적어도 사단에 기병 중대가 하나씩은 더 들어간다는 소린데...
그리고 말도 그냥 말이 들어가는 게 아니다. 적어도 화약과 연기에도 제 할일을 해야 했고 대포를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힘과 지구력이 필요했으며 대포와는 다르게 말은 소모품이다.
어... 대포는 소모품이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다만 대포는 녹여서 다시 쓸 수 있으니까. 지금의 대포라고 해봐야 원형 금속 통에 불과하니까. 녹여서 다시 만들고 드릴링하면 그만이지.
근데 말은 으음...
“물론, 전하께서 걱정하시는 바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가장 전쟁에서 저렴하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좋아, 한 번 밀어붙여 보도록.”
그 견훤이다. 적어도 그가 이렇게 자신감을 표할 때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되면 차축도 철제로 만들어야겠지만... 음, 괜찮겠지.
건국력 134년(서기 913년) 여름
일본, 쿄토 황궁
“그간 뎃포다이죠가 보여준 능력은 훌륭했소. 그간 투자한 것이 전혀 아깝지 않았지.”
그 말에 타이라 요시마사는 부복해 감사를 표했다.
그의 뎃포부대는 지금까지 열 번의 전투를 치뤄 여섯 번을 이겨냈다.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열 번의 전투가 한 번을 제외하면 전부, 적의 주력과 맞부딪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성과였다.
못 해도 몇 년 이상은 실전 경험이 있거나 훈련한 부대를 고작해야 일 년도 안된 부대가 비슷하게나마 접전을 치르고 혹은 이기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성과는 바로 이곳, 쿄토에 있었다. 북조는 쿄토를 완전히 장악했고, 뎃포부대는 적어도 거기에 2할 이상의 기여를 했다.
“하지만 문제라면 역시 비용인데...”
이미 북조는 뎃포부대를 위해 약 이백오십 만원을 추가로 지출한 상태였다.
발해의 일 년 예산이 십 오억인 시점에서 정말 별 것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가만 생각해 보자.
국방비에서 신무기 도입 등을 하는 방위력개선비의 비율은 발해 기준으로 30% 수준에서 오락가락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70% 정도가 현재의 병력과 시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한 전력운영유지비인 셈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한 개 부대를 위해 전력운영유지비가 예상에도 없던 추가지출이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그것도 나라가 반으로 쪼개진 일본의 전시에?
“이 뎃포를 복제하는 일은 어찌 되었소?”
다이고 덴노는 화약을 자체 생산하는 일은 딱 봐도 하루이틀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우선 되는데로 뎃포와 탄이라도 자체 생산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적어도 발해에게는 화약 정도만 수입하면 그만이었고 일본 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기에 유지보수 및 운영비 절감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송구하오나 다른 건 얼추 구현했으나 총신이 문제입니다. 이것만큼은 도무지 발해의 그것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방아쇠와 그 작동부는 화승총 특성상 상대적으로 단순하니 장인이 달려들면 못 만들 건 없었다.
판스프링도 마찬가지. 어차피 발해에서 철강을 들여오니 그걸로 하면 그만이었다.
개머리판이나 총몸이야 그냥 나무를 깎으면 되는 일이니 어려울 것 없었다.
문제는 총신. 발해야 천공기 돌려서 뚫어낸다지만 발해가 호구도 아니고 이 방법을 일본에 전수해 줄 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일본은 자체적으로 머리를 굴려서 총신을 만들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 방법이라는 건 인류의 생각은 다 비슷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조한 총열 반쪽 두개를 이어붙이는 방법이었다.
아무리 발해 강철이 일본의 철에 비해 좋다고는 해도 어쨌건 초강법을 통해 양산한 저품질 강이었고 그걸로 주조해 이어붙여 총열을 만드니 화약을 살짝만 많이 넣어도 총열이 미친듯이 터져나갔다.
그렇다고 겁쟁이마냥 쫄아서 화약을 조금 넣으면? 관통력이나 위력이 약해지기에 현 시점에서 조총의 가장 강력한 장점인 관통력이라는 이점이 퇴색되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총열을 생산하다보니 새로운 문제가 생겼는데 그건 바로 구경이 들쭉날쭉해져 명중률이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무엇보다 탄환의 대량생산이 힘들어졌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곡선부에 대고 두들겨 만들어 이어붙였다면 구경 문제야 해결되었겠지만 이걸 주조로 하니 대포에서도 나온 구경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할 수밖에.
구경이 다르니 탄환을 일제히 틀에 만들어봐야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역시 사람 생각은 다 똑같다고 총알 틀을 만들어 병사들에게 배부했는데 이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었다.
장점을 뽑으라면. 바로, 고참병이 크기별로 다른 탄환을 만들어 사격 시 쌓이는 탄매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신병은 크기별로 다른 탄환은커녕 본인 구경에 맞는 탄환을 만드는 것도 낑낑대었으며 쉬는 시간에 탄환이나 만들고 있으라는데 좋아할 병사는 없었다.
“그래도 고참병들은 이 조총을 꽤 능숙하게 다룹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신병들에게는 발해제 조총을 줘야 한다는 뜻이군. 그래서, 생산량은 어찌 되나?”
그 말에 요시마사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주저했다.
“어허, 한 달에 몇 정이나 만드는 지 물었는데도”
“그, 그것이...”
“개의치 말고 고해 보라.”
“소, 송구하오나 한 달에 서른 정이 고작... 입니다...”
그 말에 다이고 덴노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잡았고 요시마사의 고개는 더욱 수그러들었다.
“장인을 무려 스무 명이나 붙여주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그 정도가 고작이란 말인가?”
“송구합니다...”
“그놈의 송구는 집어치우고 대체 왜 생산량이 저조한지 말이나 해 보라!!!”
“여, 여러 가지 문제가 있사오나 우선 장인들도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라...”
그것도 그렇지만 일본에 총기 제작을 위한 설비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최초 발해의 제안대로 창정비를 위한 시설이 들어왔다면 사정이 훨씬 나았겠지만 발해 대사관이 습격당한 이후로 그 제안은 백지화되었다.
그러니 일본의 장인들은 처음 보는 물건을, 변변찮은 기구도 없이 장인 한 명당 달에 1.5정씩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결코 나쁜 성과는 아니었다.
능숙해지기만 한다면 한 달에 두 정, 세 정도 무리는 아니었으니.
문제라면 일본 조총의 신뢰성은 낮은 축에 속하던 것이었다. 까딱 잘못하면 총열이 휘고 터지고 난리도 아니었으니.
“후우... 어쩔 수 없지. 정 안되면 짐의 내탕고라도 털어 지원하겠소. 어떻게든, 생산량을 향상시키도록 하시오. 그리고 경이 뎃포다이죠로서 판단할 때 대포라는 것이 과연 필요하다 생각하시오?”
대포.
발해에서는 ‘보병사단의 화력은 포병대대에서 나온다.’ 라고 말할 만큼 대포를 중요시했다. 박격포, 야포, 중포, 다연장포 등 다양한 포를 생산하고 배치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딱히 와닿는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이유인즉 일본의 성은 너무 견고했기 때문이다. 산의 일부를 성벽으로 삼아버린 성도 있는데 그런 곳에 대포를 쏘아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적어도 산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지진폭탄 정도는 가져와야 할 터였다.
“으음...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우선 대포가 만들어지면 적에게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다만, 아국은 그 작은 뎃포를 만드는 것도 능숙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 뒷 말은 필시 ‘그러니 대포는 발해에서 구입해야 합니다’ 였고 다이고 덴노가 이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
“흠, 그렇다면 경의 부대에서 일부를 차출해 발해로 보내 보시오. 가서 발해의 대포를 견식하고 오시오.”
“허나, 폐하. 발해가 그리 쉽게 자신들의 무기를 내어주겠나이까?”
“아니, 그것이 유용한지 보고 오기라도 해야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 것 아니오?”
정곡이었다. 하다못해 리뷰 영상이라도 봐야 그 제품을 살지, 아니면 비슷한 거라도 살지, 그것도 아니면 만들어 볼 지 결정할 것 아닌가.
“대사에게는 말해 놓을 테니 경은 적절한 인선을 수배하시오.”
“명, 받들겠나이다.”
요시마사가 나가자 다이고 덴노는 답답한 마음에 술병을 깨끗히 비웠다.
지금 일본이 분열한 동안 발해는 얼마나 앞서나갈 것인가.
지금까지는 양국이 그래도 비슷한 크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반란을 다 제압하고도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대체 무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가...”
참으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 작가의말
실제 유럽에서도 병사들에게 총알틀을 총과 함께 나누어줬습니다. 표준화가 안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 생각이지만 총알이 납이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습니다. 야전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녹는점이 지나치게 높으면 문제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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