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영락한 용과 자칭 용, 난세에 휘말린 두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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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터진 지 오래였다. 그들은 장발적으로 부르는, 봉기 혹은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스스로는 태평천국을 자청하는 편인 이들을 많은 도움 끝에 거의 진압했다만 잔당들은 남았다.
여기에 염군은 거의 진압한 것 같았지만 신 염군을 일으키면서 반란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1862년, 동치 원년이자 광명 5년이 되던 해에 신장이라고 부르는 서북 일대에서 봉기가 큰 것이 터진 이후로 더 큰 봉기들이 이어지면서 신장 너머의 한 장군을 칭하는 야쿱 벡 등이 개입하여 반란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기존의 여러 반란을 수습할 것 같더니 또 일어나는 다른 여러 곳의 반란이 문제였다. 그래서 상첩군을 이끌던 민병대의 대장 격이고 청나라의 중진으로 미래의 대우 등을 약속받은 좌종당, 그 임칙서가 눈 여겨봤던 남자의 군대가 급히 투입되고 몽골의 왕공족이 이끄는 몽골 팔기들도 일각이 빠르게 투입되었다.
“도피!”
“도피!”
“생각보다 강합니다!”
“퇴각하라!”
“나머지는 죽음을 각오해서 싸워라!”
“놈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물론 그들의 투입도 회족과 회족이 아닌 무슬림들이 연대한 봉기에 개입한 야쿱 벡 등이 연합한 군대는 급조가 된 것이 맞는가 말이 나올 정도로 잘 싸우고 있었다. 지형의 도움 등을 받으면서 내전 등으로 단련한 그들의 군대를 격파했다. 더 정확히는 그들이 원하는 전면전을 당장 하지 않았다.
특히나 발이 느린 편인 상첩군이 제일 큰 타격을 받았다. 포위된 상첩군 본대로 분투를 하다가 전사한 이들이 꽤 많았다. 상첩군의 본대를 지휘하던 좌종당 역시도 중과부적에도 야쿱 벡을 중심으로 뭉친 이 반란군에게 피해를 주었다.
문제는 그 좌종당은 정작 피해를 주고 자신은 살지 못했다. 최후까지 분전했다가 전사했고 야쿱 벡은 전사의 도리도 잊고 이 좌종당의 머리를 잘라서 효수할 정도로 화를 냈다. 그 이유는 야쿱 벡, 그 자신이 원한 승리였지만 예상보다 더 피해가 커서 그렇다.
“우리는 속았소.”
“우리를 유인해서 각개 격파하고 뒤에서 기습하는 등의 방식으로 우리는 당했네.”
염군과 태평천국을 상대하면서 실전경험을 다시 찾은 청나라 군대 중 몽골 왕공족 중 대표인 친왕 셍게린친이 이를 갈고 있었다. 증국번과 이홍장이 장발적의 잔당과 염군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좌종당 등 일부를 몽골 왕공들과 함께 보냈지만, 결과상으로는 패배했다.
물론 야쿱 벡도 피해가 있었지만 청나라에 속한 몽골 왕공들은 이를 몰랐다. 그렇기에 화가 났음에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50대의 친왕인 셍게린친은 화가 솟구쳤다.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다른 몽골의 왕공들은 말을 아낀다. 여러 군공 등으로 기윤왕이라고도 하는 군왕의 자리에도 올랐던 원래 집안을 친왕의 세습망체를 물려받은 집안까지 올려놓은 셍게린친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세월을 이길 수가 없었다.
조선과의 전쟁에서는 나서지 못했다가 그 패배에 당혹할 정도였다. 이후에는 휴전이 깨진 상황에서는 그는 패장이었다.
조청전쟁의 종료 이후로도 칭기즈칸의 방계 후예인 보르지기트 셍게린친은 몽골족의 나라이기도 한 청나라를 더 열심히 지키려고 움직였다. 이번의 일도 병 등으로 죽어 가는 몸임에도 나섰다.
“으아아아아!”
“친왕 전하! 진정하시지요.”
몽골 왕공 중 친왕은 카칸을 겸하는 만주 대한 겸 중원의 천자인 청나라 황제를 빼곤 칸 다음가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오른 그는 무엇보다 오랜만에 등장한 몽골인 친왕이라서 더 존경받았던 셈이다.
그런 그를 열심히 달래는 몽골 왕공들이었다. 어떻게 그들이 셍게린친을 달랜 다음에 대책을 논의해야 했다. 대책을 논의하지만 건성이었다.
그러다가 그들, 몽골 왕공들은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는다. 어쩌면 이 반란, 이 서북 변방의 반란이 더 큰 음모가 있지 않은가에 의심이 생겼다. 다만 그들이 누가 배후인지로 싸우게 되었다.
“이 일을 꾸민 것은 자신들에게 나중의 보복을 피하려는 조선 놈들의 짓이 분명합니다.”
“아니요. 이는 저 아라사 놈들이 배후일 것입니다. 조선의 국력이 신장했어도 바다로도 연결된 곳이 아닌 땅에 어떻게 이런 짓을 벌입니까?”
“그건 모르는 일이요. 아라사 놈들도 의심스럽지만 근래의 전쟁 등으로 그자들은 대규모로 움직일 수도 없다는 말을 영길리 측에서 하지 않았소?”
조선이냐, 아라사, 러시아가 배후인가로 지금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사실 셍게린친이 봐도 이 일의 배후는 아라사가 매우 유력했다. 그런데 조선을 의심하는 것은 그냥 억지였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서 동조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조선에 대한 악감정이 크다는 방증이었다. 또 몽골 왕공들은 만주인 대신 집단하고도 통혼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에 따라서 자연히 조선을 더 싫어하는 쪽도 보인다.
셍게린친은 지난 조청전쟁, 또 이게 합쳐진 전쟁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서방 열강들과 조선을 싫어해도 이런 억지로 조선을 배후로 여기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직접 나서서 조선 배후설을 친히 논파할 생각이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이 일의 배후를 조선으로 잡는지 모르겠군. 내가 보기에 조선은 이럴 역량이 적다. 지금 저들이 동북의 일각을 집어삼키고 서역과 무역 등을 하면서 바쁜 상황에서!
나는 오히려 아라사가 더 수상쩍다고 생각한다. 저들이 무역 등을 몰래 해왔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총이 많을 수가 있었을까? 신장 너머의 회회 놈들이 배후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우리가 신장 등을 잃으면 제일 득을 보는 곳이 어디겠는가? 바로 아라사다.”
“우리가 약해지면 조선도 좋아합니다. 아니면 아라사와 조선이 손을 잡고 이런 술수를 부렸을 수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제는 조선과 아라사가 짜고 이 서북 변방의 봉기 등을 조장했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이를 아라사 단독의 일로 생각하는 이들과 드잡이질을 하게 되었다. 야쿱 벡이 지휘하는 반란군들을 상대해야 하는 군의는 경사인, 베이징에서 논의해야 할 이 반란의 배후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이런 왈가왈부가 있던 그들이 있는 막사 밖에서는 상청군의 지휘관들은 몽골 왕공들이 있는 막사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간신히 철퇴를 한 이들을 달랜다고 바빴다. 그들은 슬프지만, 여전히 싸워야만 했다.
그 슬픔이 그들의 경애하는 지휘관, 좌종당을 잃은 일 등으로 나왔어도 그렇다. 좌종당은 자신의 기반이 된 상첩군을 매우 아끼던 지휘관이었다. 그들은 좌종당 말고도 좌종당의 부관이며 다양한 부장들도 잃은 상황이었다.
“우리의 보충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 달자 놈들이 이를 신경 쓰겠어?”
“말이나 타고 다니는 놈들이! 보총 등의 화력으로도 마병을 밀어낼 수 있다 등을 긍정하겠냐고!”
“다른 쪽의 부대들의 인력을 보충받아야 하는데 녹영병! 자라 같은 그 자식들은 사절입니다.”
“다른 곳들도 마냥 상황이 좋은 것이 아니니······.”
이런 상첩군의 피해를 남은 부장들이며 지휘관 등은 다른 한인 민병대장 출신의 청나라 조정에 있는 고관들이 보충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은 이루어지기 쉬운가 하면, 문제가 있었다.
증국번이나 그 제자들로 구성된 범호군 파벌은 같은 한인 민병대의 대장이라도 대외정책이 달랐다. 특히 지금 화북에서 다시 준동하는 신 염군의 진압을 총괄하는 이홍장은 전임 진압 총괄자인 스승, 증국번보다 더 좌종당을 경계했다.
아마 신 염군의 진압 문제 등을 핑계로 한인 민병대 출신의 병력 차출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이 둘이 정적이 된 이유는 아까도 말한 추구하는 대외정책의 차이 때문이었다.
임칙서의 영향을 받아서 아라사를 더욱 경계하던 좌종당이 새방을 중시했었다. 반면 증국번과 이홍장은 해방을 우선해서 서북의 변방 등은 청나라에 속하는 자치를 하는 선이던 심지어, 그 땅을 아라사에 할양해서라도 해방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여겼다.
“우리 대장님, 전 민절총독이던 분이 아군이 많았던 것도 아니니······.”
“그래도 사태를 심각하게 여겨서 병력을 더 차출하겠지······.”
물론 조선에 대한 정책은 좌종당이든 임칙서든 나중에 대청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위세를 꺾어야 한다는 것은 같았지만 무엇이 중시인지로 꽤 싸웠다. 특히나 좌종당의 성격 문제로 좌종당의 과한 언사에서 나온 모욕 등으로 이홍장은 앙심을 품었다.
다른 문제는 지금 이 신장에서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투입된 이들은 몽골 왕공족이 대부분이라서 보군, 보병의 보총 화력에 의한 지원 등을 무신경하게 여길 것이라는 편견이 강했다.
정말 그렇다면 이 신장에서의 반란을 다르게 타협하는 식으로 강경한 제압 대신에 움직일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청나라의 반란 진압부대는 이 둥간 혁명이라고도 후세에 부를 이 봉기에 대해서 꽤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타격이 경사로 보고가 올라가면 당황할 여지가 충분했다.
상첩군은 아마 전력을 보충해도 이 신장의 현지 한인들을 중심으로 차출할 여지가 높았다. 화북과 강남에서 여러 전투로 실전이 쌓였던 이들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우려가 크다.
아울러서 좌종당은 이 신장의 봉기를 진압하는 데 있어서 셍게린친을 제외한 대부분의 몽골 왕공보다는 더 온건한 편이었다. 이 봉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가담하지 않은 회족들을 회유하고 아군을 늘려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런 좌종당과 달리 이 진압군의 중핵을 차지하는 몽골 왕공들은 준가르 원정 수준으로 유혈이 난무한, 강경한 진압을 더 지지하고 있었다.
“상첩군의 피해가 크기에 화북에서 신 염군을 상대한 병력 중 대기하는 이들을 차출해서 데려와야겠군. 그들의 화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친왕 전하! 저들의 느린 속도로 우리가 각개격파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들이 없어도 우리는 저 무도한 신장의 역도들을 상대할 수가 있습니다.”
“화북의 반란도 진압하면 더 많은 병력을 돌려서 이곳을 철저하게 박살을 내면 됩니다.”
이들 몽골의 왕공들은 지금 자기들, 대청의 상황을 일부러 도외시하고 말하는가? 아니면 정말로 현실을 몰라서 이렇게 말하는가 싶을 정도였다. 이제야 강남의 진압이 완료되고 그 세수가 완전히 걷히려면 멀었다.
그렇기에 지출을 최소로 한 신속한 진압을 섭정의친왕이나 보정대신들이 원한다고 청나라의 몽골 친왕인 셍게린친은 잘 알고 있고 이를 제대로 듣지 않은 이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이들이 꽤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또 신속한 진압을 위해서는 과격하고 강경한 진압도 자제해야 한다는, 그 좌종당인가 하는 벼락출세한 자의 견해를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정 부분은 동의하는 바였다.
“당장의 더 많은 지원은 힘들다. 우리는 저들을 견제하면서 틈을 보이면 격파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지역을 너무 과격하게 대하지 마라. 이곳도 카간의 땅이다.”
“항복하지 않는 자들에게 어찌 자비를 보입니까?”
“과거 준가르를 생각하면 더 철저하게 저들을 제압하고 반항하는 자들은 다 죽여야 합니다.”
“어허. 카간의 보정대신들에게서 권위를 받은 나를 무시하는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칸의 권위를 위해서 더 그렇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제고하여 주십시오.”
“으으으음······.”
문제는 셍게린친의 권위로도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그렇게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셍게린친의 심기를 건드린다. 오히려 저런 반항 등이 그의 심기를 흐트러뜨려서 셍게린친의 죽음을 더 가깝게 만들고 있다는 가능성을 그들은 모른다.
또 이 패전에 대한 보고가 청나라의 도성인 경사, 연경이라고도 부르는 고을에 당도하자 당연하게도 조정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고개를 드는 것은 진압하지 않고 신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주장하는 것은 조선에 대한 문제를 제외하고 해방을 지지하던 이 중에서 한족 출신 고관으로 크게 출세한 증국번이었다. 다만 당연하게도 반대에 부딪혔다. 증국번을 인정하면서도 새방을 당장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반대하는 보정대신 중 하나인 공친왕 혁흔이었다.
새방, 해방 우선에 대한 논쟁이 좌종당이 죽어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점점 세력을 키운 공친왕 혁흔의 주장을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기에 팽팽했다. 두완후아와 다른 이들을 밀어내고 두 태후의 묵인을 통해서 섭정의친왕 중 가장 강한 권력을 쥔 공친왕 혁흔이라서 가능했다.
다만 이러는 중에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야쿱 벡은 셍게리친이 이끄는 청나라의 진압군 등을 더 타격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라사, 러시아와의 연줄을 통해서 구해 온 구식 총기 등이며 물자를 열심히 보충 중이었다.
“반드시! 이 땅에 무슬림이 다스리는 무슬림의 나라를 세운다! 준가르니, 티베트 불교니 같은 잡다한 것들을 누르고 무슬림의 나라를 세워서 오스만 튀르크의 도움으로 에미르국을 세운다!”
야쿱 벡은 자신의 야망으로 오롯이 불타 있었다. 이슬람의 가르침이 절대시 되는 다른 나라를 세울 욕심이 강했다. 고작 장군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라사, 러시아가 자신을 이용함을 알면서도 이를 역이용해서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고 했다. 이 현지인들, 그들의 봉기와 수탈에 대한 분노를 이용해서 독립, 혹은 자치로도 바꿔서 자신의 나라를 가지고 싶은 욕망이 지대하였다.
***
한편, 일본에서는 1862~1863년 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다. 조슈에서는 다른 밀서가 왔다. 1863년에 이미 조정이 있는 경성으로 근신을 풀고 쇼군 대리 등의 자리를 대신 맡은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등을 수행원으로 거느리고 에도 막부의 정이대장군이 상경하여 덴노를 알현했었다.
지난 조선과의 국지전 등을 통해서 에도 막부며 다른 영지들이며, 심지어 조정도 양이에 대한 맹세를 강조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신국수호에 대한 맹세를 다시 확인받는 부분이었다. 이에 대한 타협은 막부도 조정도 만족하는 듯이 보였다.
문제는 이 신국수호를 존왕양이와 뜻이 사실상 같다고 호도하는 자들이 조정에서 튀어나오면서 그렇다. 이와쿠라 토모미가 했던 밀지를 전달하는 척, 위조한 것을 전하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덴노의 외숙부라는 위치에 있기에 숙청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나카야마 타다미츠와 그 아래에서 보호를 받은 존왕양이 지사를 자처하는 무사였던 낭인들도 같이 획책하였다.
그 결과로 1863년에 조슈며 아직 존왕양이 세력이 강력한 영지들로 이 서신들이 전달되었다. 밀지가 가짜인 것을 모르던가, 가짜라는 것을 알아도 거병한 이들이 당연하게도 나타났다. 조슈는 보수파가 일으킨 정변에서 덴노의 밀지를 명분으로 거병한 존왕양이파에 당연하게도 당황했다.
“이 무슨!”
“저들을 빨리 정리했어야 합니다.”
“제길!”
이런 대화를 당황해서 급히 소집된 조슈의 고위층들이 나누었다. 아예 몇 명은 죽이는 선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당혹한 일이었다. 이는 조선에서 돌아와서 모리 가문을 돕던 가츠라 다카요시와 이토 히로부미도 당연하게 놀랄 일이었다.
다른 영지들도 그럴듯한 구심정이 등이 사라지니까 흩어져서 세력과 힘이 약화하는 것 같던 존왕양이 파벌이 친 거병 사고에 당혹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조슈는 완전히 숙청되지 않은 자들로 인해서 문제가 커지고 있었다. 이는 사실 도사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아울러서 아까 열거한 두 지역 말고도 존왕양이 파벌이 꽤 강한 다른 지역들도 비슷한 판이었다. 온건하게 신국수호를 정해서 짰던 조정과 막부도 마찬가지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반성이 없는지 시모노세키에 정박한 서역과 조선의 배들을 불 지르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언제 포대를 만들고 화포를 설치했는지 간몬 해협을 차단하려고 했다.
“정충조를 통해서 통제는?”
“최대한 하지만 밀지를 운운하면서 듣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최대한 통제하겠습니다.”
“믿겠네. 사이고...”
그리고, 사쓰마는 존왕양이 파벌 중 가장 강한 정충조가 사이고의 통제에 있어도 사고를 치는 자들이 나왔다. 사실상 사쓰마를 다스리는 가로 혹은 다이묘 대리의 위치에 있는 시마즈 히사미츠에게 송구한 마음이 두는 사이고와 오쿠보였다.
그래도 그들을 믿고 정충조를 통제해서 사쓰마가 이런 난리에 끼어서 볼 일을 수습하려고 했다. 게다가 사쓰마 측은 이미 이전에 철렁할 뻔한 일이 있었다.
지난 전쟁을 기억하기에 영길리 상인들을 죽이지는 않았어도 그들에게 매우 살벌하게 대했다. 마치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는 듯이 말이었다.
물론 이 때문에 시마즈 히사미츠는 그런 독단을 한 무사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지난 전쟁으로 절음발이가 된 재정에서 영길리 측에게 배상금을 또 내야 할 수도 있었다. 사쓰마는 영길리 측의 항의에 막부와 별개로 사죄하였다.
이런 처신으로 지난 전쟁에서 더욱 얻어맞은 상태에서 또 맞는 일은 피할 수가 있었다. 사실 더 문제는 사쓰마보다 조슈였다.
조슈 내의 존왕양이 파벌, 그들은 지금 영지 내의 고위층 중 그들을 직접 통제하는 이들이 실세가 아니었고 이를 방조하였다. 그렇기에 영지 차원에서의 통제가 먹히지 않았다.
“구사카 겐즈이 도노가 조슈의 양이를 총괄할 이로 내려온다!”
“존왕양이가 이 신국을 지킨다!”
“신국의 중심은 우리 진짜 우국지사들이 지키고 있다!”
이런 혼란으로 조슈에서는 피아 구분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조선의 해상보군 등과 수부들이 지난 경험으로 철저하게 조선통관과 자신들의 민선들을 더욱더 철저하게 지켰다.
물론 조슈의 양이지사를 자처하는 자들은 이런 행위 등이 나중에 어떤 보복으로 돌아올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조선도 조슈를 더 철저하게 공격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중에 의견이 기울 여지가 높았다.
이미 피해를 본 미리견과 법국 측에서 소규모의 전력들을 통해서 빈약한 포대들을 제압하고 일본의 전통 선박으로 시도하던 간몬 해협 봉쇄도 뜯어버렸다.
한편, 조정 내의 이런 잔존 존왕양이파가 친 사고를 깨닫자, 이와쿠라 토모미는 고위 공가의 피해를 줄이는 식으로 쿄에 있는, 봉기를 일으킨 영지들의 무력을 배제하는 공작을 짜면서 이를 덴노에게 상신했다.
“막부에게도 이를 전하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각 영지의 그 난리도 내가 친히 쓴 성지 등으로 일어났는데 이는 위조가 되었음을 전할 것이다.”
“예, 헤이카!”
“이를 불문으로 부치기에는 일이 더 커졌다. 적당히 희생시킬 자들을 추려라... 내 외숙을 차마 죽이고 싶지는 않다.”
“예!”
처벌과 그 처벌자의 범위 규정을 하는 일로 막부와 조정이 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수습을 명할 생각이었다. 모리 가문과도 무관한 이 일부 영지 하급무사들이 일으킨 봉기를 쉽게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와쿠라 토모미는 조정의 유력한 공무합체 파벌 인사들을 더 합치고 아직 막부에 위세 남아있는 공무합체 성향의 로쥬들을 연결해서 일을 최대한 수습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쿄에서 꽤 요란 법석한 일이 일어날 참이었다.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요. 조아라에서도 연재중입니다. 거기에는 HMS 아론다이트란 이름으로 연재를 합니다.
- 작가의말
조선이 민란와 경장에 대해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변화가 생각보다 순항 중이라면 청나라와 일본은 1864년까지 일어날 일을 당분간 다루는데 이렇습니다.
좌종당이 전사했습니다. 이거 파급력이 생각보다 클겁니다. 새방과 해방 논쟁은 나중에 나오는데 1850~1860년대에 이미 비슷한 것이 나왔을 것이라고 보거든요. 근데 이 좌종당이 죽어버린....
그리고, 일본은... 더 개판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될 지는... 물론 일본사 좋아하는 분들은 알겠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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