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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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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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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2,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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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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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0화

DUMMY

“이제는 제법 멀리까지 나가시나 봅니다.”


“뭐... 그렇게 됐네요.”


“가방을 만드신 걸 보니 코볼트를 사냥하셨겠군요.”


“네.”


향긋하게 퍼지는 차 내음.

서로 찻잔을 홀짝이며 우리는 담소를 이어나갔다.


“이제 이쪽 세계에는 어느 정도 적응하셨나 봅니다.”


“이쪽 세계요? 음... 그렇죠.”


생각지도 못한 표현이었다.

이쪽 세계라...

그렇다는 건 미소바가 내가 사는 현실 세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뜻.


“카이사 대륙에 온 뒤로 그간의 여정은 어땠습니까?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그렇긴 했죠. 시작하자마자 고블린에게 죽었으니까요.”


“고블린에게요?”


“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음... 그게...”


사실 쪽팔려서 남들에게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매번 차 대접도 받았으니, 나는 이야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별건 아니에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바로 마을 밖으로 나갔거든요. 그리고 고블린을 만났죠. 손에 집히는 대로 돌덩이를 쥐고 덤볐는데 제가 졌어요.”


“슬라임도, 그렘린도 건너뛰고요? 하하.”


내 얘기가 웃겼는지 미소바는 처음으로 점잖게 웃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습니까?”


“뭐... 어쩔 수 없이 슬라임부터 시작했죠. 발로 밟고 겨우 골드 하나 벌어서 목검 사고...”


나는 그 이후로 그렘린, 고블린, 던전에서 겪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겪었던 일을 말하려던 순간.


“근데... 혹시 여기 흰 양말이나 속옷 같은 것도 파나요?”


“음... 지금은 없습니다만 필요하다면 구해드릴 순 있습니다.”


“아, 아뇨. 그럴 필요까진 없구요.”


정체불명의 그 변태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었다.

도대체 그 패션은 뭘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죠. 변태를 만났거든요.”


“......?”


“하여튼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미친 사람 같기도 하고.”


“그랬군요.”


그 말에 미소바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홀짝였다.


“힘든 일을 겪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때론 미칠 수 있는 법이지요. 혹시 디오님에게 무슨 말은 하지 않던가요?”


“어... 이상한 소리도 했었네요.”


“이상한 소리라 하심은?”


“뭐... 선택을 하니 마니 하는 그런 이야기랄까요.”


“선택이라...”


그러자 미소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허공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이어진 침묵.

오직 차의 향기만이 고요를 타고 춤추고 있었다.


“선택에는 때론 큰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기 때문이지요.”


“......”


“그런데 그 선택이 아마 디오님과 연관이 있었나 보군요.”


...이젠 관심법까지 쓰나?


“누군가가 디오님을 선택한다면 그자가 어떤 자인지 한번 잘 살펴보십시오. 그가 능력 있는 자일수록 디오님 또한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이상한 이야길 하고 있군요. 아무튼,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마찬가지로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한 미소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찬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또 다른 책을 꺼내 내 앞에 내려놓았다.


“오늘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입니다.”


초급 약초학.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다.

서장을 펼쳐보니 약초학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고리타분한 내용이었지만, 그중 나의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었다.


포션.


그랬다.

포션 제조에 필요한 주요 재료가 바로 약초들.

많은 MMORPG를 해보았지만, 포션이 없는 게임은 사실 Heaven & Hell이 처음이었다.

보통 초보자 지원 물품이니 뭐니 해대며 처음부터 포션을 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게임에서는 아직 포션의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힐을 사용하거나 휴식을 취해서 HP나 MP를 회복했을 뿐.


몇 장을 더 넘겨보니 여러 삽화가 큼직큼직하게 실려있었다.

그 밑에는 각 약초에 대한 설명이 주절주절 적혀있었는데, 초급 서적인 만큼 내용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마치 동화책과 같은 느낌이랄까.


“...근데 이것들로 포션은 어떻게 만드는 거죠?”


“그건 연금술이 필요합니다. 태초의 마을에서 익히긴 어렵고, 더 큰 마을로 가야 하지요.”


“아...”


“물론 다른 재료들도 더 필요하구요.”


즉, 약초 및 여러 재료들을 갖춘 후 연금술을 통해 포션을 만들 수 있다는 뜻.

흥미로웠다.

진짜 판타지 세상에 발을 들인 기분이랄까.


책을 살펴볼 동안, 미소바는 다시 빗장을 풀고 문을 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오고 갔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책에만 몰입했다.


“...벌써 끝인가?”


어느새 마지막 장.

꽤나 재밌었기에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찬장에 반납하던 순간.


[초급 ‘약초학’을 익혔습니다.]


[약초학] [초급]

숙련도 0/1000


.

.

.


게임을 함에 있어서 체력도 중요하다.

오늘처럼 쉬는 날에는 간단하게라도 몸을 움직인다.


루틴은 정해져 있다.

동네 뒷산에 오르기.

그리고 내려와서 단골 국밥집에서 점심 해결하기.

뜨끈한 국밥으로 배를 채우고 집에 돌아온 나는 늘 그렇듯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상남자의 방식으로 몸을 말린다.

그리고 컴퓨터 앞에 착석.

역시나 오늘도 공식 홈페이지를 먼저 살펴보았다.


“빠르다. 빨러. 역시 한국인인가.”


게임이 오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게임에 미친 이 김치맨들은 잠도 안 자는지 놀라운 속도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 덕에 홈페이지에는 새로운 정보들이 계속 갱신되고 있었다.


스킬 정보란에는 생활 스킬 정보도 올라와 있었다.

약초학도 벌써 누가 제보를 했는지 관련 정보가 올라와 있었고, 또한 낚시에 관한 것도 올라와 있었다.


슬슬 정보가 쌓이다 보니, 불평하던 사람들도 이젠 점차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게시판에는 이런저런 게임 내의 숨겨진 정보에 대해 논의하는 글로 가득했다.


나는 우리 마을에 대한 소식은 어떤가 싶어 [태초의 마을 2061] 게시판에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비슷한 글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 글들 사이로 뭐 좀 재밌는 게 없나 살펴보던 중.


“...잡화점?”


잡화점에 대한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잡화점도 문을 닫나요?]

어제 잡템 팔러 잡화점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더라구요.

이런 버그도 있나요?

조금 있다가 문이 다시 열리긴 했어요.


“...내 얘기네.”


어제 미소바와 담소를 나누던 그 짧은 시간에 잡화점에 방문하려 했던 사람인 듯했다.

굳이 댓글을 달아줄 생각은 없어서 나는 그저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리도 또다시 게시판을 살펴보던 중.


“얘는...”


익숙한 이름의 작성자가 있었다.

BJ쏨이.

게시글을 클릭해서 보니 어제 그 이상한 사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어제 자기들이 코볼트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변태 놈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게임사는 이런 비매너 행위에 대한 제제도 없느냐 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댓글들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런 플레이어가 어딨냐.

그럴 거면 당시 영상을 올려봐라.


“그렇지.”


나도 이에 동의했다.


Heaven & Hell은 실시간 중계는 할 수 없지만, 플레이어의 1인칭 시점을 녹화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스트리머들은 이 녹화분을 유튜브에 올리기 때문에 쏨이 역시 당시 플레이 장면을 녹화했을 터.

하지만.


“...안됐다고?”


그에 대한 답댓글에서 그녀는 그 순간만 영상이 녹화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자기도 왜 하필 딱 그때만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확실히 이상했다.

단순한 기기 오류일까?

그런데 정확히 그 순간만 녹화가 안 됐다고?

그게 정말 우연일까?

다시 곱씹어보면 그 사내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일단 외모.


2미터에 달하는 근육질 몸매.

곱슬머리, 수염 자국, 엉덩이 턱.

그게 실제 그 사람의 외모라고?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옷은 왜 입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양말과 팬티는 또 뭔데?


하지만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압도적인 그의 강함.

아무런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수많은 공격을 버텨냈다.

아니, 버텨낸 것이 아니라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그리고 원샷 원킬로 사람들을 날려 보내던 그 말도 안 되는 공격력.


“랭커인가?”


하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랭커라면 앞으로 치고 나가기에도 바쁠 텐데, 뭐하러 초보자들이나 사냥하는 지역에 와서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랭커라 해도 오픈 초창기인 만큼 수십 명을 이겨낼 만큼 강한 것은 무리.


“아니면 GM?”


사기적인 능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신 나간 운영자가 그 괴상한 꼴을 하고서 플레이어들을 쥐어팬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럼 뭐야 도대체.”


그러고도 남는 의문점이 있었다.

누군가를 찾던 것.

왠지는 모르지만, 그 누군가는 나였다.

그리고 업적을 달성한 것을 꿰뚫어 보던 그 진홍빛의 눈까지.


“몰라. 시벌...”


혼란스럽다.

그저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할 뿐.

답답해진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대 최대한 뒤로 젖혔다.

그렇게 반은 눕다시피 한 자세로 천장만 바라보기를 10여 분.


“알게 뭐야.”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답이 안 나오는 문제.

머리 아픈 생각은 접어 두기로 하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도감은 하다 보면 채워질 거고...”


스탯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장비를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게다가 공격력과 달리 방어력은 오직 방어구로만 올릴 수 있어서, 무기보단 방어구를 먼저 강화할 계획.

게시판을 살펴보니 고블린 전사가 강화 주문서를 드랍하긴 하지만 그 확률이 꽤 낮은 듯했다.

내가 당시 한 번에 먹었던 것은 그야말로 운빨이었던 것.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골 병사와 좀비가 출몰하는 공동묘지.


카이사 대륙의 몬스터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뉜다.

언데드 왕이 주축이 되는 언데드 세력.

그리고 골드 드래곤이 주축이 되는 비 언데드 세력.

따지자면 슬라임이니 고블린이니 하는 녀석들은 모두 비 언데드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언데드 몬스터 중 가장 약한 녀석은 바로 해골 병사와 좀비.

이들은 고블린 전사처럼 강화 주문서를 드랍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드랍 확률이 고블린 전사보다도 낮았기 때문.

그래도 고블린 전사를 잡는 것보다는 해골과 좀비를 잡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선발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렇겠지.”


일일이 던전을 찾아다니며 한 마리씩 만나는 녀석보다는, 필드에 널리 있는 언데드들을 계속 때려잡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었다.

가닥을 정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도 접속기기에 몸을 뉘어,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몸을 던졌다.


.

.

.


“여기구나.”


평소 늘 출입하던 마을 입구가 아닌, 반대편에 있는 입구로 나선 지 10분쯤.

나는 어렵지 않게 공동묘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 어둑어둑한 데다 땅 또한 생기를 잃은 듯한 잿빛이라 제법 분위기가 음산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많은 이들이 주문서를 얻기 위해 열심히 사냥하고 있었다.

하지만 묘지 역시 그 터가 광활하여 몹을 잡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나 역시 곧바로 사냥할 셈이었다.

해서 묘비들을 지나치며 주위를 살피던 무렵.


“일단 한 마리.”


낡은 무구를 착용한 해골 병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곧장 손바닥을 펼쳐 라이트닝 볼트를 소환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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