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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 쓰는 흑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게임

나라다
작품등록일 :
2022.01.04 18:12
최근연재일 :
2024.03.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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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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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나는 곧장 그것을 집어 들었다.

물컹물컹한 푸딩과도 같은 촉감.


[슬라임의 핵] [D급]


아무런 설명도 적혀있지 않았다.

하지만 등급이나 생김새만 봐도 하등 쓸모없는 잡템일 게 분명했다.


“일단 챙겨 놓고...”


뭐가 됐든 지금은 무조건 챙겨 두는 게 중요하다.

언제까지 목검만 쓸 수도 없는 노릇.

더 좋은 무기를 사기 위해 나는 일단 4골드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제는 점점 더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조금씩이나마 이 게임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서 그런 걸까?

해서 나는 쉬지 않고 슬라임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렇게 스트레스 풀 듯 한참 녀석들을 때려잡던 순간.


[몬스터 도감 완성! 슬라임!]

*슬라임 100마리를 처치하였습니다. 앞으로 슬라임의 정보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보상 : 스탯 +1


“오!”


도감이라.

역시 이 게임도 도감 시스템이 있었구나.

완성한 김에 나는 도감을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음... 도감!”


그러자 눈앞에 몬스터 도감 창이 떠올랐다.

도감의 가장 앞장에는 슬라임의 모습과 함께 녀석에 대한 능력치가 나타나 있었다.


[슬라임] [하급]

HP / MP : 5 / 0

공격력 / 마법력 : 1 / 0

방어력 / 저항력 : 0 / 0


예상했던 수치였다.

역시나 최약체 몬스터답게 방어력이나 저항력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감창을 닫고 주변의 슬라임을 살펴보니, 이제는 녀석 위로 HP 바가 나타나 있었다.

시험 삼아 공격을 해보니, 역시나 목검에 맞을 때마다 붉은색의 HP 바가 줄어들었다.


“일단 슬라임은 졸업한 것 같고...”


인벤에는 그간 습득한 2골드와 슬라임의 핵 2개가 들어가 있었다.

핵이 얼마에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마을로 돌아가서 확인해보기로 했다.


쉼 없이 달려 마을 광장에 도착한 나는 주변의 건물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중 아늑해 보이는 목조 건물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상점일까?

궁금해진 나는 곧장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실내가 아늑하고 따스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흡사 분위기 좋은 카페에 온 것 같달까.


안쪽에선 이미 세 명의 플레이어가 NPC와 거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곧장 물었다.


“여기는 뭐하는 곳인가요?”


“잡화점이에요.”


잡화점이라...

아마 이곳에서 슬라임의 핵을 팔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들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금발에 벽안.

170cm가 안 돼 보이는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곱상한 외모.


편하면서도 정갈한 옷을 입고 있는 이 NPC가 바로 잡화점의 주인인 미소바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미소바는 나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NPC가 맞나?


다른 건 몰라도 저 눈빛.

흡사 실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정도로 생생한 눈빛이었다.


“반갑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신지요?”


그가 환영 인사를 건네자 내 앞에 자동으로 판매 창이 떠올랐다.


사람이 NPC 역할을 할 리는 없었다.

나는 그저 기분 탓일 거라 생각하며, 자연스레 판매 창으로 눈을 돌렸다.


잡화점인 만큼 잡다한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유리병, 낚싯대, 바느질 도구 등 다양한 아이템들을 판매하고 있어, 흡사 다이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 필요해 보이는 건 없었다.

해서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슬라임의 핵을 터치했다.

판매가격은 개당 1골드.


“흠...”


나쁘지 않았다.

워낙 쓸모없어 보이는 템이라, 사실 팔리지도 않으면 그냥 바닥에 버릴 셈이었다.


핵 두 개를 팔고 나니 총 4골드를 보유하게 되었다.

더 좋은 무기를 사기 위해 곧장 대장간으로 갈까도 했지만, 나는 이곳의 분위기에 끌려 잠시 안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해상도였다.

흡사 또 다른 세계가 아닐까 하는 정도로.


나는 천천히 인테리어를 감상했다.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상당한 미적 감각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 이곳저곳에서 느껴졌다.


그렇게 미소바를 지나쳐 그의 뒤로 돌아간 나는 자그마한 찬장에 놓여있는 두 개의 책을 발견했다.

그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검은색 표지에 금색으로 제목이 적혀있는 책이었다.


...카이사 대륙 전기?

나는 곧장 그것을 끄집어내어 첫 장을 펼쳤다.


“재밌을 겁니다. 한번 읽어보시지요.”


깜짝이야!

이 녀석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나?

나를 등지고 있으면서도 미소바는 내가 뭘 하는지 다 아는 눈치였다.

도둑질한 것도 아니지만, 제 발 저린 나는 슬금슬금 의자와 탁자가 있는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 좀 앉아도 되나요?”


“그럼요. 편하게 앉으시지요.”


이곳 주인의 허락을 받았으니 나는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의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는 램프가 놓여있었다.

따스한 조명이 책을 읽기에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자석에 끌리듯 손이 책을 향했다.

한 장씩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이 대륙의 역사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

.

.


다음날.


편의점으로 출근한 나는 관리실 안에서 한참 인터넷을 살펴보고 있었다.


“난리 났네.”


각종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주제.

바로 어제 오픈한 Heaven & Hell.


대개는 칭찬하는 글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타 가상현실 게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고해상도 그래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Heaven & Hell은 국내 최대의 게임 회사 A&Q에서 내놓은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1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구입하여 만든 게임.

회사의 명운을 건 프로젝트인 만큼 게임의 완성도를 기대해볼 만했다.


하지만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일단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


“그건 그렇지.”


판타지 MMORPG라는 것을 제외하곤 출시 전까지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다.

홍보 역시 단 한 줄.


[시작부터 완성된 게임]


도대체 무슨 뜻일까?

구닥다리 신비주의 전략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게이머들이 손꼽아 기다렸었다.


어쨌든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천만 원이라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사전 구매에서 접속기기가 무려 50만대나 팔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시 이후, 너무나도 제한적인 정보로 인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회사 측에서는 그러한 불만을 잠재울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제보하면 캐시를 준다는 말이군.”


대략 내용은 이러했다.

게임 내에 새로이 알게 된 정보를 제보할 경우, 가장 먼저 제보한 플레이어에게 골드로 교환할 수 있는 캐쉬를 준다는 것.


회사 측은 제보받은 내용을 공식 홈페이지에 올릴 것이라고 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해가며 게임 속 세상을 알아간다는 그런 내용의 이벤트.

말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왠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영 가시질 않았다.


어찌 됐든 하루 만에도 여러 제보가 왔는지, 몬스터 정보란에는 벌써 오크까지 공개되어 있었다.

그 말은 가장 앞서나가는 이가 오크 도감까지 완성했다는 뜻.


공개된 몬스터들의 능력치를 하나하나 살펴본 뒤 나는 이어 마을 정보란을 클릭했다.

그 순간.


따릉.


손님이 들어왔다.

CCTV 화면을 보니 이미 익숙한 진상 손님이었다.

나는 관리실 문을 열고 카운터로 나가 그에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아, 네...”


사람을 대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얼굴만 봐도 대충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눈빛.

다른 곳은 다 성형해도 눈빛만큼은 성형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관상은 잘 몰라도 눈빛이 중요하다는 건 그간 누적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편의점 대부분이 무인화가 되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직원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저런 사람들 때문이었다.

물품을 파손하거나 심지어는 훔쳐가기도 하는 일명 손놈.


화면에 나타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진상 특유의 눈빛.


카운터에 사람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진상은 진상 짓을 하기가 쉽지 않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우물쭈물하던 그는 찾던 물건이 없어 곤란하단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오늘도 진상을 퇴치한 나는 다시 관리실로 들어가 계속해서 홈페이지를 살펴보았다.


마을 정보란에는 NPC들의 위치가 표시된 태초의 마을 지도가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원활한 게임 진행을 위해 태초의 마을은 동일한 형태로 대륙 전체에 수천 개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었구나.”


그제야 풀린 의문.

오픈 첫날 임에도 이상하게 접속자가 적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플레이어들이 수많은 태초의 마을로 분산된 것이었다.

특정 지역에 과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 터.


하지만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었다.

바로 서버 목록이 없다는 점.

계정 생성 시 커스터마이징 과정이 없는 것도 이상했지만, 서버를 고르는 과정도 없었다는 점 역시 이상했다.


“설마...”


하지만 문득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수천 개의 태초의 마을.

그리고 애초에 나타나지도 않은 서버 목록.

그 말은 즉.


“역시 슈퍼컴퓨터라 이건가.”


놀랍게도 단일 서버라는 것.


과연 A&Q가 명운을 건 만큼 굉장한 작품이 나온 듯했다.

그 많은 인원을 단 하나의 서버에 수용하다니 말이다.

하지만 궁금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엔딩은 뭘까?”


엔딩이 존재하는 MMORPG?

보통 MMORPG는 초반 몇 년간 전성기를 누리다가 이후로는 비슷한 컨텐츠가 반복되며 1절, 2절, 뇌절을 거듭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돈벌이가 되지 않으면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


하지만 Heaven & Hell은 처음부터 언급했다.

엔딩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이에게 소원을 들어준다고.


엔딩이 뭔지, 소원은 또 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덕에 오래간만에 게임 덕후로서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한번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남자.

그게 나다.


반드시 엔딩을 보리라.

그리고 꼭 소원을 이루리라.

그 전에.


“아직도 5시네.”


퇴근을 먼저 해야 한다.


“하아...”


한 시간이나 더 남았네...


.

.

.


-계정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나는 기기 안에 편히 누워 똑바로 눈을 떴다.

이내 초록색 불빛이 나의 눈을 훑으며 홍채를 인식했다.


-계정 확인. 플레이어 디오.-


확인이 끝나자마자 나는 편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꿈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든 후 다시 눈을 뜨자, 어느덧 나는 태초의 마을 광장에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광장의 중앙에는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나는 곧장 비석에 다가가 손을 댔다.


[태초의 마을 2061]

[이동할 수 있는 마을이 없습니다.]


타운 스톤.

장식인 줄로만 알았던 이 비석은 마을간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일종의 웨이포인트였다.


그리고 저 2061이라는 숫자.

저것은 수천 개의 태초의 마을 중 내가 있는 마을을 의미하는 고유 코드였다.


오늘은 또 무얼 할까 생각하던 나는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인벤토리.”


다섯 칸밖에 되지 않는 조촐한 인벤토리.

오직 ‘카이사 대륙 전기’ 만이 그중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평소 독서를 좋아하는 나는 어제 잡화점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빠져 이를 읽었다.

그러다 내일을 기약하며 로그아웃하기 전에 책을 다시 찬장에 꽂아두려 하자, 미소바는 책이 마음에 들면 빌려 가도 좋다고 했다.


얼떨결에 수중에 들어온 아이템.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이 세계의 역사.

그것은 바로 천사와 악마, 드래곤, 그리고 언데드에 관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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