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깨달은 권능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그렇게 깜짝 놀란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 힐바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를 습격할 정도로 원한이 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기껏해야 재판에서 벌을 받은 두 사람 중 하나, 조금 더 좁혀보면 둘 중 누가 더 내게 원한을 많이 가졌을까를 생각하면 정체를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놀란 점은 범인이라고 확신한 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지기?”
“크으윽! 제기랄!”
그는 바닥부터 목까지 얼어붙은 상태로 머리만 이리저리 휘두르며 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뻔뻔하게도 그는 자신은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도 부족해 심지어 내 목숨까지 노린 적반하장의 극치에 어이가 없어서 그에게 물었다.
“왜 날 죽이려고 했죠?”
그러자 그는 증오가 서린 목소리로 이를 갈며 소리쳤다.
“몰라서 묻나!? 네놈 때문에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벽을 지키는 영광, 명예로운 자리, 문지기로서의 자리, 심지어 거리에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지, 다 네놈 때문에!”
어린애가 징징거리는 것도 이것보단 덜 심하겠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어이가 없었다. 돈을 받고 들여보내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한테 책임을 전가한다고?
아, 물론 뇌물을 준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문지기가 요구한 통행세를 줬을 뿐이지 뇌물을 주고 통과했다는 것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돈을 받고 보내준 건 댁이잖아?”
“뭣······!”
분노로 표정을 구긴 문지기가 뭐라 소리치려는 찰나, 옆에 서있던 여자가 목소리를 깔아 중압감을 실어 말했다.
“그만,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와 문지기를 번갈아 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튕겨 얼음에 가둔 문지기를 풀어주었다.
이어서 그녀는 차가워진 몸을 부르르 떠는 문지기에게 말했다.
“재판은 정당했어, 조용히 꺼져라. 내일까지 도시에 모습이 보인다면 진짜 죽는다.”
“네, 네놈이 무슨 권리로 나를······.”
삿대질을 하며 언성을 높이려던 문지기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소설처럼 주문을 영창하기 위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동작도 없이 그녀는 손을 뻗어 노려보는 것만으로 문지기의 전신을 완전히 얼음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꼬우면 나보다 쎄던가.”
비아냥거리는 조소를 날린 그녀는 오른손 중지를 딱밤 모양으로 만들었다가 앞으로 튕기자, 작은 빛이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가 얼어붙은 문지기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윽······.”
이미 전신이 얼음으로 변해버려서 피가 튀거나 살점이 날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유리처럼 깨져 죽는 모습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비록 내 목숨을 노린 나쁜 놈이긴 하지만······.
그때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았는지 팔짱을 끼고 거만한 자세로 서있던 여자가 말했다.
“죽어도 싼 놈이야, 신경 쓰지 말라고 모험가.”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그보다 생명의 은인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네? 아, 그렇죠. 감사합니다.”
뭔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 것은 사실이니 정중하게 인사했다. 인사를 받은 그녀는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마도 텔레포트? 워프? 뭐 이름이 어찌됐건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자리를 벗어나니 역시 부럽다. 검을 쓰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지만 역시 이세계하면 마법, 마법하면 이세계 아닌가.
‘끄응, 차라리 여기서 마법을 배우고 돌아갈까.’
라는 생각도 잠시, 힐바에 처음 도착해서 받았던 소견서가 떠올랐다.
‘마나 보유량, 재능이 없는 어린아이와 동급.’
“하아······.”
일단 숙소로 다시 돌아가서 소견서를 보면서 생각해봐야겠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지친 몸을 씻고서 침대에 누우니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전에 짐을 넣어둔 가방에서 소견서를 꺼내 펼쳤다.
당연하지만 똑같았다. 마나 보유량은 훈련을 통해서 개발해도 기적이 없으면 간단한 보조 마법 이상은 쓸 수 없다는 것이 확정지어져 있었다. 낙담해서 소견서를 내려놓으려던 그때, 마나량만 보느라 제대로 읽지 못한 습득체질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응?”
『습득체질 : 어디서 체내에 습득했는지 해독불가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보유, 첫 번째 불가사의한 능력은 평범한 이들이 대화할 수 없는 생물과의 교감이 가능한 진귀한 능력임.
해독하지 못한 두 번째 불가사의한 능력은 경험으로, 마나를 이용한 마법능력보다는 무구를 사용하는 육체적인 성장 능력이 더욱 빠르고 높을 것으로 추측됨.』
그래도 이건 좋은 내용이었다. 해독불가, 아마도 신의 권능이기에 일개 마법사가 알 수 있는 범위가 아니라는 것 같았다. 뭔가 사기적인 치트 스킬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지만 당장 변하는 것이 없으니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요컨대 경험치를 많이 쌓아야 한다는 건데.’
생각해보니 아까 전 문지기가 습격했을 때에도 뛸 때 전혀 지치는 기색이 없었고 그 빠르게 날아오는 단검도 눈으로 보고 피할 정도니, 몸에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말자. 이래봬도 신의 권능을 두 개나 부여받았잖아.’
그때 분명 철과 전쟁의 신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카디우스가 내게 말했다. 신의 권능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상상 이상의 능력이라고, 그렇다면······.
‘성장, 마법을 배우는 것도 하나의 경험! 그래, 권능이 있으니까 충분히 가능할거야!’
이렇게 생각하니 괜히 여러 가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신의 권능, 그것 하나만으로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올렸다. 검과 검을 부딪치는 이미지 트레이닝부터 시작해서 전쟁터에서 봤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 중 강력했던 기인들과 헤어진 세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마법을 난사하던 두 마법사까지.
권능에 대한 해석을 잘못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경험을 쌓기로 마음먹었으니 로고스로 돌아가는 것은 잠시 멈추기로 결정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마법을 배우기 위해 돌아다녀야 하니 더 늦어지기 전에 오늘은 이만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그런데 마법은 누구한테 배워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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