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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랑사람의 서재

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최근연재일 :
2022.08.09 01:45
연재수 :
277 회
조회수 :
27,342
추천수 :
1,600
글자수 :
1,201,430

작성
22.02.07 22:35
조회
59
추천
3
글자
8쪽

Episode249_재회(2)

DUMMY

새빨간 피의 웅덩이로 깊게 깊게 빠져드는 사라의 몸. 물결에 휘날리는 진홍빛 머리칼은 붉은 피에 뒤섞여 보이지도 않는다.



눈을 꼭 감고 세찬 수류를 따라 밑으로 추락한다. 갑갑하고 숨막히는 와중, 눈, 코, 귀로 침범해드는 피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울컥댄다.



서서히 정신이 흐려질 즈음, 무의식중에 떠버린 눈꺼풀 뒤로 사라는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탁했던 핏물이 점차 맑아진다. 저 멀리 어딘가로부터 상쾌한 푸른 빛이 이 웅덩이의 붉은 기를 침범하며, 보는 것 만으로 신선한 기분을 그녀에게 선사한다.



이윽고 중력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물거품이 갈 길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가운데, 어느새 새파란 물결이 그녀의 앞까지 도달해 투명한 액체로 주위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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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결을 이끌고 헤엄쳐온 것은 하온이었다. 그토록 보고싶고, 좋아하고, 고마운 사람.



하온이 필사적으로 몸을 이끌고, 마침내 사라의 손을 잡아당겼다. 혹여 물결에 휘말려 떨어지지 않도록, 꽈악 끌어안았다. 그토록 좋아하고, 미안하고, 보고싶었던 사람.



다시 뒤를 돌려 새파란 바다의 끝으로 돌진한다. 사라가 몸담던 피의 바다는 이제 푸른 색에 먹혀 검붉은 잔해로만 엿보일 뿐, 그 반대편의 청색 빛에 이끌려 사라의 시선이 향한다.



투명한 물을 투과하는 선명한 광선. 물결을 수놓는 직선형의 오로라를 뚫고 하온과 사라는 마침내 공기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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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 공간의 한 면을 가득 메운 물의 벽, 그 수면으로부터 튀어나온 두 남녀의 신체. 하온은 사라의 육신을 끌어내어 바람과 공기가 맞이하는 곳으로 데려왔다.



희미하던 사라의 의식이 산소를 크게 들이키고는 물을 뱉어냈다. 



"사라, 눈 떠봐. 나야. 데리러 왔어."



하온의 목소리를 따라 서서히 눈을 뜨자, 너무 오랜만에 본 밝은 빛에 조금 놀라 똑바로 보지는 못했지만, 희미한 실루엣으로 물에 푹 젖은 그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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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도, 하온도 그녀의 감각으론 너무 오랜만이었던지라, 뭐라 감상을 말하기도 뭐해 사라는 그냥 웃었다.



오늘따라 자신의 육체를 무겁게 짓누르는 나른함에, 그저 하온에게 자신의 무게를 맡기고 잠시 가만히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통해 은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귀들의 퉁명한, 그러나 훨씬 누그러진 이야기. 그 말들을 조용히 듣고있던 사라는, 대답 역시 조용하고 누그러진 말투로 입에 담았다.



"약속할게. 이번엔 꼭, 너희를 위해서라도···."



그 문장 한 줄을 믿어줬을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는 이 기억을 마지막으로 기나긴 꿈에서 깨어났다.




***




사라가 눈을 뜨고 맨 처음으로 본 것은, 자신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아홉 쌍의 눈망울(절반 이상은 괴물의 것이었다)이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다가 몸을 일으키려니, 너무 오랫동안 굳어있던 근육이 비명을 지르듯 아려온다. 눈을 찡그리며 고통을 억누르고, 서서히 몸의 방향을 돌린다.



그제서야 선명히 눈에 들어온 것이 처음보는 노인 부부 한 쌍과 존재가 의심스러운 돌가죽 한마리. 특히 사루비의 모습을 보자마자 사라는 순간 이런 의심이 든다.



"나 천국인가···?"



이미 죽은 경험이 있는 사루비는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이렇게 답한다.



"내가 있는 곳이 지옥이 아닌걸 보면, 아직 저세상은 아닌가보지."



한편, 등 뒤에서 그녀를 부축하는 손길을 느낀 사라는 얼른 그 팔의 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온?"



하온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이를 악물면서도, 이내 환하게 웃으며 사라를 꼭 껴안았다.



"돌아와줘서 고마워!"



그러자 사라는 자신이 방금 본 것이 단순한 꿈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마귀와 싸운 것도 허상이 아니었다, 그러던 자신을 깨워준 것은 하온이다.



사라의 팔도 하온을 감싸안았다. 그의 감정과 기억이 그로 인해 고스란히 그녀에게 전달된다. 교만한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흑광석이 없었더라도 몸이 맞닿은 것 만으로 마음이 통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로 인해 둘 모두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각자가 알고있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사라의 자각과 동시에 그녀의 팔이 꿈틀댄다. 하온에게서 손을 떼어 왼팔을 앞으로 쭉 뻗자, 뼈와 살이 변형되며 단단하게 굳더니 다섯 갈래로 늘어난다.



곧 은빛 창의 형상이 점점 드러나다가, 팔을 뚫고 솟아나오는 뾰족한 서슬이 빛을 반사한다. 모두의 놀란 눈을 비추며, 사라의 창이 온전한 형태를 되찾아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난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문제의 현장에 없었던 사루비는 한갖 쇳덩이가 사라의 몸에 기생한다는 듣도보도 못한 개념에 충격을 먹은 모양이다. 그보다는 강도가 낮아도, 하온 역시 조금 놀라기는 마찬가지다.



"그때 두 동강난 것도 다시 붙어서 돌아왔어."



창을 손에서 뜯어내어 오른 팔에 쥔 사라. 잠시 그 촉감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곧 안심시키려는 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창에게 말했다.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창은 마치 대답하듯이 크기를 줄여, 자그마한 막대기의 모양으로 되돌아갔다.



사라의 말투며 태도, 차분한 결의가 불안했는지, 사루비는 설마 하면서도 조심히 그녀에게 묻는다.



"사라, 간다니 어딜?"



“나라님의 무기가 있는 곳으로요.”



사라는 마치 농담을 하듯 가볍게 웃음지으며 대꾸했다. 사루비는 농담처럼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더 따져들 수는 없었다. 사루비가 이제 무슨 말을 하건 아무 소용도 없거니와 의미도 없다.



둘의 접촉으로 정신교류가 발생한 순간, 사라가 심상 속 세계에서 감지했던 원혼들의 위치, 하온이 알아챈 나라님의 의중, 각자가 생각하고 알고있던 그 모든 것이 이어져 한 가지 결론을 향했다.



둘 모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 알고있기에, 사루비가 끼어들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




"하온의··· 할머니 할아버지 되시는 분들이시죠? 죄송해요, 폐만 끼치고 가네요."



"괜찮아요, 기특한 아가씨한테 별 도움을 못줘서 우리가 더 안타깝지."



이별을 앞두고 사라는 하온의 양부모에게 뒤늦은 인사를 건넸다. 울 씨에게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눈 뜨자마자 본 낮선 노인들이 그 주인공일 줄은 몰랐다.



"이 흑광석도 정말 죄송해요. 소중히 여기시던 물건일텐데 저희가 멋대로 가져가게 되서···."



"어차피 이 오두막에 둬봤자 쓸모도 없단다. 이 할애비한테는 필요도 없는 물건이야.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한테 가는게 순리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인자한 표정으로 하온을 독려하는 할아버지는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조금 슬픈 눈치로 덧붙인다.



"...꼭 다치지 말고 돌아오렴."



"최선을 다할게요. 후회 없도록."



할머니는 작별인사 대신 얇고 질긴 노끈을 하나 가져왔다. 하온의 팔에 끈을 휘감고는 그걸로 흑광석을 묶어 단단히 고정시켜준 것이다.



"흑광석을 숨겨둔 곳은 특히 조심해야한단다. 들키지 마렴!"



긴장이 풀리는 조언을 해준 할머니의 마음씨에 하온은 웃음을 터트리며 감사를 표했다.



"늘 저를 구해주기만 하셔요."



깊은 고마움에 푹 젖어서, 어린 손주는 다시금 웃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마침내 떠나는 순간, 사루비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앞장서 선두에 섰고, 뒤이어 왕눈이 괴물이 꿈틀되며 후미에 달려오던 참이다.



"...괴물씨."



"응? 왜?"



"괴물씨는 여기 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한 와중에, 하온의 그 갑작스런 이별선언은 괴물에겐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작가의말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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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3 2 8쪽
275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1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5 2 9쪽
273 Episode272_추락 +2 22.07.04 27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1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5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7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6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40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3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4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8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3 3 8쪽
262 Episode261_고요한 역습 22.04.20 91 2 9쪽
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61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7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3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8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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