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든빌 마을-13
“그러니까 린든빌 마을은 웨어울프의 마을이라는 거죠?”
“음··· 과거에 저희 조상이었던 웨어울프 일족이 공왕께 하사받은 봉토이긴 합니다만 지금은 웨어울프보다 순수한 인간의 수가 더 많으니 웨어울프의 마을이라기엔 조금 다르죠”
프레드는 마을 주민이 가져온 따뜻한 차를 벨라에게 건네며 대답했다.
“순수한 인간들도 영주님이나 다른 웨어울프들의 정체는 알고 있나요?”
“물론이죠. 아시겠지만 린든빌은 그렇게 살기좋은 땅이 아니에요. 브리든산맥에 완전히 둘러쌓여있는지라 농경지는 좁고 지금처럼 산맥의 몬스터나 짐승들에게 무방비이기도 하죠. 물론 저희의 영역표시를 무시할 정도의 존재들은 많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지금처럼 위험할 수 있다는건 변하지 않거든요. 그런 린든빌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웨어울프와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죠.”
호로록
“웨어울프의 힘으로도 오크들을 막아내는 건 쉽지 않았나보네요”
“그게···”
“웨어울프의 힘을 쓰지 못하는 건가요?”
벨라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 프레드에게 단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우 씨!”
“깨어나셨네요”
“덕분에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드리죠”
단우는 프레드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몰래 빠져나가 버리셔서 놀랐습니다. 저희가 한 게 뭐 있나요. 옆에 서 있기만 했는걸요”
“웨어울프의 힘을 잃고 계신 겁니까?”
“잃는다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버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알맞겠네요”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으신 건가요?”
단우는 린든빌의 웨어울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원래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 요괴들은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보다 훨씬 강하고 오랜 삶을 살 수 있었던 여우들도 틈만 나면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에 인간을 해치곤 했었다.
“늑대로 변하는 일족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게 문제죠”
“달빛 때문인가요?”
“뭐··· 가장 흔하게 겪는 문제는 달빛이긴 합니다. 달의 힘이 가장 커지는 보름이면 많은 웨어울프들이 정신을 잃고 완전한 야생으로 돌아가버리곤 했죠. 저희에 대해 들으신 게 있나 보군요”
프레드는 자신이 말을 하기도 전에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단우가 웨어울프 일족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 단우는 이런 일족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오크와는 다르게 아카데미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건 아니지만 지하대피소가 너무 이상해서요”
“맞아요. 지하대피소가 너무 넓고 잘 만들어져 있어요”
단우가 깨고나서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벨라도 자신이 놀랍게 생각하던 주제가 나와서인지 흥분해서 끼어들었다.
“대피소가 잘 지어져 있는게 이상한가요?”
“아뇨. 그러니까 대피소가 튼튼하게 지어져 있는게 아니라 너무 잘 지어져 있다랄까···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상해요”
“대피소 같지가 않습니다. 이건 대피소라기 보다는 지하에 있는 또다른 마을 같아요”
벨라가 자신이 느끼는 점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답답해 하자 단우가 그녀를 대신했다.
“위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할 용도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아마도 자주··· 어쩌면 매일 같이 이용하던 공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처음엔 영주님의 하얀 얼굴 때문에 햇빛을 피할 공간을 만들 놓은 건가 싶었지만 낮에 활동할 수 없는 영주는 상상하기가 힘들더군요. 결국 떠올릴 수 있는 건 여긴 웨어울프 일족이 달빛을 피해 모이기 위한 장소가 아닐까 하는거죠”
“거의 정답입니다. 이 성이 지어질 때만 하더라도 저희 일족은 달빛의 마력을 이겨낼 수 없었어요. 그 만큼 웨어울프의 피가 진하던 시기였죠. 하지만 마을을 봉토로 받기 전처럼 밤마다 야생성을 드러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족을 이끌던 영주일족이나 밤에 해야할 일이 있는 사람들이 달빛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은 달빛을 이겨낼 수 있다는 건가요?”
“방금도 달빛이 밝았지만 정신을 유지하는거 보셨잖아요. 아직 어려서 달빛에 홀리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성인이 되어가면서 이겨내는 편입니다. 달의 힘이 가장 충만하게 차오르는 보름에도 이성을 잃는 이들은 이제 없어요”
“달을 이겨낼 만큼 피가 약해진 만큼 힘이 사라지고 있나요? 린든빌의 대부분이 웨어울프 였다면 오크들에게 이렇게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단우는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다. 달빛의 마력을 이겨내는 웨어울프족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지만 지금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웨어 울프 족의 전력이었다.
이들의 전력에 따라 내일 이루어질 오크들과의 대화, 더 나아가서는 산맥의 정령들은 조사하는 방식까지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영주님···”
“괜찮아요. 지금은 우리끼리 견제할 때가 아닌 것 같거든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영주를 부른 것은 루크였다. 단우는 그가 자신을 부축해 주었던 덩치큰 늑대라는 것을 전해들었다. 아마도 루크가 걱정하는 것은 영주가 하는 이야기들의 린든빌의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단신으로 오크들에게 몸을 던진 단우가 린든빌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정보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프레드는 이미 단우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일족 중에 낮에도 늑대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저 하나입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달의 마력의 도움을 받아야만 변할 수 있죠. 더구나 그 힘 또한 달의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구요”
“그럼 여기서 보름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요?”
“제가 단우님에게 산맥과 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실 딱 하루만 기다려달라 부탁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오크들이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결국 말씀드리진 못했지만요”
“그러고보니 내일이 보름이군요. 내일 밤이 되면 오크들을 몰아내실 생각입니까?”
“처음 오크들이 마을을 습격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기로 모였을 때는 당연히 그런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이제와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지금 린든빌의 오크를 몰아낸다 한들 언제 또다른 오크들이, 아니 단우씨의 말대로라면 오크 뿐 아니라 수많은 몬스터들이 린든빌을 넘볼지 알수 없겠죠. 우리는 그럴 때 마다 여기로 숨어들어와 한달을 기다려야 할 거구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단우는 이야기를 들으며 은근슬쩍 루크와 프레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의 눈빛은 꽤나 맑고 정직한 것이어서 지금 프레드가 하는 이야기가 아무 꾸밈 없는 이야기라고 느껴지게 했다.
단우는 이들의 말 속에서 한가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힘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보름이 되면 당연하게 오크들을 몰아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칼리그의 강함을 자신과 함께 가장 가까운곳에서 본 늑대들이었다. 그런 늑대들이 린든빌 마을 탈환을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보름에 웨어울프가 가지는 위력이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것일 가능성이 컸다.
“칼리그와의 대화에 저도 데려가 주세요.”
“영주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척
“이미 결정한 사항이에요. 루크. 제 말에 따라주세요”
루크는 오크들을 만나러 가겠다는 영주의 말에 놀라 그를 말리려 했지만 영주의 손짓 하나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충신이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었다.
“한 번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정해버리면 다음엔 돌이키기 어려워요. 괜찮으시겠어요?”
단우도 프레드가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다시 한 번 그의 의사를 확인했지만 프레드는 이미 뜻을 굳힌 상태였다.
“날이 밝으면 깨워드리겠습니다. 햇빛이 안드는 곳에서 제때 일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거든요.”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내일 아침 당연히 동행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는 프레드는 루크와 함께 방을 나섰다.
“어! 저··· 저기”
“영주님이 오해를 하셨나보네요. 걱정 마세요. 불편하시지 않게 제가 다른 곳을 찾으면 돼요. 글레이브 손질도 좀 해야하고.”
단우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을 두고 방을 나서는 영주에게 당황한 벨라를 보고는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딱히 불편한 건 아닌데···”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오늘 고마웠어요”
“제가 한게 뭐 있다구요. 마지막에 크랄트를 데려와 주지 않으셨으면 저야말로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 때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었거든요”
단우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겼지만 벨라는 자신을 감싸주던 단우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그 순간만큼 공포를 느꼈던 적이 없었다. 코앞에서 그렇게 많은 인원이 자신을 저주하고 죽이려 한다는 것이 그렇게나 두려운 일일 줄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던 단우의 따뜻한 손길은 그녀의 마음을 쉽게 뒤 흔들어 버렸다.
“우리 이대로 돌아가지 않을래요?”
“돌아가다니 어딜···”
“쿠란으로요. 오늘만 해도 몇번이나 죽을 뻔 했잖아요. 이대로 계속 오크와 웨어울프 사이에 끼어드는 건 너무 위험해요.”
“그렇긴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 오크들과 린든빌 마을은 끊임없이 싸움을 계속해야 할지 몰라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건 그들이 극복해야할 일이에요. 더구나 결국 이건 엔피씨들의 스토리에요. 단우씨처럼 그렇게 매사 진지하게 생각해 버리면 너무 힘들어진다구요. 오늘처럼요”
단우가 글레이브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벨라와 등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벨라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단우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벨라만큼은 아니었지만 단우도 조금씩 자신에게 다가오는 벨라에게 관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게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단우는 이제서야 브란이 했던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벨라에게는 늦지 않게 알려줘야 한다는 말. 아마 서로가 점점 특별해 지기 시작하면 말하기가 더욱 힘들 거란 말이었을 것이다.
단우는 글레이브를 내려놓고 벨라가 걸터 앉은 곳으로 다가갔다. 벨라는 단우가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단우가 혹시나 자신의 반응을 눈치챌까 겁이나 생각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달래보았다. 하지만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단우가 꺼낸 이야기에 그녀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단우는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마치고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나갔지만 벨라는 그런 단우를 보고 어떤 반응도 할 수가 없었다. 벨라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조금전 단우가 내뱉은 말들이 반복해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저도 NPC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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