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은 참되다-6
“아저씨. 방금 돌 건드렸어요”
“무··· 무슨! 안 건드렸어”
“사장님 돌이··· 아니다 셀레나 그냥 못 본척 해드리자. 아직 한살도 못드셨잖아”
에녹은 셀레나에 귀에 대고 속삭이는 척 했지만 목소리는 작지 않았다. 자신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분명 자신이 가장 익숙한 게임일 터인데 셀레나와 에녹의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너희들 이거 해봤어?”
단우는 못이기는 척 돌을 셀레나에게 넘겨주었다. 단우는 방금 전 적당한 돌멩이를 주어와 셀레나와 에녹에게 공기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레이첼이 간 뒤로는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뱉지 않던 셀레나가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자 단우는 신나서 설명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둘은 자신의 설명을 듣고 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뭐 규칙이 조금 다르긴 한데 버나튼에서도 이런 놀이는 어려서부터 많이 했어요. 쿠란도 다르지 않을걸요?”
툭
“어! 셀레나 방금 돌 건드렸어! 내가 봤어!”
에녹이 말을 하는 와중에도 셀레나를 주시하고 있던 단우가 소리쳤다. 셀레나가 공깃돌을 던지고는 바닥에 돌을 줍지 않고 툭 쳐서 자리만 옮겼기 때문이었다.
“에이 이건 갈무리 하는 거잖아요”
“그런게 어딨어? 바닥에 흩어진 그대로 주워야지. 우리 동네는 그런거 없었어!”
“대체 어느 동네를 살다 오신거에요. 이 동네는 그런 거 있습니다.”
“에이씨 나 안해. 타지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끼이이익 딸랑
“허억허억”
단우가 공깃돌 하나에 갖은 떼를 쓰는 사이에 잡화점으로 숨을 헐떡이는 장정이 들어왔다. 단우는 그를 슬쩍 돌려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졌냐? 몇 번째 오는거야. 포션 중독되겠다.”
잡화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1번대의 사수 스미스였다. 아침부터 벌써 몇번을 들락거렸는지 이제는 셀레나도 그의 얼굴이 익숙했다.
“저도 이기고 싶다고요. 근데 왜 자꾸 칼싸움을 하는겁니까? 활은 저희대에서 제가 제일 잘 쏜다구요”
스미스도 나름의 억울함은 가지고 있었다. 병종이 분류되고 자신은 사수로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체력훈련이 끝나고 이루어진 대련은 오로지 검술대련이었다.
어제만해도 멧돼지를 잡을 때 사수중에서는 유일하게 멧돼지의 다리를 맞춰 사냥에 가장 도움이 됐던 그였다. 하지만 자신은 칼에는 자신이 없었다.
딱
“아직도 못 막네 이걸. 안 그래도 슬슬 가보려고 했는데 잘 됐다. 같이 가자”
단우는 셀레나가 가지고 놀던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어 던졌지만 피터는 아직도 돌을 막거나 피하지 못했다. 단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숨을 헐떡이고 있는 피터에게 포션을 꺼내주기 위해서였다. 그 때 셀레나가 일어나 작은 손으로 단우의 바지춤을 살짝 쥐었다.
“아저씨 가요? 돌 안 건드릴게요.”
단우는 자신을 막아서는 작은 아이를 보고는 귀엽다는 느낌보다도 안쓰러운 느낌이 먼저 든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쩌면 이 아이는 모두가 자신을 떠나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가시는 게 아니야. 셀레나. 사장님은 다시는 누군가가 이 마을을 괴롭히지 않도록 힘을 기르러 가시는거야.”
“셀레나! 곧 있으면 셀레나랑 놀아주려고 예쁜 언니가 한 명 올거야. 그 언니는 공기도 잘 하고 내가 모르는 놀이도 많이 알고 있을거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에녹이 그런 셀레나를 달래기 위해 설명을 해줬지만 단우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혹시나 셀레나에게 좋지 않을 기억이 떠오를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우는 스미스에게 던졌던 돌을 다시 셀레나에게 주어다 주고는 스미스를 위한 포션을 하나 꺼내들고 스미스를 따라 나섰다.
“검술대련이라고 해봐야 사수들은 사수들끼리 하고 있을 거 아냐. 그렇게 큰 차이도 없을텐데”
“차이가 없긴요. 아직 팽배수들도 칼을 제대로 다루는게 아니어서 되려 사수놈들 중에서 팽배수도 때려눞일 것 같은 놈들이 있는데요.”
“그건 나쁘지 않네”
스미스는 자신이 과장을 섞긴 했지만 팽배수보다 칼을 잘 다루는 사수가 있다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단우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럴 거면 사수와 팽배수의 배정을 바꿔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단우도 스미스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차피 훈련병들 앞에서 한번 설명을 해줘야 할 것 같았기에 조용히 교육관을 향했다.
챙 챙
“윽···”
교육관에서는 검술대련이 한창이었다. 단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인물은 다이크였다. 의외로 그는 자신을 압박해오는 검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름이 뭐지?”
단우는 손을 들어 두사람을 잠시 멈추고는 다이크를 상대하고 있는 병사의 이름을 물었다. 병사는 단우를 발견하고 작게 인사하며 대답했다.
“1번 대 살수로 배정받은 사무엘입니다.”
“칼쓰는 법을 배운적이 있나?”
“아뇨. 처음입니다.”
단우는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지만 어딘가 본 적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오크들이 쿠란을 침공했을 때 다이크와 함께 마을사람들을 지켜서던 사람이었다.
“재능이 있네”
“감사합니다.”
단우는 검술에 재능을 보이는 사무엘을 격려하기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효과는 의외로 다이크에게 있었다. 다이크는 검술 훈련이 시작되면서 혹시 자신에게 전투의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체력훈련에서는 항상 가장 두각을 드러냈지만 대련에서는 이렇다 할 면모를 보인 적이 없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가 원망스러웠다.
“앞서가는게 중요한 게 아니야. 끝까지 가는게 중요한 거지. 대장은 더더욱 그런거고”
단우는 다이크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다이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다이크는 단우의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우는 다이크에게 더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자신만해도 처음 칼을 들었을 때 이 말을 들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런 조그마한 벽들을 자신의 힘으로 깨부쉈을 때 비로소 한단계씩 성장하는 법이었다.
“칼 좀 줘봐. 전부 주목!!”
단우는 다이크에게서 검을 받아들고는 한창 대련중이던 병사들을 멈춰세웠다. 그 때까지도 단우가 교육관에 들어온 것을 모르고 있던 도철은 단우를 보고 세차게 팔을 흔들었다.
“분명 현제가 설명해 줬겠지만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인원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설명한다.”
단우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스미스를 살짝 보며 얘기했다. 스미스도 단우가 자신을 말하는 것을 알았기에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까딱
“대부분의 전투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누구일까”
쐐에에엑
병사들에게 설명을 시작하기 전 이루어진 단우의 손짓을 이해한 도철이 단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휘릭
단우는 아슬아슬 하게 화살을 피해내며 병사들에게 말을 이어갔다.
“이렇게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화살들이겠지. 그렇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해야할까?”
쐐에에엑
단우가 이번에는 날아오는 화살을 피함과 동시에 도약해 도철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편한 방법은 궁수를 제압하는 것이겠지.”
어느새 도철의 바로 앞까지 도착한 단우는 도철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서 우리가 궁수라면 어떨까? 이렇게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에게 목을 내주어야 할까?”
챙 챙 챙 챙
스윽
단우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도철에게 검을 세게 내리쳤지만 도철은 허리춤에서 도끼를 꺼내어 가볍게 막아냈다. 그렇게 몇 번을 도철과 부딪히는 사이 현제가 다가와 단우의 목에 칼을 갖다댔다.
“적어도 아군이 너희를 도우러 올때까지는 맞상대를 해줘야겠지. 이겨버리면 더욱 좋고”
단우는 손끝으로 현제의 검을 살짝 밀어내며 병사들의 앞으로 나섰다.
“이것 뿐만이 아니야. 전투가 완전히 난전으로 들어서거나 하면 활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게 돼. 결국은 모두가 백병전에 익숙해야해.”
단우는 이번에는 살수들을 바라보았다.
“살수들도 마찬가지야. 창은 가장 위협적인 무기이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정도의 진형과 공간이 확보되었을 때의 이야기지. 전장이 더러워지면 더러워질수록 창의 가장 큰 장점인 길이가 오히려 방해가 되는 순간들이 생길 거야.
너희들은 상황에 따라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무기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해.”
단우는 어느정도 자신의 말을 이해한 듯한 병사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전장에서 가장 창을 잘 다루는 것? 화살을 가장 잘 쏘는 것? 다 부질없는 짓이야. 내가 죽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것만이 전부다. 그런 점에서 칼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도구야. 모두 명심하도록 해”
단우는 다이크에게 칼을 돌려주고는 병사들의 검술 훈련을 재개시켰다.
“분명 설명을 해 주긴 했는데 형님이 말씀하시니 조금 다르군요”
현제가 다가와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현제는 단우의 설명 한번에 눈빛이 달라진 병사들을 보고 자신의 훈련법에 대한 회의가 드는 모양이었다. 이런 일은 율도에서도 몇 번이나 있어왔기에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매번 자신감이 떨어졌다.
“다들 너처럼 똑똑한 애들만 있는게 아니라서 그래. 말한다고 알아 듣는다는 게 쉬운일이 아니거든. 원래 천재들은 자기가 아는걸 설명하는게 제일 어렵다더라”
“그래서 성님이 설명을 잘하는 갑소. 천재가 아니라서”
어느새 도철도 단우에게 다가와 농을 건네봤지만 단우는 도철의 농담을 받아줄 기분이 아니었다.
빡
“악! 머리 깨지겄슈. 갑자기 왜 때리고 난리여유”
“살살 쏴야지. 이 자식아. 죽을 뻔했잖아.”
병사들에게 설명할 떄는 침착한 척했지만 사실 단우는 도철이 날린 화살을 일부러 한 끝 차이로 피한 것이 아니었다. 죽을 힘을 다해 피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그 만큼만 피해진 것 뿐이었다.
“쎄게 안 쐈슈. 성님이 약해빠진 것을 왜 내한테 성질이유”
“아직도 너무 약해. 이대로라면 영주의 병사들이 문제가 아니라 영주를 이길 수 있을 지 없을 지도 확신을 못하겠어
단우도 도철이 자신을 죽이려고 기를 쓰고 화살을 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의 자신이었다면 피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잡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화살이었다. 문제는 아직도 자신의 레벨이 50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대로라면 병사들을 제압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관들이야 동생들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영주의 강함이 미지수란 점이었다.
단우는 버나튼 마을에서 오우거를 한 방에 쓰러트렸던 던컨을 떠올렸다. 아직 아무도 영주의 실력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쿠란의 영주 또한 기사 출신이었다.
물론 훨씬 나이가 많은데다 오크 따위에 겁을 먹고 영주관에 처박힐 정도라는 것이 그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나마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건 단지 추측에 불과했다. 준비는 완벽할수록 좋았다.
“나도 레벨을 좀 끌어올려야겠어”
“사냥 가시려고요?”
단우는 자신의 말에 들려오는 대답이 너무나 의외의 목소리여서 잠시 당황했다.
“저도 갈래요!”
단우가 목소리의 방향으로 바라보자 그의 눈에는 어느새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벨라가 들어왔다.
“벨라 씨. 사냥을 가려는 건 맞긴 한데 케인 님은 병사들과 같이 훈련을 하시겠다고 하셨는데요”
케인은 생각보다 이번 토벌에 꽤나 열심이였다. 원래대로라면 단우가 훈련시킨 병사들을 이끌고 토벌만 이끌어줘도 되는 역할이었는데. 훈련 첫날부터 쿠란에 와서 병사들과 친해지려고 하더니 이제는 병사들이 받는 훈련을 앞서서 받고 있었다.
“그건 케인 오빠구요. 저것 좀 보세요. 다들 신나가지고 칼싸움을 하고 있는데 저만 할게 없다구요.”
벨라가 가리킨 방향에는 케인이 현제의 가르침에 따라 브란과 검술 대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사정이 급해서 꽤 힘들고 위험한 일정이 될겁니다.”
“그럼 더욱 한명이라도 많은게 좋죠.”
단우는 되도록이면 혼자서 움직이는 게 편했다. 벨라가 레벨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거나 하는 궁수는 아니었지만 그건 일반적이 모험가들과의 비교에서나 그랬을 뿐 단우와 호흡을 맞추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더구나 단우가 계획하고 있는 레벨업은 쉽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벨라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오후가 되면 처음으로 던전 공략이 있을거에요. 거길 따라가 보는 건 어떠세요?”
“그건 고블린 동굴이잖아요. 이제 고블린은 경험치도 별로 안준다구요. 저랑 같이가기 싫으세요?”
“아··· 아뇨 그런건 아닌데”
“그럼 저도 따라갑니다?”
단우는 이쯤 되자 더 이상 벨라를 떨어뜨려 놓을만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도움이 될까 싶어 동생들을 바라봤지만 도철과 현제는 어느새 병사들을 가르치러 간 뒤였다.
“네 뭐··· 그러시죠”
단우가 어쩔 수 없이 동행을 허락하자 벨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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