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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도 님의 서재입니다.

내 일상


[내 일상] 아는만큼 보일까?

고고학 소설을 쓰고 싶어서, 고고학과 관련된 책을 꽤 읽었습니다. 


'꽤'라는 부사는 빼야할 듯합니다. 부사를 쓰지 말라고 해서 빼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꽤'라는 부사가 모호한 표현이라 부적절하기도 하지만, 많다는 어감을 주기때문에 사실과 달라 빼겠다는 얘깁니다. 고고학, 인류학, 동물학, 여성학 분야로 대략 마흔 권 정도 봤어요. 소설을 쓰기 전에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 읽었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학술적으로 고증된 내용이 맞는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요, 책에 없으면 웹에서 찾습니다. 주로 구글 영문판을 찾게 됩니다. 국내 자료는 대체로 싱싱하지 않아요. 조금 가혹하게 말하자면 상한 자료가 많습니다. 


제 영어실력이 워낙 부족한 탓도 있고, 웹이란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원하는 자료를 못 찾을 때도 많습니다. 할 수 없이 다시 책에 의존하게 되는데요. 구석기 시대 겨울 옷에 대해 묘사해야할 필요가 있어 책을 한 권 샀습니다. 꼭 옷에 대한 책이었던 것은 아니고, 구석기 시대 여성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저자 분이 소설가시더군요. 저자 소개에 학술서 저술가라고도 되어 있었습니다. 2015년에 출판된 책이었어요. 고고학 책으로서는 비교적 최신에 출판된 것이라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습니다.


그동안 웹에서 본 최신 자료도 많고, 더 최근에 나온 도서도 몇 권 읽었기에 참고만 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저자 분께서 너무 옛날 문헌만 참고하신 듯하더군요. 설명하는 연대가 대체로 제가 아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이미 폐기된 가설을 인용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믿어야할까? 차용해도 될까? 고민되기 시작했어요. 소설에 쓰는 거라 고증이 제대로 안됐다고 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분 약력이 문제였습니다. 분명 소설가라고 되어 있었어요. 학술 저술가라고도 되어 있었지만, 본업은 소설가셨습니다. 국내에 출판된 왠만한 학술서보다 더 꼼꼼하게 인용된 부분을 표시해 두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책의 저자 분도 허투루 쓰신 책은 아니신 것 같았어요. 자신의 주장도 분명하셨고, 분명 아는 것이 많은 분이셨습니다.


저도 그 저자분과 비슷하게 책을 한 권 쓰고 있었습니다. 분야도 겹치고, 반가울 정도였어요. 그런데 연대에서부터 신뢰가 깨졌습니다. 분명히 많이 아신다고 생각하시고 쓰셨을텐데, 그 분 책에서는 단 한 줄도 차용해서 쓸 게 없어졌습니다. 내가 쓰는 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전문가도 아니고, 책 몇권 읽은 것으로 지식 자랑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됐습니다.


서평을 찾아봤어요. 누군가 대학원생 이상의 관련 분야 종사자가 쓴 글처럼 보이는 평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야 다 호평 일색이었는데, 그 분은 제가 본 그 부정확성을 콕 집어서 얘기했습니다. 수많은 고고학 서적을 읽고, 참고 수준으로 읽기에는 훌륭하다. 그러나 고고학 서적을 많이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절대 권하지 않겠다는 평이었습니다. 이유는 부정확한 내용을 마치 정론인 것처럼 인용했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내가 아는 지식이 언제 상할지, 아니면 이미 상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상한 지식을 잣대로 본다면 정말 제대로 보는 게 맞을까요? 잘못 알고 있을 때, 앎은 약이 아니라 독약인 듯합니다. ~다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소설가다움이란 무엇일까?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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