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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커피일요일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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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일요일
작품등록일 :
2022.05.05 22:07
최근연재일 :
2022.11.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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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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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선한 아리앗인

DUMMY

"북부 왕국으로 가는 길 아니 세르쥬?"


"네 새벽에는 저기 떠 있는 샌트리 별자리가 있는 방향으로 가면 돼요. 그러면 헤센브루크가 나올 거예요. 그전에 세르실리아 랑 시칠부르크도 나올 텐데 수도는 헤센부르크 거든요. 아마 몽상가 양반들은 수도에 있겠죠?"


"그건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일리가 있어. 그래도 도중에 마을이나 다른 도시에 도착하면 물어보자고, 몽상가들이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지 말이야."


그의 등 뒤에서부터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새벽에서 아침이 되고 태양 빛이 그들의 등 뒤를 지키고 있었다.


"이제 곧 낮이 되는구나."


"비극적이게도 말이에요."


세르쥬는 그에게 말하곤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등 뒤를 온화하게 감싸던 온기는 그들을 사정없이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와 세르쥬는 등에 소금 길을 만들어 냈다. 땀이 증발해 남은 소금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그것은 천연소금이리라.


탈진해 가는 그들을 향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잠시 기분이 좋아진 그는 지평선을 바라보자 아주 작게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덥긴 덥나 봐. 이게 에테르에 의한 거라는 거잖아?"


세르쥬는 그의 혼잣말에 대답할 정도로 심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그런 세르쥬를 그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평선을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좁쌀만 한 아지랑이가 강낭콩만 하게 커졌고, 얼마 안 가 포도알만 하게 커졌다.


"저거 아지랑이가 아니고..."


그는 말을 멈춰 세우고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세르쥬는 모랫바닥을 바라보던 자신의 시선을 앞으로 향했고 이내 표정이 가능한 만큼 구겨졌다.


"모래폭풍이에요..."세르쥬는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포도알 만한 크기가 된 순간에는 곧바로 집채만한 크기로 보였다.


말들은 그와 세르쥬를 털어내곤 그들이 향하던 곳과 정반대 쪽으로 전속력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의 절반 이상이 모래폭풍으로 가득 차기까지는 모래알 만한 크기가 포도알 만한 크기로 보일 때까지 걸렸던 시간만큼도 걸리지 않았다.


"이런 ㅆ"


그가 가장 보편적인 누리압어의 욕설을 끝내기도 전에 모래폭풍은 그와 세르쥬의 영혼을 덮쳤다.


모래알들이 따갑게 그들의 육체와 부딪혔다.


그는 자신이 수만 마리의 딱따구리에게 쪼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르쥬는 모래 속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 허우적대며 자신을 계속 덮어대는 모래의 꼭대기로 자꾸만 기어올랐다.


그의 육체는 잿가루를 뿜어내며 둥근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보호막은 거대해지더니 세르쥬도 함께 들어올 수 있을 만한 크기가 되었다.



세르쥬는 허우적대다가 이내 몸에 부딪히는 모래알이 느껴지지 않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잿빛의 색을 띠고 있는 벽 그리고 그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사방에는 지옥과도 같은 모래 소리가 세르쥬의 귓가를 맴돌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세르쥬는 진정으로 그와 함께 지옥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세르쥬는 불안함과 허무감이 섞인 애매모호한 심상이 그의 정신을 잠복하다 못해 날려버렸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의 의식은 그와 세르쥬가 당장에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점점 흐려지다가 꿈 저 너머로 퇴장했다.


***


"그렇게 안카누스는 스스로가 가장 지혜롭고 좋은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 나서야 죽었어요. 그토록 지혜를 갈구하던 안카누스의 여정은 성취감 없는 정상에 서고 나서야 끝난 거예요. 비극을 누가 막을 수야 있겠나요?"


"운명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그렇겠죠. 신부님."


안젤리는 그에게 안카누스 서사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도중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었고, 그것이 꽤 이상하다고 그가 이야기하자 안젤리는.


"그럼요 허무맹랑하고 말고요..."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안젤리의 음성은 유쾌한 친구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목소리 같았다.


안젤리는 황홀감에 빠져있듯이 잠시 말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별 감흥이 없는 그의 표정을 눈치챈 안젤리는 곧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당신의 이름으로 뭐가 좋을지 생각해 봤는데 레이브누스 라는 이름이 괜찮은 것 같아요. 당신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저 깊은 곳에서 잊어버렸으니 새로운 이름이 필요할 테지요."


"방금 지어주신 이름인가요?"


"아니요. 몇 달 전 파면된 어떤 신부의 세례명이에요. 찝찝하다 싶으면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당신이 여정을 할때 흑색 성당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들어낼 때면 분명 이름도 함께 물어볼 겁니다."


"레이브누스... 레이브누스..."


그는 안젤리가 건네준 이름을 읊조렸다.


"입에참 안 붙네요."


"예전에 그 이름을 쓰던 사람은 레이븐이라고 불러달라고도 하더군요."


"네 그편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레이븐..."


그는 레이브누스라는 이름이 자신을 표상할 것이라는 사실이 어색했다.


***


그의 눈꺼풀이 열렸고 매우 낯선 회백색 돌 천장이 보였다.


"그래도 이번엔 꽤 괜찮네."


그의 말은 전번에 안네아폴리스에 당도했을 때 길거리에 무방비하게 쓰러진 건에 비해서는 괜찮다는 의미였다.


"어떤 게요? 모래폭풍에 휩쓸려서 말도 잃고 당장에 쓸 노잣돈도 없이 빈털터리가 된 게요? 아니면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는 행인들이 우리를 주워간 거요?"



세르쥬는 그보다 먼저 깨어나 건물 돌바닥에 앉아 있었다.


모래폭풍 속에서도 가방을 잃어버리진 않았는지 가방을 열어 보이곤 뒤적이고 있었다.


"여긴 어디야?"


"아직 잘 모르겠어요. 북부 왕국의 영토 안에 들어온 건 맞는 거 같은데..."


그가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앉아 세르쥬와 한마디씩 주고받았을 때 밖에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30대로 보이는 남자와 60대 언저리로 보이는 노인이 들어왔다.


일어나 있는 그와 세르쥬를 보자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다시 자기들만의 대화를 시작했다.


일부로 들리지 않게끔 하려는 것인지 웅얼거리는 소리로밖에 안 들렸다.


"저 사람들 아까도 왔다 갔거든요? 제가 엿들어보니까 우리를 구해준 사람들인 거 같아요. 저들은 어떻게 모래폭풍이 지나갈 걸 미리 알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모래폭풍이 끝나고 나서 와보니까 우리가 있어서 말에 태워서 이곳까지 온 거죠."


세르쥬는 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는 오른 귀로는 세르쥬의 말을 들었고 왼쪽 귀로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웅얼거리는 소리에 신경을 썼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누리압 어를 한다는 것만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인 것 같긴 한데 아직 당신이 누리압인 인걸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 안 해도 알죠? 누리압인 이라는 사실을 저들이 알아선 안 돼요."


그로서는 세르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르쥬 난 딱히 나 스스로가 누리압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물론 누리압어만 할 줄 알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들은 당신이 중앙제국에서 왔다는 사실만으로 싫어할 거예요. 왜 그런 멍청한 표정을 짓는 거예요? 북부인들은 중앙제국을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최대한 여기서는 당신이 흑색성당에서 왔다는 사실도 숨겨요 알겠죠? 그냥... 이곳저곳 여행하는 정신 나간 사람 중 하나로 보이게 하라고요."


세르쥬는 그에게 당연한 것을 설명한다는 듯이 말했다.


"근데 중앙제국이 싫다면서 저들은 왜 누리압어를 하는 거지?"


"그야 당연히 북부왕국이 중앙제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북부왕국 지역 사람들이 누리압어를 하는거고요 도대체 이런 당연한 상식을 왜 당신만 모르는 거죠?"


그는 세르쥬의 질책하는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근데 중간중간에 이해할 수 없는 언어를 섞어서 대화하는 거 같은데 저건 무슨 언어야? 서부제국 언어는 아닌 거 같던데."


그는 건물로 들어온 남자 둘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마도 아리앗어 일거에요 북부왕국에서 가장 흔히 쓰는 언어가 아리앗 어거든요. 진짜 그런진 저도 직접 들어야 알 수 있어요. 이곳 지역은 열두개도 넘는 언어를 혼용해서 좀 복잡해요."


세르쥬는 그의 삿대질 하는 손가락을 내리며 말했다.


"그러면 세르쥬 넌 아리앗어를 할 줄 아니?"


"조금요 누리압어 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아요. 가끔 필립상단에서 북부왕국을 거쳐 가거나 거래하러 갈 때가 있었거든요. 그때 어깨너머로 조금씩 배웠어요."


"역시 유능하구나! 넌."


"그럼요 나도 알아요."


그는 방금 자신이 말한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인 세르쥬가 기가 찼지만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고 번복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때 30대 남자가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더니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작가의말

비판, 비평, 피드백, 감상 모두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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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 종말의 서막 22.10.17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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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몽상가들 22.10.12 2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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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42 42. 창조자 데미우르고스 22.10.05 29 0 11쪽
41 41. 안개속 표류 22.10.03 19 0 11쪽
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6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2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6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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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3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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