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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커피일요일 님의 서재입니다.

잿빛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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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일요일
작품등록일 :
2022.05.05 22:07
최근연재일 :
2022.11.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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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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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글자수 :
252,035

작성
22.08.0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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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7. 까마귀의 우울

DUMMY

"이 신상은 뭡니까? 아무런 형상도 없고 글만 덩그러니 있는데."


세르쥬가 말을 골라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전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아직 알 수 없는 신을 위한 신전이래요."


"그게 뭔소리래."


세르쥬는 어깨를 으쓱했다.


"라모스 신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왜 이런 잡신들이나 보여주는 거냐고 잘 전달해 줄래?"


"적당히 말해봐요. 꾸며서 말하기 귀찮단 말이에요."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라모스 신이 뭔지 알려주시죠."


그렇게 말하자 세르쥬는 그의 말을 사제에게 전했다.


"태양신 이래요."


"그러니까.. 하! 내가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거로 아나 보네?"


그는 답답함이 치사율까지 올라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자세하게 좀 설명해달라고 해줘."


세르쥬가 사제에게 말을 전하더니 사제는 마치 미리 외워둔 주문을 외우듯이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까... 태초에 에폭시와 타타미아 사이에서 잉태한 것이 라모스고 영겁의 세월이 흐르자 라모스의 열이 식어 지금의 태양이 되었다... 뭐 그런 얘기를 하는데요?"


***


그의 눈앞에 붉은 잿가루가 가득했다. 아까 까기만 하더라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사제가 바닥에 엎드려서 검붉은 혈액을 황금빛 바닥에 흘리고 있었다.


세르쥬는 신전 밖에서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지 꼭 도망치는 꼴로 신전으로부터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세르쥬! 어딜가는.."세르쥬를 향해 소리를 쳤을 때 그의 가슴팍에서 날이 손톱 모형으로 기울어져 있는 검날이 튀어나왔다.


그는 혈액이 섞인 잿물을 뱉어냈다.


쿨럭거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들어올 때 보았던 사제 중 하나가 그의 등짝에 검을 찔러넣은 것이었다.


"으윽!"


그는 로브상의 속 허리춤에 차 있는 단검을 꺼내 등 뒤를 향해 휘둘렀다.


사제는 쥐고 있는 검을 쥔 체로 그가 휘두르는 단검을 피했다.


그것을 눈치챈 그는 사제의 손을 향해 뒤로 단검을 휘둘렀고, 사제는 그의 그런 공격을 왼손에 쥔 검을 오른손으로 바꿔 쥐고, 다시 왼손으로 바꿔 쥐는 식으로 피했다.


사제와 그의 신경전이 한참을 오가다가 검을 잡고 있던 사제의 손이 두 손 다 허공 속에 놓는 순간이 왔다.


그러자 그는 몸을 돌려 사제를 대면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겁니까?"


사제는 누리압 어를 할 줄 몰라 연신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대답해! 왜 나를?!"


사제는 소리치는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뒷걸음질 쳤다.


"말해!"


사제는 소리치는 그의 말에 도망치고 싶다는 듯이 자꾸만 뒤로 갔다.


뒷걸음질은 앞으로 걷는 것 보다 당연히도 불안정했기 때문에 사제는 넘어졌다.


사제가 넘어짐과 동시에 그는 신전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제야 그의 눈에 신전 벽에는 온통 혈액과 잿가루가 뒤섞여 타르 같은 액체가 눌어붙어 있고,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설마... 내가?"


그는 세르쥬를 찾으려고 신전 밖으로 나왔다.


해는 전부 다 지고 없어 밤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런 암흑이 밝아 보였다.


그는 세르쥬가 향하던 곳을 향해 달렸다.


잘 부서질 것만 같은 발자국을 만들며 달리는 그의 발걸음은 짙게 잿가루를 남겼다.


세르쥬는 나무 그늘 밑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아아! 뭐 이리 빨리 왔어! 내 몸에 손대지 마!"


세르쥬의 목소리에는 공포심을 압도하는 짜증으로 가득했다.


"세르쥬, 진정해."


"나도 죽일 거야 이 괴물아?"


"죽이다니 내가 왜? 세르쥬 난... 그러니까... 의도한 건 아니었어."


그는 세르쥬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세르쥬가 너무나 경계한 탓에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쥬는 그가 한 말을 부정하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침묵이 감돌았다.


"당신도 당신이 뭔 말을 하는지 모르죠? 방금 신전에서 죄 없는 사람들은 왜 죽인 건대요? 그리고 그 수많은 까마귀는 또 뭐고요?"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런 건 필요 없어요. 그냥 왜 다시 날 찾은 건데요? 목격자를 없애려고?"


"아니 여행을 계속해야지. 내가 찾는 게 안네아 폴리스에 없다면 북쪽으로 올라갈 거야. 거긴 적어도 덥진 않겠지?


세르쥬는 온통 잿빛으로 물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내가 가서 뭘 하고, 그리고 내가 가서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왜 내가 당신이랑 같이 가야만 하는데요?"


"언어에 능통하니까 지금까지 해온것 처럼 안내 역할을 해줬으면 해. 넌 생각보다 유능하거든."


"난 원래 유능하거든요. 그리고 내가 왜 가야만 하는데요?"


"내가 빚진 게 있잖아. 그걸 받아야 하지 않겠니? 그 채권 아직 가지고 있잖아?"


"이름 알려줘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모르고 같이 있었네요."


"아까 사제한테 말해준 그 이름이 내 이름이야."


"레이브누스요? 진짜 이름 아니죠?"


그와 대화를 계속하면서 세르쥬의 목소리가 다시 10대 남자아이의 것처럼 맑게 변했지만 매우 지친 느낌이었다.


"뭐 됐어요. 서류상에는 그렇게 써놓을게요. 근데 신전에 남아있는 사제들은 어떻게 할 거예요?"


"그냥 두고 와야지. 난 살인자가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걸요? 누리압 어를 하는 어떤 이방인이 와서 우리의 신을 모욕하고 사제들을 살해했다고 떠들어 댈 거예요."


"만약 지금 내가 그들을 죽인다면 나는 진정으로 살인자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야."


"실제로 당신은 살인자에요 그리고 한두 명 더 죽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게 있나요? 물론 아주 큰 게 달라지겠죠. 목격자가 없어져서 우리가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는 게 다르겠죠."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세르쥬? 돌아가서 목격자들의 영혼을 이승에서 떠나게 할 것 같아?"


"나라면 애초에 이런 일을 만들지 않겠죠. 전 살인자가 아니거든요."


'나도 마찬가지야.'


그는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연민했다.


"윽!"


그는 가슴에 나 있는 상처에서부터 비롯된 고통에 신음했다.


"괜찮아요?"


"아니, 호세프의 저택으로 가자... 호세프는 우리를 도와줄 거야."


"미쳤어요? 그 사람은 안네아폴리스의 귀족이잖아요."


"그렇기에 더욱 그에게 가야 하는 거야. 안네아 폴리스에서 그가 아니라면 도움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세르쥬는 미간에 손바닥을 짚으며 초점을 잃은 것처럼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근데 괜찮아요? 일단 그 등에 꽂힌 칼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이 칼이 출혈을 막아주고 있는 걸 꺼야. 빼내면 안 돼 호세프의 저택에 의사가 있겠지."


"알았어요. 말에 올라타요."


"그러고 보니 말이 한 마리뿐이네."


"네 한 마리는 도망쳤어요. 아까 그 '일' 때문에요."


세르쥬는 그를 힐난하듯이 말했다.


"까마귀를 무서워하는 말도 있나?"


그는 아까부터 지금까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을 따지고 싶었다.


***


그와 세르쥬는 잿가루를 흩날리며 호세프의 저택 정문에 도착했다.


세르쥬가 정문을 지키는 시종에게 무어라 말했다.


그 시종은 정문을 열더니 그와 세르쥬를 통과시켰다.


"들어가서 우리가 처음 호세프를 만났던 곳으로 가래요."


"그래."


세르쥬와 그는 저택 내에 있는 구조물과 건물들은 한참을 지나 자줏빛 카페트가 깔린 건물을 찾았다.


"호세프! 호세프!"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군! 나의.. 응?"


호세프는 그의 목소리에 반응해 느긋하고 거만한 몸짓으로 그에게 다가왔지만 그의 몰골을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호세프의 말에 세르쥬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 중 그가 크게 다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선으로 말했다.


"그래 그래 보여, 안으로 들어오시게 자 저기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보이는가?"


세르쥬의 설명을 들은 호세프는 건물 안을 거닐던 흰옷을 입은 사람에게 짧게 말을 하곤 그에게 말했다.


"따라가 치료받게, 분명 고칠 수 있을 거야."


"고맙습니다. 호세프."


그는 호세프가 가리킨 흰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가 흰색으로 된 방 안에 있는 흰 침대 위에 누웠다.


세르쥬는 호세프에게 남아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호세프는 세르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지만, 시선은 그가 남기고 간 잿가루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세르쥬 너는 그를 따라갈 건가?"


호세프가 세르쥬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세르쥬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만약 그를 따라간다고 하지 않더라도 걱정하지마 내가 너를 거두어 고용해줄게. 실은 너의 외모가 마음에 든 것이 그 판단에 큰 역할을 했단다."


호세프의 말을 세르쥬는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호세프. 방금 제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려요. 하지만 전 필립 상단에 속해 있어서요. 이중으로 고용될 순 없거든요."


세르쥬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냥감처럼 신속하게 대답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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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 정화 22.10.22 3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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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 종말의 서막 22.10.17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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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 몽상가들 22.10.12 23 0 12쪽
44 44. '지 하루' 라는 몽상가 22.10.10 25 0 13쪽
43 43. 재회 22.10.07 21 0 11쪽
42 42. 창조자 데미우르고스 22.10.05 30 0 11쪽
41 41. 안개속 표류 22.10.03 19 0 11쪽
40 40. 안개속 표류 22.09.30 25 0 12쪽
39 39. 안개속 표류 22.09.28 26 0 11쪽
38 38. 별세 22.09.26 22 0 10쪽
37 37. 흑색신전 22.09.23 27 0 11쪽
36 36. 귀향 22.09.21 25 0 11쪽
35 35. 카산드리아 22.09.19 22 0 11쪽
34 34. 안개속의 마녀 +1 22.09.16 27 0 11쪽
33 33. 불멸 +1 22.09.14 23 0 11쪽
32 32. 잿빛 까마귀 22.09.12 26 0 11쪽
31 31. 잿빛 까마귀 +1 22.09.09 30 0 11쪽
30 30. 정의의 유보 22.09.07 23 0 11쪽
29 29. 푸른빛의 몽상가 22.09.05 26 0 11쪽
28 28. 만월과 메데스비홀스작센 +1 22.09.02 36 0 10쪽
27 27. 푸른밤의 수난 +1 22.08.31 2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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