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두 사람은 그 기사의 사망 소식을 듣게되었다
오기노 마나가 나선다고 그 정체도 모르는 괴물에게서 희생자를 줄이는 것이 가능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타케루는 아니라고 믿는 쪽이었다.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 그를 구하려고 한 마나까지 괴물이 공격을 해온다면 결국에는 자신마저 마나를 구하려고 뛰어들 것이 분명.
그 결과가 마나의 안에 있는 마녀가 깨어나는 결과를 불러온다면 그는 차라리 죄를 지은 녀석들을 희생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우리는 우리가 해야할 일을 하자. 아야가 조사를 마치면 그 괴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거야."
"..응. 그러네. 타케루의 말대로야."
아주 조금이지만 기운을 차린 마나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베로티아로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마차가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더니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나! 오랜만이야!"
"카즈마?! 여, 여긴 어떻게 알고.."
물의 도시 베로티아의 영주이자 오기노 마나의 소꿉친구인 나카타 카즈마. 짧게 다듬은 금색 머리카락과 유쾌한 성격을 가진 그는 성인식을 치른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단 세 명뿐인 검성의 자리에 오른 남성이었다.
"미카 여왕님의 문장에는 언제든지 위치를 찾을 수 있는 특별한 마력이 담겨있거든! 이 장소에서 문장의 위치가 움직이지 않길래 걱정이 되어 와봤는데 설마 마나 네가 왔을 줄이야."
카즈마와 재회한 마나의 표정은 타케루와 있던 순간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기쁘게 보였다. 그런 마나의 행복한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타케루는 자진해서 자리를 비켜주려고 했지만-
"아참! 소개할게! 이쪽은 코바시가와 타케루! 지금까지 나를 곁에서 도와준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야! 분명 카즈마도 타케루랑 금방 친해질 수 있을거라 생각해!"
모처럼의 재회의 순간에 자신을 소개하는 마나의 행동에 타케루는 그만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 안녕.."
물론 마나의 이런 행동은 타케루 뿐 아니라 카즈마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가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을 서슴없이 대하는 모습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떨어져 지낸 동안 오기노 마나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여성이 되어있었고, 카즈마는 그 원인이 눈앞의 타케루라고 확신했다.
"나는 나카타 카즈마라고 해! 계속 곁에서 마나를 도와줘서 고마워. 저렇게 웃는 마나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별로. 마나가 저렇게 웃는 건 오랜만에 널 만났기 때문이잖아."
"후훗. 그건 어떨까? 이것도 인연인데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보자!"
어째서인지 가슴이 욱신거리고 답답해지는 심정에 타케루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카즈마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되려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마지못해 그와 악수를 하고 난 뒤에 세 사람은 마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베로티아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아, 우선은 이거. 미카 여왕이 너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한 편지야."
달리는 마차 안에서 타케루가 건네주는 편지를 가만히 바라보던 카즈마는 이내 천천히 편지를 받으며 말했다.
"여왕님의 편지를 가져다 준 건 고맙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겼어. 이 편지도 그래서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할까.."
"의미가 없어졌다니..?"
알 포드 왕국의 여왕의 편지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전언. 영주인 카즈마 또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그가 미카 여왕의 편지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에 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카즈마는 편지를 꽉 구겨 쥐고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마도 조만간 알 포드 왕국에서 도미닉 요새 국가에 전쟁을 선포할 지도 몰라."
그 소식은 당연히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던 두 사람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쟁이라니..?! 미카 여왕님이 먼저 전쟁을 선포할 이유가.."
당황한 마나가 전쟁이 벌어진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지만 이 때 두 사람에게는 진실이라고는 믿기 힘든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소이치 님이 살해당하셨어."
마력의 골짜기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들을 배웅해주었던 그 소이치 경의 사망 소식에 두 사람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아..하하.. 카즈마도 참.. 또 짓궂게 장난치는 거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소식에 마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어릴 때부터 조금씩이지만 장난을 치기도 했었던 그가 오랜만에 만난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즈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말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마치 방금 꺼낸 이야기가 절대 농담이 아니라는 것처럼.
"아니지..? 아니잖아, 카즈마..!"
간절하게 소리치는 마나의 모습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카즈마는 침묵을 지켰다. 이내 마나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마녀로 인해 생긴 오해로 자신의 가문을 몰락시킨 장본인이라고 해도 마나에게 있어 그는 검술을 가르쳐주고 혼자 남은 자신을 돌봐준 사람이기도 했다.
원망보다는 정이라는 감정이 더 짙게 남겨진 그가 죽었다는 소식에 마나는 그만 입을 가리고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타케루 역시 소이치 경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믿기지가 않았지만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우선은 소이치 경이 살해당한 이유였다.
알 포드 왕국의 미카 여왕을 오랜시간 모셔왔던 그는 어지간한 상대에게 당하지 않을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였다.
그런 그를 살해한 상대 역시 적지않은 부상을 면치는 못했을 터. 문제는 왜 그런 부담을 지면서까지 소이치 경을 노리고 접근했는가였다.
"미카 여왕이 도미닉 요새 국가에 전쟁을 선포할 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 말은 소이치 경을 죽인 범인이 마족이라는 거야?"
"정황상으로는 그래. 소이치 님의 시체에서 마력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독의 성분이 발견됐는데 그 독은 워낙에 다루기 어려운 성분이라 아직까지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미카 여왕님과 마왕의 간부중 한 명인 스카디밖에 없거든."
안 그래도 도미닉 요새 국가에서 먼저 군사를 움직이는 바람에 알 포드 왕국과 엘든 포레스트 국가가 예민해져 있다는 사실은 그들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왕의 간부가 여왕의 직속 기사의 목숨을 노리고 접근을 했다..?
타케루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었다.
"정말 마족의 짓일까? 녀석들이 이런 짓을 계획했다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도발적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마족들을 감싸는 듯한 타케루의 발언은 카즈마에게 있어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발언임이 분명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시 실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감이야. 녀석들이 영지를 침략하기 위해서 군사를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다짜고짜 소이치 님을 노리고 공격해 올 만큼 비겁한 놈들은 아니야."
이미 검성으로서 여러 마족들과 싸워본 경험이 있던 카즈마는 더더욱 이번 사건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족을 제외하면 소이치 경을 쓰러뜨릴 수 있는 자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흐르던 눈물을 닦아낸 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밖의 단서같은 건 없었어..? 싸움의 흔적이라던가.."
"응? 아아. 그러고보니 소이치 님의 부하가 심장에 검이 박힌 채 죽어있었다고.."
"뭐?!"
뒤늦게 카즈마가 들려준 또 다른 단서를 듣고서 타케루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왜 그래? 뭔가 짚이는 거라도 있어?"
"타케루..! 부탁이야..! 뭔가 짚이는 게 있으면 뭐든 좋으니까 말해줘..!"
마나가 마녀에게 육체를 지배당했을 때에도 발견되었던 사내의 죽은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 단서에 타케루는 두 사람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부와 말이 죽어있었던 그 때 당시 심장에 검이 박힌 채 죽어있던 사내가 소이치 경의 부하라면 어째서 마부와 다르게 그 혼자 심장에 검이 박힌 채 죽어있었을까.
한 사람이 벌인 살인이라기에 죽이는 방법의 차이가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우연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예를 익힌 소이치 경의 부하는 심장에 검을 박아두고 평범한 마부의 심장에는 검을 박지 않았다는 것은 도리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아.. 제길..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막히는 느낌이야.."
머리를 쥐어짜며 어떻게든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생각해내려는 타케루의 모습에 카즈마는 그의 어깨위로 손을 올리고서 차분하게 말했다.
"미안해. 네게 혼자 너무 무리하게 만든 걸지도 모르겠네. 우선은 베로티아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 쉬면서 생각하는 편이 더 쉽게 떠오를지도 모르고..
두 사람 다 여기까지 오느라 지쳤을 테니까 베로티아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방을 준비해뒀어."
"으, 응. 그러네. 미안해, 타케루.. 우리가 너무 타케루에게만 의지했는지도 몰라.."
사과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타케루는 무언가가 꽉 막힌 것처럼 정리되지 않는 생각이 답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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