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공도 히로인도 결국은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이었다
두 사람이 통로를 통해서 마침내 밖으로 나왔을 때 어느덧 날은 밝아져 있었다.
납치당한 아인들을 구해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노예시장에 숨어들었던 타케루는 이제서야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 때-
"기다렸어."
"아야..?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야? 호무라랑 같이 돌아간 거 아니었어?"
그가 나올 때까지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야는 타케루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말을 걸었다.
"가기전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솔직히 정말로 아인들을 구해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전부 네 덕분이야. 고마워."
"후훗. 내 말이 맞지? 타케루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니까."
"응.. 그래서 말인데.."
갑자기 머뭇거리며 말을 끊은 그녀. 이에 두 사람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더욱 신경이 쓰였지만 그들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폐공장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을 포함한 이번 아인 납치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타케루 일행을 둘러쌓았다.
"우리의 목숨이 걸린 노예들을 전부 놓아주다니.. 이러고도 네 녀석들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냐!!"
"타케루.. 내가 한 번 해볼게.."
"그만 둬, 마나. 저 녀석들 아마도 전부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녀석들이야. 이렇게 주변을 둘러쌓인 상황에서는 아무리 너라도 상대하기 힘들어."
하필이면 호무라가 없는 이 타이밍에 둘러쌓인 상황에 타케루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아야는 아직 빛의 대정령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할 뿐더러 아무리 마나라도 이 많은 숫자를 혼자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뭘 그렇게 속닥거리는 거야!!"
"엘·다니아!!"
사내가 언성을 높이자 주변을 둘러쌓았던 부하들이 일제히 주문을 영창해 폭풍의 화살을 날렸다. 강력한 위력을 가진 폭풍의 화살은 타케루의 앞으로 날아와 지면을 파헤쳤고 이는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임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만 여기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라고..!!"
사내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치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불안정보인 그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단검을 뽑아들고는 아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너라도 데려가겠어.. 엘든 포레스트 국가의 장로라면서..? 너라도 데려가면 그분께 용서를 받을지도 몰라.."
정말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질만큼 필사적인 그의 표정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 타케루는 사내의 뒤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는 굳어버렸다.
"어, 어이.. 너.. 뒤에.."
타케루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돌린 사내는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쥐고있던 단검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곧 날카로운 이빨만을 드러내며 거대한 입을 벌린 무언가. 이에 사내는 타케루 일행을 둘러쌓았던 사람들을 향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 이 놈을 공격해..!! 전부 이 놈을 죽여!!"
"히익!!"
사내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부하가 당황한 기색으로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는 그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마치 스텔스를 두른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새빨간 피가 터져나오는 광경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엘·다니아!!"
"본·소마!!"
"디트·프로아!!"
바람과 불, 땅의 기초마법을 모두가 동시에 영창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무수한 마법이 날아갔다.
기초마법이라고는 해도 엄연히 공격을 위한 목적의 마법들은 정체를 모르는 무언가에 닿자마자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하..하하하-!! 됐어..!! 저 정도 공격이면 분명..!"
사내가 엄청난 폭발에 안심하고 큰소리로 웃는 것도 잠시. 처음 입안에 삼켜 씹어먹던 부하의 팔 하나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지더니 그 무언가는 곧이어 다른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끄아악-!!"
폭발로 일어난 흙먼지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로지 부하들의 비명소리만이 울려퍼지자 사내는 절망했다.
"뭐야.. 저게.."
그리고 그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타케루와 마나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인간들을 잡아먹는 모습에 전신이 굳어버렸다.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라고 해도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움직여야 하는지를 망설이던 마나의 팔을 아야가 힘껏 붙잡고서 말했다.
"움직이지 마. 저 괴물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저기 있는 녀석들이야."
"..하지만.."
흙먼지가 걷히고서 마침내 주변의 시야가 드러났을 때.
사내는 그 많던 부하들이 모두 사라지고 땅에 흩뿌려진 팔이나 다리들을 보고 그만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나.. 난 열심히 했어..! 그 분이 말한대로 열심히 노예들을..!!"
모든 부하들을 집어삼키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오는 정체 모를 무언가. 이에 마나는 이를 꽉 물고서 자신의 레이피어로 천천히 손을 옮겼다.
머리로는 나서는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대로 사람이 죽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어느새 폭포처럼 피를 흘리던 거대한 입이 벌어지면서 다시 한 번 드러난 날카로운 이빨. 이에 눈물콧물을 질질 짜내던 사내를 향해 마나는 반사적으로 힘껏 뛰쳐나갔다.
"손 내밀어요!!"
어떻게든 그를 구하기 위해서 먼저 팔을 힘껏 뻗으며 외친 마나. 하지만 사내의 고개가 마나에게 향하며 손을 뻗으려는 순간에 그 거대한 입을 망설임없이 그를 집어삼켰다.
뼈까지 씹어먹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풍선 터지듯 흘러넘치는 새빨간 피.
"아..아아.."
눈앞에서 그를 구하지 못했던 마나는 사내의 피를 뒤집어 쓴 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모습으로 굳어버렸다.
불행 중 다행히 아야의 말대로 아인들을 납치했던 사람들을 전부 집어삼킨 무언가는 굳어버린 마나를 눈앞에 두고서도 전혀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입안에서 피를 주륵 흘리던 무언가는 이곳에 나타났을 때처럼 다시 공간을 뒤틀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마나!! 괜찮아?!"
제일 먼저 마나의 상태를 걱정하며 달려온 타케루는 바닥에 흩뿌려진 시체들과 피가 섞인 지독한 악취에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 정체 모를 무언가에게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던 아야는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서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우리 아인들을 납치하도록 시킨 녀석이 평범한 인물은 아닌 모양이네.."
가까스로 올라오는 구토를 참아낸 타케루는 그녀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서 물었다.
"뭐야, 조금 전 그 괴물은!! 뭔가 알아낸 게 있는 거야?!"
빛의 대정령의 축복을 받은 그녀는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는 마력의 흔적을 보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마력의 흔적은 옅은 바람에도 금방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흔적은 보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처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인간들을 씹어삼키는 모습을 지켜본 아야는 마력을 통해 그것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으응.. 미안하지만 역시 이건 내가 조금 더 조사해보고 확실해지면 알려줄게. 가볍게 판단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가 될 지도 모르니까."
타케루의 질문에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이야기 할 수 없었던 아야는 그 괴물이 사라진 뒤에야 겨우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조사를 위해서 이만 가봐야겠어. 그리고 아까 하려던 말인데.. 괜찮으면 나중에 엘든 포레스트에도 방문해 줘. 우리 아인들을 구하는데 협력해 준 너희라면 다른 장로 언니들도 분명 좋아할 거야."
어쩐지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타케루는 더 이상 아무것도 추궁하지 않고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응, 알았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엘든 포레스트에도 꼭 찾아갈게."
"약속한 거다?"
그가 자신의 국가에 방문할 것을 약속하자 처음으로 웃어보인 아야는 그대로 호무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단 둘이 남겨진 타케루와 마나.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마나가 걱정이 된 타케루는 천천히 일어서는 그녀를 부축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타케루.. 나.. 아야가 그 괴물이 노리는 게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어.. 사람들이 그 괴물에게 먹히는 순간에도.. 구하는 것을 망설였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타인을 구하는 것을 망설인 자신의 행동에 마나는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진정이 되지 않은 그녀의 두 다리가 심하게 떨렸지만 타케루는 자신 역시 그 때 당시 똑같은 심정이었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마치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인 것처럼 느껴지는 마나의 그 한마디가 타케루의 두 주먹을 꽉 쥐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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