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각인을 가진 마물을 쓰러뜨리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아라크네는 타케루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해왔다. 인간이 작은 벌레를 밟아죽이듯 아라크네 역시 타케루를 그대로 짓밟아 죽이려고 한 것이다.
"어..? 자, 잠깐.. 아직 너무 빠른데!!"
자신만만하게 덤비라고 큰소리치던 조금 전과는 달리 막상 아라크네의 거대한 덩치가 가까워지자 타케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독으로 싸우는 게 아니었냐!!!"
그 끔찍하게 괴로운 독을 두고 굳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타케루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동굴 안을 빙글빙글 돌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하지만-
"우왓-!!"
인간과 아라크네는 체격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얼마 금세 거리가 좁혀진 아라크네는 날카로운 발톱을 힘껏 휘둘렀다.
그가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면서 동굴 벽면으로 아라크네의 발톱이 박혀 천장이 심하게 흔들렸지만 다행히 무너지지는 않았다.
"찬스다!"
큰 데미지는 입히지 못하더라도 움직임에 아주 작은 지장이라도 생기기를 바라며 타케루는 쥐고 있던 단검으로 아라크네의 다리를 힘껏 찔렀다.
키아아악-!!!
진녹색 체액이 밖으로 뿜어져 나오며 괴로워하던 아라크네는 벽에 박혔던 발톱을 뽑아 타케루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크윽..! 그렇게 큰 소리로 괴로워 하고 멀쩡한 척 공격하는 건 반칙이잖아!!"
아슬아슬하게 단검으로 아라크네의 발톱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단검을 통해서 어깨로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에 타케루는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상처를 입는 것뿐 아니라 이런 간접적인 충격 또한 3배가 되어 전해진다는 것을 타케루는 그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이대로는 좀 위험한데.."
유일한 무기인 단검으로 아라크네의 한 쪽 발톱을 막고 있기에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
이대로라면 아라크네가 다른 발톱으로 공격을 해 올 경우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직감한 타케루는 비겁하다는 것을 알지만 바닥을 나뒹굴던 돌과 흙먼지를 힘껏 걷어찼다.
키아아-!!
다행히 작전이 성공했는지 눈에 흙먼지가 들어간 아라크네의 공격에 작은 틈이 생기면서 타케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떠냐!! 목숨을 건 싸움에 비겁한 건 사치라고!!"
그렇게 다시 왔던 길을 돌아서 아라크네와의 추격전을 재개한 타케루는 슬슬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출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마나를 버리고 지원을 부르러 간 줄 알았던 노리에가 서있었고, 무언가 신호를 보내듯 그녀는 타케루를 향해 힘껏 고개를 끄덕거렸다.
"후후후.. 기다렸다고!! 자~ 이 괴물아!! 이제 마음껏 덤.."
키아아-!!
노리에의 신호에 기세등등하던 타케루는 이미 자신이 아라크네에게 쫓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여유롭게 소리쳤다.
덕분에 아라크네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안면을 향해서 정확하게 날아왔지만-
"본·휴즈·에르페!!"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노리에가 서둘러 영창을 외치자 타케루의 눈앞에 거대한 불꽃의 방패가 나타나면서 공격을 막아냈다.
뿐만 아니라 방패에 닿은 아라크네의 발톱은 뜨거운 업화에 휩쌓여 상당한 데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나이스! 노리에!!"
"친한 척 이름만으로 부르지 말아줄래요?! 그리고 집중하세요! 아직 싸움이 끝난 건 아니니까!!"
그녀의 말대로 아라크네가 분명 데미지를 입긴 했지만 싸움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괴로워 하는 아라크네를 뒤로하고 서둘러 계획했던 자리로 이동한 타케루는 마물의 숨통을 끊을 단검을 꽉 쥐고서 결의를 다졌다.
심한 몸부림에 발톱에 붙었던 불꽃이 꺼진 아라크네는 더욱 화가 난 모습으로 곧장 타케루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타케루는 아라크네가 점점 가까워지는 순간에도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키아악-!!
타케루가 서있던 자리의 앞을 거대한 늪처럼 바꿔버린 노리에의 마법에 아라크네는 서서히 지면 속으로 몸이 삼켜지기 시작했다.
"후우.. 다행히 작전대로 된 모양이네요."
"응. 남은 건 이 단검으로 숨통을 끊으면 돼."
지면속에 파묻혀 당황한 아라크네의 머리 위로 올라탄 타케루는 두 손으로 힘껏 단검을 움켜쥐었다.
마녀의 각인을 받아 평범한 마물보다 월등히 성장한 마물 아라크네. 자신의 죽음을 직감이라도 한 듯 아라크네는 갑자기 미친듯이 독과 거미줄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몸의 절반 이상이 지면 속으로 파묻힌 탓에 아라크네가 내뿜는 거미줄이나 독은 두 사람에게 전혀 닿지 않았고, 타케루는 그런 아라크네의 저항하는 모습을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거지만 설마 마물 따위에게 동정을 하는 건 아니겠죠? 하물며 이 마물은 마녀의 각인을 가진 마물. 내버려두면 예상을 뛰어넘는 희생자가 나오게 될 거예요."
"응.."
냉정하긴 해도 현실적인 그녀의 말을 받아들여 타케루는 힘껏 쥐고 있던 단검을 내리찍었다.
괴로운듯 몸부림치며 괴성을 지르던 아라크네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우 숨이 끊어졌고, 그제야 타케루는 힘든 싸움이 끝이 났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안심해도 좋아요. 오기노 마나의 체내에 퍼진 독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긴 했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마비독이니까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다행히 그녀의 생명에 아무런 지장도 없다는 노리에의 이야기에 안심한 타케루는 그제야 거미줄에 매달린 마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
"고마워, 노리에! --씨..!"
"뭐에요, 그 어색한 부르는 방법.. 게다가 어째서 감사하는 건가요? 이 작전을 세운 건 당신이잖아요? 오히려 감사를 요구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무슨 말이야. 노리에 씨의 마법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작전이잖아. 게다가 내가 위험했던 순간에 지켜주기까지 했고. 당연히 내가 노리에 씨게에 고마워해야지!"
분하긴 하지만 그녀는 아라크네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분명 타케루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마나를 두고 혼자서 살기 위해 도망치려고 했던 자신은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했으니.
하지만 그런 노리에를 향해서 타케루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
"게다가 난 역시 영주의 자리도 노리에 씨가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해."
"어째서죠..?"
"노리에 씨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니까. 이 단검이 없었다면 나는 노리에 씨가 도와줬어도 절대 아라크네를 이길 수 없었을 거야."
이에 그가 들고 있던 단검을 살핀 노리에는 확실히 아라크네의 독에 닿고도 전혀 날이 녹아내리지 않은 것에 의문을 가졌다.
"그 단검은 당신의 것인가요?"
"아니, 내 물건은 아니고 아는 사람에게 받은 것 뿐이야."
"흐응.. 역시 당신은 흥미로운 사람이네요, 타케루 씨. 마지막으로 묻겠지만 정말 영주의 자리를 제게 양보해도 괜찮으시겠어요?"
"응. 후회하지 않아."
영주의 자리를 두고 펼친 경쟁 속에서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고 공을 양보하는 타케루를 보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이 자리를 양보해준 타케루 씨를 위해서라도 훌륭한 영주가 되어보이는 수밖에."
그렇게 아라크네의 머리를 가지고서 라토리아 마을로 돌아가기 전.
노리에는 마비독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잠이 든 마나의 곁에 있어주는 타케루를 바라보며 아주 조금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꼈다.
물론 자신이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노리에는 마을로 돌아갔지만 타케루에게 흥미가 남아있는 이상 언제라도 마음이 내킬 때 그를 직접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아라크네의 죽음으로 잠잠해진 심연의 동굴 속에서 타케루는 잠든 마나를 자신의 무릎 위로 눕히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마나가 일어나면 역시 화를 내겠지..? 멋대로 집에서 빠져나와 이런 위험한 곳에 와버렸으니.."
설교를 듣는 것은 분명 무서웠지만 이렇게 마나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타케루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으..응.."
잠에서 깨어난 마나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눈앞에 타케루의 모습이 들어오면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타, 타케루..?!"
화악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사과를 건네려던 마나는 뒤늦게 그 역시 잠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든 걸까..?"
굉장히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잠을 자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마나는 타케루가 자신을 구하러 와주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라크네가 알을 낳기 위해서 자신을 거미줄에 매달았을 때 유일하게 구하러 와준 한 사람.
마나는 그런 타케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서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고마워, 타케루.. 날 구하러 와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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