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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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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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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375화 – 콜레기아에서 클럽까지, 공화정 로마에서 혁명 프랑스까지

DUMMY

그리고 제법 오래 기다리지 않은 시간의 끝에 한 번의 주사위를 통해 결정지어진 미래가 현실이 되었다.


“폐하, 일찍이 궁을 찾았던 굴리엘모스가 다시금 폐하께 공물과 더불어 친필서한을 바쳤나이다.”


사락-


“어디 보자, 콜레기아라......., 다행스럽게도 제때에 답이 왔구나.”


[이상사회의 첫걸음을 위해선 부정할 수 없는 공의와 민의를 대변할 다중 정치제도를 위한 바탕이자 각 세력의 자율적 결집을 위한 씨앗에 해당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 [콜레기아]


서찰을 펼치고 그렇게 확인한 지도에는 발전된 진나라의 시대상이 적힌 이상적 목표와 단계가 있으니 자신의 말이 멈춰선 곳 아래에 적혀있는 답은 부정할 것 없는 콜레기아였다.


콜레기아란 로마시대에 등장한 일종의 동직조합(同職組合)으로 소위 중세시대의 길드와 비슷하나 경제성만을 추구하던 중세 길드와는 달리 그 목적이 신앙, 정치, 오락, 상호 부조를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3인 이상의 모임이자 단체에 가까웠다.


이것이 자라나고 자라나 소위 사교 및 이익 등을 대변하며 지역별, 출신별, 계급별, 직종별 공통점을 가지는 이들이 참여하는 다채로운 사회적 클럽으로 뒤바뀌면서 원시적 형태의 정당이자 향우회, 전우회, 시민단체 및 이익집단과 노동조합, 협동조합의 형태를 띠었고 심지어는 생명보험과도 같은 보험회사나 원시적 형태의 소방단체이자 사업체의 가까울 모습을 드러내며 세상에 등장했다.


그 외에 기술적 목적 등을 지녀 석공, 목수들을 위한 도제와 장인 체제를 갖춘 원시적 형태의 길드이자 기술학교가 되기도 했고, 또 교육적 목적에 충실하며 그에 같은 입장을 지닌 이들이 설립한 학회와 같고 학파가 자리한 교육시설이 되기도 했다.


뭐, 그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뭉친 이들을 가리키는 이러한 개념은 소위 그 어원에서 파생된 개념을 따지자면 훨씬 더 다양하다 못해 중세 이후의 세상에 여러 목적을 두고 존재하는 모든 집단과 조직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데, 소위 가톨릭 예수회의 수도학원 또한 콜레기아의 명칭을 썼으며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학교나 교육에 관한 제도를 뜻하는 학제(學制)의 개념인 college 또한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후대의 개념을 다 빼놓고 당장에 로마시대의 놓인 콜레기아의 개념이 맞물려 해석되는 시대가 한 가지 더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대들은 자코뱅을 기억하는가? 그대들은 코트들리에를 기억하는가? 자코뱅 독재가 수립된 이후의 제반분파. 국민공회가 시작된 이래 출범한 제1 공화정조차 온 나라의 정치인들이 들끓던, 그 나라 구석구석 수도원이 자리한 곳이라면 누구나 그에 걸맞은 클럽을 가졌던 혁명의 세기를 기억하는가?”


이는 다름이 아닌 18세기 말, 인류가 그간의 세월 놓지 못했던 왕정을 내려놓으며 다시금 공화정을 부활시켜 제왕주권이 아닌 인민주권의 세기를 확립한 시기.


이름난 수도원들에서 벌어진 사교 모임을 바탕으로 각자의 이상과 철학을 논하며 그에 걸맞은 가치와 이익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대변하고 그에 하나된 이들끼리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던 소위 클럽 정치의 시대.


수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이합집산을 펼치며 저들끼리의 공론의 장을 열었던 자유쟁론의 시대는 원시적인 형태의 제자백가와도 닮아있으니 이것이 철학과 종교를 비롯한 세상의 이치요, 진리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며 이 와중에 탄생한 산업혁명과 맞물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쪼개진 노동자와 자본가들을 비롯해 그에 속한 직공들마저도 각자의 방식과 양식을 위해 주점과 수도원을 오갔던 시대.


먼 훗날의 맥주홀 폭동과 같이 또다른 구심점으로 옮겨갈 이후의 삶 이전에, 모두의 삶에 관여하는 것이 오직 정치 하나뿐이 아니었기에 가장 많은 다채로운 모임과 조합들이 존재했던 시대.


“콜레기아에서 클럽까지, 공화정 로마에서 혁명 프랑스까지.”


그렇게 포홍은 다시금 자신이 펼쳐 놓은 판 위에 변화하는 진나라의 사회상을 묘사한 게임 양식이 적힌 지도를 훑어내렸다.


“할 수 있다, 부족하나마 이를 겪게 하고 뛰어넘을 수 있어.”


소위 시대를 뛰어넘겠다는 점핑의 개념을, 그저 시간을 건너뛰는 타임워프가 아니라 그에 녹아든 그 모든 시간을 압축시켜 이를 체감하듯 나아갈 수 있는 강제적 계몽의 가장 기본이 되는 바탕을 마련한 포홍은 그렇게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를 비롯한 오락과 유흥, 산업, 사회, 계급, 직위를 비롯한 모든 것들에 영향력이 붙어야 하며 그 알량한 것에 권위가 묻고 완장질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어 위와 아래를 비롯한 좌우와 오만 것들이 섞여 나아감에 누구 하나 완연한 이상이 그득한 미래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음을 깨닫고 그 병폐를 몸소 실감해야 한다.”


세상을 이상으로 물들이되, 이상은 기어코 현실이 아님을 알게 하고.


“나 또한 그 알량한 작은 것을 쥐었을 때, 어찌 돌변할지 모름을. 나 또한 이 나라를 망친 저것들처럼 될 수 있음을. 나 또한 그 알량한 것을 쥐고 흔들었을 때, 뜻이 맞는 이들과 모여 그 입장이 같은 이들과 더불어 나를 추종하는 이를 밑에 깔로 그 위에 올라섰을 그때. 내 일평생 혐오했던 그들보다 더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체감하고 깨우쳐야 한다.”


그 속에서 남을 욕하는 것은 쉽고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것임을 알게 하며.


“고로 신이시어, 섭리에 어긋난 내가 이 땅에 펼칠 것은 부정할 것 없는 계몽이라. 빛 속에 숨어든 것들이, 빛을 자처하는 이들이, 저 스스로를 옳고도 바른 존재라, 오만 치장으로 저를 덧대는 것들이, 선을 추구하고 영향력을 논하며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들이 그 실상은 천사의 형상을 띄고 있는 것들이 악마임을 알게 할 것이요, 언제고 이상과 현실이 반대임을, 그리 뱉은 말과 정작 하는 행동이 다름을 만백성에게 알게 할 것이니, 더는 이 땅의 이들이 무분별한 추존과 추앙을 금하게 할 것이며, 그에 종속된 무지렁이로 돌변하는 것을 막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알량한 선의와 정의가 어찌 세상을 망쳐왔는지 뼈저리게 깨닫도록 할 것이다.


“인간이 숭배하는 우상을 금할 것이요, 적어도 그에 따른 동의와 지지로서 이를 대체하게 할 것이니 하늘의 대지라요, 신의 대리자, 이권의 대리자, 신분의 대리자, 자본의 대리자, 노동의 대리자 등을 자처하여 제 스스로 알량한 하늘인 양, 하늘 아래 거짓된 하늘인 양 설치는 것들의 추악함을 알게 할 것이라. 떠받들어진 인간 또한 결국 날개가 없어 추락할 새요, 그 밑에 떠받드는 것들을 희생시켜 그 위에 존재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바, 사람 위에 서기 위해 필경 그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어야 함을 깨우치게 할 것이다.”


고로 사람은 그 알량한 선의와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세상에 치여 살게 해야 하며 그 속에 방임과 방조로 얼룩진 자유와 제한을 번갈아 누려야 함이요, 그 속에서 이상과 이치에 맞지 않는 현실과 진리에 어긋난 행태를 겪으며 고행과 고찰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사고하는 만큼, 각자에게 주어진 그릇의 크기만큼, 그만큼의 세상만을 담아 그만큼 만을 보고 듣고 느끼며 판단하고 사고하여 이 세상 아래 서로가 담은 것을 자랑하고 배설하며 숨기며 뒤엉켜 오만 것들을 주고받아야 할 것이고, 그 와중에 잘난 것 제 능력 탓이요, 못난 건 세상 탓이라 오만 주접들을 떨어봐야 할 것이다.


세상이 부강할 때, 기어코 공의와 민의가 판을 칠 때, 사람은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준 지도자를 욕보일 것이요, 그에 따른 업적을 비하하고 힐난하며 우습게 여기다 못해 누구나 그 자리에 올라도 당연시되는 결과라 여길 것이라.


세상이 휘청일 때, 기어코 공의와 민의가 판을 칠 때, 사람은 이러한 세상을 해결해줄 지도자를 갈망할 것이요, 그에 따른 업적을 드높이고 추앙하며 동경하다 못해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그 자리에 올라 그 당연하게 여겼던 세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라.


“그렇다면 이 땅에 새롭게 뿌리내릴 로마의 콜레기아는 대저 어떠한 이름을 내세울 수 있는가? 중세의 길드이자, 혁명 프랑스에서 자코뱅과 같은 이들을 품었던 클럽이자 이들이 기거했던 수도원을 과연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스윽- 스윽- 스윽-


이에 붓을 들은 포홍은 이내 백지 아래 가장 힘 있는 글씨로 익숙하면서도 이 시대에 아직 존재하지 않을 사설 기관의 이름을 적어 내렸다.


- 서원(書院).


“그래, 이게 내가 내어놓은 답이다.”


이는 과거 효령황제 유굉이 설칠 적에 서쪽 동산이자 정원이자 그에 속한 여덟 교위를 두었던 서원(西園)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 교육기관이자 향림, 산림의 본산이요, 그들의 결집과 학문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교육적, 이익적 목적을 위해 운영되었던 별개의 기관이자, 심지어 이 땅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유교적 색채에 가장 어울리는 기관을 뜻하는 것이며, 그와 더불어 작금에 내어놓은 모든 가치를 포용할 수 있는 실로 혁신적인 기관을 뜻하는 것이다.


콜레기아에 가장 부합하며 그 대상 자체가 근대 시기에 진압하는 이들에게 수도원과 같은 기능을 제공해줄 수 있을뿐더러 먼 훗날 쓰일 학회, 대학 등으로 쓰일 칼리지에도 어울리다 못해 도제 등을 양성하는 직업학교, 교회나 절과 같은 종교인들의 결집소 역할을 수행하며 정치 담론과 사회운동을 위한 사무처와 정당의 기반처가 될 수도 있는 시대 점핑을 위한 가장 중요한 본질.


이를 알기에 포홍은 굴리엘모스의 청에서 비롯된 석공들의 콜레기아의 설립을 허락했다.


- 황명에 의거, 서역에서 넘어온 이들의 조합에 해당하는 서원(이하 콜레기아)의 신설을 허락한다.


또한 ‘서원’이라는 새로운 명칭과 더불어 서원령이라는 별개의 칙령까지 내려 혹시 모를 엇나감을 미연에 방지하도록 조치했다.


- 하여 새롭게 서원이라 명명한 모든 조합(이하 콜레기아)은 제왕(이하 진왕)을 뜻하는 옥새의 인장 아래 존립할 것이며, 그 존재의 이유를 설파할 수 있는 이들만이 이하 추천을 받아 사부회의 심사를 거쳐 건립될 것인즉, 그 분류는 왕립서원과 공립서원으로 나뉠 것이며, 다수의 자율적 결집에 의거하여 다양한 목적을 위해 존재토록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실상 미리 던져놓은 사부회라는 불쏘시개에서 비롯된 계몽사회로의 진입을 위해 벌어진 사회적 격동 위로 들이붓는 엄청난 양의 기름이자, 변혁과 방임을 운운하는 사이 장안성 일대에 또다시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촉매제가 되었다.


* * *


쾅- 쾅- 쾅-


“아니, 이게 지금 무슨 소리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고작해 흙 만지고 쇠나 두들기는 일개 공인들에게, 그것도 이 땅의 이들이 아닌 저 이억만리 타국 땅의 이들에게 저들의 나라에서나 존재할 법한 사이한 집단을 허락하셨다니?”


“그러게 말이옵니다.”


“가뜩이나 사부회다 뭐다 정신 못 차리는 상공인 놈들 설치는 것도 거슬리는 판에, 대저 이래서야, 원.”


“하오나 그만큼 전조인 한의 전철을 밟고 싶지는 않으신 것이라 여겨지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허나 이는 애초에 너무 노골적이야! 새로운 사농공상의 계층사회를 손보겠다, 새롭게 내세운 사부회가 막연히 둥둥 떠다니니까 아예 이를 위해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주신 것이 아닌가!”


공적인 절차에 따라 장안성의 각 기관을 비롯한 구석구석에 이와 관련한 벽보가 붙었고, 그 벽보를 통해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채, 불같이 불만을 토로한 세력은 이제는 유림이 아닌 사림이라 불리게 된 잔존 유자들과 제자백가를 포함한 사대부 계층의 이들이었다.


그나마 학문과 깊은 연이 없던 토호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에 학술과 이념을 비롯한 사상에 매달려 자신들이 이 땅에 존재해야만 하는 연유를 정당화시킬 수밖에 없는 이들은 당장에 자신들에게만 허락되었던 파당과 계파정치를 비롯한 집단화된 움직임을, 강론과 경연 등을 비롯해 그 사회의 주가 되는 행위에 해당하는 특권을 넘겨주는 이번 조치에 대해 직접적인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뜩이나 그 입지는 좁아지는데 기존의 연줄과 잇속으로 이어진 행위를 비롯한 계승의 대물림은 이제는 사족이 아닌 이들에게도 사족과 같은 질긴 생명력을 선사하는 규범이자 새로운 활로가 되었고, 그 와중에 이를 돌파할 돌파구가 딱히 보이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일선의 혼란과 불만의 목소리만이 우선적으로 넘실거릴 뿐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들은 그것이 아직 자신들에게도 마냥 이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임을, 자유를 넘어선 방종이자 지역사회 깊숙이 뿌리내릴 기회를 주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이놈이 장안 땅에 요상한 서역의 유행을 풀어놓더니, 이제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원. 서원이다 뭐다 하더니 결국은 이 또한 서역에 존재하던 것이라고?”


“예, 스승님. 직공들의 조합을 뜻하는 콜레기아라 하는데 실상 서역에서 건너온 석공들이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는 낙양의 공사를 비롯한 여러 문제의 해결을 비롯해 이 땅에 온전한 정착을 바라는 이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압니다. 다만 우선 출신과 소속을 비롯한 동업의 이들끼리 조직을 형성하고 거점을 마련한 뒤, 제자를 받거나 일감을 소개받거나 영업을 하는 등, 그저 이 땅의 이들이 벌이는 일반적인 상공인들의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굳이 이는 서역에서 먼저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에 따른 용어와 개념이 다르게 정립되어 있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라.......”


반대로 일찍부터 이를 깨닫고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으니 같은 사림에 속한 사족들이라고 다 같은 사족이 아니요, 벌써부터 콜레기아이자 클럽에 어울릴 이들 또한 그에 따른 두각을 드러내는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에잉, 못난 놈. 아직도 스승보다 사형이 좋으냐?”


“예?”


“애써 눈 가리고 모르는 척할 필요가 없다. 왜, 네놈 사형이 이를 비밀로 하라고 하든?”


“스, 스승님! 그게 아니라.......”


“허면 이미 사부회라고 세상 들쑤셔놓은 마당에 새롭게 칙령까지 반포할 정도로 일을 키웠는데 왜 입을 다물고 있어?”


“그게, 사실 사제 또한 이에 대해서 딱히 사형께 들은 내용이 없습니다. 그저 서쪽에 자리한 대진국, 그러니까 로마에 대한 유행만을 부추겼으면 한다는 것이 전부였던지라......”


“것 참, 그놈의 계몽, 계명, 개벽 어쩌고 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깨여,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라 하는구나.”


“예?”


“너는 이를 두고 어떻게 생각하냐? 대다수의 사족들이 기존의 학당이자 향교와도 같은 이러한 시설을 왜 허락했다 생각하는 게야?”


“필경 기존의 사농공상의 계층구조에서 사인들에게만 허락되던 특권이 해지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허나 전조인 한조의 파멸과 함께 이루어진 유학의 몰락과는 그 방향성이 다르다 생각합니다. 사형을 비호하는 것 같아 쉬이 운을 떼긴 어렵지만, 그래도 새롭게 반포된 칙령과 내용을 살펴보면 꼭 저들의 편의를 봐준 것은 아닌 것 같사옵니다.”


특히나 이에 직접적인 노출과 교류가 있었던 제자인 부간과 얽힌 갑훈의 경우, 이미 어렴풋이나마 이것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더듬어가며 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흐음.......”


“스, 스승님. 왜, 이렇게 매서운 눈빛으로 제자를 노려보시는지......”


“정말로?”


“예?”


“확신할 수 있더냐?”


“확신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자백가를 비롯한 이들의 생존을 보장하며 어떻게든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는 생각......!”


부웅-


“어쭈? 이걸 피해?”


“왜, 왜 또 때리시려 하십니까!”


“아무래도 그게 정답인 것 같아서.”


“예?”


“제자야, 다른 거 다 떠나서 예?가 너무 많은 것 같지 않더냐?”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아니, 그전에......, 어? 허면, 이는 제 추측이 맞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흐응, 이놈이 사부회라고 마냥 이 스승을 몰아세워 미안하긴 했던 모양이지.”


“설마, 그럴 리 있겠습니까? 애초에 전조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요. 진과 한처럼 하나의 학통으로 귀결되어 다른 학문이 사장된 세상의 폐단을 모르지 않으니, 애써 허락한 제자백가가 다시금 몰락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겁니다.”


“옳거니, 더 해보거라.”


“그러니까 제자백가의 난립을 통해 일시적으로 사족들의 영역이 넓어졌는데 이것이 새롭게 벼슬자리를 비롯한 정치적 활동까지 허락하게 되었으니, 제자백가의 난립이 아닌 사농공상의 난립이 되면서 다시금 그 입지가 확연히 줄어들게 되었지요. 재곡의 가치가 올랐고, 학문의 가치가 사장되는 판에 그에 따른 소멸과 위축을 우려하는 겝니다. 아닌 말로, 스승님과 제가 맹자와 고자가 되어 논했던 담론 속 우려처럼 말입니다.”


놀랍게도 이제는 얼추 그 추론의 과정 속에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부간이었다.


그렇기에 이를 듣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갑훈 또한 그런 부간이 제게 남긴 담론 속 발언을 다시금 회상했다.


‘지독한 현실의 끝에 부를 위해 사람의 희생될 것이요, 대다수의 이들이 가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지독한 이상의 끝에 사람을 위해 부가 희생될 것이요,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이들이 가난할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양 극의의 끝에는 그리도 도망치려고 했던 서로가 가장 멀어지려 했던 우려의 그림자가 자리하는 법이라, 서로가 서로를 향한 결말이 정해져 있음과 같습니다. 결국 그 어딘가에 멈춰선 세상만이 오직 그 모순으로 얼룩진 세상만이 인세를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음에, 세상이 변하는 것이 두려워 이를 변치 않는 것으로 놔둔다 하면 그 또한 요원하겠지요. 그러나 이 또한 방향을 다를지언정 노력이고 실천 아닙니까?’


“그래,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제야 조금은 포홍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갑훈은 실로 기특하면서도 오만방자한 이 제자를 생각하며 그 입가에 미소를 드리울 수 있었다.


“이상에 잡아먹힌 현실도 문제고 이상을 내다 버린 현실도 문제라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순 없으니, 그 중용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겠다는 게로구나. 네놈만의 방식으로, 모두에게 이를 강제하면서까지 말이다.”


“스승님......, 드디어 사형의 바램을, 그 진의를 이해해주시는, 크흡!”


그리고 이 감동스러운 순간을 목도한 부간의 눈가에 감격에 젖은 희뿌연 물기가 서렸다.


따악-


“아아악!”


그리고 그 감격에 젖은 물기는 애써 정확히 정수리를 타격한 고통과 함께 사라졌다.


“사내놈이 눈물은 아주, 뭣하고 있어? 어서 가서 새로이 서원을 건립하겠다 놈에게 그 의중을 밝히던가 아니면 관청에 가서 신고를 하던가 해야지?”


“예? 예!”


그렇게 다급히 눈물을 닦고 미소를 지은 얼굴로 밖을 나서려는데 뒤에서 스승인 부간의 외침이 뒤따라왔다.


“잠깐! 거기서라, 이놈아! 서원을 허락받으려면 그에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아차차! 그렇지요?”


“맹자 서원이다.”


“..........!”


“부정할 것 없지?”


“예.”


“허면 다녀와라, 아마 포홍 놈도 당장에 이를 반길 터이니.”


그렇게 전각을 벗어나 내리쬐는 봄 햇살 속으로 뛰어든 부간은 어느덧 그 입가에 드리운 미소와 더불어 내리쬐는 밝은 빛 속으로 사라졌다.


이는 이 땅에 두 번째 콜레기아 생겨나는 순간이자, 일찍이 유학이 뿌리내렸던 땅에 가장 그럴듯한 서원이란 명칭에 부합하는 최초의 서원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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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5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4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6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8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0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5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9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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