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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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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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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작성
22.04.03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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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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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20쪽

365화 - 뒤집힌 세상 속 이름을 날린 이들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회귀자들(2)

DUMMY

콰앙-


육중한 소리와 더불어 정갈한 저택의 정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그와 더불어 놀란 이들이 우르르 머리를 조아리며 좌우로 갈라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이 저택에 모여든 손님이 워낙에 많아서일 것이다.


“어디 있나?”


“그, 그게 내실에........”


“안내해.”


“예, 예!”


거기다 궁에 있어야 할 이가 돌연 궁 밖을 뛰쳐나왔으니, 이게 무슨 일이냐 하면 평정의 와중에 누가 사고를 쳤다고 소식을 알려오는 바람에 포홍이 또다시 격 없이 자리를 파하고 행차하신 것 되시겠다.


쪼르르륵-


“왔느냐?”


“왔으면 왔다고 하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가 이놈아?”


“아니, 이제와 미쳤다고 이딴 이야기를 하는 저의가 뭡니까, 대체! 지금 저 저자 밖에 풍문도 못 들었어요? 어? 진나라 학계의 큰 어른, 모든 제자백가들의 우상, 관서의 으뜸가는 학종의 폭로! 내가 죄인이다. 포홍, 그놈은 아무 잘못도 없다! 모든 건 다 내 잘못! 이게 무슨 개소리냐고!”


그렇게 아랫것의 안내를 받아 내실로 들어가니 저 홀로 마음 편히 차나 기울이는 우리 스승, 제 잘난 맛에 사는 고집스럽고 원한 따위 쉬이 잊지 않는 속 좁은 왕사 어르신께서 계시는데 이제는 진정 그 제자를 열받게 만들기로 한 모양인지, 그 앞에서 상을 치고 난리를 쳐도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


“귀청 따가워 죽겠구나, 난 또 무에 별일이라고.”


“아니, 진짜 단단히 미친 거요? 그도 아니면 진짜 하늘나라 갈 때가 돼서 이러는 거요? 노친네답지 않게 대체 왜 그래? 어? 아니, 뭐 내가 언제 서운하게 해드린 적 있나?”


그도 그럴 것이 작금에 저자에 깔린 풍문이 가히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가문에 내쳐진 자신의 비사가 까발려진 것은 물론, 그 와중에 그리 노예마냥 팔려 와 고생고생 생고생을 다하며 량주에 삭풍이 부는 매서운 저자 생활을 이어나갔던 과거도 흘러나온 데다가 제일 중요한 대목인 갑훈의 눈에 들어 그의 품에 들었다 정작 그가 자신을 내쳐 그 목이 잘릴 뻔했다는 이야기가 지금 장안성 안팎을 들썩이게 만들고 있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과연 뭐냐? 어린 게 크게 사고 안 치고 잘 컸네, 역시 영웅은 어릴 적부터 시련이 남다르네, 결국 유학이 또 호족이 개새끼네 어쩌네 하는 이쪽에 대한 동정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쌓아 올린 진나라 제일의 학사, 학종, 우리 위대하신 진나라 최고의 교육자 선생께서 제 청명 하나 챙기겠다고 애새끼 하나 목이 잘리는 형장으로 보내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장안성의 학계는 난리가 났다. 어디 학계만 난리가 났을까? 정계, 재계는 물론이거니와 가뜩이나 장인이 돌아와 상공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인들에게 기가 죽어 있던, 소위 돈 없고 배움만 그득한 우리 가난한 청류계? 야권? 소위 이 시대의 글쟁이 좌파 포지션 인사들이 난리가 나버렸다.


이건 필경 누군가의 음모요, 진나라에 흠집을 내기 위한 조치다, 진왕과 그 스승을 갈라 내부의 갈등을 만들려는 모략이다, 그 배후는 당연 관서의 계한이고 뭐 오만 해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죽하면 제자백가의 후예를 자처하는 여러 학종의 이들과 그 제자들까지도 몰려들었는데 그래서 아까 이 집 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 그리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탁- 쪼르르륵-


“이놈아, 세상이 진실을 알아야지. 배운 놈들도 어디 제가 배운 것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깨져 그에 배신도 당해보고, 제대로 그 머리가 깨져 봐야지. 그래야 그 잘난 청명 하나 지키려고 생사람 잡는 일이 없지.”


“노친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이 눈앞에 스승이라는 양반은 차를 꼭 술처럼 따르며 비통한 표정에 잠겨있었다.


쭈우웁-


“크흐.”


지난날을 후회하는 이처럼, 마치 감상에 취한 사람처럼 젖어든 눈시울 속 그리 술마냥 따른 잔을 단숨에 들이키며 내재된 회한을 쓰라리게 곱씹고 있었다.


“이놈아, 사람 등한시한 놈들의 배움이 암만 높아봤자, 그거 남을 위해서 절대로 안 쓴다. 다들 저를 위해 쓰지. 그것도 제 청명 그 하나 드높이려고 무슨 짓인들 못 할까? 내가, 그러했어. 내가, 내 청명에 흠집나는 게 싫어서, 네놈 하나 형장으로 보냈다. 죽든 말든 내 청명에 오점은 없어야 했어. 왜. 나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깨끗해야 하거든. 완전무결까진 아니어도 옳아야만 해. 주변에서 떠받들어주고 추앙할 정도로 아름다워야 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디 가서 꼭 대접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고, 그러려면 평생을 좋은 사람인 척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남을 속이면서 착한 척, 겸양 있는 척, 교양있는 척, 제 더러운 본성 숨기고 아닌 척 하면서도 제 욕심 잘 포장해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다 꾸미고 사람 속여먹는 사는 맛에, 이를 착각한 추종자들 부리는 맛에 산단 말이다.”


어째 듣다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보던 이들을 묘사하는 것 같은데 이 양반이 이러한 고뇌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어떻게 보면 작금의 세상을 망하게 한 유자들, 사대부들을 관통하는 위선에 입각한 화두의 재림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이 양반은 그런 위선자들과 결이 다른데 고작해야 제게 상처를 입힌 일에 그리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게 얼마나 역겹고 위선적인지 아느냐? 어쩌면 이를 알면서도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과신하며 평생을 좋은 놈이라 믿고 살아왔는지 몰라. 헌데 그리 쌓아 올린 게 결국에서 뭐 좀 알아주고 떠받들어주고 하니까 한 사람 매장시키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병신으로 만드는 것도 일도 아니야. 이 정도 청명을 갖추면 되려 사람을 부리게 된다. 사람들의 의중을 멋대로 정하고 이끌게 돼버려. 해서 내 죄인이라 낙인을 찍으면 그게 진실이 돼버리는 게다. 선생이다 무슨 님이다 뭐다 불리게 되면, 주변에서 뭣 모르고 그리 떠받들어주게 되면, 그에 쌓인 교만이 내 마음을 먹는 게고 그게 극에 달하면 제 본성 구린 거 다 알면서도 세상을 속이게 되는 게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무지렁이들 불러다가 줄 세우며 놀고 그 와중에 세상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데 선악을 구분짓는데 나의 선택이, 나의 의중이 이를 결정짓는 인장이요, 도장이 됨을 알면 그에 오만 도장을 찍어내며 나의 선, 나의 정의, 나의 판결을 부르짖기 마련이야. 실로 내 세상인 게지. 그 똥 하나를 찍어뿌리는데 수많은 이들이 열광한다. 똥 같은 놈들이 똥내 맡고 환장하는 게지. 더 무서운 건 똥 같지 않은 놈들도 이를 계속 맡다 보면 똥 같은 놈들이 된다는 게다.”


“그래서, 이제와 이리하는 거요? 허면 의미 없소, 뭐, 나야 노친네 그렇지 않은 사람인 거 다 알고, 설사 그런 사람이라도 당시에 내게 손 하나 내밀지 않던 다른 인간들 보단 노친네가 백 배, 천 배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도 아오. 아닌 말로, 세상에 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에 비하면 노친네의 흠결은 달빛 아래 반딧불이 보다 작소. 그 정도 흠결이 없으면 되려 이상한 게지. 그 이후 커서 만났어도 어떻게든 내게 사람 되라고 질책한 게, 노친네인데, 아닌 말로 고마우면 더 고맙지. 되려 이전에 내가 무례해서 더 미안한데 말이요.”


“흐흐흐, 못난 놈. 못날 정도로 착한 등신 같은 놈.”


“뭐, 뭐가 어째? 등신? 아니 찻병에 대체 뭘 담이 끓인 거요? 진짜 뎁힌 술이라도 들이키는 거요, 지금?”


“이 빌어먹을 놈아, 나 같은 것도 스승이고 좋은 사람이라고 니가 지금 용서를 다 하냐? 크흑! 흐윽!”


“아니, 지금 설마? 울? 우는 거요? 와, 나 미치겠네, 진짜. 저번에는 제자 놈 기죽게 만들었다고 욕 먹었을 텐데, 이제는 스승까지 울렸다고 또.......”


진짜 살다 살다 별 꼴을 다 본다고, 오래 살면 별 희한한 걸 다 본다고 하더니 그리 오래 살지 않아도 이리 요상한 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크흡! 하아......., 못난 제자 놈아! 한 잔 따라봐!”


“노친네! 이거 차 아니지? 곡차지? 그지? 술이지, 이거!”


“곡차 아니야! 자식아! 그러니까 그냥 따라!”


딴에 그런 이쪽이 고마운지 눈물 콧물 한번 슥 닦고 잔 내미는데, 척하면 척이라고 술인 줄 알았건만, 정작 또다시 욕만 처 먹고 남은 찻물이나 따라주게 되었다.


“분명 차향은 차향인데, 이상하네. 아니, 차를 마시고도 취하나?”


“거짓이 진실을 잡아먹는 게야, 이놈아. 사람 믿고 싶은 대로 보이고 느끼게 되는 게, 그게 무서운 착각. 아니, 착란을 불러일으킨단 말이다.”


뭐, 크게 보자면 선동이라던지 최면이라던지 몽유병이라던지 하는 예시가 있을 테고 작게 말하면 특정한 방향과 제한된 관점의 소통과 정보의 제약 등이 있을 것이다.


뇌의 감각과 작용이라던지 사람의 자각과 판별, 그리고 인지에 대한 것들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인데, 일례로 정치적 사상에 입각해 내가 지지하는 쪽의 모든 것은 선으로 느껴질 때가 있고, 설사 선이 아니어도 저쪽의 이들이 잘못한 것보다 덜한 잘못이라 느껴질 때가 있듯 이러한 착각은 똑같은 현실을 살되 사람을 두고 다른 세상을 살게 하는 매개와 촉매가 된다.


그나마 뉴스나 기사에 당사자가 아직 나오지 않았어도 지레 저들 쪽 이야기일 것이라 착각했다 그 내용을 확인하고 부끄러워 한다거나 틀린 걸 깨달았으면 덜한데, 그와 상관없이 이조차도 그들이 무조건 원인이라 결부시키고 자정이 되지 않은 경우는 실로 위험한 경우라 할 수 있고 정치적 성향이 아니어도 무당이나 미신 혹은 사이비 등으로 대두되는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이를 환치시킬 수도 있다.


물론, 절대다수가 믿는 종교요, 대중의 꼽은 진리라고 해도 그것이 세월이 지나 아닌 것이 되어 밝혀지는 순간이 있고 그 와중에도 특정한 것에 심취한 비틀린, 마치 최면에 걸린 듯 다른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언제고 튀어나온다. 고로 그조차 마냥 옳은 것이라 맹신해선 안 되는 것이나 그게 어디 또 쉬운 것이냐고 함은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다.


특히나 고립화된 사회, 여론조차도 특정한 계층이나 이름난 이들의 발언과 행동에 의해 결정지어지고, 다수가 그에 따른 자유로운 의견을 그 영향력을 보장받아 주장할 수 없는 사회의 경우는 소위 마녀사냥과 같은 사회문제와 그에 따른 폐해가 뒤를 따르는데, 지금 과거의 자신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을 털어놓는 포홍의 어린 시절 또한 그 대표적인 예시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거 바로 잡으려고 이러는 게요?”


“진실을 덮고 아름답게 포장된 이야기, 어디 가서 자랑하기 좋은 치장거리, 필경 사람을 매달고 죽이고 태워야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허나 적어도 어디에선 억울함을 낳을 게고, 다른 곳에선 분풀이의 대상으로 이용될 여지는 충분하니, 사람 하나 제물로 삼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그게 평생의 네 발목을 잡았어. 고로 이 정도 풍문이면, 네 과격한 행보, 불온한 어린 시절, 거기에 유학을 비롯해 대나무를 싫어하는 것까지, 해서 벌인 과거의 참살까지 모조리 설명이 가능한 게 된다. 특히나 유학의 위선과 실체가 드러나 자멸한 이 마당에 그 폐혜를 가장 먼저 접한 네놈의 이러한 행보, 선택, 결단이 내린 당위성은 더더욱 빛나게 될 게야.”


그러니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더럽혀지는 것을 감수하겠다는 것인데, 다른 이도 아니고 그 일평생을 청명으로 살아오다 못해 나중에는 공자를 추종하는 공위병들에 대비되는 맹위병들까지 이끌게 되는 양반이 이러한 선택을 내렸다는 것이 소위 기분이 더러웠다.


묵직한 게 심장을 후벼파는데 실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호의요, 배려였다.


파악-


“미쳤어? 세상 뒤집혔다고 본인도 그리 뒤집히면 어떻게 해?”


“세상이 뒤집혔는데 어찌 사람이 안 뒤집히겠더냐?”


“그렇게 따지면 나는 뭐 좋은 사람인 줄 알아? 이 세상에 나만큼 나쁜 놈이 어디 있다고? 어? 나만큼의 악한이 어디 있어? 나만큼 이기적이고 잔혹한 놈이 어디 있냐고? 당신이 뭔데 이제와 착한 척이야?”


그 더러운 기분을 한껏 담아 그 멱을 틀어쥐는데,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이제와 너무 늙어버린 건지 딸려오는 노친네 몸뚱이에 그 어떠한 맥아리도,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승. 네놈의 못난 스승. 네놈의 거울조차 되어주지 못하고, 네놈이라는 제자가 있음에도 이를 굳이 보려 하지 않았던 못난 스승. 혹시라도 그게 흠결이 될까 거울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던 이기적인 스승. 스승의 자격조차 없는 아주 못난 스승.”


“..........”


“미안하구나.”


“하아......, 빌어먹을 갑 장사. 이 개 같은 늙은이야.”


그 와중에 더 묵직한 것이 가슴을 파고 들어 후벼파는데 어째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지려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게 딱이지, 애초에 왕사고 나발이고 네게 난 그 빌어먹을 갑 장사가 딱이다.”


“그건 또 뭔 소리야?”


“왕사 자리, 내려놓을 게다.”


“뭐? 아니, 왜?”


“왜는 이것아, 자격 없는 이가 애먼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으면 안 되는 것도 몰라?”


“아니, 그럼 갑 장사말고 왕사 할 사람 누가 있다고?”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이제 그럴듯한 고관의 직함은 다 내려놓고 이전처럼 살련다.”


“이전처럼이라면? 진짜, 그냥 갑 장사?”


“그래, 이놈아. 네놈 그리 졸졸 따라다녔던 막내 놈을 비롯해서 조만간 조정에 출사할 어린 것들 정신 쏙 빼놓을 생각이다. 내 그간의 과오가, 이전의 유학의 자멸과 크게 다를 바 없음이야. 스스로 돌아보지 못하고 그 청명에 종속되는 괴물이 되는 게, 뒤에서 오만 구린 짓 다 저지르고서도 앞에선 좋은 사람 되려 하는 거, 그거 포기 못 하면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자기 확신이 과해지고 자신들만 옳다 여기는 와중에 저들끼리 썩게 되고, 저들 썩는 거 그조차도 외면하고 알면서도 방관하게 되면, 그때는 진짜 답 없는 게야.”


갑훈의 눈을 보아하니, 그 눈동자에 힘이 실려 반짝이는 게 어지간한 어린 것 이상이었다.


“저 스스로 옳다 여기는 것들이 설치는 것만큼 무서운 세상도 없지만, 저만 옳다 여기는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 그리고 이 진나라에서 이에 가장 유력한 이들이 바로 배움, 그 하나에 집착해 옳음을 놓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되려 총기를 뛰어넘은 살기요, 독기임을 깨달았을 때, 실로 그 총명하게 빛났던 눈동자의 안광은 달빛 아래 번들거리는 만곡도의 칼날로 변해버렸음은 깨달은 포홍은 이내 그가 노골적인 칼춤을 추리란 것을 알았다.


“그거, 자칫 잘못하면 자살행위요. 제 손으로 제 몸에 상처 내는 일이고, 제 손, 제 발, 제 살 잘라내는 일이요. 병신이 된다고. 그것도 가뜩이나 내 장인이 돌아온 이 판국에 제 몸뚱이에 칼침 놓는 미친놈이 어디 있소?”


“이때, 솎아두지 않으면 더한 자기 확신과 혐오를 가질 게다. 저들이 못 가진 권력, 저들이 못 가진 뒷배, 저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해볼 부패, 평생을 부러워하며 그리되지 못한 것에 한이 쌓여 매양 비판, 힐난을 일삼다가 기회가 닿아 정작 저들이 그만한 권력을 가지면 그놈들처럼 세련되기는커녕 되려 그에 빠져 주체 못할 부정을 저지르기 바쁠 게야. 본디 못 가져 본 놈이 그걸 처음 가졌을 때가 우려스러운 게다. 감당 못 할 게 그 손아귀에 들어갔을까 봐, 그에 빠져 정신 못 차리고 헛짓거리를 할까 봐. 거기에 맞들려 더한 위선과 부정을 저지를까 봐. 그럴 바에야 아예 시간을 두고 저들이고 남들이고 어찌 사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게 낫지. 이 정도면 위선은 못 막아도 그걸 가지고 저들만 특별하다며 유난 떨지는 않을 게다.”


그렇게 노골적인 예고나 다름이 없는 선언에 할 말은 잃었다.


애초에 저 고집쟁이 노친네가 저리 나왔다는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은 저질러진다는 뜻이다.


“이거 뭐 평정이고 나발이고 당장에 오만 소송에 고발에 자진 사퇴만 줄줄이 터지겠네.”


“사조(辭曹)와 결조(決曹) 그리고 정위(廷尉)의 이들이 고생이 많을 게야.”


사조는 승상부에 속한 이들로, 소송에 관한 사무를 주장하고 결조는 삼공구경 중 구경에 속한 이들로서 죄와 형법에 관한 사무를 주관하고 있다.


뭐, 당장에 한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는 터라 이해는 빨랐지만, 아닌 말로 청렴결백한 이들 사이에 줄줄이 고변이 터져 나올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그 머리가 지끈지끈해질 지경이었다.


“평정 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휴정하고 나온 자리요, 한데 예서 이리 더한 일만 터트린다고? 지금 내 장인이 어찌 나오는지는 알고나 있는 거요?”


“딴에 화려하고 거국적으로 복귀했다고 그 신경이 곤두선 모양인데, 지금은 네놈 장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때가 맞아.”


“뭐요?”


“네놈이 일으킨 이 이주 경쟁, 이민 전쟁은 필경 끝이 온다. 네놈이 머리를 안 쓴 것도 아니고, 그때까지 원 없이 달려야 할 것 아니냐? 암만 네놈이 관동에서 합종군을 와해시키고 그들의 식량을 취득했다고 한들, 국력을 갉아먹는 재곡(財穀) 경쟁도 모자라 그에 뒤이을 전쟁의 전비와 보급까지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겠더냐?”


“........!”


그러나 그에 머리가 깨이는 순간이 도래하였으니, 그 순간만큼은 저를 뛰어넘은 스승의 지모에 세상이 달라 보일 지경이었다.


“당장에 눈이 녹아 서쪽으로의 길이 뚫려도 당장에 소득이 확보된다는 보장도 없고 설사 들어와도 시일이 걸려, 아닌 말로 지금만큼 돈 굴리는 상공인 놈들, 부호 놈들 재주껏 달래주고 뜯어먹을 판이 코앞인데 되려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놈들이 자발적으로 제 것들을 내놓긴 하겠더냐?”


“하지만........”


“에잉, 모자란 놈. 이놈아, 네놈이 따로 첩을 둔 것도 아니고, 여편네도 하나에 부부금실 좋은 걸 모를 리 없는 네 장인이다. 암만 네놈 미워해도 모든 걸 물려받을 제 손주 생각하면 그에 투자하는 게 하나도 아깝지가 않단 말이다. 거기다 제놈들에게도 이를 기회로 여기도록 만들어야 한다. 네놈과 함께해온 장수들이 군부에 실세가 되어 막강한 권한을 장악했듯, 네놈을 위해 많은 것을 내놓을 그놈들 또한 이를 저들의 기반을 위한 합당한 투자처라고 여길 것을 어찌 몰라?”


핏줄의 연, 손주와 할애비를 비롯해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구석을 긁어내는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기회주의적 본성을 지닌 인간 앞에 돈 냄새를 풍기라는 조언까지, 이거 현실에 찌들어도 너무 찌든 게 아닌가 싶은 조언이 고아함의 끝을 달릴 이의 입에서 나왔으니 더더욱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 계기는 이 나라에서 으뜸가는 이의 아주 솔직한 고변을 바탕으로 시작되겠지. 한조와 유학의 공멸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하여 반성과 참회의 시간을 가질 게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자진 사퇴와 이를 거부하는 이들을 고발하는 고변들이 이어질 게다. 그리고 그 권력의 공백을 활용하는 건 순전히 네 몫이야. 뭐, 원론적으로는 부유한 이들을 꼬드기는 것이 제일이나 네가 생각해둔 바가 있다면 나름의 안배를 해도 좋겠지.”


“가, 갑 장사. 아, 아니......, 정녕 갑 장사 맞소?”


“왜? 허면 이제와 네놈 스승도 아니라 할 참이냐?”


“아니, 그게......, 지랄 맞은 성격을 보아하니 내가 아는 갑 장사 맞는 것 같긴 한데, 어째 그래도 일평생을 정도를 추구하던 양반이 갑자기 이리 되니까.......”


“똥 싸는 소리 말고, 어디 잘해 봐라. 뭐, 지금까지 잘 했으니까 믿겠다만, 그래도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게야.”


끼이익- 쿠웅-


그렇게 갑훈의 기거하는 저택의 대문이 굳게 닫혔다.


축객령 아닌 축객령에 포홍을 필두로 그리 모여든 이들이 우르르 쫓겨나게 되었고, 그에 얼마 지나지 않아 갑훈이 돌연 왕사의 자리를 내려놓고 사퇴하겠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장안을 강타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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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2.04.06 08:41
    No. 1

    ㅠㅠ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4 필성필성필
    작성일
    22.04.06 20:20
    No. 2

    멋진 스승으로 회귀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잿더미현실
    작성일
    22.05.02 20:38
    No. 3

    즉슨 현시점에는 타협이 필요하다는건가. 하기야 주인공이 대외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정이 많은 모습을 보여와서 아는 이들로선 현시점에서 따로 정략을 보여줄 필요성을 느낀듯하네오7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4 필성필성필
    작성일
    22.05.07 22:16
    No. 4

    아무래도 원시 봉건적 세력화 개념이 남아있기는 합니다. 결국 작은 조각들을 합쳐 큰 조각을 이루다보니 결국 이 시대에 큰 세력을 자랑했던 조조의 위와 손오 또한 그러한 봉건적 결합체나 지역별로 기반을 둔 정치 세력화된 측면이 강하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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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66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4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58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58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59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4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5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6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49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5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47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7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5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2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2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67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0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09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2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79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1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0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2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5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58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7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86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4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1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0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6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5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0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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