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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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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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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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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24쪽

351화 – 그 어둠이 자리한 하늘 속 달과 별을 보며 인간은 방향을 잡아 나아갔으니

DUMMY

그렇게 개혁은 무기력해진 기존의 질서를 상징하는 벽을 부수고 넘어온 이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계몽은 그리 벽을 부순 이들을 따르는 이들의 솔선수범과 더불어 그에 몸담은 모두의 실천으로 인해 진행되었다.


“내놔! 이거 내놔!”


푸욱-


“끄흐윽!”


“제발 좀 저리 꺼져라! 제발!”


물론, 이조차 누군가에겐 무지한 이들이 들고 일어난 무식한 선동의 결과물이자 행동력의 일환이 될지 몰라도, 적어도 작금에 자신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일생이 그 밑바닥까지 내몰리고 내몰린 이들이 유일무이하게 알고 있는 원인을 지워내기 위해 이를 방해하는 모든 이들의 바짓가랑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늘어졌다.


스걱-


“꺼흑!”


“뭣들 하는 게야! 다 죽여버리지 않고!”


“화, 황상.........”


그렇게 다들 뭐에 홀린 듯, 정신을 놓아버린 듯 반쯤 미친 모습으로 달려드는 백성들에게 붙들린 병사들이 곳곳에서 대오를 무너트리며 그들에게 끌려갔다.


그 와중에 제 백성 아무렇지 않게 참하는 황제를 보며 그에 충격을 받은 병사들 또한 정녕 작금에 이게 맞는 것인가 싶은 얼굴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비극 앞에 멍하니 굳어져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는 거야? 이게 정녕 맞는......”


“거기, 얼빠진 얼굴로 뭣 하는 게냐! 막아라! 지금 당장 저 미친 천것들을 막아!”


와아아아아아-


“황상을 뫼셔라! 저 무도한 폭도들로부터 황상을 지켜라!”


곳곳에서 비명이 얼룩지고 사방팔방 대로변과 담벼락을 뛰어넘어 몰려드는 백성들과 그런 백성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병사들의 생존을 위한 충돌은 가히 조금 전까지 저 개봉밖에서 펼쳐진 그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덮쳐라! 이것들도 제 백성 쳐 죽인 천자랑 한패다!”


“뭐? 아, 아니 그게.......”


“다 죽여버려!”


푸욱- 푹- 푹-


“그게....., 허윽....., 그게 아니라.......”


본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신호와 더불어 홍건적들을 막는 쪽으로 병력을 이동시킬 계획을 알고 있던 소수의 군관들조차 예상과 다른 곳에서 지펴진 불씨가 집어삼킨 화마에 휩쓸려버렸다.


“뭣들 해! 어서 달려! 예서 멍하니 놓고 있을 게야! 당장 내 아우가 있는 곳으로! 개봉의 왕성으로 달려!”


그렇게 죽이고 또 밀어내도 끝이 없이 몰려드는 백성들, 아니. 역도들을 뒤로한 채, 다시금 마차에 오른 소제는 제 손에 쥔 칼을 놓지 않은 채, 마부를 질책해 마차의 행렬을 이끌었다.


촤악- 푸히히힝-


“호위들은 황상을 뫼셔라! 이랴!”


“천자가 도망친다! 천자의 무리를 쫓아라!”


수천의 병사들이 반강제로 미끼가 된 사이 거진 지옥귀들이 몰려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그 난잡한 포위망을 탈출한 소제는 호위를 자처한 소수의 인척들과 더불어 한때 위나라의 수도였던, 수십 만의 백성이 몰려들어 일국을 이루었던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삶의 터전의 복판을 향해 나아갔다.


“워! 워워!”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정작 마차들이 다니기 편한 대로의 곳곳은 마치 제대로 된 시장조차 없는 듯 난잡한 좌판과 떠돌이 장사꾼들이 깔아놓은 물건들로 그 길이 막혀있었다.


그 와중에 아직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 듯, 그저 말없이 제 살 물건만을 바라보는 꾀죄죄한 이들이 많았으니 그 거슬리는 아랫것들의 생활이 또다시 소제 유변이 타고 있는 마차의 행렬을 막았다.


“이 병신 같은 아랫것들이 다들 귀가 처먹었나, 뭣들 하느냐! 어서 길을 비키지 않고!”


“..........”


그 와중에 호위를 자처한 소제의 몇몇 인척들이 칼을 뽑아 들며 백성들을 위협하였으나 정작 그 위협에 아무도 꼼짝할 생각이 없는 듯 그 누구도 제가 속한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이것들이 진짜, 다들 쳐 돌았나?”


이에 눈이 뒤집힌 이들 중 몇몇이 묵묵히 자리를 지킨 이들을 해하려 다가서는 순간.


스윽-


장사를 하고 있던 떠돌이 장사꾼 중 몇 명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 이것 봐라? 굼뱅이 새끼도 이것보다 빠를 진데, 이것들이 진짜 죽고 싶나? 자리에서 일어났으면 어여 길 안 비켜? 이거 다 치워!”


한데 어째 그리 일어난 이들이 정작 그 자리에서 비켜줄 생각을 않으니 그 찰나에 이를 지켜보던 소제 유변의 눈에 묘한 이질감이 깃들었다.


“동승.”


“예, 황상.”


“짐이 다시금 신호하면 달려라.”


“예?”


“지금이다, 달려라!”


“화, 황........!”


푸우욱-


그리고 그 찰나 소제 유변의 다급한 외침에 채 반응할 새도 없이 그 눈앞에서 앞서나간 이들의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한 동승은 뭐에 홀린 듯 미친 듯 고삐를 당기며 도망칠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목을 쳐라!”


와아아아아아-


기세 좋게 벗어던진 옷가지와 장포 너머 그 우위 속에 병기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이 없었고, 힘 좋게 생긴 이들이 내달리는 마차의 앞을 가로막고자 무거운 상자와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던져! 마차의 밑에 깔아버려라!”


쿠웅-


“어흑! 마, 말이......!”


푸히히히잉-


“깔려 뒤지기 싫은 것들은 다 비켜라!”


쿠구구궁-


그 와중에 선두에서 내달리던 마차 하나가 흙먼지를 뿜어내며 고꾸라졌고 아슬아슬하게 이를 비켜 간 마차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들 앞에 펼쳐진 비극은, 아니, 그 마지막 짐승의 사냥을 위해 준비된 이들의 잔치는, 하늘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제사요, 인신의 공양은 이제 시작이었으니, 좌우로 그득한 건물의 너머 하늘 높이 솟아난 단 한 줄기의 무언가가 운명처럼 솟아오르며 모두를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삐이이이이익-


“효, 효시!”


“효시다! 성내에 효시가 올랐.......!”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이- 삐이이이-


마치 소제의 위치를 알고 있기라도 하듯, 소제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개봉의 도심의 곳곳에서 마치 하늘을 향해 고변이라도 하듯 수 차례의 효시가 날아올랐다.


철걱- 철걱-


그와 더불어 기와로 이루어진 담장과 지붕 위에 올라서며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으니 거진 그 복색들이 전부 칼잡이들의 그것과 같았다.


제각기 그 손에 날카로운 비수와 던지기 좋은 창과 도끼를 든 이들이 마치 나무 위에서 짐승을 사냥하듯 매섭게 이를 던져댔고, 그 와중에 추를 매단 그물과 작살도 모자라 갈고리가 달린 밧줄까지 쥐고 나타난 이들이 어가의 행렬을 호위하는 이들을 낚아 그 무리에서 떨어트렸다.


곳곳에서 공기를 가르는 굉음과 살점이 터지는 듣기 싫은 비명이 얼룩졌고 그 와중에 지붕 너머에서 날아드는 일격에 죽어나가는 이들의 숫자가 하염없이 늘어만 가고 있었다.


“황상! 곳곳에 놈들이 있사옵니다! 무리 지어 사는 원숭이 새끼들마냥 담장이고 지붕이고 곳곳에서 정체 모를 놈들이 올라서서 마차를 노리고 있사옵니다!”


“누가 그걸 몰라! 그 주댕이 닥치고 달려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왕궁으로 달려라! 대로를 따라 가면, 내 아우의 앞에만 가면 그래도.......!”


쐐애애애액- 푸우우윽-


“어?”


“황상-!”


그 와중에 어디에선가 날아들었을지 모를 날카로운 창이 소제 유변의 가슴 한구석에 틀어박혔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그 하늘이 천벌을 내리듯 환한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창 한 자루가, 한 줄기 섬광마냥 그의 가슴에 안착한 것이다.


“이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뜨거운 무언가가 제 몸 밖으로 뿜어져 나오듯 흘러나왔을 땐, 그간의 세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수그리고 또 수그리며 인내하고 복수의 칼을 갈아야만 했던 일생일대의 한이, 그 썩어 문드러진 감정의 응어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것인 줄 알았다.


“왜......,”


그러나 무의식중에 뜨겁게 젖어드는 앞섶과 이를 어루만지는 손이 딱딱한 무언가에 닿아있음을 알았을 땐, 그리고 그 너머 흐릿해지는 시야와 그 너머로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끈적한 액체의 촉감을 알았을 땐, 그것이 그토록 자신이 발산하고자 했던 응어리가 아닌 다른 것임을 그 또한 알 수 있었다.


“이거....., 어이가 없군.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계승 받아 다음 대에 물려줘야 할 내가, 이 한조의 유일무이한 황제가, 만백성의 위에 군림하는 하늘이, 그 대가 끊기지 말아야 할 이 적제의 후손이 어찌......, 쿨럭! 커릅! 흐으....., 이 무슨 꼴인가?”


자신도 실로 처음 겪게 되는 일인지라 주변의 모든 것이 흐릿해지고 느려지며 좌우에 가림막을 친 듯 그 시야가 좁아지다 못해 뿌옇게 변하는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유변은 이내 제 피에 젖어 붉게 물든 손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허어, 이게 적룡의 우리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이 지니는 용의 본모습인가?”


- 내관 나인들을 뭣들 하느냐! 황상을 치유해라! 지금 당장! 지혈부터 하란 말이다!


-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정신을.......


“곁에서 파리가 앵앵대는 것마냥 시끄럽구나. 드디어 하늘문을 열고 하늘에 들었거늘, 하여 짐이 이 더러운 아랫것들과 같은 육신을 벗어던지고 이 땅에서 드디어 저 하늘에 오를 용의 모습으로 강림하였거늘, 이 붉은 손이 이를 상징하고 있거늘, 어찌 다들 그리들 난리법석을 피우는 게야?”


- 피가 계속 나온다! 지혈해라! 어서!


“놔라! 이것들아! 어찌 그 더러운 손길로 옥체를 짓누르느냐! 이것들이 이제보니 짐의 승천을 막으려는 것들이렸다?”


- 마부는 뭣 하느냐! 속도를 높여라! 왕성으로 속도를 높여! 골목을 벗어나 대로변으로 향해라!


- 예!


두두두두-


- 달려라! 더 달려! 예서 머지 않았다! 개봉의 왕궁이 머지 않았어!


그 와중에 지속적으로 주변에서 앵앵거리는 소리가 그치질 않으니, 그리 주변을 돌아보던 차 난잡한 시장을 벗어나 비좁은 골목까지 지나쳐 어느덧 그 주변이 활짝 열리고 빛이 드는 드넓은 양지에 접어든 것을 알게 된 유변이었다.


더 이상 제 시야를 좁고 어둡게 만드는 가림막도 사라진 듯 보였고, 마치 세상 모든 것이 졸지에 환해진 것마냥 밝아졌으니, 그간 자신을 옥죄고 답답하게 만들었던 주변의 어둠은 저만치 좌우로 멀어지다 못해 그 위로 더 이상 얼룩지고 어둠이 자리한 구름 낀 겨울날의 음울한 하늘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오, 이것이 진정한 천상인가? 이거 눈이 너무 부시구나. 실로 아름다운 곳이렸다?”


그리고 그리 빛이 드는 하늘 아래, 낙양의 황궁만 못하지만 화려함과 고상함을 간직한 천상의 궁궐이 그의 눈앞에 자리했다.


“저기로구나. 짐이 머물게 될 천궁(天宮)이, 승천한 짐이 머물게 될 하늘의 옥좌가 저곳에 있는 게야.”


그러나 그리 새하얀 빛 속에 아른거리는 천상의 궁궐이 자리한 풍광도 잠시, 돌연 그 앞을 가로막는 희뿌옇고 누렇다 못해 시커먼 점들로 얼룩진 거대한 물결이 있었다.


“천상의 백성들인가? 역시 짐을 맞이하기 위해 나왔구나.”


마치 성난 파도와 해일과도 같이, 계곡과 골짜기를 휘감으며 거센 물길을 뿜어내는 거대한 장대비로 인한 홍수의 성난 물결과도 같이 엄청나도 많은 수의 백성들이 물결처럼 쏟아져 나와 얼마 남지 않은 왕궁으로의 길을 막았고 그 와중에도 몰려드는 이들은 어느덧 내달리는 마차의 행렬의 좌우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푸히히히힝-


그 와중에 속도를 내던 마차들이 하나둘 멈춰서기 시작했다.


아니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하나같이 겁에 질린 듯 보이는 어가의 행열의 무리는 거진 일백도 남지 않았고, 그에 비해 못해도 개봉의 왕궁이 자리한 대로의 앞을 막으며 모여든 백성들의 무리는 못해도 수만이 넘는 듯 보였다.


“뭣하는 게야! 저기 짐을 맞이하기 위해 모여든 백성들이 보이지 않더냐! 이리도 성대하게 마중을 나왔다! 오직 짐 하나를 위하여 이리 마중을 나온 인파가 저리도 많거늘! 어서 마차를 출발시켜라!”


- 황상!


스릉-


- 황.......!


“그마아아안!”


그 와중에 딴에 충정을 다한다 그 곁을 보좌하던 동승의 목소리조차 온전히 들리지 않는 유변은 이내 칼을 뽑다 못해 고통 속에 울부짖듯 괴성을 질렀다.


“이제 보니, 네놈이 난신적자렸다? 어찌 짐을 보필해야 할 네놈이 짐의 승천을 막지? 설마 네놈도 저 진나라 놈들과 한패더냐! 그도 아니면 저 연주 것들과 한패야? 설령 그도 아니면, 이 빌어먹을 곳까지 나를 인도해 기어코 내게 승천을 선사한 유비 그놈과 한패더냐?”


식은땀을 흘리며 온전치 않은 몸에, 그 가슴팍에 날카로운 창이 박힌 것도 모른 채, 핏물을 줄줄 흘리며 비틀거리듯 일어서 날카로운 칼끝을 제게 겨누는 그 순간에 동승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것 봐라? 이게, 이게, 지금 짐 앞에 눈물이나 쏟고 있는 나약한 모리배 따위가 옥체를 논해? 썩 꺼지거라! 썩!”


이제는 그 정신조차 온전하지 않은 것이 꼭 노망이 난 임금과 같으며 그 정신이 무너져 버린 암군의 그것과 같으니, 비록 그것이 출혈에 의한 증상이자 그에 따른 정신착란에 의한 것일지라도 그 마지막 자신을 일깨운 군주의 마지막이 이리 비통할 줄은 그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내관.”


“예, 예.......”


“앵속 있는가?”


그렇기에 동승은 지금껏 소제 유변의 그의 건강을 책임지다 못해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비틀거리는 소제의 가슴에 손을 얹어 지혈을 하고 있는 내관을 찾았다.


“그것이......”


“부디 있다고 해주시게, 그렇지 않으면 이 달콤한 꿈에서 깨어 잔혹한 현실을 보게 되셔야 할 것 아닌가?”


그 또한 충정임을 모르지 않으니 필경 거짓을 말해야 함에도 떨리는 목소리로 기어코 진실을 전하는 내관이었다.


“한 첩이 있긴 하옵니다.”


“그것도 유 현덕이 남긴 건가?”


“.........”


그 와중에도 이를 말하는 혓바닥에서 쓰라림이 올라오는 것은 결국 이 모든 일의 배경에 유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 현덕이라? 그래, 기억해두겠어. 실상 이곳에 황상을 밀어 넣은 것도 그놈이고, 나중에 써먹어야 할 놈도 그놈이지. 저놈들하고 싸움 붙일 놈도 그놈이고, 그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게 만들 놈도 그놈이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한 대의 마차면 족할 것이야, 이미 사라진 한조의 하늘을 기억하며 그 하늘에 유일무이한 저 태양과 같은 존재로서 그 태양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시면 그걸로 족하지 않겠나?”


“허면......”


“황상께 약을 처방한 뒤, 타고 있는 어가에서 내리시게. 어가 한 대를 제외한 전원을 대피시켜야지. 해가 진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비록 잠시나마 그보다 못한 달과 별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니까. 다음날의 해가 떠오를 그때까지 숨죽여 힘을 기르며 살아가야 하니까.”


콰앙-


“........!”


그 와중에도 상황은 급격히 돌아가고 있었다.


우지지직- 푸수수수수-


“천자는 어디 있느냐! 이 지옥참마 양패가 네가 버린 백성들을 이끌고 예 도착했다!”


동승이 채 내관에게 앵속의 복용을 마저 권할 새도 없이 막힌 골목에 자리한 저택의 문을 부수고 나온 홍건적과 백성들의 무리가 있었다.


“조만간 이 나라의 해가 진다! 그 해가 어둠에 집어 삼켜진다! 그러나 이 나라의 유일무이한 저 해와 같으신 분께서 그 명이 다하시는 그 순간까지 이를 알면 아니 될 것인즉, 황상께서 계신 천국 속에 황상이란 해는 일몰처럼 지지 않는다! 어둠에 잠식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내리쬐는 양광과 같이 영원해야 한다! 이 비통한 현실이 아닌 황홀한 꿈속에서....., 영원을 맞이하셔야 한다! 고로, 어서 폐하께 앵속을 처방하라! 어서!”


“예, 예!”


펄럭-


“다른 이들은 이를 보아라! 이는 이날의 이 순간을 예측하신 황상께서 내게 내리신 어지인 즉, 폐하의 그 마지막 유지를 받은 이가 바로 나 동승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고로 이제부터 내가 그대들 모두를 지휘한다! 황명에 의거해 내 그대들 모두를 책임진다!”


그 와중에 상황은 더더욱 긴박해져만 갔으니 다급히 유변에게 앵속의 처분을 명한 동승이 품에 자리한 유비의 처우에 관한 문서의 밀봉을 보이며 자신이 그 마지막 유변의 유지를 잇는 자임을 천명했다.


두두두두-


“동한의 천자 유변의 목을 노려라! 서주의 군사들은 달려라!”


그리고 그 사이, 마치 계획된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개봉 밖에 있어야 할 서주군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천자를 왕궁 안으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천자를 잡아라!”


“개봉 정가의 식객들이다! 세외의 칼잡이들을 비롯한 이 땅의 협사들이다!”


그와 더불어 후방에서 들려오는 맹렬한 함성은 이내 조금 전까지 유변을 쫓던 개봉 정가 소속 무인들의 등장까지 알리며 더더욱 내몰린 이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이뿐이랴?


“뚫어라!”


오오오오-


“막아라! 막아! 이제는 조 맹덕 휘하의 청주병들까지 성내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또다른 방향에서 우렁찬 진동이 느껴지는 전율이 서린 군대의 준동이 느껴졌으니, 멀리서 한눈에 보아도 그 수가 부족하지 않을 청주병들이 기어코 개봉의 왕궁에서 멀지 않은 성내로 난입했다.


“하아......., 실로 찢어 죽이고픈 하늘이로다.”


결국 대저 자신들이 작금에 살겠다 발을 들인 이 개봉은, 실상 승천을 위해 하늘문을 열고 들어왔다는 이 개봉은 결국 그토록 자신들이 피해야 할 호랑이의 쩍 벌린 아가리 속 목구멍이자 고기를 잡는 통발이었으며, 기어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실로 짜여진 천라지망의 종착지였다.


수명을 다한 해가 점점 지고 있고 저리 밝디밝은 하늘 아래, 세상은 한조의 빛이 힘을 잃어 일몰의 끝자락을 달리며 누런 황천과 그 뒤에 자리할 어둠의 안식을, 달과 별들이 자리한 밤하늘을 부르고 있었다.


“놔라! 이거 놔! 내....., 끄흑! 으흐흡!”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십시오, 황상!”


“우르르릅! 우르릅!”


그 와중에 앵속으로 만든 환을 억지로 유변에게 먹인 내관을 뒤로 살아남은 호위를 비롯한 이들이 우르르 동승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황상의 유지를 받들어 후일을 도모할 이들은 모조리 나를 따라라! 이랴!”


그렇게 생존자들과 더불어 탈출한 준비를 마친 이을 이끈 동승이 문득 말 배를 차며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 찰나,


“내관! 내관은 어디 있나? 그리고 왜 이렇게 수가 적은가? 내 직접 황상의 유지를 받아 그 전전(轉傳)의 소명을 이었거늘, 대체 왜.......!”


어째 느껴지는 허전함에 그 고개를 돌려 설마 하는 우려를 확인하려 했던 그의 눈에 조금 전 소제에게 강제로 약을 처방한 내관을 비롯해 여전히 소제의 곁을 지키기 위해 남은 수십의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송구합니다. 아무래도 여기서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관-! 그리고 거기 남은 네놈들은 정녕 미친 게냐! 황상의 유지다! 이 나라를 위해서도 너희와 같은 충신들이......”


“애초에 유 현덕의 겁박에 수그린 몸입니다. 그의 칼에 죽어나간 이들을 바라보며 겁을 집어먹었고, 그런 그에게 굴복하여 황상이 모르시게 계속 앵속을 처분하여 재우고 또 재워 황상의 옥체를 상하게 한 신하가 어찌 충신이라 하겠습니까?”


“그래도, 이럴 순 없다! 황상께선 그대들을 데리고 후일을 도모하라 하셨.......”


“가십시오.”


“어찌-!”


“사람들은 달과 별을 보며 농사를 지었고 계절과 날씨를 살피며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아갔습니다.”


“내관......”


“그간의 세월 빛이 우리를 이끌어 무지와 안일로 물들여 썩게 했다면 그 반대인 어둠은 그런 우리를 두려움과 공포로 내몰아 그간의 그릇됨을 돌아보게 만들어 그 속에 성찰을 일깨울 것인즉, 어둠 속에 몸담은 인간이야말로, 그 속에서 살아남아 그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낸 이들이야말로 새 시대를 상징할 내일의 해를 맞이함에 있어 그 어떠한 나약함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모두가 내일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니, 어둠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은 성찰뿐이 아니지요. 어둠은 우리에게 안식(安息)을 내어주지 않습니까?”


“내관......”


“소인들은 구시대의 잔재이며 계승의 업을 짊어진 이들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올곧은 적도 바른 적도 없었으며 오가는 세파에 휘둘리며 수그리고 살아왔습니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궁궐에 있든 그 궁궐을 벗어나서든 여러 해를 갈대와 같이 살았지요. 그러나 그리 여러 해는 사는 갈대도 결국 제 버티기 힘든 겨울이 찾아오면 이내 그 명을 다하는 법입니다.”


“정녕, 정녕 후회하지 않겠는가! 정녕-! 이를 후회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힘이 듭니다. 솔직한 심경으로 여러 해를 하늘을 뫼시며 살아온 이래, 순탄지 않은 기억 밖에 없으니 이제 그만 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이 한 몸 뉘어 세상 걱정 다 있고 잠에 들기 전에 그 마지막, 맡은 바 소임이자 도리는 다해야겠지요. 그것이 그릇된 것일지라도 누군가는 이를 지켜가야 하는 법이요, 살아있는 이들조차 순장의 절차에 따라 죽은 제 주인을 따라 파묻히는 판에, 도리어 같이 죽어 묻힐 수 있다면야, 하늘의 곁에서 그 명을 다할 수 있다면야 이보다 더 호사스러운 죽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두가 죽음을 바라는 자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자처하는 이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동승은 그 의연한 이들 앞에 더할 나위 없는 창피함과 비통함을 느꼈다.


솟구치는 핏방울이 눈 밑에서 터져 나와 흘러내리는 눈물이 되었을지라도, 내일을 살기 위해 더는 남겨진 이들의 명이 다하는 오늘을 외면하게 되었을지라도, 이제는 멀어지고 관망해야 할 이들의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해선 안 될지라도, 이 말만큼은 반드시 그들 앞에 솔직한 고백이나마 진실로 그 마음을 담아 전해야 했다.


“끄흐윽! 우리는 기생충이다, 내관! 황상이 언급하신대로, 하늘에, 권력에 기생하는 버러지 같은 것들이다!”


“기생충이라, 간혹 벌레 중에 그런 것이 있다 들었지요. 숙주의 죽음에도 끝내 살아남아 다른 숙주을 찾으며 살아가는 이들, 비록 어감은 좋지 않으나 그래도 소인이 듣기에는 좋습니다.”


“하아......, 이는 또 어째서인가?”


“그 숙주가 없어도 내일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리 기생충이 되지 못한 소인을 비롯한 이들은 오늘을 살겠습니다. 아니, 애초에 하늘 문을 열고 들어선 짐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진대, 그 수족이 공과 같이 내일을 살기 위해 기생하는 이들도 아닐진대, 그 숙주가 죽는다고 어찌 멋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누가 자네를 갈대라 하는가? 세파에 흔들리고 설령 그 속이 비었을지라도, 모든 것의 명이 다하는 소멸의 계절인 눈 내리는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라도, 그대는 여전히 변함없는 대나무일세.”


“대나무라....., 대나무. 좋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짐승의 최후에 어울리는 배경입니다. 유학이, 한조가, 유씨의 황실이, 또 어쩌면 이 사람의 최후에도 어울리는 것이 대나무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실상 그 의미가 내관에게 달리 전해졌다는 사실을 끝내 동승은 알지 못하였다.


그 유학이 한조를 멸망으로 이끌었고 그 한조가 유씨 황실을 멸망으로 이끌었으니, 이로서 붉은 용이라는 하늘이 내린 짐승을 사냥한 것은 다름이 아닌 이 땅에 자리한 대나무였다.


그런 붉은 용에게 지속적으로 앵속을 처방해 그 용을 직접적으로 죽음으로 이끈 내관 또한 이러한 자신의 운명을 모르지 않으니 그에 허망한 웃음을 내비칠 뿐이었다.


“만인이 기뻐할 게야. 인세에 해를 끼친 짐승을 잡아 죽였으니.”


“예, 그렇겠지요. 그 속에서 웃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문득 그간 사람들에게 잊혀져 있던 어느 족자 속 그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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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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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429화 – 그때에 이르러 그 모든 것이 다 상처투성이에 불과하겠지 22.11.09 524 5 18쪽
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7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5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70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5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59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59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61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6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8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8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3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6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49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8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6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3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6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2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1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3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3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3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3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1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3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7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59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8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89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5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3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2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7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7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1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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