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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6,512
추천수 :
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02.09 00:21
조회
254
추천
5
글자
21쪽

347화 – 그 붉은 짐승이 그 모든 족쇄를 풀고 하늘 앞에 선 그날

DUMMY

콰앙- 푸쉬이이이익-


“아아아악!”


사방에서 연기와 불꽃이 치솟으며 혼란이 가속화되는 와중의 개봉을 둘러싼 성외의 혼란이 거세졌다.


먼저 뛰쳐나온 4대의 마차를 따라 기병들이 빠지고 날랜 병사들이 빠지는 와중에 별도의 움직임이 더해지니 이는 성벽 위에서 날아드는 화살비 때문이었다.


피비비비빙-


“피해라!”


푸히히히힝-


“어어어! 꽉 잡아!”


“제기랄! 여기도 시체다!”


우지직- 덜컹-


“어어어!”


마치 황제가 탄 어가의 무리를 보호하려는 듯 그 뒤를 추격하는 이들을 향해 엄청난 양의 화살을 흩뿌리니 졸지에 그 뒤를 쫓던 이들이 쓰러지고 엎어지며 혼란스러운 움직임을 내비췄다.


그 와중에 하필이면 어떻게든 개봉으로 들어서려는 듯 그 주위를 빙빙 도는 마차들이 쓰러진 말들과 병사들의 시체들이 자리한 곳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이내 시체들의 위를 밟고 지나가게 되면서 덜컹이고 들썩이며 충격이 더해지니 그에 충격을 받은 마차들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충격에 용골이나 다름이 없는 뼈대에 금이 갔는지 어느덧 속도는 느려지고 마차 하부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더불어 돌아가는 바큇살이 이전과 같이 곧게 흔들리지 않았다.


“제기랄, 다른 수가 없나.”


그와 더불어 이내 인상을 찌푸린 마부들 중 하나가 무심한 얼굴로 개봉의 이름난 이들이 자리한 문루를 올려다보니, 그곳엔 정혼이라는 아주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미끼로 뛰쳐나온 마차들이 더는 제 역할을 못할 것 같군. 그 꺼풀을 여럿 벗겨냈지만 아직 보병들이 남았어.”


“이쪽도 아직 넷이 남았습니다.”


곁에 자리한 조총의 우려와 별개로 마부의 시선을 받은 그는 이내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부들을 향해 마치 손님을 내쫓는 듯한 손짓을 보였다.


짜아악- 푸히히히힝-


“개봉에서 멀어지라는 명이시다! 명이 떨어졌다! 가자!”


끼리리리릭-


“팔딱이는 생선마냥 처절하게 달려라! 하아!”


이에 확답을 받는 마부들이 이내 자신이 모는 마차들에 채찍질을 가하며 속도를 올렸다.


이에 그 입가에 거품을 물기 시작한 말들 또한 비명을 지르듯 거친 숨을 토해내며 주체할 수 없을 질주를 시작했고, 그 뒤를 떠받드는 마차의 바큇살 또한 비명을 지르며 이 땅을 갈아내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저, 저! 저것들이! 개봉을 포기해?”


“쫓아라! 쫓아! 저 미친놈들이 방향을 틀었다! 아예 개봉이 아니라 그 바깥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마치 미끼로 쓰인 작은 생선마냥 팔딱이며 살겠다고 몸부림 치는 그 꼴이 졸지에 이를 목표로 그 뒤를 쫓는 홍건적과 청주병들의 추격본능을 자극했다.


그렇게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한 이들을 따라 꽤 많은 수의 병사들이 전장을 이탈하였으니, 그 빈틈을 치고 들어온 것은 다름이 아닌 소제를 태운 채, 무리지어 행동하는 열서넛 정도에 해당하는 남은 마차들이었다.


“후방에서 부서진 것들까지 따지면 아직도 수가 많아.”


“그거야 이쪽이 신경 쓸 일이지요.”


그 와중에 지적질을 해대는 조총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인상을 찌푸린 정혼이 다시금 무언의 손짓과 별개로 개봉을 향해 접근하는 마차들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보내니, 이내 그들 중 선두에 자리한 몇몇이 뛰쳐나왔다.


“남은 넷 또한 보험이었군. 허나 같은 미끼에 저들이 또다시 움직이기라도 할까?”


“저들이라고 20대에 달하는 마차의 행렬을 모르지 않습니다.”


“도망친 이들 묶어둘 겨를은 있고?”


“애초에 그쪽이 마차를 도맡았고 그 와중에 재물을 실었다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 와중에 조조에 대응하여 힘을 합치기로 한 두 세력 간의 가벼운 신경전도 벌어졌다.


“뭐, 내가 모시는 분께서 제법 철두철미하셔서 말이지.”


“그래서 조금 전 백성들이 제물에도 눈길조차 대지 않은 채, 그에 타고 있는 황제의 수족들을 무심히 죽였군요.”


“...........”


“그대들은 재물을 알아도 사람을 알지 못하니, 그대의 주인이 재물로 이름난 팔주이며 그 재물로 사람의 인정을 사듯, 우리는 사람을 품고 보듬어 그 사람에게 돈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워두고 그 진심을 삽니다.”


비록 정태가 장막에게 흡수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정작 이 개봉 안에서만큼은 여전한 성세를 보이고 있음을, 그 또한 장막과 같이 이 연주 땅의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이름난 이들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그 대화는 이내 어찌 그들이 개봉 내에 세를 쌓았는지 그 수완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알량한 재물이라면 이쪽도 부족함이 없으나 그 재물조차 사람의 원한만 못한 법이지요.”


“원한이라, 정공이군. 하긴 그래서 자네 집안에 머무는 식객들 중 그리 칼잡이가 많은 게지. 이제야 알겠어. 왜 대다수의 이들이 임협의 이들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왜 그리 자네 집안에 엎드려 충성하는지, 이 땅에 자리한 토착의 이들 중에서 왜 그대의 가문이 가장 으뜸가는 성세를 자랑함과 동시에 내 주인에게 귀부할 시에 왜 보호를 요청했는지 그걸 이제야 알겠어.”


실상 지금의 조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기억은 과거 이 땅에 발을 들였던 장막의 기행이었다.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장사인 전위를 앞세우고 그를 따르는 임협들 전원을 호위로 대동한 채, 개봉의 세력가들을 받아들인 것과 별개로 이후 정태의 저택으로 발걸음을 옮길 적에서도 왜 그를 앞세웠는지 이제와 그 장면들이 아귀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다들 그 목숨 하나인 건 매한가지고, 죽기 싫은 것도 매한가지이며 그 인품과 명망이 그 목숨줄 늘리는 방안임을 아니까, 그 와중에 본보기로 죽어 나간 이들이 여럿 있음을 모르지 않으니까 그리 두려워하고 고마워할 수밖에. 그것도 남발하면 인심을 잃었을 것이나 필경 선별적으로 공공연히 그 악행을 인정받은 이들만 죽였을 터이니, 대신 그 복수를 이뤄준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옭아매겠지. 그 와중에 성세도 유지해야 하니, 나름 보호비도 받았을 게야? 아니 그러한가?”


소위 살인 청부를 업으로 삼았고 그 대상에 고하를 두지 않으니 다른 이들이 절로 그들을 두려워함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 와중에 힘 없는 이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생활권을 지켜주고 그에 따른 값을 받았을 터이나 도적의 습격을 받고 인간 사냥꾼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나가는 시대상으로 얼룩진 이 난세에 자발적으로 농노가 되어 스스로 누군가의 재산이 되기를 소망하는 형국에 그 정도는 되려 환대받을 조치였을 터.


결국 개봉이라는 하나의 대도시권을 집어삼킨 이 정가라는 이름의 조직은 실상 그 토착의 이들조차 손을 댈 수 없이 공생하며 살아가는 자경단의 성격을 지닌 무장단체요, 범죄집단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호족들 또한 가병과 사병을 부리고 제후들조차 난립하는 이 판국에 이게 죄악이 될 리는 만무하니 말 그대로 한 지역을 장악한 군벌의 직전에 멈춰선 것이 바로 이들의 존재였다.


“자꾸 본질을 두고 다른 것을 논하십니다. 정작 그 본질은 원한인 것을.”


“그건 부정할 수 없네. 결국 그 원한이 저리 뛰쳐나온 또다른 미끼를 반드시 물게 된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를 하니까.”


그렇기에 그 실체를 알게 된 조총 또한 정혼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실상 저 바깥의 태평교를 믿었던 청주병들을 비롯해 공자를 위하고 대동사상을 외쳤던 홍건적들 또한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했던 높으신 분들에 대한 원한이 그득그득한 상황이니 그 불만이 한조의 멸망에 일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를 활용해 개봉의 실권을 잡은 정가의 노림수가 실패할 수 없는 것임은 어쩌면 당연한 반증과도 같았다.


와아아아아-


“저기! 마차다! 또다시 4개의 마차가 튀어나왔다!”


“쫓아! 앞선 놈들이 미끼다! 저게 진짜인 게야! 그렇지! 놈들이 개봉을 포기할 리 없지!”


그리고 곧바로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아직 개봉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남은 이들이 4대의 마차를 향해 뛰어들었다.


“던져라!”


휘유유융-


발이 느려 뛰지 못하니 제 손에 든 창을 집어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제기랄! 뭣들 해! 잡아!”


그리고 이러한 광경이 문루의 아래 펼쳐지니 개봉의 주위는 기다란 뱀과 같은 두 줄기로 뻗어나간 이들의 행렬이 회전하며 뛰쳐나오는 기형적인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조차 문루의 아래 자리한 이들에게는 당연한 흐름에서 뻗어나간 의뭉스러운 계획 연장선이자 지속해온 신경전의 연장전이었다.


“조만간 둘이 충돌하겠군. 이것도 계획의 일부인가?”


“본디 1차로 내보낸 네 대의 마차를 통해서도 노렸던 바이나, 기병들이 주력인지라 쉬이 섞이지 않았지요. 허나 발이 느리고 대오가 무너지며 그 대열이 길게 늘어진 보병들이라면, 서로가 맞물려 충돌하게 되는 그림이 자연스럽지 않겠습니까?”


“나더러 위전을 실전으로 만들라더니, 정작 이쪽을 믿지 못한 건가?”


“아니요, 믿고 있었습니다. 이미 한 차례 성공을 거두셨으니 그 증명도 된 셈이지요, 허나 비단 이는 그쪽에서도 바라는 바가 아닙니까?”


“조 맹덕을 비롯한 외세의 군세가 줄어드는 그림이라? 그래, 좋을 수밖에 없지.”


“두 마리의 뱀이 저 하나 용이 되어보겠다고 하나의 미끼를 쫓고 있습니다. 영물이 되고자 함에 필경 그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지요. 그 두 개의 줄기가 하나로 뒤엉켜 싸우면, 적어도 이 개봉의 포위를 자처한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갈 겁니다. 그리고 그때.......”


“바깥에서 충돌한 병력이 사그라든 쪽의 성문을 열어라?”


“통발의 입구가 닫혀있으면 어디 고기가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다 되려 조 맹덕을 비롯한 적들이 들어오면? 엄한 놈이 통발 안의 고기를 차지할 수 있지 않나?”


“그러라고 붙여둔 유 현덕 아닙니까?”


“하긴, 그놈도 유씨인데 어디 이 판을 벗어날 수야 있나?”


“우리는 서로 이해하는 것이 다르군요, 가진 것 없는 임협이라 그리 매달리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림은 같고 한배를 탔지, 그러면 되지 않나?”


이미 그림은 그려졌고, 그 그림은 이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 되었다.


미끼를 향해 쇄도하며 각기 위 아래로 내려오던 누렇고 붉은 뱀들이 이내 서로를 확인한 채, 이빨을 드러내다 못해 서로의 몸을 휘감기 위해 달려들었다.


“놈들이다! 홍건적 놈들이 우리가 노리는 마차를 낚아채려고 한다! 막아라!”


“퉷! 더러운 황건적 잔당 새끼들이 우리 앞길을 막는다! 선두는 마차를 쫓고 후방의 이들은 저것들부터 치워버려!”


쿠웅- 콰앙- 콰앙-


곳곳에서 방패와 칼을 쥔 이들이 충돌했고 그 와중에 무식하게 몸을 날려 상대를 밀어버리는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요동치는 파동마냥 구불거리는 뱀의 몸뚱이마냥 요동치는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고, 위아래로 맞물려 하나로 뒤엉키는 그 곡선은 이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족쇄를 달고 있는 것 같은 길고 긴 하나의 사슬을 연상시켰다.


* * *


“대저 무슨 짓을 해도 벗어날 수 없구나. 네놈들도 결국 노예, 농노와 다를 바 없는 것이 이 땅의 이들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사슬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차의 장막 속에 숨어 생생히 지켜본 소제 유변의 소감은 실로 남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슬이 내게 멀어지고 있는 지금 나는 이 땅의 족쇄를 풀고 하늘문의 앞에 다다르고 있노라.”


그렇게 거짓된 미끼를 내세워 개봉의 가까이로 도달한 그에게 더는 그의 운명을, 자신에게 닥친 죽음을 옭아맬 족쇄가 거진 남아있지 않은 듯 여겨졌다.


두두두두-


“폐하! 폐하!”


그러나 이내 흙먼지를 일으키며 수천의 그림자를 이끌고 나타난 유비를 보며 소제 유변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졌다.


“그래, 아직 네가 남았구나. 내 이미 네게 이 땅에 족쇄를 채웠으나 정작 네가 하늘의 그물에 쓰이는 족쇄인지 아직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미 모든 것을 동승에게 위임한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아주 덤덤히 받아들였다.


“지금 개봉의 가까이에 가시면 아니 되시옵니다! 미끼로 출격한 이들이 더 시간을 끌어야.......”


“나의 또다른 자손인 너는 나의 승천을 막을 족쇄냐 그도 아니면 내 대신 나의 족쇄를 채울 사람이냐.”


하지만 그렇기에 그 승천의 마지막에 또다시 그의 의구심이 돋아났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아니, 애초에 이 땅에 뱀의 현신으로 강림하여, 용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니 그 교활함은 내제된 것이다.


애초에 하늘에 서지 아니하였고 하늘에 선 이후 다시 하늘의 버림을 받아 이 땅에 떨어져 그 하늘을 원망하였으니 다시금 자신을 받아줄 리 만무한 하늘에 대한 의구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하늘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내렸을까? 왜 하늘은 한조의 문을 닫게 하였을까? 하늘은 왜 나를 비천한 가문의 혈통과 섞은 반쪽짜리 하늘의 후손으로 만들었으며, 나만 못한 내 아우에게는 완전한 혈통을 선사했을까? 내 아비는 대저 왜 그러하였을까? 내 아우를 품은 내 할머니는 대저 왜 나와 내 어미를 그리 업신여겨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을까? 왜 포홍은 동탁과 손을 잡고 난을 일으켰으되 다시 변방의 충신이 되어 돌아갔고, 그 와중에 충신인 황보숭과 그 조카인 황보력은 중앙의 실권을 장악하고 권신이 되어 나와 내 어미를 위협하였을까? 그 황보숭이 죽고 내 어미가 죽고 십상시가 죽고 신료들이 죽고 백성들이 죽고 연이은 비극과 내란 속에 황궁이 조당이 도성이 나라가 무너지고 질서와 법도가 무너지며 권위와 천명이 상실되었으니, 그 속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늘은 이 한조를 지워내고 싶은 모양이야. 결국 그 상징으로 남은 내 운명과 행보 또한 그와 다를 바 없는 비극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이제는 이 몸뚱이가 부정할 수 없는 하늘의 안배를 위한 마지막 제물이 된 셈이지.”


“화, 황상.......”


“그래, 각오했어. 승천이라고 꼭 살아서 가는 것은 아니니, 내 제물이 되어 저 하늘에 오를 수도 있겠지. 한데, 짐은 그 운명에 순응하고 싶지 않으니 짐이야말로 저 하늘 위의 찬란한 양광(陽光)이자 이 땅 위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우러러보는 유일무이한 붉은 짐승이 아닌가?”


그렇게 어느덧 시뻘겋게 붉어진 눈시울을 드러낸 소제 유변은 기어코 그 마지막까지 유비를 압박했다.


“그런 내게 하늘이 내린 천벌은, 죽음이라는 운명의 끝은 실로 어울리지 않지. 감히 짐이 하늘이거늘 어찌 짐을 내친 저것이 하늘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분노의 화살을 본의 아니게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 유비의 당혹스러움은 실로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병력을 내어라.”


“황상. 갑자기 그 무슨......”


“내 듣기로 네 의용군 시절에 5백의 이들을 모집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들었다. 한조를 향한 충정과 의기로 네 첫걸음을 내딛었으니, 그 초심이, 그때의 의기와 충정이 지금도 남아있는지 짐은 그게 궁금하구나.”


“황상.......”


“그대도 유씨의 일원이지 않은가? 참, 회수한 어기가 있다면 아직 펼치지 않은 어기도 걸어라.”


“그러니까 지금.......”


“이미 후방을 책임지기로 한 마차의 행렬이 무너졌다. 처음은 그저 두어 대인 줄 알았거늘, 이제와 보니 그도 아닌 모양이야. 거기에 앞서 4대가 사라지고 지금 또다시 4대가 출격하였으니 이제 남은 것이 어디 여덟, 아홉 대 정도인가? 헌데 이로서는 짐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해. 아직도 개봉의 주변을 둘러싼 병력들이 남은 마당에 이는 너무 위험한 일이지.”


이제는 1만은커녕 제 직할로 남은 이들이 수천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지어 그 수천조차 조금 전의 전투에 휩쓸려 적지 않은 피해를 본 상황에서, 또다시 제게 희생을 강요하는 소제 유변의 모습에 유비는 지끈거리는 두통 속 분노로 얼룩진 환멸을 느꼈다.


“황상, 송구하오나 작금의 소신의 곁엔 저 수만의 대군을 물리칠 병력이......”


“없지. 그러나 미끼를 자처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병력이지. 그리고 애초에 그 보잘 것 없는 병력과 함께 10만의 대병이 자리한 군영 내에서 나를 구해낸 그대 아닌가?”


“하아....., 황상.......”


“왜? 어렵나? 이제와선 그조차도 어려워?”


“그, 그것이 아니옵고........”


결국 잠재된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고 제가 아닌 타인을 죽음으로 밀어 넣고 그 죽음을 이용해 제가 득을 보려는 저 잔혹하고 간악한 본성은, 대대로 적제의 피를 이어받은 유씨의 이들만이 지니고 있을 저 본성은 실로 그렇기에 역겹고 거슬리는 것이었다.


허나 그 역겹고 거슬리는 본성이 바로 다름이 아닌 지금의 유비를 있게 했다.


저 하늘에서 내쳐진 황제를 죽음의 자리로 내몬 것은 다름이 아닌 유비 자신이었으니,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외통에, 저와 다를 바 없는 간악한 본성의 사나운 눈초리를 내비치는 이 영민한 뱀 새끼의 낼름거리는 저 혓바닥이 실로 거슬렸다.


“오는 길에 보아하니 재물도 소용이 없을 것이란 판단이 맞았어. 거기에 처음으로 움직인 4대와 지금 뛰쳐나간 4대의 마차를 보아하니 의외로 가볍더군. 물어보니 마부들이 실어놨던 재물을 다른 마차에 옮겨 실은 모양이야. 이상하지? 나는 분명 모든 마차에 재물을 실어달라 했는데 말이지. 그것도 다른 명이 없었거늘, 어찌 저리 철두철미할 수가 있나?”


“아무래도 맹주였던 장막이 공을 많이 들였던 모양입니다.”


“그래, 대단해. 마부까지 따로 섭외한 모양이지. 실로 대단하단 말이야. 한데, 어째서인지 짐이 타고 있는 이 어가를 이끄는 마부의 운행이 그만 못해. 필경 저 무도한 홍건적에 속한 술사들이 불타는 요상한 돌을 던지며 연기를 뿜어내고 백성들이 습격을 가하는 위급한 상황이었음에도, 그리 생존 그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내달렸던 마차의 움직임이 정작 짐의 안위를 위해 미끼를 자처한 저것들의 그것만 못해. 실로 이상하지 않은가?”


“..........!”


그리고 마침내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외통수가, 작금의 이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릴지 모를 최악의 상황이 유비의 앞에 펼쳐졌다.


이미 당혹스러움이 얼굴에 번진 관우의 얼굴이 이전보다 붉어져 있었고 날카로운 눈초리를 드러내는 경옹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로 황실의 일원을 자처한 그대가 짐의 이 무거운 짐을 덜어주지 않겠나? 그대라면, 그대라면 이러한 내 한 줄기의 의구심을 지워낼 수 있을 것 같네. 내게, 한조에 충성하고 그 의기를 갖춘 그대라면 작금의 이 작위적인 상황에 대한 내 일말의 불온한 감정과 염려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덜어낼 수 있을 것 같네. 어찌할 텐가?”


“소신은......”


“장일세.”


으드득-


그렇게 누가 봐도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 실체를 까발리겠다 작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제 유변과 그 마지막까지 그를 따르는 눈들이 주변에 그득한 이 상황 속에 유비는 고개를 수그린 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미끼가 되겠나이다.”


“오! 정녕 참인가? 과연, 개봉의 안으로는 짐을 보필하지 못해도 그 바깥까지는 짐을 보필하겠다 약조한 이 다운 충성심일세.”


“하오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신의 아우인 운장을.......”


“짐이 충고하나 할까?”


“.........!”


“하늘은 시험하려 드는 것이 아니야.”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유비가 아니었으나 그런 유비조차 아직은 소제를 온전히 집어삼키지 못했다.


“오직 하늘만이 이 땅의 이들을 두고 시험할 자격이 있는 게지.”


결국, 하늘에서 내쳐진 짐승을 끝내 집어삼키지 못한 유비는 이내 병력을 이끌고 개봉의 성벽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는 마치 먼저 도망친 4대의 마차를 다급히 호위하기 위해 전장에 난입하는 모습과 같았으니 이에 눈이 뒤집힌 홍건적의 이들과 청주병의 이들 중 다수가 자신들이 쫓는 어가임을 확신한 채 달려들었다.


“허나 아직 짐의 시험은 끝난 게 아니지. 아니, 반대로 하늘이 내린 시험을 짐이 통과한 겐가? 뭐, 어쨌든 짐도 하늘이니, 하늘이여. 그대는 짐의 승천을 막지 못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소제의 눈이 굳게 닫혀진 성문이 자리한 개봉의 문루를 향하였으니, 그곳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정혼과 조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2 K.S
    작성일
    22.02.10 00:41
    No. 1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4 필성필성필
    작성일
    22.02.25 01:35
    No. 2

    어떻게보면 제 필력이 부족해서 독자분들에게 여러 비판을 받았음에도 제가 저도 모르게 고집스럽게 늘어진 게 이놈 소제 유변 캐릭터 하나 만든답시고 그렇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저도 왜 그런가 싶었는데 아무래도 붉은 용이 주는 상징성이라는 게 나름의 답변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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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5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2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66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4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58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58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59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4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5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6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49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5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47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7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5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2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2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67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0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09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2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79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1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0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2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5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58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7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86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4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1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0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6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5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0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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