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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조회수 :
477,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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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4
글자수 :
3,864,810

작성
22.01.31 02:18
조회
311
추천
6
글자
20쪽

346화 – 그 속에서 기생하고 이 땅에서 번성해라

DUMMY

두두두두-


“내 이대로 죽어줄 성 싶으냐! 내 이대로!”


그렇게 말을 달려 마차를 벗어나 전쟁의 복판으로 들어선 동승은 이내 뒤엉킨 혼란을 벗어나기 위해 내달리고 있는 유비를 찾았다.


보다 정확히는 그런 유비군이 따라잡고 있는 마차의 행렬을 좇았으니, 이내 그를 알아본 호위들이 속도를 줄이며 그를 자신들의 대열 안에 행렬에 합류시켰다.


“폐하! 신 동승이옵니다!”


펄럭-


그 와중에 동승이 자신의 생환을 알리자 이내 젖혀진 장막 너머 자신의 곁으로 오라는 손짓이 있었다.


“직접 후미를 맡겠다고 했을 때 실로 걱정했네! 내 아우를 직접 돌본 외가의 피가 끊어져선 아니 될 것이니,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에 걱정이 앞섰음이야! 허나 그런 그대가 이리 살아돌아왔으니, 내 대저 무에 걱정인가!”


그리고 비단 그 손짓의 연유는 그간 마차의 행렬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마부들이 타고 있는 맨 뒤에 남겠다는 동승이 자처한 희생 어린 충정에 의한 결과였다.


물론, 그 이전까지도 왕미인의 소생인 유협을 데려다 기른 동씨 황후의 핏줄이란 배경도 한 몫을 했다.


허나 이제와 막상 소제 유변의 곁을 지키는 이들 중 다수는 그리 황실을 비롯한 외가나 황실의 인사와 연이 닿은 집안 출신 중 한직에 있는 이들이었고, 그렇기에 유비 또한 유씨 황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소수의 이들은 쳐내지 못하니, 그리 잔가지를 쳐내고 쳐내는 과정에서도 그 마지막까지 소제 유변의 호위를 자처하는 이들은 남아있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수가 몇백이니 몇천이 되는 것도 아니요, 이전과 같은 유세를 부릴 수도 없으며 은연중에 유비의 노골적인 척살이라는 기행의 와중에 겁을 집어먹고 침묵하며 이를 지켜본 이들이기도 했다.


뭐, 그렇기에 실질적인 그의 눈과 귀가 되어줄 내관 나인을 비롯한 허드렛일을 하는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방치했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들 또한 그 입장이 유비와 같기에 이를 방관한 이들이기도 했다.


과거 십상시라는 전례를 필두로 환관을 비롯한 내관 나인의 수가 줄어들수록 그 경쟁자의 수가 줄어든다 인식을 했던 이들의 거리는 유비가 소제 유변의 팔다리를 쳐내면 쳐낼수록 점점 더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호위와 황실에 한 발 걸친 친인척이자 귀족에 속하는 일가의 자재였던 것이 이제는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을 도맡고 관리하는 입장이 되었으며, 소제가 약에 취해 쓰러진 와중에 유비에게 협력했던 내관 나인을 비롯한 이들이 소제가 깨어난 뒤에 내쳐졌을 때, 그 정리된 자리를 대신 꿰차고 들어온 이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입지를 지닌 이들의 대표가 바로 죽은 동태후와 관련이 있는 그 집안의 혈족으로 살아남아 원 역사에서도 헌제를 모시게 되는 동승이었다.


그리고 그 동승 또한 눈앞에서 유비의 야망을 확인한 채, 이를 방조한 이들 중 하나였다.


“폐하! 폐하께서는 유 현덕, 그자를 믿으시옵니까!”


“아니, 허나 그렇다고 한들 당장에 매달릴 곳이 없지.”


“..........”


그런 그가 소제에게 이를 물어 그 답을 구한 것은 이후에 대한 대처와 추후의 입지를 논하기 위함이었다.


“개봉에 들어선다면 그 입장이 달라지게 되겠지요?”


“제 입으로도 그러했어. 거기까지라고, 거진 짐을 소 취급한 놈이지. 그러나 지금 그리 끌려온 곳이 도살장임을 모르지 않아. 물론, 그 도살장 복판에 생로가 있지. 허나 짐은 소가 아닌 용이다, 고로 짐의 목이 잘릴 일은 없음이야.”


“송구하오나 그런 유비가 폐하의 수족을 잘랐사옵니다! 기존의 호위를 비롯한 내관들, 나인들, 환관들에 간관을 자처하던 몇 되지 않은 이들까지, 여러 죄목으로 정리되며 여러 습격과 추격 속에 사라졌습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인정한 게지. 이 뭣 같은 핏줄을 지닌 놈들은 원체 동족의식이란 것이 없으니까. 실상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고결함보다 이 천한 밑바닥을 구르며 다리도 없는 병신마냥 바닥을 기면서 언제고 올라설지 모를 저 하늘 올려다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게 더 잘 어울리는 것들이지.”


그 와중에 동승이 건진 것이 있다면, 소제 또한 제가 목도한 유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상 제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한동안은 그가 날뛰는 것을 방조했고 그 와중에 과격하면서도 거침이 없는 그의 칼질에 알게 모를 위화감과 경계심을 갖춘 것도 사실이었으니 그는 이를 통해 추후의 황실의 일원으로 편입될 유비를 견제하고자 했다.


“개봉에 들어서게 되시면 쳐내는 방법도 있사옵니다! 애초에 그 신분조차 제대로 증명도 되지 않은 자가, 딴에 멋대로 황상을 납치해 모종의 흉계를 꾸몄으니, 필경 이 전란이 끝난 자리에서 으스댈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 와중에 무도하리만치 제 바라는 바를 주장하며 멋대로 황실의 일원으로 넣어달라 떼를 쓸 것이 눈에 선하니 신을 믿어주시옵소서, 신을 비롯한 황실의 은혜를 입은 이들이 그 의기와 충정으로 그 명을 따를 터이니, 황명을 내려주시어 그자를 한직으로 내친 뒤, 독우 등을 보내 치워내시면.........”


“아니.”


“예?”


그러나 그리 위험성을 갖춘 뱀 새끼를 두고서도 그 둘의 견해가 달랐으니, 순간 내달리는 말등에서 휘청인 동승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소제 유변이 자리한 마차의 장막을 살폈다.


“폐, 폐하! 설마 어심이? 어심을 굳건히 하셔야 하옵니다!”


“어심이고 나발이고, 필경 밖에 두면 골칫거리가 되겠지.”


그리고 밖에 두면 골칫거리가 된다는 대목에서 혹시나 싶었던 동승의 표정에 안도가 깃들었다.


또한 그 안도는 이내 동승의 이성적 판단을 이끌었으니, 그 또한 작금의 소제가 같은 유씨를 두고서도 실망한 연유를 모르지 않았다.


“혹여 저 익주에 자리한 익주목의 경우를 염려하시는 것이옵니까?”


“어디 익주목 하나뿐인가? 주제도 모르는 형주목은 아예 제 아들을 태자라 불렀다지?”


“그저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자네가 황송할 연유는 없지. 말 그대로 충정이라곤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유씨 것들이 문제니까.”


“하오나 아직 하북에는 그 충정을 지키는 이가 남아계시지 않사옵니까?”


“그도 모를 일이지, 내가 죽으면 하북에 힘 있는 놈들이 이내 그놈을 멋대로 새 하늘이라고 받들어 모시고 또다른 한을 열지 모를 일 아닌가?”


실상 자멸한 한조의 복원운동이자 스스로 도망치듯 내려온 자신의 자리에 대한 복권운동을 벌이며 동맹군을 이끌고 이내 그 명칭마저 뒤바꾼 합종군을 통해 기적적으로 동한을 이끌어왔던 소제였다.


뭐 이제와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들, 그 안엔 필경 자신의 탓도 존재할 것이나 그 와중에 거슬리며 제 뜻대로 따라주지 않은 머저리 같은 이들의 지분이 적지 않음을, 멋대로 설치다 못해 제 하해와 같은 은혜를 배신할 이들로 인한 뼈아픈 실책이 있음을 모르지 않을 소제였다.


“유씨는 유씨를 버리지 못한다. 허나 그것들은 짐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그 연유 하나만으로도 짐을 버렸음이야. 그 유씨의 자격이, 정작 그 유씨를 붙들어 살리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쳐진 짐승을 죽음으로, 더한 지옥의 불구덩이로 이끄는 것과 같지. 그 인도는 이내 하늘에서 떨어져 더는 용이라 할 수 없는 짐승을, 이무기로 격하시켜 남은 생을 연장시켜 주었으나 그 이무기의 생 또한 위태로우니 여의주를 찾지 못한 대신 그 이무기의 사체라도 집어삼켜 제 다시금 영물이 되고 용이 되려는 것들이지.”


그 와중에 용이 되려는 짐승이 많다는 것도 알고, 그 와중에 괘씸하게도 저와 같은 뱀의 핏줄이 닿은 뱀의 자손들이 자리한 것도 안다.


“..........”


“고로 내가 믿을 수 있는 것들의 범주엔 유씨가 없고, 제후가 없으며, 군벌이 없고, 군웅이 없다.”


과거 한조가 멀쩡했을 시절에는 이렇지 않았다.


아니, 그조차 고름에 썩어 문드러지는 시절이었어도 그 와중에는 외척을 비롯한 환관을 경계하며 그와 같이 되려는 자들, 즉 황실에 한발 걸치고 그 가까이에 선 이들을 경계하라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집히고 하늘에서 천룡이 내쳐진 이래, 전국으로 돌아선 난세 속에 그 격언은 정반대가 되었다.


차라리 외척을 비롯한 환관과 그와 같이 되려는 자들, 즉 황실에 한발 걸치고 그 가까이에 선 이들을 곁에 두어야 황제의 자리가 공고해지며 그 입지가 단단해지는 것이다.


“고로 내가 믿을 수 있는 것들의 범주엔 자네가 있고, 자네와 같이 황실에 가깝게 지내거나 알게 모를 연으로 엮인 이들이 있으며, 그간 내 곁을 지켜온 환관, 내관, 나인 등이 있었지. 아, 그리고 지금껏 내게 황족의 자리를 약조 받고자 했던 유비도 있었지. 그래, 그런 것들은 되려 내게 기생해야 스스로의 힘이 강해지는 것들이고 나를 통해 강해지는 것들이니 놈들은 저들의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나의 입지를, 권한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황상........”


그리고 이를 통해 동승 또한 한조 400년의 역사 속 벌어졌던 그 모든 갈등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외척과 군벌의 난립은 물론, 권신의 횡횡과 환관의 득세를 비롯한 그 모든 것이 다 저 천자의 자리, 그 하나와 관련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저 높임을 위한 존칭이 아니라, 말 그대로 하늘만이 앉을 수 있다는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임금의 무게가 새겨진 호칭으로 그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권력을 탐하고 출세의 욕구를 숨긴 채, 충정이란 이름 아래 그 옆에 기생하며 기회를 엿봤던 이조차 비록 찰나지만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 그 임금의 자리에 대한 역설은 실로 작금의 동승에게 강제적 계몽과도 같은 뼈에 새겨질 충격적이고 잊혀지지 않을 가르침을 선사했다.


“야인들이 두려워 변방의 제후요, 장수들에게 군을 맡겼으나 세월이 흘러 우려스러운 것은 정작 그들이었다. 그들이 우려스러워 천하의 모든 이에게 유씨의 자격을 논하였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우려스러운 것은 그들이었다. 위태로운 나라에 개혁이 필요하여 능력 있는 이를 권신으로 만들어주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우려스러운 것이 임금조차 대하기 어려워진 권신이었다. 그들이 우려스러워 힘을 실어준 이들이 본래의 본분을 잊어버리니 결국 외척과 환관이란 또다른 권력을 낳았다.”


결국 모순과 같이 마치 정해진 생리요, 수순과 같이 하나의 문제해결을 위한 선택지가 또다른 위기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과정을 초래하고 있었다.


“결국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고로 그 돌고 도는 세상을 다스리는 이는 적어도 그리 변화하는 난국 속에 무엇이 더 중한지, 무엇이 더 우려스러운지, 어느 쪽에 무게추를 둬야만 하는지를 잘 알아야 그 위에서 무너지거나 떨어져 내리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법이지. 그래야 나 같은 실수를, 선제와 같은 실수를, 선조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법이다.”


“명심 또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래, 견제와 균형은 중한 것이다. 허나 정작 한 시절의 중한 문제는 보통 비대해진 하나의 세력이 정리됨으로서 해결되는 것들이 많으니, 하나를 쳐내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하나를 들여야 한다. 물론, 그 쓰임새가 다하면 그것이 문제가 되니 방심하면 안 되겠지. 쓰임이 다하면 정리를 해야 해. 허나 정리를 위해 집어든 그것이 자라날 후일이 우려스럽다 하여 당장에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할 이들마저 쓰지 않고 방조하면, 당장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크게 자라나는 것이니 그대는 이를 또 명심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야.”


“예, 황상.”


“내가 왜 이런 말을 자네에게 남기는 줄 아나?”


“...........!”


그리고 그 가르침의 끝에 소제는 스스럼없이 품에 손을 넣어 비단으로 감싼 중한 듯 보이는 문서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화, 황상! 대, 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유비의 신원을 보증하겠다는 짐의 뜻이 담긴 어지다.”


“화, 황상! 하오시면 결국 유 현덕을 황실의 일원으로.......!”


“글쎄, 그 우려는 실상 자네가 생각한 것과 다르겠지. 허나 이를 내 손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에게 넘기는 것은 짐이 생사의 기로에 섰기 때문이야.”


“생사의 기로라니요! 설마! 혹 저 무도한 유 현덕이 황상을 속이기라도 했다는.....! 설령, 그런 것이옵니까!”


“그야 모를 일이지. 허나 천지만물이 짐의 죽음을 바란다면 그 또한 하늘에 달린 일이 될 것이 아닌가? 반대로 짐이 그 하늘에 밉보인 게 많은 모양인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고, 짐 또한 그리 사무친 원한이지 지금도 뼈에 서려 있음이야. 짐은 이 땅에 내려와 이무기가 되었고 짐을 내친 하늘에 원한을 품었다. 허나 하늘의 안배를 알 길이 없으니 지음 이 땅에 내려온 와중에도 그 마지막까지 짐에게 충성하는 이들을 통한 이 땅에 짐의 안배를 실현코자 한다.”


그렇게 소제 유변은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온전히 마차의 장막을 열어젖혀 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화, 황상! 마부는 뭣 하느냐! 당장 속력을 줄여라!”


푸히히히잉-


“폐하의 신변이 노출되면 안 된다! 다른 마차들로 하여금 주변을 감싸고 호위를 더 촘촘히 구성해라!”


덜컹- 덜컹-


이에 황제의 안위를 걱정한 호위의 외침에 마부가 속도를 줄였고 그 주변에 자리한 마차들이 주변을 감싸다 못해 그 호위가 이전보다 치밀하게 짜여졌다.


그 와중에도 옆에서 말머리를 맞춰 달리는 동승을 향해 몸을 내민 소제는 매섭게 불어닥치는 겨울날의 칼바람에 스스럼없이 목을 내놓은 채, 이를 마치 답답한 현실을 개운하게 씻어주는 시원한 여름바람마냥 느끼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와 같은 담담하고도 충격적인 당부를 남겼다.


“동승, 이제부터 자네가 이들을 이끌어라. 개봉에 들어선 뒤, 짐이 살아있다면 모를까. 만일, 모종의 흉계가 벌어져 짐의 안위가 위협을 받게 되면 그대는 살아남은 이들을 이끌고 짐의 아우에게 붙어 아우의 곁을 지켜라.”


“황상!”


“이제부터 그대가 상대할 이들은 유씨이자 제후이며 군벌이고 군웅이니, 그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황제의 그늘에 숨어 힘을 기르고 그에 기생하는 이들을 한데 결집시켜라. 설령 그것이 환관이든, 권신이든, 외척이든 상관하지 않겠다. 설령, 그대가 짐의 아우에게 내자를 소개시켜주고 외척이 된다고 한들 허락하겠다.”


이에 충격을 받은 동승의 얼굴이 가히 얼음장마냥 굳어졌다.


뭐라 말을 할 새도 없이 찾아든 혼란과 별개로 소제 유변은 여전히 진중한 눈빛으로 자신의 당부와 그 속에 담긴 우려를 지속했다.


“그 정도인 것이다. 이 한조를 무너트리고 자신들의 세상을 연 저 바깥의 것들이 그 정도로 무섭고 위협적인 것이다. 관서의 진과 계한은 물론이거니와, 당장에 이 연주를 두고 다투고 있는 맹주 장막과 그 수족인 조조의 대립만 보아도 그러하며 원가가 자리한 예주, 짐을 배반하고 추격대를 보낸 서주, 당장에 짐에게 충정하는 듯 보이나 후일 어찌 될 지 모를 청주도 그러하며, 그 외에 일찍부터 반기를 든 형주. 더 나아가 멀리 자리한 채, 혼란조차 수습지 못한 강남과 하북은 아예 무슨 일이 벌어질지조차 몰라 더 그러하다. 이미 한조는 전국의 시기 그 명맥만이 남아있던 주나라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못할지도 몰라. 그나마 그 명맥을 잇는 것은 유씨다. 고로 그 유씨의 난립이 짐의 복수의 일환이지. 허나 그럼에도, 그 와중에 짐은 아직 작은 바램을 놓지 않았으니, 그래. 유씨 것들은 제 힘을 기르도록 밖에 두고 길러서는 안 되는 법이야. 고로 짐은 짐의 아우를 통해 이 한조의 명맥이 이어졌으면 한다.”


“황상........”


“차라리 잘 된 일이야. 짐의 외가는 신분이 비천하고 짐은 어릴 적 궁에 살지 않아 이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애초에 한조를 계승하는 것 자체를 두고서도 수많은 신료들과 사인들을 비롯한 여러 입에 오르내리며 논란이 많었지. 이는 정통성의 문제고, 계승의 문제다. 그에 비해 짐의 아우는 이 대목에 흠잡을 것이 없으니, 진정으로 충신을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무너진 집의 기와라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 이를 다시 세운 뒤에 그 지붕 위로 올려줄 것이다.”


그 덤덤하고도 무겁기 그지없는 유언과 같은 이야기를 저리 가벼운 목소리로, 후련한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늘어놓고 있는 소제를 바라보며 동승은 거진 처음으로 그 눈가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저보다 어려도 한참을 어린 것이, 뭣 모르고 그 자리에 올라 수없이 많은 비극을 겪은 저 어린 것이 더는 제가 잠시 비를 피할 처마로 보이지도 그 속에 숨어 기생할 무언가로도 보이기는커녕 아직 관례에도 이르지 못한 성인도 되지 못한 것임을 알게 된 자리에 남겨진 감정이, 그 양심이 제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짐의 아우가 영민하여 난세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설령 그에 따른 의구심은 물론 걱정과 울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짐이 살아있다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으니 상관이 없겠지만, 만일 짐이 죽게 되면 짐의 뒤는 짐의 아우가 계승해야 하며, 그 짐의 아우조차 이 난세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짐의 아우가 낳은 자식이 그 대업을 이을 것이다. 짐의 후사가 없으니 적어도 아우는 짐과 같은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황상......”


“설령 그 충정이 충정이 아닌 충정으로 빚어낸 또다른 무언가이자 그저 보기 좋은 충정이란 이름의 유약으로 칠한 빛깔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맨 처음 내비친 반짝이는 충정이라는 이름의 빛이 세월이 바래 녹이 슬어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지라도 짐은, 짐의 운명을 끝장내려 하는 저 하늘과 짐을 저버린 이 땅의 이들 모두에게 대적할 수 있다면 그래, 이를 허락할 생각이다.”


“후우......, 소신은......, 그게........”


자신이 넘겨받은 것은 분명 짐이었고, 제 출세의 욕심이 떡하니 올라선 것은 홀로 짊어지기 힘들다 못해 당장에 벗어던졌으면 하는 책무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에 동요한 자신의 더럽고 추악한 본성은 이내 부끄러움이 되어 자신의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었다.


“욕심이 책임감으로 변모하며, 자리의 앉고자 하는 이가 자리의 무게를 알게 되는 그날에 충신이 나는 법이나 그럼에도 짐은 그대에게 충성을 바라지 않으마.”


그러나 마치 이 모든 것을 꿰고 있다는 듯, 그조차도 허락한다는 듯 소제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리 수그린 동승의 고개를 어루만졌다.


“그대의 사리사욕을 위해서라도, 한조는 존재해야 할 것이요, 짐의 아우는 하늘의 권세를 휘둘러야 할 것이니, 그대와 같은 이들이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 땅에 유씨 한조가 짐의 뒤를 이을 적통의 계보가 지워져서는 안 된다. 그 속에서 기생하고 이 땅에서 번성해라. 그게 바로 한조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요, 죽어서도 내가 편히 잠들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따스하고도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이 동승의 심간 아주 깊은 곳에 새겨졌으니, 이는 그를 태운 마차가 개봉에 거의 다다를 적에 끝이 났다.


적제의 후손이 남긴 유지가, 기생충마냥 동승의 몸에 알을 까고 자리하였으니 이를 끝으로 그가 이 땅과 작별할 순간 또한 찾아오게 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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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6 잿더미현실
    작성일
    22.01.31 12:25
    No. 1

    이놈이고 저놈이고 면종복배 구밀복검이며 날카로운 날붙이를 달큰한 사탕으로 포장해대니 서로서로 이제부터 죽여라 하다가 다함께 망할듯.
    애초애 동한이 지고 천자의 권위가 떨어지고 군웅 분열한 시점에서 한은 망한거고, 유씨의 권위도 나락가려하니...단지 유우와 유표, 왕야와 그외 몇몇종친이 권력과 세를 쥐고있으니 망정이지 이미 유씨에 대한 백성인식이 이지경이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5 필성필성필
    작성일
    22.02.25 01:33
    No. 2

    뭐 애초에 원 역사보다 더한 막장을 찍은 격이지요. 제가 이걸 잘 표현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관련된 사회상은 이를 마무리 지으면서 짧게 축약해 본문에 넣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뭐 다함께 관동멸망전ㅎㅎ 그래도 승자는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중입니다. 다만 한조의 색채는 확실하게 정리될 예정이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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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8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8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3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6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49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8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6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3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6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2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1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3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3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3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3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1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3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7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59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8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89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5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3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2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7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7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1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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