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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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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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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6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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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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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8쪽

344화 -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

DUMMY

“그대가 지금 나를 능멸하는가?”


“작금의 공께선 지금 몰락한 동한의 천자와 같으시니 필경 온전한 천하를 얻게 되지 못하실 것이옵니다. 작금의 공께선 결국 멸망한 진의 시황제와 같은 길을 걸으실 터이니 필경 그 천하를 잃게 되실 것이옵니다.”


“진 선생-!”


그리고 그 끝에 마침내,


콰아아아앙-


“...........!”


- 나왔다! 유비가 군진의 문을 박차고 천자의 어가와 더불어 뛰쳐나왔다!


이 땅의 혼란과 더불어 몰려드는 먹구름을 인지한 천룡이 제 마지막 승천의 때를 노린 채,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조조 또한 이제는 그런 진궁에게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몸을 돌렸고 그에 따른 수많은 이들 또한 그 하나에 시선이 빼앗긴 채, 과격한 준동을 보이는 유비의 군세에 온 신경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차다! 휘황찬란한 마차가 몇 대냐! 마차 개수부터 찾아!”


두두두두-


“뭐야! 이거 대체 이게 몇 대야!”


얼추 가려진 듯 보이는 마차의 개수만 근 20대에 달했고 이 와중에 내달리는 유비군은 정확히 교전이 붙은 홍건적과 황건적을 크게 휘감듯 가로질러 가며 개봉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이에 다급해진 조조가 본대 중군에 자리한 희지재를 불렀으니, 계획은 이미 멈출 수 없을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재!”


“성내에 신호를 보냈으니 장막도 알아먹을 겝니다.”


“홍건적 놈들은? 신호에 알아서 움직인다더냐?”


“지옥참마의 소재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만, 적어도 준동할 것은 확실합니다.”


“놈이 없다고? 헌데, 그걸 어째서 장담..........!”


퍼엉-


“뭐야?”


그러나 자신들만 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니듯, 그 순간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했던 의외의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던 조조는 돌연 저 멀리서 터지는 굉음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유비군이 자리한 전장의 복판을 향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조조에 눈에 들어온 충격적인 광경은 가히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실로 저 남만을 비롯한 변방을 가야지만이 볼 수 있을 것 같던 가히 원시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이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이었다.


쉬이이이익- 퍼엉- 퍼펑-


“푸흡! 콜록콜록! 뭐냐! 이건 또 뭐야!”


“방사들이, 저 정신 나간 술사들이 요술을 부린다! 피해라!”


쉬이이이이익-


“불타는 돌이다! 연기를 뿜는 돌이다!”


신비로우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복색을 한 이들이, 그 머리에 거적 떼기와 짐승의 머리를 비롯한 천과 장신구를 두르고 그 입을 가린 이들이, 민간신앙이자 무속신앙의 일환이며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무언가를 두고 소통하는 이들이 그 손에 천과 가죽을 휘감고 힘차게 무언가를 던지며 알 수 없는 방언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하늘을 날고 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정체 모를 불쾌한 연기가 솟구치며 세상 이해할 수 없는 매케하고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니, 그리 피어난 연기가 안개가 되며 그에 노출된 이들의 호흡과 어지럼증을 유발하니 이들을 공황과 혼란으로 내몰았다.


푸히히히잉- 히히히힝-


“말들이! 말들이 놀라 날뛴다! 크흐읍! 콜록콜록! 이 무슨 연기와 냄새더냐!”


기세 좋게 나온 유비군의 선두 또한 가히 듣도 보도 못한 이 요상한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곳곳에서 말들이 쓰러지다 못해 뒷발질을 하며 주변에 피해를 끼쳤고 그 와중에 눈물콧물 다 쏟은 군사들이 엎어지거나 구르고 도망치며 안개마냥 뒤덮인 연기 밖으로의 탈출을 감행하니 졸지에 그 선두가 와해될 지경이었다.


“형님!”


“빌어먹을! 찢어! 선두를 찢어 외부로 개봉에 붙은 놈들부터 끌어내!”


“허나 마차가 필요합니다!”


“빌어먹을, 황상!”


그 때문에 거진 중군을 책임지고 있던 유비는 선두의 후미로 내려온 장비를 뒤로한 채, 곧바로 소제 유변이 자리한 곳을 향해 말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소제 또한 얼추 예상을 했던 모양인지 졸지에 기다란 행렬을 갖춘 무리 사이로 네 대의 마차가 튀어나와 유비 쪽으로 움직이니, 이내 유비 또한 말을 달려 그 마차의 가까이에 말 배를 붙였다.


파악-


“이, 이게 무슨.......”


“되었다, 황상이 탄 마차는 아니구나.”


“폐하께서 덮개가 드리워진 마차의 장막을 함부로 걷지 말라 하셨습니다!”


스르응-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그러는 것 아니냐? 지금 누구를 불충한 신하로 모는 게야. 네놈이 주제도 모르고 정녕 죽고 싶긴 한 게야?”


“그, 그것이 아니라.......”


“다른 마차도 전부 확인해라. 그리고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춰 황상이 탄 것처럼 연기해.”


“옛!”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유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차의 장막을 거둬 그 안을 살폈고, 딴에 이 나라의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황상에게 충성한다는 이들의 목에 칼을 디밀며 상황을 정리했다.


허나 그의 입장에서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소제 유변에 대한 자신의 촉이 자꾸만 정체 모를 우려를 내비치고 있었다.


“이상해, 이상해. 도망칠 수도 없을 터인데, 그 와중에 기댈 곳도 찾았을 터인데. 왜 이리 거슬리는지 모르겠어.”


- 자, 출발!


그렇게 자신의 앞에 덜컹이는 덮개가 달린 4대의 화려한 마차마저 전방으로 보내 확실한 미끼의 역할을 자처하도록 내버러뒀음에도 유비의 가늘게 뜬 눈은 그 마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덕!”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의 상황에 무작정 그쪽으로 신경을 쓸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옹인가? 또 뭐가 문제야!”


“백성이다! 백성들이 남은 마차의 행렬을 봤어! 괭이와 낫도 모자라 쇠도끼를 들고 몰려오고 있다!”


“뭐야?”


와아아아아아아-


“이..........!”


다급히 말을 차며 달려온 경옹이 소식을 채 전하기에 앞서 우렁찬 함성소리가 유비군의 측면에서 들려왔고 이내 돌아간 유비의 시선 속엔 기존에 황건적과 교전을 벌이던 3만에 홍건적에 해당하는 이들 중 수천에 달하는 무리가 별도로 뛰쳐나온 모습이 확인이 되었다.


그것도 각기 그 손에 낫과 괭이를 비롯한 도끼자루까지 들고 대오도 맞추지 않은 채, 달려드는 것이 누가 봐도 분노한 백성들의 무리가 맞았다.


“저 마차들 사이에 빌어먹을 천자 놈이 있을 기야! 뭣들 해! 다 엎어 죽이삐라!”


투콰아악-


“이 정신 나간 것들을 봤나! 이 미친 것들아! 네놈들은 이 나라의 백성이다! 고작해야 백성들이 뭘 하겠다고........, 푸흐흙!”


그러나 실상 백성이라기엔 너무나도 흉포하면서 원시적인 이들의 공격은 그간 급격히 병력을 불려온 유비군에게 예상치 못한 충격을 선사하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칼질 한 번 못해본 이들이라 상대를 얕잡아보던 부장의 몸뚱이가 꿰뚫렸고, 그 와중에 당혹을 금치 못한 이들의 머리 위로 투박하게 휘어진 농기구의 날이 떨어졌다.


콰직- 콰직- 으지지직-


“끄하아악!”


“육시럴 새끼들아, 고마 길 비키라 했다! 이 자리에서 저 나랏님 뒤지는 기다! 다 뒤져 없엘 기야! 다 찢어 죽일 기다!”


녹슨 낫이 병사의 안면 위로 수 차례 박히며 피분수를 뿜었고, 부러진 괭이자루가 창대마냥 잡혀 당혹을 금치 못하는 병사들의 목과 가슴을 짓이기듯 찔렀다.


투박한 쇠망치가 휘둘러지며 지나가던 이의 안면을 후려쳤고, 바닥에 쓰러지고 나자빠진 이들의 팔과 다리가 장작꾼의 도끼질에 의해 토막 난 장작마냥 잘려 나갔다.


온전히 잘리지 않은 손목과 다리가 너저분하게 들러붙다 못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갔고 그 와중에 난전은 지속되니 졸지에 예상을 뒤엎은 백성들의 광기에 사방에서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는 유비군 측의 비명은 더더욱 커져만 가고 있었다.


짜악- 짜악-


“마차를 움직여라! 황상께서 위험하시다! 개봉 가까이로 움직여!”


“황상을 뫼셔라! 이랴!”


졸지에 이에 겁을 집어먹은 마부들의 채찍질에 16대에 달하는 마차들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던 황제의 호위들이 우르르 이동을 시작하니 그것이 유비의 눈에는 마치 기회를 엿본 탈출의 시도처럼 여겨졌다.


“저것들! 지금 저것들 좀 봐! 운장은 뭣 하는 게야! 당장 저것들부터 잡아! 후군을 끌어오고 중군은 어서 마차를 잡아라!”


두두두두-


“쫓아라! 어가를 쫓아라!”


그 와중에 명을 받은 유비의 본대 또한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졸지에 멀어지는 마차의 행렬을 따라 급격한 기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모든 걸 눈앞에서 확인한 유비의 초조함은 이내 자신의 앞날을 망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한 분노가 되었다.


“이, 개 같은 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지금 누구 앞길을 방해하는 게야! 감히, 무지렁이만 못한 것들이,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도 모르고 저 조금 힘들다고 지금 이 생난리를 쳐! 죽여버리겠다!”


파악-


“놔! 이거 놔!”


그리고 이리 이성이 날아간 유비를 뒤에서 붙든 것은 그나마 이리 혼란스러운 순간까지도 그 마지막 이성을 붙들고 있던 경옹이었다.


“미쳤나! 이 친구야! 정신 차려! 벌써부터 그 더러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역겨운 본성을 표출할 셈이야! 저들이 자네에게 분노한 게 아니야! 이 나라 황상에게 분노한 거지!”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위전이라며! 필경 모든 것이 계획된 위전이라 했어! 한데 예상치 못한 서주군의 퇴각은 또 뭐고 동서로 흩어지는 전령의 긴박한 움직임도 모자라 돌연 벌어진 저 난전은 또 뭐야! 또 그 와중에 정체 모를 요술과 환술을 사용하는 방사니 술사니 하는 것들은 뭐고 그 와중에 저리 눈깔이 뒤집혀 달려드는 백성들은 또 뭐야!”


“낸들 어찌 알겠나! 그래도 잘된 일이지! 이 빌어먹을 위전이 진짜 교전이 되었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지! 그러니까 결국 쫓기는 입장의 황상은 결국 제 발로 통발 속으로 들어가는 미꾸라지가 될 테고, 그리되면 다 끝이야!”


“빌어먹을......, 예서 병력을 잃어버리면 그 손실이 너무나도 커져. 이건 예상 밖이야, 이리 되면 되려 동래에 뿌리내린 것들의 등쌀도 제대로 견뎌내지 못해.”


“그래도 당장에 계산이 급한 쪽을 생각해야지! 당장에 명망 있는 사감에게 빌린 대금보다 고리대금업자에게 빌린 원금을 값는 게 먼저야! 태사자 등쌀이 무서울지, 하늘에 오르지 못할 미래가 더 무서울지는 현덕 자네가 더 잘 알 것 아니야!”


그렇게 기존에 한 사람의 가치 있는 죽음만을 예고했던 계획은 졸지에 위전이라는 기존의 계획된 개념이 철저히 뒤집힌 격정적 소모전이자 일대의 난전이라는 예상치 못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되려 이를 부추긴 조조 측은 애당초 압도적인 머릿수를 필두로한 소모전에 딱히 아쉬울 것이 없는 듯 대놓고 자신들과 비등하거나 그 이상이 될 홍건적을 자극해 그들과의 난전에 사활을 건 것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 와중에 유비의 본대까지 그에 얽혀 졸지에 개봉에서 떨어져 있던 근 7만 언저리의 군대가 서로를 향해 뒤섞인 난전을 벌였으니, 이내 최초로 유비군의 측면을 때린 백성들의 무리를 시작으로 이내 교전을 벌이던 홍건적과 황건적의 이들 또한 그러한 유비군을 향한 노골적인 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당했군.”


“예?”


“유가 놈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모양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자연스레 개봉의 문루에 자리한 장막을 비롯한 진류왕 측 인사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특히나 장막이 개봉에 발을 들인 뒤, 토착 세력을 비롯한 이들에게 군권을 승계 받아 전군을 지휘하게 된 조총의 경우, 무장임에도 정략이 아닌 군략을 통해 이에 대한 이들의 우려가 무엇인지를 아주 노골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송구하오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도멸괵, 우나라의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멸망시키니 지금 조 맹덕이 벌이는 일이 이에 부합하는 셈이지.”


“허나 지금 유비의 옆구리를 때리는 것은 홍건적과 함께 움직인 인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니까 미치고 환장할 일이지. 이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을인 유비는 갑인 조조에게 대놓고 그 책임을 가지고 따져 들지 못해. 거기다 조 맹덕 또한 진나라의 그것처럼 아예 멸할 생각도 없이 저리 모르는 척, 세만 줄여놓겠다는 뜻이겠지. 물론 예상을 뒤엎고 먼저 불을 지핀 서주 놈들 때문에 별도의 밀약이 있는가 의구심이 솟구치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에 불을 지피다 못해 일대에 화마를 일으킨 건 누가 봐도 저 조 맹덕이니, 놈이 참 좋은 걸 배워왔어. 진나라 놈도 아니면서 제법 많이 배웠단 말이야.”


“허나 결국 청주에 속한 객장이니 결국 외세의 군사력이 깎여나가는 일이라면 좋은 것 아닙니까?”


“글쎄? 이것이 반대로 그 청주의 밑에 자리한 서주와 말을 맞춘 행동이라면 자연스레 이를 바라보는 그림이 달라지지 않겠나?”


“설마, 조 맹덕과 서주의 연합을?”


“물론, 서주는 너무 커져서는 아니 되는 것이 현 상황이니, 이에 대한 가능성은 낮아. 그래서 내가 이런 쪽의 생각은 접은 게고, 뭐 그리 세세히 머리를 굴려야 할 사안이라면 외교를 비롯한 정략을 갖춘 동방이 알아서 거르겠지.”


하지만 당장에 피해를 보는 것이 유비임에도 정작 이에 인상을 찌푸린 이들은 장막을 비롯한 진류왕에게 속한 이들이었으니, 그러한 이들의 입지를 대변하는 조충은 이내 그것이 왜 자신들에게 거슬리는 일인지에 대한 설명을 지속했다.


“다만, 이를 통해 결국 진류왕과 손을 잡은 이쪽은 결국 조조 너머 후방에 자리한 유비라는 의외의 동맹이라는 연줄에 대한 기대를 낮출 수밖에 없지. 진류왕을 품에 안았으니 적어도 유씨와의 연수는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고, 그 유씨라는 힘의 한 축이 될 유비와의 연수라면 양 끝에서 가운데 자리한 조조를 압박할 수가 있었으니까.”


결국 연주의 동쪽에 자리한 조조는 동쪽으로는 청주의 유비, 서쪽으로는 연주 서쪽을 쥔 장막에 의한 양면전선을 형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뜻이 맞은 이들의 원교근공만큼 무서운 것이 없으니 조 맹덕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을 터.


그럼에도 그가 이리 나왔다는 것은,


“그렇다면 애초에 조 맹덕 또한 이쪽과 마찬가지로 주공을 비롯한 진류왕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눈 가리고 아웅도 정도껏 해야지. 이미 이 개봉에 모여들기 이전부터 다들 그렇지 않았나?”


결국 한조의 끝과 위나라의 시작이 맞닿은 이 연주에서의 권력다툼은 이미 한조의 마지막 상징을 지워내는 일과 마찬가지로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임을 알았다는 뜻이다.


어차피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날 일, 먼저 칼을 휘두른다고 달라질 것이 무에 있으랴?


“그건 그렇습니다.”


“허나 달리 보면 잘된 일이기도 해. 애초에 저 유비와 인연이 닿아있던 건 다름이 아닌 조조였으니. 그런 조 맹덕이 저리 나왔다는 건, 실상 그 인연에 더는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 고로 이쪽은 추후에도 유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는 건데, 문제는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그 인연조차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아쉬울 게 없다는 뜻이 되지. 그 말인즉슨 당장에 기존의 놓친 것들을 대신 충족할 여건이 된다는 소리고 이는 그만큼의 힘이 있거나 새로운 연줄을 잡았다는 소리니, 그래서 내 앞서 서주와의 관계를 의심했던 것이지. 고로 이는 이쪽을 향한 경고이자 일종의 무력을 과시하는 시위이며 거진 대놓고 이쪽을 베겠다 휘두른 칼이야.”


“현 황상이 중한 게 아니라 연주의 주인 자리가 중한 것이로군요.”


“한조의 하늘은 저문 지 오래요, 그리 하늘이 사라진 이 연주 땅에 새로이 위국이라는 이름의 하늘이 들어서려는 순간이야. 새 하늘에 오를 짐승을 결정하는 자리지. 허면 우리는 예서 어찌 대처해야 할까? 대인의 풍모를 보여 그들과 공존해야 할까? 아니, 그전에 함께 저 하늘 위에 올라설 수 있나?”


“송구하오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습니다.”


“그래, 결국 저 하늘 위에 빛나는 것은 오직 단 하나의 태양밖에 없지.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없으니, 결국 어제의 하늘을 또한 두 개의 태양을 허락지 않겠다는 소리군. 뭐, 오늘 이후를 살아갈 우리에게는 어제의 지는 해보다 중한 것이 결국 오늘 새롭게 올라서는 저 찬란한 아침 해이지만, 그 또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 그래도 은근히 어리숙한 것이 세상 물정 모르는 문사인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것도 아니었어. 해서 묻건데 이는 자네 생각인가?”


“우선은 진류왕 전하의 의지라 해두지요.”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군.”


그렇게 자신의 곁을 지키는 진류왕 측 문사를 통해 일련의 사실을 확인한 조총은 이내 그 또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운명임을 체감한 채, 자신을 놀라게 한 그의 정체를 물었다.


“자네, 이름이 어찌 되나?”


“혼(渾)이라 합니다. 자는 문공(文公)으로 개봉 정가의 사람이지요.”


“개봉 정가? 정혼? 설마......!”


그 끝에서 밝혀지는 이는 얼마 전, 장막이 진류왕의 부름조차 미룬 채, 만나 설득했던 이 개봉 땅의 제일가는 실세인 정씨 가문을 이끄는 정태의 동생인 정혼이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허나 당장에 급한 것이 전장의 현황인 만큼 출정의 전에 형님께서 남기셨던 전언을 우선적으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형님께서 말씀하시길, 20대의 마차 중 8대의 마차가 이탈할 것이요. 인근의 방벽 하나가 무너져 저들의 위전에 불을 지필 것이니, 이는 두말할 것 없는 정가의 힘이라, 오직 거슬리는 것은 칼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칼이니 필경 이를 휘둘러 그 자격을 증명하라 하셨습니다.”


“위전을 실전으로 만들라?”


스르응-


“좋지, 그리 애써 안달복달 나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말이야.”


그와 더불어 자신의 칼을 뽑아 든 조총은 이내 이를 휘둘러 성벽 위의 이들을 지휘하니, 수백 대의 화살이 시위에 매겨지며 만월을 그리다 못해 이 땅의 이들을 향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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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1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3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7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59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8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89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5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3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2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7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7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1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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