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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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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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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343화 – 계몽(啓蒙) 그리고 계명(啓明)

DUMMY

푸르르흥-


“여명이 걷히는군.”


“예. 아침해가 드디어 올라서려나 봅니다.”


새벽녘이 밀려나고 아침의 해가 올라서는 듯 하늘에 광명이 올라서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끝내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시간이었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모든 것을 끝내지 못할 그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끝냈으면 하는 바램이 더더욱 커지는 아침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계획조차 모를 저놈들의 진영은 너무나도 부산스럽고.”


“그 와중에 제 손으로 쏘아 올릴 효시가 될 유비의 군세 또한 또한 벌써부터 몸이 달아있는 티를 내고 있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이 모든 광경을 보다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조조는 어느덧 자신과 제법 가까워진 진궁을 옆에 둔 채, 이미 출격의 준비를 마친 듯 보이는 유비와 그 뒤에서 철군할 준비를 마친 듯 보이는 서주군을 살폈다.


“지재가 계획을 알려주었을까?”


“아닙니다. 애초에 희 선생께서 움직일 당시 직접적인 계획의 노출은 없다 했습니다.”


“한데 어째서 계획을 아는 눈치지?”


“예?”


“저것들, 왜 제놈들이 조이(釣餌)가 되려 하는 게야?”


그리고 그 와중에 조조의 눈에 깊숙이 들어온 것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칫 어색할 수 있는 분위기의 시작을 자처하며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서주군의 진영이었다.


* * *


“어쩝니까?”


“어쩌긴, 군진은?”


“모조리 정리했습니다.”


“허면 슬쩍 뒤로 빠져줘야지. 대충 현 상황 적어서 보고하는 전령인 척, 동서로 내보내. 그리고 후방으로 수레 빼면서 철군하는 척 천천히 주변 경계하면서 물러나고 흩어져서 유비 놈, 아니 정확히는 예서 죽을 황제 놈 퇴로 막아.”


“예?”


그리고 지금, 그런 서주군을 이끌고 있는 장패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조조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 한 채, 멋대로 병력을 운용하며 전장의 판도에 묘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낚시 안 해봤어? 낚시꾼들마다 낚시하는 법도 다른 법이야. 아닌 말로, 내가 강태공이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세월을 낚을 순 없잖아.”


“하오시면?”


“우리가 미끼가 되어야지. 우리가 격동이 되고 파랑이 되며 물살이 되어야지, 해서 그 안에 숨어 사는 것들이 이를 느끼고 제발 지려 움직여야지. 내겐 기다리는 건 성미에 안 맞아. 물고기 잡으려고 물가에 왔으면 망치로 돌덩이를 때리건 바윗덩이를 들어서 던지건, 그리 물속에 숨죽여 때를 기다리는 것들 모조리 깨워 몰아붙이고, 올라오면 모조리 족대로 거둬들여야지.”


“족대요?”


“저기, 연주 것들. 저놈들이 그 족대지. 그래도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 게 딴에 몰이사냥 하겠다고, 개봉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담을 통발도 준비했겠다. 천라지망 저리 가라 할 하늘의 그물이 있는 듯 보이니, 그리 내몰린 고기 잡아 올려 담그는 놈들 역할로 두자고. 대신, 놈 말 잘 타고 날랜 놈들 따로 뽑아놔. 그리 건져 올린 물고기 중에 제일 좋은 붉은 어룡은 내가......, 에이. 아니지, 쯧. 그러면 더한 욕을 처먹겠지. 그래, 여기까지다. 제 손에 작살 두고서도 몰이사냥을 하듯 물장구치며 죽을 때가 다된 붉은 고기, 그 마지막 알 낳고 죽을 수 있도록 마저 움직이게 만드는 거, 그게 내 역할이지. 그런 고로......”


“고로?”


“연어, 아니, 잉어 좋아하나?”


“예, 좋아합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잡는데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리 잡고 나면 저 기다란 홍연언지, 잉어인지 모를 물고기 다 같이 뜯어 먹자고. 이 겨울날에 이만한 고기도 없으니 이 관동의 모두가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적잖은 포식은 해야지.”


“예!”


그렇게 누군가의 가장 절실할지 모를 마지막 순간마저 제 수하와 떠들기 위한 농으로 치부한 장패는 돌연 그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냄과 동시에 제 뒤편을 향해 드높이 손을 들어올렸다 이를 내리며 무언가를 때리는 것 같은 묵직한 손짓을 보였다.


“자, 그 뒤통수를 후드려 쳐서라도 깨워라. 아침 해가 저리 올랐는데, 이제 그만 길고 긴 어둠 속 얼룩진 희망에 젖은 꿈에서 깨야지. 계명(啓明)의 때가 왔느니라, 계몽(啓蒙)이자 계몽(啟夢)을 위한 시대가 도래했음이야.”


그와 더불어 이를 확인한 기수가 장패를 상징하는 거대한 깃발을 흔들어 펄럭였으니 이는 몰이꾼의 등장과 더불어 마지막 사냥의 시작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거센 신호와도 같았다.


“가라! 가! 아직도 잠들어 있는 저 정신 못 차린 어린 것을 깨워라! 모든 것엔 때가 있나니, 가서 그 엉덩이를 걷어차 주란 말이다!”


푸히히힝-


“하아! 하아!”


그리고 그 순간, 언제고 뛰쳐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전령들이 졸지에 말 배를 차며 엄청난 속도로 장패를 비롯한 서주군이 자리하고 있는 군진을 뛰쳐나갔다.


두두두두-


“전령이, 그것도 동서로......!”


“뭣들 하느냐! 당장 이를 전해! 서주 놈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밝아오는 아침날에 어울리지 않은 다급한 긴장감이 서린 말발굽 소리가 유비군의 후방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또 동쪽으로 마치 전장을 반으로 가르듯, 그 시작을 알리듯 양극단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 이제 어쩔 거지?”


이에 우렁찬 이들이 목소리가 연달아 들리며 이를 확인한 유비군의 보고체계가 직접 움직여지는 것을 확인한 장패는 짙은 미소와 더불어 조만간 튀어나올 용을 기다리며 발 빠르게 병력을 뒤로 물렸다.


그러나 정작 그보다 먼저 반응하여 튀어나온 것은 다름이 아닌 조조였으니, 그는 실로 본능적으로 전장에서 불씨를 일으킨 이 장패의 기행에 가히 홀린 듯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 * *


“허, 참. 기어코 저런 식으로 일을 낼 줄이야. 그래, 저런 방법이 있었어. 제가 직접 미끼를 자처하나 싶더니, 낚싯밥이나 뿌려대는 아해들이 아니라 아예 직접 물에 뛰어든 몰이꾼이 될 줄은 몰랐지.”


“주공!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당장 유비 놈들의 동태를......”


그러나 그 기행에 인한 충격은 이내 예상치 못했던 이들에게 그간에 없던 소통의 부재와 갈등의 불씨를 선사하였으니, 이는 기존의 계획에 어긋난 현실을 둔 방향성의 대처와 접근법의 차이였다.


“아니, 우리부터 움직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좋든 싫든 딴에 참을성 있게 때를 기다린 놈이 기존에 이야기되지 않은 계획에 그대로 따라줄 리 만무하지. 필경 의심할 게야. 유비 놈에게 저것들이 움직인 언질은 없었어. 그리 주변 눈치 살피던 놈이 자연스럽지 않은 판에 발을 담그나? 거기에 놈이 붙들고 있는 이 나라 황상의 눈초리마저 속여 넘겨야 할 판이지. 그래, 분란 좋지. 격정적 반응을 일으켜야 해. 그러려면 뭐가 좋을까? 그래, 명적을 쏴 올려야겠지. 지금 당장 효시를 쏴 올리시게, 진 선생. 홍건적과 청주병을 싸움 붙여 피를 보게 만들란 말이야.”


“주공, 그 무슨 말씀이신지요? 본디 계획된 바는 어가를 개봉으로 몰아넣기 위한 위전이었습니다. 한데 뛰쳐나온 유비와 황제를 태운 어가(御駕)라는 미끼도 없이 판을 벌이라니요? 이는 애초에 계획에 없던 일이니, 되려 저 홍건적들이 과민반응하여 위전이 아니라 진짜 교전이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그리되면 그에 합류한 백성들 또한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볼 수 있는........!”


“위전이고 백성이고 나발이고! 그것이 계획에 있던 없던 당장에 내가 하라면 해! 애초에 그 지랄 맞은 내 변덕에 대해 희지재를 비롯한 정욱에게 귀가 딱지가 않도록 주의를 듣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이리 나올 셈이야? 자네도 이쯤 되면 돌아가는 판을 모르지 않을 게야! 전장에 불씨가 당겨졌고 이에 모두의 눈이 홀렸어! 당장에 이걸 들불로 키워내야 저것들이 맞불을 놓던 그 불씨에 부나방마냥 뛰어들던 할 것 아니야!”


변덕이 심하다는 말은 결국 적응이 빠르다는 말이고, 적응이 빠르다는 말은 결국 적재적소에 대한 대처가 훌륭하다는 뜻이니 이는 결국 한가지 길과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이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말이 되며, 이를 위해선 선(善)도, 의(義)도, 정(正)도, 연(緣)도, 언제든 뒤바꾸다 못해 내칠 수 있는 그 우선의 가치가 언제고 변동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은 본디 일생을 살아가며 본의 아니게 묶여있는 것들이 많으니 이를 내던진 파격은 필경 그에 따른 서운함과 오해를 비롯한 부작용과 악연을 만들어내기 마련이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매번 기회로 삼고자 하는 조조의 기행이 처음으로 진궁의 두 눈에 각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주공.......”


“하라면 해! 아니, 그 찰나의 늘어짐도 아깝군, 내가 하지.”


그렇게 곧바로 그 곁을 지키던 호위로부터 활과 효시(명적)를 넘겨받은 조조는 이를 단숨에 살대에 걸고는 유비의 군세가 자리한 방향을 향해 잡아당겨 그 끝을 놓았다.


피잉- 삐이이이이익-


“효시다! 효시가 올랐다!”


“뭣들 하느냐! 이제 시작이다!”


보통 전쟁의 시작을 알리며 상대에 대한 선전포고를 알리는 화살이기에 그 전장에 자리한 모두를 단숨에 극한의 긴장감 속으로 몰아놓는 효시가 그리 유비군을 향해 날아가자, 인근에 자리한 3만의 청주군 또한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했고 이에 반응한 홍건적들 또한 우르르 그에 상응하는 날이 선 대치 국면을 만들었다.


“비켜라! 이 시뻘건 빨갱이 새끼들아!”


“놈들이 멋대로 한의 천자를 구출하려 하고 있다! 저 누런 두건 두른 놈들의 우두머리가 합종군에 종군했던 조 맹덕임을 잊지 말아라! 백성을 사칭한 도적 나부랭이 따위가 이제는 재물과 권력이 좋아서 한에 굴종한 모습을 보이니 의기로 일어난 우리가 어찌 예 물러나겠는가!”


와아아아아-


마치 정해진 대본이 있는 것마냥 별 것 아닌 마찰, 소위 별 것 아닌 대치와 길막 속에 벌어진 유려한 대처에 흥분한 이들이 대립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이 정신 나간 약쟁이, 약팔이 새끼들이 미쳤나? 백성을 사칭한 도적 나부랭이? 어디 먹물 찍어 먹은 유학 공자 나부랭이 잔재나 다름이 없는 추종자 새끼들이, 그것도 그게 뭔 소린지 몰라서 나중에는 방사, 술사, 음양가를 비롯한 오만 잡것들에 약장수까지 불러들여 백성들 현혹시켜 놓고 뭐가 어쩌고 어째?”


“그러는 네놈들이야말로 노자 밑구녕 핥고 살다 안 되니 민간의 오만 잡신을 다 섞은 것 아니냐! 부적 쓰고 약 팔고 봉헌 받고 누런 두건 뒤집어쓰면 태평한 세월이 오더냐, 이 배교자들아!”


“감히 저열한 유가의 종것들이 만고의 이치를 설파한 우리의 노군을 모독하느냐! 허물은 가지려 욕심부리는 것보다 더 참혹한 것이 없으며, 재앙은 만족함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나니 저 빌어먹을 수백 년의 세월 동안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하고서도, 아직도 이를 놓지 못하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의 허물과 탐욕을 비롯한 재앙은 이를 멈추지 않은 저 유가의 것들에 의해 탄생하였으니,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저 한조와 얽힌 재앙을 끝장낼 것이다!”


푸욱-


“끄하아악!”


그리고 그것이 본디 위전으로 계획되었던, 소위 예정에는 없던 교전의 시작이었다.


“개 같은 사이비(似而非) 새끼들 다 죽여버려!”


“보라! 대동 사회의 끝에 인세의 진리가 있는 것이니, 저들이 구도하는 천국에 올바른 지향점이 없노라! 제놈들이 주장하는 내세의 구원이 과연 어디 현세에서 찾을 수 있는 구도던가? 저들에게 천국은 허락되지 않은 것이며 대동의 길조차 내어줄 연유가 없으니, 가라! 홍건의 아이들아! 그간 우리가 지켜온 공위의 가치를 수호하여 저 이교의 이들을 멸하라!”


투콰아악-


“배덕자들에게 죽음을! 진리를 져버린 배교자들에게 천벌을!”


수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 후인을 자처하는 두 성인의 변질된 이념이요, 오염된 사상이 결국 또다른 방식의 맞불이자 거대한 화마가 되어 피를 뿌렸다.


어느덧 산등성이 너머로 올라서기 시작하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광명(廣明)이 모두에게 찾아든 그 순간에 이 땅은 또다시 하늘에 인도를 받은 짐승으로 인한 폐해를, 동족상잔의 비극을 자행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에 의미를 두고 그 희생이 최소한도 적길 바랬거늘, 그 일이 틀어진 지금 의미 없을 이들의 죽음을 자처할 머릿수가 최소한도 몇만이 될지 이제 가늠조차 힘들어진 비극이 기어코 현실에 강림한 셈이다.


“물살이 일고 불길이 올랐으니 이제 곧 바람이 불겠지. 그 바람을 타고 먹구름이 몰려들 것이니 이는 용이 다시금 승천할 때를 노린다는 뜻이지. 이는 용오름이 시작됨을 의미하나, 실상 이쪽이 깔아둔 판이니, 용살을 위한 천라지망은 그대로 차질없이 진행되어야 할 터.”


“이, 이럴 수가......., 이럴 수는........, 지금 뭣 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조조는 흔들림이 없었다.


제 옆에 충격을 받은 진궁이 혼란 속에 빠져있음에도 상관없다는 듯, 가장 아끼는 친족 중 하나이자 회전과 병력의 운용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하후연까지 불러 아예 틀어진 계획 그 이상의 일을 밀어붙였다.


“하후연.”


“예, 주공.”


“마차가 튀어나오면, 개봉의 포위망을 푼다. 그와 더불어 뛰쳐나온 황제의 어가를 쫓을 것이니 그때 거추장스럽게 뒤에 매달릴 홍건적 놈들의 선두를 때려라.”


“시간을 법니까?”


“아니, 거리를 벌려라.”


결국 개봉이란 하나의 성을 두고 태극과 같이 돌며 멀어지는 원심 교전을 벌이는 두 군대의 빈틈을 천자를 태운 어가가 침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개봉의 성내로 접근할 빈틈을 만들어주어야 계획은 완성되는 법.


그 와중에 천자의 어가 출입을 구원하고 그 길을 이끌기 위한 장막의 군세 또한 끌어내려면 기왕지사 벌어진 그림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이었다.


“주공!”


“조금의 피해가 있겠지만, 그것이 계획에 없던 것이라도 자신이 감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언제든 감내할 수 있다. 이게 나 조 맹덕이요. 나는 본디 이런 사람이니, 이런 나를 붙들고 매고 선생의 왕도로 이끌고 싶으면 먼저 그 능력을 보여야 할 게요. 또한 더는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니, 선생. 우리는 지금 전국의 복판에 있소.”


“압니다. 허나......!”


“그걸 아는 분이 그러시오?”


“허나 굳이 흘리지 말아야 할 피라면 흘리지 않아야 함이 옳습니다!”


“나의 의지요.”


“정녕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셔놓고서 하늘의 간택을 받길, 하여 천하를 손에 넣길 바라십니까?”


“글쎄, 내 아직 의천은 받지 않아서 순전히 그 하늘에 기댈 생각은 없소. 허나 얼추 청공(靑釭)의 의미는 알겠더군. 그래서 내 의지를 드러냈소. 이게 내 뜻이요, 세상을, 천하를, 그리고 내 사람들을 이끌 나의 계몽이지. 이것이 바로 새 시대를 이룩할 아침에 어울릴 계명 아니겠소?”


그렇기에 이러한 자신을 이제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하게 될 진궁을 위해 다시금 자신에 대한 소개를 마친 조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진궁의 어설픔을 지적하며 어느덧 자신의 허리춤에 매인 천자의 어검인 청공검을 뽑아들었다.


“청공검(靑釭劍)은 자신에게 반하는 백성을 향해 쏘아진 살이자, 매양 푸르름을 간직하면서도 한결같이 무능함만을 유지한 채, 세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주둥이만 나불대는 시끄러운 소음만을 내는 유자, 사인을 비롯한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쏘아진 살촉이지. 본디 이 검의 의미가 이렇소. 이게 이놈의 운명인 게지. 하늘이 이 땅의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내놓은 것, 그러라고 만들어진 검이니 그리 써야지.”


“정녕 백성을 귀히 여기지 않으신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귀하오.”


“애초에 한조를 대신할 천하를 얻는 것이 주공의 대의 아니셨습니까?”


“맞소.”


“한데 어찌 이리 이해 못할 과격함을 보이십니까! 용납 못할 일들을 벌이시고, 그리 귀하다는 것을 저리 헌신짝마냥 내치십니까!”


“미안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이 조 맹덕보다 귀하진 않소. 이 조 맹덕이 없으면 천하가 무슨 소용일까?”


“..........!”


“진 선생, 나는 말이외다. 내가 천하를 버려도 천하는 나를 버릴 수 없어야 한다 여기는 사람이요. 달리 말해드릴까? 나는 내 뜻을 천하에 관철시키고 이를 증명시키려는 사람이요, 고로 나는 이를 위해 무슨 짓이든 밀어붙일 의향이 있소. 그리고 그 속에 나를 잃지 않으려 하니 타인이 나를 좌지우지하게 두지도 않을 게고, 그들에게 흔들리지도 않을 게요. 그게 이 세상에 나고 자란 이 조 맹덕이, 그 이름 자와 더불어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새기는 방식이요. 천하에 나의 상흔이 남을 것이고, 그 상흔은 이내 시대를 관통하는 낙인이 될 것이요. 그리고 그 이후의 세상이 내가 옳았는가 틀렸는가를 증명해주겠지.”


“허면 이 사람을, 대저 이 사람을 왜 쓰고자 하셨습니까? 왜 곁에 두고 그리 아끼며 대우하겠다 헛된 믿음을 심어주신 겁니까?”


“그런 내가 선생을 곁에 둔 것은 순전히 정 중덕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지기 때문이요, 나보다도 더한 나를, 보다 짙은 나를 만들어내려는 색채조차 지금의 내가 아니게 되기에 이를 희석시켜 온전한 조 맹덕으로 남고자 하는 내 바람이 들어선 게지. 나는 일관되어선 안 되는 사람이요, 천변만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지.”


“세상은 변치 않아야 합니다. 태평성대도, 만고의 가치도 모두 일관된 것이었습니다.”


“아니, 세상은 매 순간순간 변하고 절대 같은 하나의 모습만을 품고 있지 않소. 그때마다 그에 맞는 답을 내어놓아야 세상이 평온하겠지. 해서 나는 포홍 놈과 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게고, 진 선생 또한 나와 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길을 가는 게요. 정 중덕 또한 마찬가지고, 희지재 그 친구도 그렇지.”


“어째서 그렇습니까?”


“매양 모두에게 찾아오는 아침이지 않소? 허나 그 순간순간 과연 모두에게 같을까? 사시사철 떠오르는 해가 과연 다 같은 해일까? 저 해를 누군가 떠받드는지 몰라도 누군가에겐 저 아침날의 찬란한 햇살은 곤히 자고 싶은 이를 억지로 깨우는 방해꾼이 될 것이고, 또다른 누군가는 활발히 활동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은인이 되겠지. 그래서 내게 반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는 거겠지. 내게 저 찬란한 아침해와 같은 계명(啓明)은, 나의 계몽은 이와 같소, 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길을 가는 것. 고로 그 속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것. 설령 내게 다른 이들이 있을지언정 그조차 나와 같은 길을 걸으니 이 천하에 나를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음과 별개로 내가 통용이 되는 것. 천하가 남든 말든, 백성이 남든 말든 나는 내가 남는 것을 추구하고 내가 존재하는 것을 추구함으로서, 세상이 그리고 천하가 또 백성이 귀하다는 이들과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다른 길을 가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조는 그 청공검과 더불어 거진 자신을 하늘과 동등한 존재라 역설했다.


양면성을 논하고 다각화된 정당성을 논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벌인 그 모든 일에, 아직 결과를 내지 않고 그 모든 가정을 살려두어 이를 존재케 하는 일에, 이 땅의 이들의 의미를 부여해 양자의 불완전성을 논한다면, 그 불완전성을 지워내 이를 운명이라 결정지으면서도, 그 와중에 또다른 불완전성이나 다름이 없는 양면성을 남겨 이를 통해 자신의 불완전성에 정당성을 더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높은 곳에 오른 인간이 어찌 신과 같은 오만을 저질러 다른 이의 운명을 결정짓는지 그에 대한 연유를 설파했다.


그리고 이는 이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리 중 하나이며 그것이 곧 자신이 발견해내고 깨우친 사상이자 철학이며 구도이니, 이를 통해 자신의 뜻과 이치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라 주장했다.


이는 실로 기형적인 행위이자 기만에 가까울 시위였으며 제멋대로 세상을 이해한 이의, 세상의 수많은 면을 단 하나의 면으로 담아내려는 고집스러운 광기였다.


“궤변, 이는 궤변입니다!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니, 대저 모든 것에 상반된 역설을, 그저 허허실실(虛虛實實)을 논하는 것이 전부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진궁 또한 이를 알기에 결국 그 본질의 무엇인지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면서도 노자마냥 상반된 상대주의만을 설파하는, 소위 노자의 영향을 받아 민간신앙을 받아들인 저 태평도의 도교적 한계를 지닌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조조를 질책하며 다그쳤던 것이다.


“그 궤변, 그 모순, 그 역설.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게 이 조 맹덕인 게야. 세상 모든 경우가 존재함에 필경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그 모든 걸 나를 위해 가져다 쓰는 것, 지금도 마찬가지야! 저들의 죽음이 억울한가? 아니, 적어도 그 죽음들 덕에 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짐승이 기회를 포착했다 여겨 더는 이 거짓놀음이 거짓이 아닌 걸 알고 이 땅의 이들의 분열된 모습을 보며, 그리 제 승천을 위한 제물이 됨을 즐기며 진정으로 저 하늘 위에 올라서려고 하겠지! 허면, 그 의미 없을 죽음들에도 진정 의미가 생긴다! 제 한 몸 불 싸질러 장작이 되고 불씨가 되고 바람이 되고 화마가 되며 파랑이 되면, 해서 이를 타고 저 하늘 위로 오를 용을 잡기 위해 몰려든 짐승들을 똑같이 하늘 높이 올려주면! 해서 저 천룡을 내친 하늘을 달래고 그 와중에 이 조 맹덕을 비롯한 이들을 위해 죽으면! 그게! 그게! 대의고, 정의이며 한 시대를 끝내는 길이자 그토록 제놈들이 고대하던 새 시대를 여는 길이야!”


“세상 어느 하늘이 인간의 죽음을 바랍니까! 대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게 그 무슨 계명이요, 계몽입니까!”


어쩌면 세상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등장하기 이전에, 사도세자의 뒤주가 등장하기 이전에 일을 행함에 있어 그 결과를 맞이하기 이전에 남은 경우의 수와 과정을 두고, 하여 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통해 운명으로 매듭짓는 허실이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하여 이를 역설적으로 되짚어가며 천지만물을 관장하며 그들의 존재와 생사를 결정하는 신의 섭리를 그릇된 궤변이요, 모순이자 역설로 풀어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예로부터 인간은 제사와 제물을 다하였으니 이는 하늘과의 소통이요, 맹약이라 하여 인간은 하늘을 달래 원하는 것을 얻고 그 하늘은, 아니 그 하늘에 기생하는 짐승은 대저 자신들도 왜 태어났는지 모를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고 봉헌된 이의 운명을 조종하여 스스로 존재하고 건재함을 증명한다. 하여 자신들이 유일무이하게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었음을 느낄 수 있는 마치 신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그 섭리의 당사자가 되는 체험을 내려놓을 수 없는 그 중독을, 그 희열을 내려놓지 못하니 인세의 비극은 그 하늘을 자처한 그릇된 짐승에 의한 것. 저 하늘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망하는 사이 인간이 하늘을 자처한 짐승을 상대하려면 어찌 나와야 할까? 사람을, 성인을, 신인을 자처한 거짓된 선각자요, 선지자의 궤도에 올라선 그 짐승의 세기를 끝내야 다음 대의 화평이오며, 더 이상의 비극이 없지.”


“그게 작금의 무너져내린 한조를 대신할 위의 천하입니까? 그대의 계몽이란 결국, 누군가가 언젠가는 저지를 악업을 스스로 짊어져 그 누구보다 먼저 이를 이룩하겠다는 기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어째서 기만인가?”


“저 하늘에 다른 짐승이 선다고 세상이 달라집니까?”


“허면 한조가 서 있을 적의 짐승은 옳았나? 해서 이 나라가 이리 망했나?”


“예, 맞습니다. 그릇되었지요, 이 사람 또한 한조의 멸망을 목도한 이로 그 업의 무게를 모르지 않습니다! 허나 적어도 작금의 공께서 내세울 위의 결말 또한 빤히 보이는 것을 어쩝니까? 그 잘난 계몽이, 개복이 결국 이 전국과 같은 회귀요, 역행임을 모르지 않으니 어쩝니까?”


“뭐?”


“위는 결국 또다른 진이 될 겁니다. 그대가 깨우친 섭리는, 그대가 천하를 상대로 벌일 계몽이자 계명은 결국 멋대로 천하를 일통한 비극의 시대를 열어젖힌 진시황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니 주공, 아니, 조공. 위공. 아니, 위왕 전하! 공께서 열어젖힐 그 조위의 끝은 결국 또다른 진이 될 것입니다! 이 진궁에 눈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똑똑히 보이옵니다!”


그러나 천하만물을 주관하지 않은 자리에 존재하는 짐승이요, 인간이 멋대로 그 이치를 논하며 이를 섭리의 일환으로 녹여내기 위해 저만의 구도를 강제한다면.


결국 그 결과의 가정을 하늘에 맞긴 채, 제멋대로인 계몽을 추구하게 된다면.


필경, 그 부작용은 세상 밖으로 튀어나와 이 땅의 이들을 집어삼킬 또다른 비극의 세기를 만들게 될 것이 자명할 터.


그렇기에 각자가 제멋대로인 저만의 섭리와 사상에 입각한 계몽을 저지르는 이 비극적인 자리에서 진궁은 그 조조가 일으킨 세상 너머의 풍경을, 조위 천하 이후에 등재할 사마씨의 진을, 천하를 일통한 진 이후에 벌어진 또다른 비극을 꿰뚫어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의말

그 마지막 힘주고 마무리하는 부분인지라 이것저것 빡세네요, 그래도 일단 계속 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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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428화 – 나아감에 그 끝엔 오직 영광뿐인 상처뿐이 없나니 22.11.05 155 3 15쪽
428 427화 – 각자가 바라보는 그 너머의 세상, 그 끝을 향해서 22.10.29 152 3 21쪽
427 426화 – 절반의 실패와 더불어 남겨진 유산이 이룩한 진보 +1 22.10.22 166 4 16쪽
426 425화 – 백성이, 기득권이, 사족이, 관료가 아닌 군대가 국가의 주인이 되어야 옳다 +2 22.10.05 194 3 21쪽
425 424화 – 실패한 시대의 이면, 이를 뛰어넘을 또다른 시대적 일면 22.10.04 158 5 21쪽
424 423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3) +2 22.10.03 158 3 24쪽
423 422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2) +1 22.09.28 159 3 20쪽
422 421화 – 미궁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 날개의 그것과는 사뭇 같은 이야기(1) +1 22.09.22 204 4 21쪽
421 420화 – 이는 공화정의 몰락인가 그도 아니면 크레타의 몰락인가 22.09.21 145 2 23쪽
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6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49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5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47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7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5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2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2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67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0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09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2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79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1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0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2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5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58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7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86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4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1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0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6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5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0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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