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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내가 죽어 소금에 절여지기까지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6:04
최근연재일 :
2022.11.09 06:27
연재수 :
4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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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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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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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21쪽

342화 – 하늘에서 내쳐진 붉은 짐승은 이 땅에 운명을 빙자한 저주의 족쇄를 남긴 채 다시금 하늘에 오른다

DUMMY

펄럭-


“준비가 되었습니다, 황상.”


“그래, 나도 이제 갈 때가 된 게지.”


“.........”


야음을 틈타 돌아온 유비와 별개로 새벽녘의 여명이 올라선 흐린 하늘 아래, 개봉의 주변이 시끄러워진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도 그럴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기어코 본 모습을 드러낸 10만은 족히 우습게 넘을 것 같은 홍건적들의 실체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며 그 와중에 보다 많은 수의 백성들 또한 확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홍건적들을 비롯한 백성들은 여전한가?”


“그나마 조 맹덕을 비롯한 황건적의 이들이 대치 국면을 벌이고 있어 덜하긴 합니다만, 여전히 원성 높은 이들의 목소리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개봉은?”


“두 세력의 충돌에 최대한의 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미 임시로 세워 올린 가벽의 뒤로 벽돌과 석재 진흙과 볏짚까지 다져 넣은 방벽을 쌓는 개봉의 방위는 더더욱 촘촘해졌고 그 와중에 합류한 병사들도 모습들도 모자라 임협과 정체 모를 이들까지 성벽 위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 백성들이 합류한 이후 상황이 더더욱 복잡해지다 못해 격정적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유비군을 향해 몰려들 것 같았던 홍건적의 이들이 돌연 포위망을 구성하며 개봉을 봉쇄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소제 유변이 이미 개봉에 들어선 것이라 여겼던가 그도 아니면 소제 유변의 개봉 출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에 존재감을 내비치며 제동을 건 이들이 있었으니 다름이 아닌 조조가 이끄는 황건적들이었다.


그렇게 개봉은 동서로 구분 지어 사이좋게 양측에 의해 반반씩 개봉을 포위하는 모습을 취했고 그 와중에 욕설과 자잘한 칼부림까지 오가는 대치 국면을 벌였다.


그러나 여전히 상호 간에 노골적인 대치 국면을 벌이는 와중에도 두 세력의 소제 유변을 향한 힐난과 비판이 이어졌으니, 이는 한조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소제 유변의 입성을 허락지 않거나 입성을 한다고 한들 돌려보낼 생각이 없다는 의중임이 노골적으로 확인이 되었다.


그 와중에 그 거대한 포위망과 별개로 여분의 병력이 남았고, 그 남은 병력을 각기 유비 측으로 이동시킨 홍건적과 황건적은 각각 3만의 군세를 움직여 유비가 머무는 가까운 곳에 또다른 대치 국면의 전장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그런 유비의 뒤편에는 여전히 침묵을 고수한 채, 본연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서주의 이들이 그 눈을 킨 채, 돌아가는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결국 어떠한 세력들이건 간에 소제 유변이 개봉의 안에 있던 밖에 있던 간에 각자가 여차하면 소제 유변의 목을 딸 기회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단 소리였고, 그 와중에 소제 유변은 어떻게든 자신이 살아나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한단 소리였다.


“그러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미 짐은 백성들에게나 제후들에게나 낙인이 찍힌 셈이나 반대로 장막과 조조의 대치 국면 덕에 내 개봉 안에 비집고 들어설 빈틈이 생겼다 이거지? 지금껏 이를 노려온 게고?”


그 와중에 그나마 자신이 기댄 유비 또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자는 아니나 그 와중에 그가 자신에게 활로를 열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예.”


“그대는 내게 그대의 심복이 기어코 왕궁 안에 자리한 진류왕을 만났다 전했다. 정확히는 그 왕을 보필하는 장막까지 함께 만났다고 말이지. 그 말인즉슨, 장막과 진류왕의 연대 그리고 조 맹덕의 대결이라 볼 수 있을 터. 고로 이는 그대가 말한 빈틈과 부합한다.”


그래서였을까?


- 짐이 어찌해야 개봉의 안에 들어갈 수 있다더냐?


“짐이 어찌해야 개봉의 안에 들어갈 수 있다더냐?”


그와 더불어 소제 유변은 과거 유비와의 대담을 떠올리며 그때의 질문을, 그때의 부름을 다시 유비에게 물었다.


“그것이........”


그 의외의 질문에 유비는 조금 멈칫한 눈동자로 소제 유변을 올려다 보았으나 이내 그런 자신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소제 유변의 무심하고도 깊은 눈동자에 저도 모르게 흠칫하여 다시금 고개를 조아렸다.


“왜? 삶의 경계에 자리한 짐이 유일하게 믿는 것이 그대인데? 그대는 뭐가 이리 어려운 게야?”


“송구하오나......, 본의 아니게 무례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었사오니........”


“왜? 짐을 보필하는 이들이 거슬려 하나둘씩 쳐낼 때는 언제고? 되었으니까 다 집어치우고, 다시 말해봐. 그때와 같이 내게 확신을 줘야지. 그래, 해서 그때의 자네는 필경 내게 어떠한 말을 했어. 내 부름에 응답한 그 말, 그게 나의 불안을 씻어줬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된 지금 나는 이를 다시 듣고 싶을 뿐이니, 다시 이야기해봐.”


“........”


설마 하는 심정이 들었다고 한들, 이제와 물릴 수는 없는 일.


그리고 고작해야 기우에 불과한 일이자 이조차 제 마음 속의 심마에 의해 가책을 느껴 흔들리는 일종의 착각에 불과할 수 있는 일.


애초에 동족 포식을 위해 자신이 저지른 일.


이 모든 걸 설계하고 멋대로 설쳐가며 판을 벌여 예까지 이른 일.


설령 이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한들, 개봉의 안팎도 모자라 그 외부의 추격대까지 자리한 3중, 4중의 넘는 포위망을 벗어날 순 없는 일.


승천을 꿈꾸는 여러 짐승들과 함께 저 드높은 천상에서 떨어져 이 땅으로 추락한 이무기를 갈기갈기 찢고 뜯어 집어삼키는 일.


더는 하나의 하늘을 꿈꿀 수 없으며 그 속에서 자신의 하늘을 바라고 시행했던 그 일.


대의와 정의로 포장된 탐욕의 아가리와 꽃망울이 벌어지고 그 독이 뚝뚝 떨어져 이 땅에 저주를 내릴 때, 그 줄기와 기둥이 무너져 내려 추락한 하늘의 상징이 깨어지고 부서져 그 죗값을 치러야 하는 그 일.


이는 지워낼 수 없는 업보요, 멋대로 하늘에 서고자 했던 그릇된 이들을 멸하기 위한 징치이며 그 하늘을 뒤바꿔내기 위한 운명이자 그에 고통을 받았던 이 땅의 이들과 하늘을 달래기 위한 제사요, 살아있는 이를 죽은 이의 곁으로 보내는 순장이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인신의 공양이었다.


이를 위해 이 땅의 모두가 한데 모여들었으니 이는 실로 멈출 수도, 멈춰서도 안 되는 일일 터.


그렇기에 유비는 조심스레 자신의 만족스러운 미소 속에 황제의 부름하기 위해 답했던 그때의 그 응답을 떠올렸다.


당시의 그조차도 그 한마디를 굳이 회상치 않았거늘, 이제와 그 회상이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기억하는 소제의 앞에 거짓을 읊을 수는 없었다.


- 조 맹덕과 장막을 갈라 싸움을 붙이면 가능하오니,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뿐이옵니다.


“조 맹덕과 장막을 갈라 싸움을 붙이면 가능하오니,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뿐이옵니다.”


결국 그의 입을 통해 그때의 사실이 흘러나오니 그제야 소제의 목소리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결국 내 우가 조 맹덕을 키웠군, 곁에 두고 지켜봤어야 했는데 정작 경계한 장 맹탁 이상의 것이 되어버렸어. 이를 달리 말하면 진류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내 아우가 그래도 한 사람의 몫은 해낸 것이고, 또 이를 달리 해석하자면 내게 악감정이 있는 그 장 맹탁조차 이제와 내 아우와 뜻을 합쳐 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입장을 뒤바꿨다 볼 수 있겠지.”


그리고 이를 달리 해석한다면 그 뒤를 쫓는 진나라의 침공이 없거나 더는 진나라의 침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애초에 진나라의 20만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규모를 자랑하는 이들이 한데 뒤엉켰으니 이는 되려 진나라라는 공적을 앞에 두고 힘을 합칠 우려가 있기 때문일 터.


이를 알기에 진나라도 되려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고 그 선발대나 다름이 없었던 서주군 또한 더는 이에 손을 쓰지 못한 채, 가까이에서 손가락만 빨며 이 위협적인 대치 국면을 관망하고 있는 그림이라면, 그간 진나라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에 개봉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던 제 배다른 동생인 유협의 반응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진나라가 없기에, 설령 자신에게 팽을 당하고도 아무런 반발이 없었던 장 맹탁이 진류왕과 손을 잡다 못해 이리 유비를 통해 자신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믿지 못할 사실 또한 의구심이 아닌 믿음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전 언급했던 개봉의 내외에 자리한 모두가 자신을 죽이려는 것이 아닌, 적어도 개봉의 안에 자리를 잡은 이들만큼은 자신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소제의 활로는 이전보다 넓어진 셈이다.


“바로 그것이옵니다. 실상 소인이 다름이 아닌 황상을 뫼셔 이 개봉으로 온 연유의 배경에는 떠들썩한 풍문과 함께 권토중래한 조 맹덕과 그를 추종하는 황건의 잔당인 청주병들이 있었으니, 그는 돌아오는 길에 수없이 많은 토호를 척살하며 주변의 민심을 흡수하고 기존의 토호들이 다스리던 강역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합니다. 장막 또한 이를 모르지 않을 터이니, 필경 그에 대한 우려가 있을 터. 애초에 연주에 자리한 모든 토호를 비롯한 위정자들과 연이 닿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한조의 하늘을 등진 백성에게 힘을 얻어 저와 같은 토호의 이들을 척살하는 조 맹덕의 태도에 두려움과 불만을 가졌을 리 높습니다. 또한 그 두려움에 제발로 장막을 찾아온 이들 또한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인이 듣기로 그는 팔주의 일원으로 재물을 털어 민생을 보살펴 그 악업을 씻어주는 자이니, 그는 현 정국에 모두를 죽이지 않고 모두를 살릴 해결책을 품은 유일무이한 이로, 결국 서로 다른 두 집단을 품은 둘의 충돌은 예견된........”


그렇기에 그 변화된 소제의 태도와 분위기를 체감한 유비가 다시금 그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의 존재감과 그간의 노력을 피력했고, 결국 그 노력은 가상하게도 하늘의 끄트머리에, 적어도 이 땅보다 높은 곳에 자리한 채, 용과 어울릴 수 있는 구름 언저리에는 닿을 수 있었다.


“하긴 적어도 짐에게 끝까지 충성했고 그 부름에 응답하였으며 새로이 살길을 열어준 그대이니, 허울뿐이자 성만 같은 다른 황실의 이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낸 것은 사실이지.”


그도 그럴 것이 작금에 이르러 소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황족이라고는 자신에 대한 충정과 황족으로서의 의무는 물론, 제 아비와의 약속도 저버린 유언, 유표와 같은 변절자요, 배신자이자 하나의 자리를 두고 앞날을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뿐이었다.


“해서, 바라는 바가 있더냐?”


“송구하오나 하늘 아래 단 한 차례도 황실의 일원이라 인정받은 적이 없나이다. 의기를 내세워 한조가 흔들리는 난세를 바로잡기 위해 의용병을 모집하여 황건동란이라는 거대한 환란에 몸을 맡겨 이 자리까지 이르렀으나 돌아온 것은 별 것 아닌 소소한 대우와 그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의구심과 모멸을 비롯한 차별이었나이다. 해서 바라는 것은.......”


그에 비해 비록 어설프긴 해도 그 혈통의 자격을 증명하며 딴에 충정과 능력을 보인 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이로움을 준 유비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될 확률은 적었다.


물론, 이조차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그만큼의 공을 세운 이도 현 황족 중에 없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를 알기에 저 유비 또한 저리 스스로를 불쌍하고 긍휼히 여기는 표정 속에 그에 걸맞은 보상을 달라, 자신도 황실의 일원으로 인정해주고 그에 걸맞은 대우와 그 신원을 보증 해달라 칭얼대며 꼬리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를 통해 유비의 약점이자 그가 집착하는 바를 알아낸 소제는 불현듯, 얄궂은 표정을 지으며 유비를 달래주었다.


“어디 보자, 그래......, 결국 신원의 보증이자 대우를 바라는 것이겠지. 어디 가서도 제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였을 게야. 후한이 들어서도 혹시 모를 전한의 정통성 운운하는 것들의 반란에 대비해 전한의 황족들에 대한 예우뿐 아니라, 광무제 직계 이외의 이들도 정리했으니까 아예 대우랄 것도 없었겠지. 주금에 대한 시비를 가리며 그 핑계로 방계를 비롯한 번왕과 그 자손마저 정리하는 와중에 조상 대에서부터 토호보다 못한 가문으로 전락한 이들도 많았겠지. 그래도 딴에 자부심은 있어 그 족보만큼은 고결히 유지하였겠으나 반대로 내몰릴 대로 내몰린 현실 속에 몰락하지 않은 이 누구 하나 없으랴?”


“부족한 신의 처지를 이리 헤아려 주시니 실로 감읍할.......”


“허나 그 몰락이 바로 내몰린 이들의 현실을 갉아먹어 비극을 초래하는 법. 허울뿐인 황족으로 그저 토호의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그렇게 살았을 것이고, 그 와중에 간혹 벼슬이나 하는 이가 나왔겠지. 닥친 가난과 고난 앞에 더해진 삶의 무게는 필경 선조 대에서부터 계승되어 내려온 가치와 유산을 내려놓는 일이 될 결과를 초래할 확률이 높음이야. 대를 거쳐 희석된 피가 고귀한 혈통을 흐릿하게 만든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 떠받들고 서 있는 자부심의 무게는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니 말이지. 결국, 그리 내몰린 현실과 타협한 이들이 그 어떠한 부정을 거쳐 그 족보를 유지하였을지 이를 증명할 수 없는바, 그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음이야.”


“예?”


그러나 실상 이는 그 유비의 약점을 쥐고 비틀어 흔드는 일이자, 가만히 두면 넘어갈 일을 굳이 잡아 비틀어 터트리는 일이었다.


“황실에 버금갈 족보를 지녔다는 그 원가의 이들조차도 대를 잇기 위해 천출의 피와 섞은 자식을 백부의 양자로 입적시켰지. 인연이 닿지 않는 자식은 그것에 맞이라고 한들, 제 가족이라는 범위에서 쳐내어 다른 운명을 걷게 하는 법이다. 배척이지. 말로만 겉으로만 가족이며 그 책임과 의무를 지게 하되 그 실속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 외에 집안의 대가 끊길 것을 우려해 남의 씨를 제 자식으로 입적시키는 일도 있고, 그 책무를 져버리지 않기 위해 이를 족보에 적지 않는 일도 허다하지. 아이가 죽어 바꿔치기하는 일도 있고, 아이를 낳지 못해 집안에 해를 끼쳐 죄를 짓는 일도 허다하니, 크게는 집안이고 작게는 일가족 모두가 입을 맞추고 한 대가 그리 지나면 그 조상대의 거짓은 사실이 되는 법. 그도 아니면 반대로 조상이 멀끔해도 당대가 꼬이는 경우도 있지.”


“화....., 황상! 송구하오나 대저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이런, 뭘 그리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나? 말, 그대로 자네를 배척한 이들이 왜 전한의 황족을 선조로 둔 자네에게 그러는지, 왜 굳이 치졸하게 시비를 걸며 이를 물고 늘어지는 그 배경을 짚고 있지 않나?”


“그것이......., 예. 황송하옵니다.”


“흠, 뭐 되었네. 짐은 그저 저들이 자네를 물고 늘어지는 괴롭힘의 허점을 짚었을 뿐이야. 그리고 설령 자네 이전 대의 선조들과 자네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든 간에 그게 이제와 무에 소용이 있겠나? 그저, 그런 자네가 이리 아조와 황실의 일원으로서, 종친으로서 자부심과 책무를 잊지 않고 그 충정을 다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 그렇사옵니다.”


“고로, 짐은 그대의 신원을 보증할 확약서를 짐의 아우에게 넘겨줄 것이야. 그대의 충정과 대우를 확약받기 위해선 이만한 것이 없겠지.”


“실로 감읍할 따름이오니, 이는.......”


“내 갑주까지 든든히 걸치고 나갈 터이니 나가서 기다리게.”


“예, 황상.”


그렇게 잠시 혼란스러운 유비에게 축객령을 내린 소제는 이내 지필묵을 꺼내 자신의 필체를 노골적으로 남김과 동시에 유비에 대한 신원의 보증과 대우가 적힌 짧은 내용의 황명을 서술했다.


[그 출신이 명확하지 않다고 한들, 지금껏 그가 행한 충정과 의기는 실로 만인의 귀감이자 현 황실의 이들이 보고 부끄러워 할 훌륭한 선례이니, 그가 황족의 일원이 되는 것을 허하고 그 대우 또한 황가의 이들 중 배분이 높은 이들에 준할 수 있도록 한다.]


“명문이군, 한 사람의 생을 옥죄기 좋은 명분이자 그 명분을 벗어날 수 없는 사슬에 메인 명운이야.”


그리고 조심스레 이를 품에 넣은 소제는 이내 내관 나인들의 도움 속에 갑주를 비롯한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면류관과 용포를 걸쳤다.


“마차는?”


“모두 문이 닫혀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재물은?”


“금은보화 그 자체이지요, 비단을 비롯해 가락지와 팔찌 등 작고 귀한 것들이 많습니다.”


“좋구나, 좋아. 허나 짐의 호위를 서는 위사들을 비롯해 그 마지막까지 짐에게 충정을 바칠 이들이 이제 몇 남지 않았으니 좋지가 않다.”


“황상.......”


“많은 이들이 운명을 말하고 운명을 논한다. 그러나 짐은 하늘이 점지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제 발로 하늘에서 뛰쳐나온 사람이지. 가만히 있으라, 안에 있으라, 아무 일도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해라. 따르라는 압박을 떨쳐내고 그 밖을 나섰다. 그리고 짐은 살았다. 짐의 천수는 길어졌지. 결국, 저 하늘이 관장하는 것은 오직 하늘일 뿐, 그것이 이 땅과 그에 속한 이들 모두를 관장하지 못하니, 결국 시간이 지나 정해진 것들을 우리가 운명이라 부르는 것일 뿐,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것들에 굳이 하늘을 끌어와 이런저런 당위성을 가져다 붙일 연유는 없다. 고로 운명은 저항하는 자의 것이니라.”


실로 우스운 일이다.


하늘에서 나고 자란 짐승이 정작 그 하늘을 버리고 뛰쳐나와 다시 하늘에 오를 것을 꿈꾸면서도 이 땅에 기생하는 와중에는 그 하늘을 욕보이며 그에 의존하지 않겠다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스스로를 하늘과 동일시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하늘에 의해 내쳐졌다 여기는 것고 우습고, 되려 제 발로 기어 나왔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도 우스우며 그 와중에 그 하늘에 다시금 오르겠다 발버둥 치며 그간 이 땅 위로 벌인 그 모든 패악질을 정당화하는 것도 우스웠다.


본디 천지만물의 운명을 점지해야 할 위치에 선 이가 애초에 제 자리를 잃어버렸고 그 와중에 저 하늘 높은 곳에서조차 제 운명이 타인에 의해 점지되는 삶을 살았던 주제에, 이제와 정신을 차렸다는 핑계로 이 땅에 내려와 놓고서도 그 하늘을 놓지 못해 멋대로 하늘 아래 거짓된 하늘을 만들어 그 위에 불멸의 존재인 양 올라선 것도 우습고, 그 와중에 저 스스로를 온전한 하늘이라 여기며 멋대로 이 땅의 이들의 운명을 점지하며 그들 모두를 고통과 비통함이 얼룩진 지옥으로 내몬 것도 우스웠다.


그 와중에 자신이 산 것을 운명의 저항이라 여기고 자신이 내쳐진 것을 하늘의 의중이라 멋대로 해석하는 것도, 그 모든 정당화도 우스웠다.


그 와중에도 본인 스스로가 살고자 함에 있어, 뭉개진 영충(迎忠)과 봉사(奉仕)의 잔재에 얽매인 이들이 그 곁을 떠나지 않으니 이 또한 운명이라면 운명이란 것일 터.


“보라, 모든 것이 나를 내던지고 버려도 끝내, 못내 나를 추종하는 이들은 이리 내 곁에 남아있노라. 또한 나의 잔재요, 선조의 허물을 뒤집어쓴 짐승들이 천하의 구석구석에 남아있으니, 그리 살아남은 나의 자손들아, 서로를 잡아먹거라. 이 땅의 이들을 잡아먹고 동족을 포식하는 한이 있다고 한들, 오늘 이후의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나보다 더 거대하고 위협적인 짐승을 내놓거라. 하여 이 땅의 모든 것을 휘감을 짐승을 내세워 이들의 명줄을 틀어쥐고 그 하늘을 압박해 우리를 내친 채, 오직 이 땅의 이들만을 사랑하는 저 하늘을 향해 직접 우리의 송곳을 박아넣으리니, 내가 저 하늘에서 떨어져 나와 느낀 것은 하늘을 따르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이요, 하늘에 저항하면 산다는 것이다. 고로 나는 너희를 우롱하리라. 하늘의 명에 순종하듯 나의 명에 순종한 너희에게 선사할 것은 하늘이 내게 내린 것과 같은 추락이자 죽음일지니, 이로서 나는 너희를 계몽하리라. 너희가 이리 내게 저항하듯, 너희가 섬기는 하늘에게도 그리 저항하여 멋대로 너희의 운명과 생을 점지하는 저 하늘에 반기를 들어라.”


그렇게 막사의 장막을 활짝 열어젖힌 소제는 그 순간만큼 가히 남부럽지 않을 황제의 자태를 뽐내며 천천히 자신의 앞에 밝아오는 여명 너머의 하늘과 그 아래, 마치 태양처럼 찬란히 빛날 수 있도록 화려하게 치장된 마차의 앞에 자리했다.


작가의말

조금 오래걸렸습니다.


근 3일 동안 썼다 지웠다 반복하는 중입니다만, 어찌 표현하느냐에 따라 자꾸 내용이 달라지는데, 일단 이대로 진행하도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최종수정본이라 여기고 이를 올려봅니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부분이고 처음만큼 중한 것이 끝이니, 이를 날림으로 그냥 넘길 수는 없겠더라구요. 본의 아니게 늘어진 점 사죄드리며 이만 다음화를 마저 적어내려야 하니 이만 물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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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419화 – 전조의 낙양과 다를 바 없이 붕괴하는 장안 +1 22.09.20 149 4 20쪽
419 418화 – 부패할 수 없는 자의 시대가 저물면 철혈의 재상이 집권할 시기가 찾아든다 22.09.19 157 4 24쪽
418 417화 – 마총 전투의 승리와 그 이후의 옹주 +2 22.09.15 167 3 21쪽
417 416화 – 마총 전투 22.09.15 150 2 22쪽
416 415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2) 22.09.13 159 3 19쪽
415 414화 – 전국책을 품에서 놓지 않은 남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1) 22.09.07 208 4 27쪽
414 413화 – 승천을 해야만 하는 용의 운명 22.09.06 155 4 19쪽
413 412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2) +3 22.09.04 167 5 22쪽
412 411화 – 진한대전의 시작과 용의 출현(1) 22.09.04 173 4 23쪽
411 410화 – 진한대전의 의의 +2 22.08.31 202 3 21쪽
410 409화 – 읍참진밀(2) +2 22.08.26 214 5 16쪽
409 408화 – 읍참진밀(1) 22.08.25 164 3 20쪽
408 407화 – 익주 재일의 기재 22.08.18 186 4 21쪽
407 406화 – 전쟁과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의 결의 +2 22.08.17 174 5 28쪽
406 405화 –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천명 22.08.14 162 4 23쪽
405 404화 – 그 정치와 전쟁의 사이, 조위와 유범의 출사표 22.08.12 155 4 25쪽
404 403화 – 진밀과 이권은 품 안의 비수요 전장의 방패이자 정치이며 전쟁이다 22.08.10 168 4 20쪽
403 402화 – 그 와중에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은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익주만의 사정이었다 +2 22.08.09 160 4 26쪽
402 401화 – 같은 꿈을 꾸는 자들을 위한 희생양과 대공황 22.08.06 179 3 22쪽
401 400화 – 실로 위험한 이들이 동화 같은 꿈을 꾸었다. 그것도 같은 꿈을 꾸었다. +2 22.08.05 190 5 19쪽
400 399화 – 복수를 천명한 양치기 소년은 들개를 이리라 속이며 이 땅에, 이 나라에 전쟁이 필요한 이유를 설 22.08.03 196 5 21쪽
399 398화 – 대나무를 입에 문 이리는 복수를 위해 누군가 던져주는 쌀밥을 씹는 들개가 되었다 22.08.02 194 2 23쪽
398 397화 – 선수 교체 22.07.25 235 3 24쪽
397 396화 - 관서대공황의 전조와 대국. 아니, 패권국의 위기(4) +2 22.07.25 219 3 16쪽
396 395화 – 붓과 낫과 망치, 벼 이삭과 월계수 잎을 두른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공화국 +5 22.07.21 228 5 34쪽
395 394화 – 밀감과 감, 검독수리와 크고 원대한 꿈을 품은 제국 22.07.20 194 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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