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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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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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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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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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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5화.

DUMMY

“안녕히 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음식점에서 나온 이진호가 휴대전화로 지도를 확인했다.


사건 발생지점인 공원과는 약 8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음식점. 목격자 탐문을 진행하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도대체 어디 있냐?”


이진호가 출력한 흑백 사진을 들고 중얼거렸다. 한 사내가 편의점 카운터 앞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번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추정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사진 하나로 알 수 있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진호 자신과 비슷한 20대 중후반, 보통 체형, 어딘가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 인상, 쌀쌀해진 날씨임에도 꽤 가벼운 옷차림을 보아 인근 거주자로 추정.


그리고 이진호의 추측에 무게를 더하듯, ‘낯이 익다’, ‘몇 번 본 적이 있다’ 등의 목격담은 많았다. 문제는 면식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끙.”


이진호가 앓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피의자의 자살로 마무리될 사건.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는 생각이 불쑥 치솟은 것이다.


“아니야, 아무리 봐도 이상해.”


머리를 잠식해오는 회의감을, 이진호가 털어냈다.


사람을 물어뜯어 죽인 다음 제 목을 졸라 자살하다니,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약물이든, 뭐든 무언가 개입한 정황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측을 뒷받침해 줄 유일한 증인이, 바로 이 정체불명의 목격자였다.


때마침 길 건너편에 편의점 하나가 보였다. 이진호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되뇌었다.


“딱 저기까지만 가보자.”



***



투명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청량한 종소리와 함께 한 남성의 목소리가 이진호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 안에 한 사내가 있었다. 30대 중반, 보통 체형, 키는 170 초반, 굳게 닫힌 입매가 어딘가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이진호는 다짜고짜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강력계 이진호라고 합니다. 오···진석 점장님?”

“예, 예?”


오진석이 바짝 긴장한 기색을 내비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경찰이 자신의 직책과 이름을 알고 있다면, 누구라도 그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진호가 그의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그가 입고 있는 보라색 조끼에 직책과 이름이 적혀있는 명찰이 걸려있었다.


“명찰이요.”

“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오진석의 모습을 보자, 이진호는 괜스레 민망해졌다.


“죄송합니다.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아, 아닙니다. 근데 어쩐 일로?”


이진호가 반으로 접힌 사진을 펼쳐 들었다.


“혹시, 이 사람 아십니까?”

“어어?”


반응은 즉각 터져 나왔다. 오진석은 펄쩍 뛰었다. 거의 사진을 낚아챌 듯한 기세였다.


“혹시 이놈이 뭔 짓이라도 했습니까!?”


이진호가 다급히 물었다.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


오진석이 아차 싶은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표정에서 이진호는 한 가지 감정을 읽어냈다.


걱정.


오진석은 사진 속 인물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이진호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지금 난항을 겪고 있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이분이 유일한 목격자인 것 같아 여쭤보는 겁니다. 이분이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그런 게 아니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분은 단순히 목격자일 뿐이니까요.”


아마도.


이진호는 애써 뒷말을 삼켰다. 안 그래도 걱정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오진석에게 괜한 가능성을 시사할 필요는 없었다.


오진석은 그의 말에 설득된 건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현이라는 친굽니다. 아주 착한 놈이에요. 성실하고.”


예, 그럼요. 이진호가 추임새를 넣듯 대꾸하고는 되물었다.


“김현, 외자인 겁니까?”

“예.”


이진호가 휴대전화에 목격자의 이름 두 자를 꾹꾹 눌러 담았다. 김현.


“관계는 어떻게 되시죠?”

“제 편의점 알바생입니다.”

“아아.”


이진호는 몇 가지 문답을 반복하며 목격자 김현의 신상을 받아적었다.


“진짜 착한 애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혹시 김현 씨 번호가···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지잉-, 이진호의 휴대전화가 거친 진동음을 토해냈다. 전화가 온 것이었다. 발신자로 표시된 이름은 ‘조원석 선배님’.


“예, 선배님.”

- 어디야?

“아, 오늘 아침 사건 있지 않습니까? 그 사건 목격자 찾으려고 잠시 나와 있습니다.”


조원석의 소리가 수화기에서 멀어졌다. 다른 사람에게 이진호의 말을 전달하는 모양이다. 이진호가 귀를 쫑긋 세워 오가는 대화를 엿들으려 했다. 하지만 노이즈가 심해 잘 들리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몇 마디를 주고받고 나서 조원석이 다시 통화로 복귀했다.


- 야, 그 사건 이관됐으니까 빨리 들어와.

“예? 이관 말입니까? 자살 아니랍니까?”

-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간, 빨랑 오기나 해.

“···예.”


통화가 얼추 마무리되고 이진호와 오진석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살해 직후 유일한 피의자의 자살, 그리고 이관. 모든 지표가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말한다. 더는 이진호 자신과 상관없는 사건이라 속삭인다.


하지만 뭐지?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은?


이진호는 당최 그 연원을 알 수 없었다. 이성과 본능이 치열하게 충돌한다.


“혹시, 김현 씨 번호 좀 받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진호는 이 찝찝함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고 본능의 손을 들어주었다.



***



서에 도착하니 낯선 얼굴들이 몇몇 눈에 띄었다. 모두 검은색 정장 차림에,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진호는 그중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이는 20대 후반쯤, 흰 피부와 눈가에 자리한 짙은 다크서클이 대조된다. 그 둘은 묘한 조화를 이루어 일종의 퇴폐미를 발산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지루한 표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뭘 봐?


그녀의 눈빛이 도발적으로 물었다. 이진호가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사무실 안쪽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진호야!”


조원석이 이리 오라 손짓했다. 조원석의 맞은편에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사내가 있었다. 뒤돌아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각자 손에 들린 종이컵을 보니, 대화를 나누고 있던 모양이다.


이진호는 여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발길을 바삐 했다. 뒤편에서 쳇, 하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이 친구가 진홉니다.”


조원석이 이진호를 소개하자,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이진호는 사내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와, 존나 잘생겼네.


사내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의 미남자였다. 나이는 많이 쳐줘야 삼십대 초반쯤 될까?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음에도 부드러운 인상, 그리고 말끔히 정리해서 뒤로 넘긴 머리. 마치 브라운관 속 배우가 현실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어, 진호야. 이분은 국정원 대테러안보국 소속 김우혁 팀장님.”


국정원 대테러안보국?


생각지도 못한 기관명이었다. 이진호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김우혁이 먼저 악수를 청했다.


“김우혁입니다.”

“아, 이진호입니다.”


김우혁은 시간을 길게 끌 마음이 없는지,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이번 사건의 목격자 찾기 위해 탐문하고 계셨다고요?”


김우혁의 질문에, 이진호가 조원석을 보았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조원석이 말해준 것이었다.


“예.”

“혹시, 목격자를 특정하셨습니까?”


이진호가 대답을 망설였다. 그는 아직까지 대테러안보국이 이 사건을 맡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자살로 결론이 난 사건을, 도대체 왜?


이진호는 이 찝찝함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대테러안보국이 왜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겁니까? 이 사건이 테러와 연관이 있습니까?”

“그냥 넘겨드려. 어차피 정식으로 이관된 건이야.”

“그래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대테러안보국이라는 데가 약물 검출도 안 됐고, 자살로 판명 난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게?”

“야, 인마.”


조원석의 언성이 높아지려 하는 것을, 김우혁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죠.”


김우혁의 눈빛이 와닿았다. 이진호가 몸을 움찔 떨었다. 분명 입은 웃고 있는데, 그 눈빛은 피를 머금은 칼날처럼 서늘하다.


이진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사람, 살인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근래에 한 약물이 국내에 유통되고 있습니다. 부검 결과를 보셨다면 알겠지만, 이 약물은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는 호르몬과 아주 유사해 현재 기술력으로는 검출이 불가능하죠.”

“···테러 단체에서 그 약물을 유통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예, 중국계 테러 단체입니다. 그리고 이 이상의 정보는 극비 사항이라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진호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미심쩍은 부분을 캐묻고자 했으나, 김우혁이 선수를 친 것이다. 극비라는 말로 단호하게 선을 그음으로써.


이진호는 김우혁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목격자, 찾으셨습니까?”

“아니요,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이진호는 주머니 속 김현의 사진을 꾸깃, 구겼다.



***



“야, 인마! 너 어떡할라고 그러냐!”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 건 아닌데···에휴, 요즘 같은 세상에 너도 참 어지간하다.”

“진짜 죄송합니다, 선배님. 선배님께 피해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진호가 사죄의 마음을 담아 깊이 허리를 숙였다.


“됐고, 너 진짜 목격자 못 찾았어?”

“···예.”

“개고생만 하다 왔네. 아무튼 수고했다.”


조원석이 이진호의 등을 툭툭 두드리고 밖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뻔했다. 흡연장.


조원석을 보낸 이진호는 덩그러니 남아 자신이 저지른 짓을 반추했다.


선배를 속인 데다가, 국정원에 구라질까지.


까딱하면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요즘 같은 세상에, 국정원의 권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니 말이다.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옛날 독재정권 시절 안기부의 재림이라 하겠는가.


“끙.”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이진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구석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세를 낮춘 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진호는 초조한 심정으로 신호음이 끝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그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 현재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젠장!”



***



툭툭.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 이유영이 힐끔 옆을 보았다. 보조석에 앉은 김우혁은 손끝으로 도어 트림(Door Trim)을 툭툭 두드리고 있었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오는, 김우혁 특유의 버릇이었다.


“팀장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뭐가 잘 안됐어요?”

“좀 걸리는 게 있어서.”

“뭐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야, 파란불.”

“예이.”


이유영이 천천히 엑셀을 밟아가자, 검은색 세단이 도로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생각해도, 뭐요?”

“그놈이 뭘 숨기고 있는 거 같아서.”

“그놈? 누군데요?”

“아까 만난 경찰 중 하나.”


그의 이름을 떠올리며, 김우혁의 눈빛이 깊게 침잠했다.


“이진호, 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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