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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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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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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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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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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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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4화.

DUMMY

김현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단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는 행위 자체조차 지금의 그에게는 버겁게 느껴졌다.


낯선 천장.


김현의 시야에 처음 보는 정경이 가득 들어찼다.


여긴 어디지?


“큭!”


김현이 몸을 일으키려다 말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오, 일어났는가?”


귀에 익은 목소리, 김현이 시선을 돌렸다. 검은 선글라스의 노숙자가 침상 옆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저씨는···?”

“아저씨는 무슨, 편하게 장 어르신이라고 부르게.”


아무리 봐도 장 어르신 쪽이 더 불편한 호칭이었다. 하지만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나가기엔 김현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여긴, 병원입니까?”

“그래, 자네가 갑자기 쓰러지기에 내가 데리고 왔지.”

“아아···.”


장노인의 말이 단서가 되었는지, 김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웬 노숙자가 집안에 들어와 있었고, 편의점에서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김현은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주거침입과는 별개로 김현을 도와줬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김현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됐네, 나도 잘못이 없지는 않으니까.”

“예?”

“아무튼, 그 편의점 점장이 많이 걱정하는 거 같던데 연락하지 않아도 되겠는가?

“아!”


맞다, 점장님!


김현이 헐레벌떡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전화에는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와있었다.


[ 일어나면 전화해 ]


오진석이었다.


김현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첫 신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진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야, 김현! 괜찮냐!

“예. 정말 죄송합니다, 점장님···.”

- 아니, 뭘하고 다니길래, 애가 픽 쓰러져! 너 그분 아니었으면 큰일 났어, 인마!


오진석의 새된 목소리가 김현의 귓전에서 왕왕 울렸다. 김현은 다시금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점장님, 죄송하지만 목소리 좀···.”

- 어, 왜? 머리 아파?

“예···.”

- 미안하다. 이 정도면 괜찮냐?


오진석의 목소리가 숫제 속삭이는 듯 작아졌다. 김현은 괜히 귓가가 간지러워 오진석에게 재차 요구했다.


“그냥 평소대로 하세요.”

- 그래, 몸은 좀 괜찮냐?


오진석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평소의 톤으로 돌아왔다.


김현은 괜스레 목덜미를 주무르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확실히 출근 직후보다는 괜찮은 것 같았다.


“잠 좀 자니까 괜찮아진 거 같은데요?”

- 잠? 기절한 판국에 잤다는 말이 나와?


허허, 오진석이 헛웃음을 흘렸다.


- 아무튼, 너 며칠간 푹 쉬어. 자리는 남겨둘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예? 저 괜찮아요, 지금 당장이라도···.”

- 형 말 들어 인마.


오진석의 진지한 목소리를 듣고, 김현은 그만 합죽이가 되었다.


- 너 과로랜다, 과로. 그냥 며칠 푹 쉬어. 그게 형 도와주는 거야.

“······.”

- 다른 데도 이참에 좀 쉬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더라도, 건강은 챙겨야지. 아직 한창 팔팔할 놈이 과로가 뭐냐, 과로가?

“···죄송합니다.”

- 죄송할 건 없는데···.


딸랑, 건너편에서 도어벨이 울리자 오진석이 급하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 야, 나 손님 와서 끊는다. 몸조리 잘하고, 연락해.

“예, 고생하세요.”

- 아 참, 처음에 너 발견한 분이 구급실 같이 갔는데, 아무튼 그분께도 꼭 감사하다고 하고.

“예.”


오진석은 걱정 많은 부모님처럼 이런저런 당부의 말을 덧붙이고 나서야 통화를 끊었다.


김현이 휴대전화를 갈무리했다. 그의 시선이 허공을 헤맸다.


오진석.


공적으로는, 그가 일하고 있는 편의점의 점장. 사적으로는, 형동생 하는 사이였다.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알고 지낸 지, 어언 3~4년이 되어가는데 매번 받기만 하고 주는 건 하나 없다.


감사와 자책의 감정이 김현의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흠흠.”


장노인의 헛기침이 김현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드는가?”


이 노인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간절히 대화를 원하는 걸까? 의문이 뇌리를 스친다.


김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에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대화’라고.”


대화라···, 김현이 중얼거렸다.


까짓거 못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장노인은 쓰러진 자신을 병원으로 데려온, 어찌 보면 은인이라 불러도 무방한 사람이었다. 뭐, 아까처럼 다급한 상황도 아니고 겨우 이야기 좀 나누자는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김현은 매몰차지 않았다.


“말씀하세요.”

“여기서는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여기가 왜··· 아.”


김현은 다시 한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자각했다. 이곳은 구급실이었다. 편히 담소를 나누기에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김현이 몸을 일으켰다.


“나가서 얘기하시죠.”



***



김현이 자연스레 담배를 꼬나물었다가, 순간 멈칫했다. 혼자 담배를 피우는 게 왠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담배, 피세요?”

“안 피네. 난 괜찮으니 편히 피시게.”

“예···.”


김현이 민망함을 감추고 불을 붙였다. 매캐한 연기가 폐부 깊숙이 말려 들어오며 머릿속에 드리웠던 몽롱함이 서서히 걷혀간다.


김현이 연기를 흘리며 장노인을 보았다. 외양은 완벽한 노숙자. 게다가 장님으로 추정된다. 방금 보니, 하얀 포메라니안이 안내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고는 하나, 새삼 경계심이 불쑥 치밀어오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김현은 장노인이 꺼낼 화제를 어림짐작해보았다. 무슨 얘기를 할지 영 가늠이 안 된다. 그의 상상력으로는 기껏해야 ‘도를 아십니까?’ 외치거나 사례비를 요구하는 정도.


“무슨 말씀을 하고 싶다는 거세요?”

“일단 먼저 사과를 하겠네.”

“무슨 사과요?”


김현은 미심쩍은 기색을 지우지 않고 되물었다. 대뜸 사과부터 한다고 하니 의문이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김현의 얼굴이 괴상하게 구겨졌다.


“자네가 오늘 쓰러진 게, 내 탓이니 말일세.”

“예??”



***



김현의 손끝에서 담배꽁초가 타들어 갔다. 어느새 세 개비째였다. 장노인과의 대화는 줄담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김현은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더듬더듬 물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심기가 불편한 듯 장노인의 얼굴이 꿈틀거리자, 김현이 재빨리 호칭을 수정했다.


“아니, 어르신이 그 뭐냐, 마법사···시라고요?”

“어허~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마법사가 아니라 구도자라고.”

“무슨 마법을 쓰신 대며요. 그럼 마법사라는 거잖아요.”

“구도자는 엄연히 구도를 추구하며, 진리는 탐구하는 존재이네! 그저 마법을 사역할 뿐인, 마법사라는 족속과 어찌 같다는 말인가!”


장노인은 마치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말투로 김현을 꾸짖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는지,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르신! 제발, 목소리 좀 낮춰요!”


다급히 말하는 김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구도니, 마법이니 하는 대화 내용은 감히 누가 들을까 두려운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가던 행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김현을 보고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김현은 수치심으로도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에서 그가 느끼는 수치심이 절절히 전달되었다.


“커험.”


장노인은 그의 반응에 멋쩍어졌는지, 괜스레 헛기침을 해댔다.


“아무튼, 구도자에게 있어 재의 마법은 단지 부산물일 뿐일세.”

“예, 예.”


김현이 건성으로 대꾸했다. 그의 인내심은 슬슬 바닥나고 있었다.


“어르신은 재의 마법이란 걸 쓰는 구도자고, 구도자는 마법사와는 전혀 다르다. 이거죠? 그리고 그 재의 마법을 저한테 거는 바람에 제가 쓰러진 거고요?”

“그렇다네.”


하아, 김현은 입술 새를 비집고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꿀꺽 삼켰다.


세상에 마법이라니. 10살짜리 꼬맹이도 믿지 않을 얘기였다.


“차라리 도를 믿냐고 물어보며 접근하는 게 더 설득력 있을 거 같습니다, 어르신.”


아니, 구도(求道)도 그 많은 도(道)중에 하나이니 똑같은 말인가?


김현은 시답지 않은 생각과 함께 꽁초를 털어냈다.


“말씀 다 하셨으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자, 잠깐! 내 말을 믿지 않는 겐가!?”


믿어?


하! 김현의 입에서 참고 참았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어르신. 마법이라뇨. 10살짜리 꼬맹이도 안 믿을 법한 얘기를 하시는데, 믿고 자시고 할 게 있습니까?”


김현이 날카로운 말투로 쏘아붙였다. 바닥을 보이던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장노인은 김현의 반박에 당황하지도, 곤혹스러움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아까의 허둥대는 모습과는 다른 묘하게 침착한 태도로, 장노인이 다시 물었다.


“자네는 평생동안 상식으로 재단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을 마주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없는가?”


기이한 현상.


김현의 뇌리에 과거의 기억이 잠깐 스쳤다.


불 꺼진 집,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알 수 없는 속살거림, 문틈 사이로 보이는 엄마의 옆 모습, 커튼처럼 드리운 기다란 머리칼, 그 사이로 드러난 붉은 입가와 노란색 눈동자.


꾸욱, 김현의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15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날의 광경은 쉬이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약물중독에 의한 존속살해로 결론 난 사건이었다. 당시의 김현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 그러했다.


절로 김현의 말투가 냉담해졌다.


“그런 적 없습니다.”

“자네가 어찌 아는가? 자네가 모르는 사이, 그런 일을 겪었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나? 어쩌면 누군가 자네의 기억을 지웠을지도 모르지.”

“어르신이 저한테 한 것처럼 말입니까?”


김현이 비아냥댔다.


“근데 말입니다, 어르신. 적어도 증거라고 하려면 없는 기억을 댈 게 아니라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걸 바탕으로 말씀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증도 기억도 없는데, 당최 뭘 믿으라는 겁니까?”


김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쓰러졌을 때 도와주셨다고 해서 웬만하면 끝까지 들어드리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증거.”


차분하다 못해 서늘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김현이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증거가 있다면 믿겠는가?”


서늘한 감각이 다시 한번 김현의 등골을 훑었다. 오소소, 목덜미 위로 소름이 돋았다.


김현이 장노인을 돌아봤다. 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김현을 지배했다. 장노인을 시야 안에 담지 않는다면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좋지 않은 일이.


꿀꺽, 김현의 울대가 출렁였다.


“예.”


김현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장노인의 입매가 삐뚤삐뚤한 곡선을 그렸다. 그 미소는 마치 생애 최초로 그의 입가에 자리한 듯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김현은 본능적으로 저것이 장노인의 진짜 미소임을 깨달았다.


장노인이 불길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보여주겠네. 그 증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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