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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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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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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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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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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1화. 뒷이야기

DUMMY

이진호가 멍청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화려하고 거대한 예배당,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진 장의자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이곳은 비전교회였다.


하지만 그의 기억이 맞다면, 비전교회는 완전히 폐허가 된···


쿵.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에, 이진호가 휙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황금빛 십자가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다. 십자가는 시곗바늘처럼 째깍째깍 떨어지다가, 마침내 6시를 가리키며 역십자를 그렸다.


쿵.


십자가의 끝이 가리킨 방향, 그곳에는 여태 보지 못한 것이 의아할 정도로 기괴하고 흉측한 무언가가 있었다.


두근두근.


굵은 핏줄이 거미줄처럼 돋은 타원형의 물체. 그것의 생김새는 마치 고치와도 같다.


이진호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저것을 어디선가 본 적 있었다. 그리고 저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도, 왠지 알 것 같았다.


이진호가 홀린 듯이 고치로 다가갔다.


하지만 몸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앞으로 발을 내디뎌도, 발이 꼼짝하지 않았다.


이진호가 시선을 내렸다.


허벅지 굵기만 한 수십 마리의 거대한 애벌레들이 발목을, 종아리를, 무릎을 타고 올라 그의 몸을 붙들고 있다.


이진호가 애벌레를 가만히 관찰하다가, 벼락 맞은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애벌레가 입을 벌린다.


네가 죽였어.


애벌레들이 일제히 합창한다.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이진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아, 아니야. 나는, 나는···.”


쿵.


다시 한번 굉음이 고막을 때린다.


애벌레들이 합창을 멈추고, 이진호를 가만히 응시했다. 진득한 눈초리가 그들의 언어를 대신했다.


네가 죽였어.


“으으···.”


이진호의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사위가 아득히 멀어진다.


어둠으로 뒤덮인 공간에서 그들의 눈과 혀가 하나의 문장으로 화해 마구잡이로 찔러온다.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아니야! 아니···!”


새하얀 손길이 뱀처럼 이진호의 목을 감아와, 입을 틀어막았다.


이진호가 곁눈질로 손의 주인을 확인하려고 하자, 새하얀 손길이 아래턱을 거칠게 붙잡았다. 이진호의 얼굴이 꼼짝없이 앞으로 고정되었다.


‘저길 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냉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진호는 왠지 모르게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다.


쿵.


머리를 뎅뎅 울리는 굉음과 함께, 거미줄처럼 죽죽 핏물이 돋은 흉측한 고치가 시야에 가득 들어찬다.


쿵.


고치가 세로로 쩍 갈라지고, 사람의 손이 턱 틈새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치의 틈은 산악의 깊은 크레바스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새까만 어둠 너머, 한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분명 시리도록 투명했을, 지금은 옅은 미열을 띠고 있는 눈동자.


‘그것’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그것’의 시선을 마주하자, 이진호의 몸이 석상처럼 굳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에 속삭인다.


‘넌 겁쟁이야, 나약한 겁쟁이.’


이진호는 반박할 수 없었다. 반박하기에는, 고치 안에서 그를 비웃는 ‘그것’의 존재가 너무 두려웠다.


‘그러니까, 나를 희생양으로 네가 살았지.’


이진호는 그저 뻣뻣하게 굳은 채, ‘그것’이 고치를 비집고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진호가 몸을 비틀거렸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힘없이 늘어진다. 무력감에 절여져 근육과 의지가 몸의 통제권을 놓고 줄행랑친다.


‘키득.’


축 늘어진 그의 귓가에, 비웃음이 파고든다.


‘겁쟁이.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네가 죽였어.


몸속 깊숙이 가득 차오르는 무력감을 느끼며, 이진호는 아무런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네가 죽였어.

네가······.



***


- 오늘 오후 1시쯤, 경기도 광주 외곽 지역의 한 교회에서 불이 났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화재라고 생각했던 불이, 현재 시각 오후 9시 31분까지 진화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현장에 있는 취재기자 연결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민석 기자?

- 예, 저는 오늘 아침 화재가 발생했던 교회 앞에 나와 있는데요. 화재가 발생한 지 8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불길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부장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TV에서는 오늘 아침에 발생했던 화재에 대해 연신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김우혁의 시선은 온통 TV에 꽂혀 있었다.


그때였다.


조심스레 문이 열리며 오종후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 왔어?”

“예.”


- 그 정도로 큰 규모의 화재라면, 특별한 이유가 있을 텐데, 확인된 사실이 있나요?

- 소방당국에서는 아직 화재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삑, 김우혁이 TV를 끄고 재차 물었다.


“애들은?”


김성훈과 이진호의 상태를 묻는 것이었다.


“성훈이의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오종후는 주치의에게 전해받은 내용을 담담히 읊조렸다.


“흑복의 후유증과 긴급 구명기능을 사용한 여파로 인해 중추 신경계가 거의 망가졌다고 합니다.”


긴급 구명기능, 소위 유언 재생기의 부작용은 그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안다라고 표현하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들의 동료가 유언 재생기를 사용하고 죽어나가는 꼴을 꽤 많이 봐왔으니까.


“그리고 진호는 3~4일이면 털고 일어날 거라고 합니다.”


오종후는 이진호가 잠결에 흘렸던 죄책감 어린 말들을 이야기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문제는 보고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진호가 잘 이겨내주길 바랄뿐.


“그래?”


오종후의 보고를 받은 김우혁이 담담히 중얼거리고는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고민이 깊어지는 기색이다.


오종후는 가만히 차렷자세를 취한 채 그가 상념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툭, 마치 방점을 찍듯 검지를 내려찍은 김우혁이 느지막이 입을 열었다.


“요즘에 밑, 특히 3팀이 심상치 않아. 최근 올라오는 보고서도 그렇고.”

“3팀 말입니까?”

“어, 3팀.”


당연하게도 국내대응팀엔 김우혁이 팀장으로 있는 1팀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1팀이 담당하는 권역은 서울, 수도권지역. 1팀 외에도 각 팀들이 담당하는 지역이 있었고, 그중 3팀의 권역은 대구, 경북지방이었다.


“아무래도 정보가 샌 거 같아.”

“유영이의 임무는 연구소에서도 몇 밖에 모르는 극비 아니었습니까?”


오종후는 내심 놀랐다.


정보가 새다니. 이유영의 임무는 정말 극소수만 알고 있는 극비 중에 극비였다. 연구소측에서 특히 정보 통제에 공을 들었다. 오죽하면 연구소 측에서 임무 수행 인원을 단 한 명으로 제한하라고 으름장을 놓았을까.


“그러니까 정보가 샜다면 우리쪽이겠지.”

“저희 쪽, 말입니까?”

“그래.”


김우혁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종후의 얼굴 또한 순식간에 돌덩이처럼 굳었다.


김우혁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하다.


1팀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요원들 중 유영이의 출장 건에 대해 알고 있는 애들이 있나?”


김우혁이 지칭하는 요원들은 일반 요원을 뜻했다. 오종후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아마 없을 겁니다. 선임요원들조차 이번에 출장을 간다,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툭툭, 김우혁의 손가락이 다시금 일정한 박자로 책상을 두드렸다. 김우혁 자신, 오종후, 지원팀, 선임요원들, 1팀 내에서 이유영의 출장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중 당연히 김우혁 본인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추려야할 인원이 너무 많았다.


믿을 수 있는 놈은 거의 없었고, 그중 당장 가용한 인원은 더더욱 없었다.


비전교회에서 참회자가 제거된 사실이 확인된 즉시, 윗선은 대대적 소탕 명령을 하달했다.


‘통제되지 않는 다수의 감염자가 일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할 가능성이 높다’라는 명목이었다.


덕분에 1팀의 현장 요원들은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요원 중 몇몇은 망가져버렸고.


“진호가 3~4일이면 털고 일어난다고?”

“예.”


김우혁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모르니까, 개인 차량 하나 미리 지급하고, 셋팅까지 전부 해놔.”

“예.”

“···대비는 해야하니까.”


김우혁이 스스로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어떠한 경우의 혹시이고, 무엇을 위한 대비인가. 오종후는 굳이 묻지 않았다. 김우혁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그를 두렵게 했다.


문득, 김우혁이 오종후와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을 발하며 말했다.


“오종후.”

“예.”

“나, 얼마나 믿어?”


오종후의 눈이 우묵해졌다.


김우혁과의 신뢰 관계는 돈독하다. 어느 정도냐면, 오종후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두 명 정도로 추릴 수 있었다. 하나는 이유영, 나머지 하나는 김우혁.


아마, 이 명제의 역 또한 성립할 터.


하지만 김우혁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얼마나 믿냐’고 물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오종후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말씀만 해주시면 됩니다.”


무슨 지시를 내리든, 무슨 명령을 하든 수용하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


김우혁은 오종후의 대답을 듣고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에, 오종후가 허리를 낮춰 불을 붙여주었다.


칙, 불꽃이 타들어가는 자취의 끝에서, 매캐한 연기가 막연하게 흘렀다.


“한 대, 필래?”

“예?”


김우혁의 갑작스러운 권유에, 오종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오종후는 비흡연자다.


그리고 그 사실은 김우혁도 아주 잘 알고 있다. 6년 동안 같은 팀으로 활동했었으니, 그가 비흡연자라는 사실을 잊었을 리는 없다.


하지만 흡연 권유라니?


오종후의 곰과 같은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섞였다.


그런 오종후의 모습이 꽤 재밌는지, 김우혁은 피식 웃고말았다.


“야, 팔 떨어지겠다.”


김우혁이 재촉하는 시늉을 하자, 오종후가 담배갑을 받았다.


슬쩍 열린 담뱃갑 안을 본 오종후가 입을 다물었다.


담뱃갑 안에는 돌돌 말린 쪽지 하나가 있었다. 담배는 없었다.


“돗대는 부모님한테도 안주는 건데, 너라서 주는거야.”

“예, 감사합니다.”

“나가봐, 담배는 회사 밖에서 피고. 넌 아직 짬찌라 여기는 안된다.”


김우혁의 농담에, 오종후가 설핏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오종후는 차를 몰고 부지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는 한적한 도로에, 잠시 정차했다.


오종후가 담배갑을 열어 쪽지를 펼쳐봤다. 쪽지 안에는 조그마한 사진 하나가 동봉돼 있었다.


화질이 썩 좋지 않은 흑백의 사진. 종로구의 어느 CCTV영상을 출력한 것이었다.


검은 선글라스를 쓴 노숙자 차림의 노인이 목줄에 묶인 하얀색 강아지에 이끌려, 한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종후는 단숨에 노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표정을 굳힐 수박에 없었다.


그 노인은 오종후 자신과 이진호를 죽이려고 했던, 그의 팔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쪽지를 확인한 오종후의 안색은, 전에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 접촉해. ]



***



끼익.


김현이 녹슨 철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안은 한 점의 광원도 없이,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내려앉았다.


김현이 투덜대며 불을 켰다.


“영감님, 불 좀 키고 살아~”


노오란 백열등이 깜빡이며 불빛을 길게 늘어뜨렸다.


방안의 풍경은 단출했다.


구석에 자리한 오래된 냉장고와 이곳저곳이 찢어진 낡은 가죽 소파. 그리고 흔들의자에 앉아 앞뒤로 몸을 까닥이는 노인.


그것들이 이 좁은 지하실의 전부였다.


노인의 무릎에 몸을 뉘었던 새하얀 포메라니안이 번쩍 일어나 김현에게 달려왔다. 혀를 길게 빼놓고 헥헥대는 모습이 퍽 귀엽다.


“이주현이~”


김현이 달려오는 하얀 포메라니안을 잽싸게 품에 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나지막이 물었다.


“이번엔, 무얼 포기한 겐가?”


김현이 실내에서도 검은 선글라스를 쓴, 후줄근한 차림의 노인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별거 아니야.”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떠올리듯, 아주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아, 그리고 이진호를 만났어.”

“이진호?”

“그 왜, 영감이 죽였다던 사냥개.”


지금의 상황이 아주 재밌다는 듯, 김현이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아직, 살아있더라고.”

“호오.”


흥미로워하는 그를 보며, 김현은 아주 오랜만에 예전 기억을 들춰냈다.


영감, 그리고 이진호와 처음 만났던, 반년 전의 일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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