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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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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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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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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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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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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5화. 비전교회 (10)

DUMMY

“어?”


이진호가 멍청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른 곳···?”


벽과 천장과 바닥, 사방에 선홍빛 살점이 눌어붙어 있다. 전과 비슷한 풍경이었지만 무언가 달랐다.


방의 구조는 정사각형에 가까웠고, 방의 한 가운데에 제단 같은 구조물이 얼핏 보인다.


전의 공간이 거대한 동물의 내장 속과도 같았다면, 이곳은 마치 고대의 신전이 RTS 게임에 등장하는 외계 문명에 침식당한 것 같았다.


자못 섬뜩한 느낌을 주는, 기괴한 모습의 공간이었지만, 호흡이 한결 편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만족했다.


이진호가 문득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분명 에너지란 에너지는 전부 고갈되어 고사 직전의 육체였을진대, 묘하게 활력이 넘쳤다.


탈출의 과정을 기억해내면, 무언가 나올지도 몰랐다.


이진호가 천천히 기억을 되살렸다.


힘들고 지친, 툭하면 쓰러질 것 같은 상태에서, 그는 마침내 동굴의 끝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끝은 탈출구가 아닌 그를 가로막는 벽이었다.


그때 느낀 절망감. 그리고 분노.


분명, 아주 거대한, 위장이 팔팔 끓을 정도의 분노를 느꼈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진호가 인상을 찌푸려가며 끙끙댔지만 그렇다고 잃어버린 기억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포기했다.


이진호가 자신의 몸에 일어난 비정상적인 망각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급한 것은 기억이 아니었다.


일의 선후(先後)가, 머릿속 한구석에 박제된 의무감이 그를 움직였다.


빨리, 김성훈을 찾아야 한다.




이진호가 벽면을 훑었다. 모조리 살덩이가 덕지덕지 붙어 문과 벽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사면을 전부 훑고서야, 그는 겨우 살점 사이로 삐져나온 손잡이를 발견해 문의 위치를 특정 지었다.


문은 밖에서 잠긴 것인지, 살점이 눌어붙어 움직이지 않는 것인지, 열리지 않았다.


이진호가 산탄총을 꺼내 들었다.


닫힌 문을 여는 데에는 슬러그탄만 한 게 없었다.


틱, 틱.


하지만 격발되는 탄환은 전무했다.


이진호는 당혹스러운 눈으로 산탄총을 확인했다. 총열 안에 장전된 총알이 없었다.


“이걸 전부 다 썼다고?”


도대체 언제? 어떻게? 왜?


기억나는 게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진호가 한숨을 내쉬고 나이프를 빼 들었다.


푹.


이진호가 한 귀퉁이에 나이프를 찔러넣은 뒤, 그대로 문틈을 따라 나이프를 그었다.


살점이 몸을 벌리는 소리는 살갗을 베어낼 때 나는 소리보단 두터운 천을 찢어낼 때의 그것에 가까웠다.


삼면을 전부 베어낸 이진호가 거칠게 문을 걷어찼다.


쿵.


옅은 반발력과 함께 문이 쉽게 몸을 벌렸다.


문 앞으로는 길다란 복도가 이어졌다. 그곳도 어김없이 살덩이에 침식돼 있었다.


아까의 트라우마가 재현될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으으.”


이진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진호 눈앞에 꽤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건···?”


십여 구의 시신과 피, 피, 그리고 피.


시신은 전부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파편화된 형체가 어렴풋이 인간의 형태를 가진 것이었다고 짐작케 할 뿐이었다.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다.


불길했다.


이진호가 짐짓 표정을 굳히고, 참혹한 현장을 지나쳤다.


꾸르륵.


때문에 살덩이 속으로 침잠해가는 시신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다시 몇 분을 걸었을까, 이진호는 마침내 온전한 형태의 사람을 발견했다.


“어?”


살덩이에 반쯤 파묻힌, 검은색 타이즈를 입고 있는 한 남자. 그리고 이진호가 알기로 저런 복장을 한 채 이곳에 있을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선배님!”


소리쳐 불러도 김성훈은 미동조차 없었다.


이진호가 황급히 달려가 그의 목덜미에 손을 댔다.


두근두근.


손끝으로 흐릿한 맥동이 느껴진다. 김성훈은 다행히 살아 있었다.


살아는 있었다.


핏물이 입술에서 흘러 길게 늘어지고, 몸 구석구석 어디 성한 곳이 하나 없어 보여도, 다행히 살아는 있었다.


“하아.”


김성훈의 생존을 확인하자, 맥이 탁 풀린다.


하지만 아직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이진호가 쪼그려 앉은 채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


현재 위치.


일단, 지금 이곳은 교회의 지하로 예상된다.


기괴한 장소에 떨어지기 전, 김성훈의 위치가 교회의 지하였다.


혹여나, 김성훈의 위치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이곳이 교회 지하가 아닌, 아예 생뚱 맞은 장소일 가능성도 있었다. 김성훈의 몸 상태가 직전까진 멀쩡했다가, 이곳에 도착해서 엉망이 된 것일 수도 있었고, 미친 참회자가 자신처럼 김성훈을 이곳으로 옮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부, 희박한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희박한 가능성에 목매는 건, 이런 상황에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임무.


임무는 이미 성공했다.


비전교회는 감염자와 연관이 있는 것을 넘어, 그들의 본격적인 거점으로 추측된다.


참회자가 대놓고 목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고, 권수칠이라는 노인이 자신을 그에게 인도한 것만 보아도, 심증을 넘어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건, 보고와 탈출.


참회자가 엮여있는 중대한 사항이었다. 만사를 제치고 금방 지원이 올 것이다.


이진호가 전술 파우치를 열어 휴대전화를 꺼냈다.


“어···?”


몇 시간 만에 재회한 휴대전화는,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액정은 군데군데 깨져있고, 프레임도 일부분 찌그러졌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그가 떨리는 손길로 휴대전화를 조작했다.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에라이!”


이진호가 고장 난 휴대전화를 냅다 던졌다. 휴대전화가 핏물을 튀기며 바닥을 굴렀다.


“후···.”


이제 남은 방법은 자력 탈출뿐이었다.


이진호가 김성훈의 팔을 어깨에 둘러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이진호는 김성훈을 부축한 채 복도를 따라 걸었다.





5분 남짓 걸었을까.


감염자나 참회자와 언제든 조우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기괴한 분위기가 주는 섬뜩한 분위기, 그리고 자신의 손에 김성훈의 목숨까지 달려있다는 심적인 압박감 탓인지, 이진호의 얼굴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었다.


“어?”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발견해, 이진호의 안색이 밝아졌다.


살덩이에 침식되지 않은 살짝 열려있는 문틈. 그 사이로 계단이 보였다. 그것도 위로 올라가는 계단.


이진호가 기쁜 마음으로 문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계단은 꽤 길고, 가팔랐다.


그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한 발짝, 한 발짝. 혹여나 김성훈을 놓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틀.


중간쯤 왔을 때, 이진호의 몸이 비틀댔다.


하마터면, 김성훈의 몸이 뒤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균형을 잃었다.


이진호가 다시금 주의를 되새겼다.


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려 한 걸음 오르려 할 때, 그는 깨달았다.


“이게, 무슨···?”


자신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꾸물꾸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살점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양 벽과 천장에 붙어있는 살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살점들이 마치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씹···!.”


불길하다.


온 건물에 살덩이가 뿌리내린 광경 보다, 방향성을 갖고 살덩이가 흐르는 지금의 광경이 더욱더 불길하다.


시체 조각들이 떠밀려간다. 기괴하게 부풀어 오른 사람들이 떠내려간다. 감염자고 인간이고 가릴 것 없이, 전부 강물처럼 흐르는 살덩이에 삼켜져 흘러간다.


유속은 점점 더 거세지고, 이내 급류라고 해도 될 정도로 거칠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닌,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며 아래에서 위로 역류한다.


“무슨, 이런 개 같은 곳이 다 있어!?”


이진호는 결국 자신을 밀어내는 유압을 버티지 못하고 급류에 휘말려 버렸다.



***



전신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팠다.


“끄으···.”


예배장의 장의자에 껴안듯 붙잡은 채 이진호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별안간 안색을 굳히더니 무언가를 퉤퉤 뱉어냈다.


선홍빛 살점 몇 조각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걸 목격한 이진호는 그만, 속을 게워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선배는?


김성훈에 생각이 미치자, 그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김성훈이 있었다.


그 또한 이진호와 비슷하게 장의자에 겨드랑이가 걸려있었다. 그가 의식을 잃었다는 걸 고려한다면, 천운이었다.


찰팍.


이진호가 몸을 일으키려 땅을 짚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닥엔 물기가 가득했다. 아니, 물이라고 하기엔 이상하게 점성이 높았다. 마치 무언가의 체액처럼. 그리고 이진호의 몸과 장의자 곳곳에도 똑같은 액체가 범벅되어 있었다.


“씹···.”


구역질 날 것 같은 불쾌감이 욕설로 승화되었다.


이진호가 점액질 가득한 손을 털어내고 김성훈에게 향했다.


걸음걸이가 묘하게 부자연스러웠다. 몇 걸음 더 걸어보니, 통증의 윤곽이 잡힌다. 인대가 늘어진 정도. 전신이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차마 알지 못했던 부상이었다.


절뚝절뚝, 김성훈에게 걸어가던 이진호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예배당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십자기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거꾸로 매달려있다.


십자기 밑으로는 온통 파괴의 현장이 벌어져 있다. 십자기의 위치가 절묘했던 건지, 재앙이 성스러운 십자기를 빗겨 난 건지 모를 절묘한 광경이었다.


무너지고 부서진 콘크리트 벽이 신음하는 핏물처럼 잿빛 가루를 흘러댔다.


그 한가운데에 기괴한 외계인의 부화장 같아 보기도 하는,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는 고치와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


고치는 마치 살아있는 듯, 두근두근 맥동했다. 이 세상의 것이라기엔, 너무도 불길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고치 앞에,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내도 이진호의 존재를 눈치챈 것인지, 교회의 창살 사이로 뻗어오는 흐릿한 달빛 아래, 사내의 얼굴이 비친다.


머릿속에서, 한편의 지옥도와 같았던 그 날의 장면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간다.


화르르.


‘끼에에에에에엑!’

‘한 입만, 살점을, 냄새, 달콤해!’

‘배고파배고파배고파배고파···.’


뻥 뚫린 천장 아래, 모든 걸 집어삼키겠다는 듯, 탐욕스레 혀를 날름거리는 주황색 화마와 불꽃에 타들어 가면서도 아귀처럼 이빨을 들이미는 감염자들,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하나하나 모든 감염자를 격살해가던 한 남자.


후에 알기로, 그는 네피림이었고,


“김현···?”


전에 알기로, 그의 이름은 김현이었다.


“이진호?”


김현의 눈에 이채가 돈다.


둘은 서로 아는 사이였다.


말 그대로 아는 사이일 뿐. 해후, 라고 할 정도로 깊은 인연은 아니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목적이 같았고, 잠깐의 부딪침으로 서로의 다름을 확인한,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다.


“네가 여길 어떻게···?”


예전 복수를 부르짖던 그 모습도 언뜻 뇌리에서 되살아난다. 지금 김현의 모습은, 그 옛날의 모습과도 달랐고, 그날 감염자들을 참살하던 모습과도 달랐다.


알 수 없는, 기묘한 차분함이 김현의 몸에서 흐르고 있다.


김현이 힐끔 이진호를 보더니, 입술을 뗐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평이한 어조의 목소리가 이진호의 귓전을 스쳤다.


“가.”

“뭐?”

“여긴 곧 위험해져.”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다.


김현은 이미 고치로 시선을 돌린 상태였다. 이진호에게 신경을 끈 채 고치의 외피를 어루만지고, 툭툭 치면서 무언가 골몰하고 있었다.


저 싸가지가···!


이진호의 이마가 핏줄이 돋았다. 나이도 자신보다 한 살 어린놈이, 여전히 싸가지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총탄도 칼날도 통하지 않는 ‘진짜 괴물’인데.


김현은 특급 수배자였고,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회사의 모든 요원을 끌어모아도 부족하다, 는 게 이진호의 사견이었다.


이진호 또한 김현에게 신경 끄고 제 갈 길을 갔다.


김성훈이 이따금 몸을 움찔 대는 게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한시라도 빨리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


그 순간.


꽈아앙-!


지근거리에서 포탄이 터져나간 듯한 굉음이 교회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고막을 지잉 울리는 소리의 폭력에, 김성훈의 몸을 잡아끌어 부축하려던 이진호가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그를 놓칠 뻔했다.


명백한 근원지를 눈으로 쫓으니, 김현의 주먹이 고치에 맞닿아있다. 그가 방금 고치를 후려친 것이다.


이진호가 아연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쩍, 세로 길게 고치에 금이 가며, 틈이 벌어졌다. 그리고


턱.


명백한 사람의 손이 고치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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