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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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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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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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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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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비전교회 (7)

DUMMY

“여긴···, 뭐야···?”


이진호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분명 방금까지 그는 교회의 목사실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풍경은 목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기본적으로 길다란 동굴과도 같은 구조였지만, 과연 이곳을 동굴이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동굴을 구성하는 재질은 돌이 아닌 선홍빛으로 꿈틀대는 무언가였고, 벽면을 따라 주름처럼 움푹 팬 골은 마치 소화기관의 한 부위를 연상케 했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고개를 치켜드는 광경이었다.


“우욱!”


한 박자 늦게, 지독한 냄새가 뇌리를 후벼팠다. 비릿한 피 냄새와 무언가가 썩어 문드러진 듯한 냄새가 섞여 토악질을 유발하듯 위장을 박박 긁어댔다.


“웁!”


이진호가 황급히 흑복을 끌어올려 콧잔등에 걸쳤다.


다행히 흑복의 기능은 이 끔찍한 악취에도 통용되었다. 덕분에 오늘 먹은 음식물을 다시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악취는 아직도 잔향처럼 남아있어, 들이마시는 호흡마다 위장이 꿈틀댄다.


이진호가 힘겹게 한 발짝 내디뎠다.


전투화에 짓밟히는 바닥의 질감이 무척이나 매끈거리고 물컹거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씹······.”


불길한 가정 몇 가지가 뇌리를 스쳤지만, 그는 애써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렇지 않으면, 혐오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총을 갈겨댈 것 같았다.


이 공간은 무엇인가.


돌고 돌아 다시금 의문이 찾아온다.


참회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일말의 기쁨도 주지 못했다.


비릿한 호흡이 폐를 거쳐 들락날락하고, 심장이 힘차게 맥동하며 사지에 피를 공급하는 감각이 온전히 느껴진다.


하지만 생에 대한 실감은 옅다.


아니,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이 그가 떨어진 지옥일지도 모른다. 아스라이 같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영영 걸으라는 지옥의 형벌을 받는 중일지도 모른다.


“씨이이이바아아알!”


이진호가 고레고레 욕설을 질렀다.


씨이이이바아아아알——.


위아래가 꽉 막힌 동굴의 내벽을 타고 그의 욕설이 메아리친다.


이진호가 한 발짝 더 내디뎠다.


이 끔찍한 공간에 대한 가정과 생사에 대한 의문과 눈앞을 깜깜히 물들이는 절망과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모두 지웠다.


이진호는 딱 두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서 탈출하는 것.


그리고 김성훈을 구하는 것.


이진호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



마락스가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보티스의 요청으로 밀린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뒀다.


영지와 동조한 상태에서, 성총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방금 그것으로 확실해졌다.


영지 안에서, 그는 가히 무한대에 가까운 성총을 휘두를 수 있었다. 물론, 양적인 측면만 고려했을 경우였다. 성총의 질적 향상은 이런 꼼수로 해결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락스는 그걸 원치 않았다.


더 큰 성총을 받아드리면,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니게 된다.


마락스는 현재 자신의 상태에 몹시 만족했다. 꼼수에 가까운 방법으로 전력을 강화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더 높은 성총을 탐한다면, 자신을 지킬 수단을 얻느라 자기 자신을 버리는 꼴이었다. 그건, 본말전도였다.


마락스의 상념이 자연스레 흘러가 이진호의 존재로 이어졌다.


일단은 ‘보관’하여 나중에 해부해보기로 마음먹은 인간.


그는 정말 흥미로운 존재였다. 아니, 그건 인간이기보단 차라리···.


문득, 마락스의 상념이 끊겼다. 시야의 끄트머리에 걸린 한 사람이 너무 거슬린 탓이었다.


조 장로, 조수칠이 문턱 앞에 바짝 엎드려, 벌벌 떨고 있었다.


마락스는 자신의 상념이 방해된 것에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며, 그를 불렀다.


보티스는 그동안 이 인간에게 자비를 베풀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조수칠.”

“예, 예!”


조수칠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참회자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방금의 광경은 그의 상식을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었다.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나타난 살덩이, 그것이 몸집을 키우더니 검은 옷의 사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검은 옷의 사내를 잡아먹은 채로.


조수칠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앞의 참회자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꿈결처럼 지나가 버린, 하지만 뇌리에 강렬히 박제된 방금의 광경이 그의 머릿속에 검고 진득한 감정을 주입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라.”

“예, 예!? 제, 제가 어찌 감히···.”


조수칠은 공포에 질린 얼굴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고개, 들어.”

“크헉!”


조수칠의 고개가 강제로 들린다.


마락스가 손수 머리를 붙잡은 건 아니다. 그는 아까와 같은 자세로 오만하게 조 장로를 내려다볼 뿐.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끄으으으.”


콰드득.


강제로 고개가 들려 경추가 뒤틀린다.


조수칠은 마락스의 얼굴을 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하지만 그의 몸부림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를, 봐라.”


안구가 타의에 의해 강제로 움직인다. 두 개의 의지가 서로 타협하지 못해 근섬유가 비틀린다. 비틀리고 끊어져 핏물을 줄줄 쏟아낸다.


결국, 조수칠은 참회자의 존안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20후반, 잘 쳐주면 30대 초반이나 될까, 오만한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젊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귀밑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칼. 반듯하게 반으로 가른 머리가 언뜻 단정해 보였지만, 노란 빛을 발하는 한 쌍의 눈동자는 흉포함을 감추지 않았다.


“너는 진정, 고해(告解)하여 죄를 뉘우치고, 이 고해(苦海)를 벗어나고 싶으냐?”


죄를 뉘우쳐 고해를 벗어난다, 그것은 즉 참회자로의 승천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이 조수칠의 목표였다.


비루한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고, 강력한 권능을 휘두르는 존재가, 조수칠은 되고 싶었다.


오직, 그것만을 위해 그는 참회자들에게 오랜 시간 봉사해왔다.


“예, 예! 그렇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조수칠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맹렬히 고개를 끄덕여 마락스의 금언(金言)에 입 맞췄다.


그의 표정은 마치 꿈에 그리던 구원을 마주한 신도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회를 주마.”


속삭임이 귓가를 스친다.


뱀의 혓바닥처럼 끈적거리던 목소리가 이젠 벼락처럼 조수칠의 머릿속을 쾅쾅 울렸다.


“이것이 고해(告解)요, 고통의 바다에서 너를 건져 올릴 단 하나의 방주다.”


마락스의 눈꺼풀에서 무언가 불룩 솟았다. 그것은 꾸물꾸물 안구 쪽으로 향하다 마침내 마락스의 안구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점액질로 끈적이는 몸을 꿈틀대는 구더기였다.


생애 최초로 바깥 공기를 마주한 구더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구더기의 몸에서 가느다란 다리가 솟았다.


몸뚱이가 새까맣게 물들고, 투명한 날개가 자란다. 마지막으로 둥근, 한 쌍의 겹눈까지.


완연한 파리의 모습이었다.


윙- 윙-.


몇 차례 앞 다리를 비비적댄 파리가 날갯짓을 시작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조수칠을 향해 날아갔다.


조수칠이 멀뚱멀뚱 파리를 보고 있는데, 파리가 그의 망막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눈꺼풀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조수칠이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이, 이이게! 무슨!”


파리가 꾸물대며 안으로 파고는 이질적인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파리는 겨우 눈꺼풀로 안주하지 않았다. 더욱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둥근 안구를 따라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둥근 공막을 따라, 시신경을 지나, 그의 뇌까지.


“으억! 으아악!”


조수칠은 마락스의 앞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허둥댔다.


눈꺼풀을 벅벅 긁어 대며 어떻게든 파리를 꺼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느끼고 있는 감각은 이미 파리가 지나간 자취일 뿐, 손가락은 파리에 닿지 못했다.


“끄아아아아!”


손가락이 더욱 깊게 파고든다. 눈꺼풀을 열어젖히고, 안구의 둥근 곡선에 강제로 침범한다.


피눈물이 줄줄 흐르고, 안구는 한계까지 걸쳤다. 안구가 거의 제 자리를 이탈하기 직전, 그는 참을 수 없이 감미로운 향기를 맡았다.


“어···?”


날름.


조수칠의 혀가 입술을 훑었다. 흘러내린 핏물이 혀끝에 닿았다.


“아아....”


그는 이루말할 수 없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실로, 여태껏 먹어보지 못한 진미.


푸욱.


조수칠이 자신의 안구를 적출한 건, 그 직후였다.



***



핏물이 고여 웅덩이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존재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하지만 그의 이빨이 애꿎은 바닥을 긁어댈 뿐, 탐스러운 피를 맛볼 수 없었다.


“아, 아아··· 아!”


그는 절망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시야 속에서,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이제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발도, 다리도, 손도, 팔뚝도. 눈, 코, 입술, 귀, 성기, 내장, 성대, 혀.


잡아 뜯어 먹을 수 있는 모든 걸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이젠, 정녕 먹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는 후회했다. 팔을, 손을, 혀를 너무 일찍 먹었다.


혀는 몰라도, 손은, 적어도 손은 두어야 했다. 그래야 적어도, 머리라도 부수어, 그 내용물을....


“아.”


그는 깨달았다. 아직 하나, 방법이 있었다.


쿵.


목 근육을 대부분 잃어, 내리찍은 힘이 그다지 강하진 않았다.


쿵.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쿵쿵.


연신 머리를 내리찍고, 또 내리찍었다.


쿵쿵쿵.


피 웅덩이에 자신의 것을 더하고,


쿵쿵쿵.


머릿속의 회백질 내용물이 조금씩 삐져나올 때까지.


쿵쿵쿵.


그는 미친 듯이 머리를 내리찍었다.



***



사지를 잃고, 머리가 깨지고, 온몸 구석구석이 무언가에 잡아 뜯긴 듯 훼손된 조수칠의 시체를 앞에 두고, 마락스는 무언가에 골몰했다.


분수에 맞지 않는 탐욕을 지녔던 비루한 인간에게 관심을 거둔지는 오래였다.


그는 지금, ‘아까의 인간을 어떻게 해부해야 할까’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구도를 버린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구도자적인 습관을 버리지 못하다니,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는 구도자가 아닌, 참회자.


탐구욕은 그의 욕망이 아니었다.


마락스가 여태껏 짙게 남아있는 구도의 자취에 쓰게 웃으며, 의식을 돌렸다.


연구소의 개들이 자신의 영지에 더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을 먼저 확인해야 했다.


마락스가 교회 전체에 자신의 의식을 퍼트렸다.


이 교회는 그의 영지. 동조된 지금은, 교회 전체가 그의 손아귀 안에 들어와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교회 내부에 있는 모든 존재의 기척이 속속들이 느껴진다.


감옥과도 같은 지하실에 갇혀 덜덜 떨고 있는 인간들, 갈기갈기 찢긴 고행자의 시체들, 전투의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연구소의 개, 그리고···


발밑에서 올라오는 세 존재.


“밑···?”


의문을 토한 마락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쿠와아앙-!


건물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교회 바닥이 잿빛 가루를 토해내며 폭발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폭발보다 경악스러운 건, 흩날리는 잔해 속의 광경이었다.


레라지에의 풍성한 금발은 색이 바랬다. 팔은 어디 갔는지 그녀의 어깨엔 섬찟한 단면만이 보인다.


언제나 단정했던 보티스의 머리 또한 이미 산발이었다. 그리고 옷 또한 군데군데 찢겨있어 난처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마락스!”


보티스가 고레고레 소리를 질렀다.


“레라지에가 당했다! 그놈, 네피림이 왔어!”


다급함과 절박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소리가 교회를 쩌렁쩌렁 울렸다.


네피림.


갑작스레 마주한 단어에, 마락스가 떨리는 눈으로 까만 구덩이를 응시했다.


그 안에서,


그들이 잃어버렸던, 그리고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제물, 김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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