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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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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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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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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비전교회 (4)

DUMMY

[ 지허 감염저 1 터털 진행 ]


김성훈으로부터 받은 모스부호의 전문이었다.


분명 제대로 해석했건만,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내용이다. 때문에 이진호는 내용을 대충 때려 맞추다시피 의역을 했다.


[ 지하 감염자 1 사살 진행 ]


잠입에 성공했으며 감염자 하나를 사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더해 추가적으로 임무를 진행하겠다는.


“아니, 이 인간이 미쳤나!”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


“침착해, 침착해, 이진호.”


이진호가 심호흡하며 주문처럼 자기암시를 걸었다. 그는 이미 욕이 나왔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야. 내가 할 일부터, 내가 할 일.”


이진호가 억지로 침착함을 가장하여 상황을 정리했다.


원래 임무의 목적은 단순 조사.


감염자를 발견한 시점에, 임무는 완수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김성훈이 독단적으로 잠입 및 감염자 살해를 진행 중이다.


평소에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요원 하나가 감염자 몇 마리를 쳐 죽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지는 않으니까.


문제는 저 교회에 감염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둘일 수도 있었고, 수십일 수도 있었다.


교회의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아무래도 수십 쪽에 무게가 기운다.


저 화려하고 웅장한 교회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데, 겨우 몇 명의 감염자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그래, 지원요청. 지원요청.”


이진호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즉시 연결되었다. 인공지능 특유의 말투가 그를 반겼다.


- 영업지원팀, 외부 회선입니다.


이진호가 빠르게 코드를 읊었다.


“찰리 하나, 델타 팔여섯공둘.”

- 찰리, 하나, 델타, 팔, 여섯, 공, 둘. 맞습니까?

“어.”

- 확인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삑-, 삑-. 몇 번의 비프음이 울렸다. 인공지능이 그의 코드와 음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진호 요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회선 연결, 김우혁 팀장님.”

-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딸깍, 회선이 바뀌나 싶더니, 다시 인공지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죄송합니다. 현재, 김우혁 팀장님은 부재중에 있습니다. 다른 안내를 원하십니까?

“지원요청!”

-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어! 빨리 좀!”


이진호가 초조함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음성안내 인공지능이 답답하다며 이유영이 분통을 토했을 때에는, 그녀에게 성질 좀 죽이라 조언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왠지 그녀의 말이 절절히 공감되었다.


- 죄송합니다. 현재, 1팀의 모든 요원들이 임무 수행 중에 있습니다. 다음에 이용해주십시오.


안내 멘트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이진호가 황망한 눈으로 휴대전화를 보았다.


괜스레 김성훈이 원망스러워진다.


감염자는 타고난 사냥꾼이다.


투명화에 가까운 위장 능력, 압도적인 운동능력과 재생능력을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사냥꾼이라 불리는 데에는 하나 더, 한 가지 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개의 그것에 필적하는 뛰어난 후각.


감염자 앞에서 몸을 숨기는 행위는 나 잡아먹어 주세요, 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다.


하물며, 감염자가 몇이나 있을지도 모르는 저 교회 안.


도대체 그 안에서 무얼 진행하겠다는 말인가?


쿵쿵.


이진호가 답답함에 못 이겨, 운전대에 머리를 박아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후우-.”


이진호가 호흡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01:43.


동이 트기 전까지 꽤 시간이 있다.


밤의 어둠과 정적은 대게 감염자의 편이나, 때로는 이쪽의 운신 또한 자유롭게 한다.


“그래, 해보자.”


꽈아악. 운전대를 바짝 조인 이진호가 결연한 눈빛을 발했다.



***



이진호가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안에는 검은색 불펍식 산탄총 한 자루와 온갖 무기들이 고이 모셔져 있었다.


이진호가 산탄총을 들어 두 개의 탄환을 번갈아 가며 삽입했다.


여러 발의 쇠 구슬이 튀어 나가 엄청난 저지력을 자랑하는 벅샷과 감염자의 머리통 정도는 일격에 박살 낼 수 있는 슬러그탄이었다.


발수는 7발과 8발. 총 15발. 이걸로 감염자 일고 여덞은 순식간에 갈아버릴 화력이 나온다.


두 자루의 권총을 각각 홀스터에 꽂아 넣고, 나이프를 하나하나 빼 들어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투척식 최루탄을 1개와 고폭 수류탄 1개를 챙겨 드는 것으로 준비를 끝냈다.


흡사 전쟁이라도 치르러 가는 모습이다.


그는 이미 시말서 정도는 각오한 상태였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모든 장비를 챙겼지만, 혹여나 이 장비들을 전부 사용한다면, 고작 시말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김성훈을 죽게 놔둘 수도 없었다.


이진호가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02:03.


이제 남은 건 진입뿐이었다.



***



그 시각, 김성훈은 이진호의 걱정대로, 꽤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장비는 달랑 나이프 다섯 자루와 흑복 뿐.


인간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존재들, 그것도 열 마리나 상대하기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빈약한 무장이었다. 하지만 이쪽도 나름 베테랑이어서, 그 수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한 셋쯤···?


“하아, 하아.”


김성훈이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문득 본능이 비명과도 같은 경고음을 내지른다.


온다.


공격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뭉개지는 공기층과 적나라한 식욕이 피부 위를 마구 때렸다.


오른쪽, 위.


김성훈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자세도, 무게중심도 모조리 엉망인 주먹질이다. 궤적만 읽을 수만 있다면, 감염자의 공격은 대처하기 너무 간단했다.


스윽.


김성훈이 오른발을 반 발자국 밀며 몸을 살짝 비틀었다. 그것으로 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비켜 맞을 정도.


김성훈이 나이프를 비스듬히 세웠다.


푸욱, 감염자의 팔뚝이 칼날에 날아와 박힌다.


김성훈이 힘껏 나이프를 비틀었다.


그극, 그그극.


뼈를 긁어대는, 아주 유쾌한 소리가 들린다.


김성훈의 미소가 더욱더 짙어졌다.


원래라면 감염자가 칼침을 맞아 피를 흘러더라도 그 윤곽을 정확히 인지할 수 없었다. 흘러내린 물감처럼, 공중에서 기묘하게 꼬부라진다.


원래라면, 김성훈 또한 감염자의 윤곽조차 볼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극도의 트랜스 상태, 혹은 무아지경. 언제 타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핑핑 돌아가는 뇌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그들의 몸을 휘감은 식욕과 적의를 바탕으로 가상의 윤곽을 그려냈다.


푸욱.


역수로 쥐어진 나이프가 정확히 감염자의 손목을 파고들어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동강.


감염자의 손이 허공을 날았다.


거의 동시에 정면에서 느껴지는 적의. 보통 사람이라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섬뜩한 식욕이다.


얼굴의 솜털이 전부 곤두선다.


하지만 미소는 지워질 기색이 없다.


김성훈이 왼쪽으로 반 바퀴 돌았다. 감염자의 손끝이 아슬아슬하게 코끝을 스친다. 그 사이, 김성훈의 손이 춤추듯 움직인다.


서걱.


감염자의 팔뚝에서 뽑혀 나온 나이프가 이번엔 감염자의 갈빗대 사이를 베어 가름과 동시에, 수직으로 솟구쳐 감염자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또다시 그려지는 완만한 곡선.


푸확!


핏줄기가 솟구쳤다. 감염자의 팔이 어깻죽지에 간신히 매달려 덜렁인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염자에게 별것 아닌 상처. 언제든지 재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머리를 꿰뚫어 죽여야 한다. 더는 재생하지 못하도록.


오소소.


섬뜩한 적의가 사방에서 피부를 찔러댄다. 소름이 돋다 못해 온몸의 털이 삐쭉삐쭉 솟는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김성훈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감염자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였다.


“하아, 하아.”


여기까지가 약 2초.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대가로 한계까지 쥐어 짜인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고통은 흑복의 유도로 분비되는 엔도르핀 덕에 쾌락으로 전환되었고, 기분 좋게 퍼져나가는 쾌락에 심장을 쿵쾅쿵쾅 울렸다.


“새끼야, 죽어!”


잠깐의 틈도 주지 않고 또 다른 감염자가 몸을 부딪쳐왔다.


흔한 말로 몸통 박치기. 자칫 우스워 보일 수 있는 공격이지만, 지금의 김성훈에겐 굉장히 효율적인 공격이었다.


감염자는 다수. 김성훈은 혼자.


포위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조절하며 하나씩 제압해나가는 것이 다 대 1 교전의 기본 수칙이었다.


하물며 상대가 감염자라면, 사람의 육체를 종잇장처럼 구겨버릴 수 있는 괴력을 가진 존재들이라면, 무조건 1 대 1의 상황을 유지해야 했다. 무지막지한 신체능력으로 중첩되어 오는 공격을, 평범한 인간이 버틸 재간은 없었다.


감염자의 막무가내식 돌진이 그가 절묘하게 유지하던 거리감을 단숨에 무시해버렸다.


“칫.”


전투가 벌어진 이래 최초로 김성훈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


감염자가 안아오듯 좌우로 팔을 쭉 뻗었다. 그것으로 좁은 복도가 가득 찬다.


뒤이어 달려오는 다른 감염자들까지 생각하면 피할 공간이 없는 상황.


아니, 딱 한 곳 있었다.


김성훈이 바닥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방향은 돌진해오는 감염자. 뜀박질은 금세 도움닫기로 변했고 감염자와 부딪치기 직전, 김성훈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어?”


김성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감염자가 멍청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감염자 살해에 이골이 난 상대를 시야에서 놓친 대가는 컸다.


푹!


나이프가 감염자의 정수리를 꿰뚫었다.


감염자의 육체는 곧바로 허물어지지 않았다. 나이프의 단면적만큼 뇌가 손상된다 하더라도, 그들은 곧바로 의식을 잃지 않는다.


덕분에 김성훈은 감염자를 훌륭한 지지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김성훈이 급격히 몸을 웅크린 것과 감염자의 어깨를 박차고 뛰어오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감염자의 몸이 허물어지고 김성훈의 몸이 공중제비를 돌듯 허공을 날았다.


반 바퀴 돌았을 때쯤, 발끝에 단단한 감촉이 걸렸다.


복도의 천장.


반전된 시야 속에서, 감염자들이 아우성치며 달려든다. 그 모습은 실로 지옥에서 인간의 살점을 탐한다는 아귀들과 같다.


비록 전부 뇌가 그려내는 가상의 윤곽에 불과했지만.


피식.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달려드는 아귀 때, 자신을 향한 소름 끼치는 살의.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부르르, 떨리는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겠다.


김성훈이 천장을 박차고 아귀 때를 향해 마주 달려들었다.




***



이진호가 교회 건물에 바짝 몸을 붙였다. 흑복만 달랑 입어, 얼기설기 얽혀있는 무기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가 손목시계를 툭툭 두드렸다.


이진호가 한동안 응신을 기다려도, 손목시계는 진동을 울리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잠깐 두드릴 새도 없는 상황, 이진호가 알기로 그런 상황은 아주 다급한 전투 시나 죽었을 때를 제외하곤 없었다.


불길함과 긴장감이 뒤엉켜 이진호의 몸뚱이를 끈적하게 잡아끌었다.


“젠장.”


김성훈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인지한 순간, 이진호는 작전의 목표를 바꿨다.


잠입에서, 섬멸로.


그리고 섬멸전은 도둑고양이같이 숨어들어 가는 것과 어울리지 않았다.


섬멸전은 시작부터 화끈하다.


핑.


이진호가 안전핀을 뽑아 최루탄을 창문 안으로 던져넣었다.


쨍그랑.


창문이 요란하게 깨져나가고, 최루탄이 연기를 뿜어내며 교회 바닥을 굴렀다.


푸쉬시-.


연기가 교회 내부를 가득 채우자 이진호가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이제 진입.


몇 번의 도움닫기 끝에 이진호가 깨진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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