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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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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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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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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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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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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화. 비전교회 (3)

DUMMY

목사라 불린 사내가 휘적휘적 지하실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위치한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노곤한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왔어? 보티스.”


보스티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른편 구석진 곳에, 풍성한 금발의 여성이 기다란 가죽 스툴(stool)에 삐뚜름히 누워있다.


“레라지에. 마락스는?”


보스티는 그녀의 인사에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화답하고, 곧바로 본론을 물었다.


“보다시피.”


레라지에가 방 한가운데를 가리켜 턱짓했다.


마치 고대의 신전을 재현한 듯한 거대한 지하실, 그 한가운데 돌로 쌓아 올린 소박한 외양의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제단 위엔 갈색 머리에 이국적인 이목구비의 사내, 마락스가 눈을 감은 채 정좌하고 있었다.


보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이 마지막 날 아니었어?”

“맞지.”


마락스는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인지, 레라지에가 선선히 대신 대답했다.


“나한테 일을 전부 떠넘겨 놓고, 도대체 이게 며칠 째야?”

“146일 18시간 34분 11초. 이제 막 12초야.”


보티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물어보길래.”


그의 시선에 레라지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잖아, 레라지에.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알아? 저, 돼지 새끼마냥 꿀꿀대는 인간들 때문에 신경쇠약이 올 지경이라고!”

“안타까운 일이야.”


건성처럼 들려오는 위로에, 보티스의 선해 보였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안타까워? 단순히 안타깝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야! 그 비루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꼴은··· 으으, 추잡하다 못해 소름이 돋아서, 갈기갈기 찢어발겨 죽여버리고 싶어! 게다가 버러지 같은 사냥개 새끼들은 제물 수급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고···!”


보티스가 잠시 호흡을 고르다,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이···! 고행자(苦行者)의 먹이로도 못 줄 오물들이···!”


레라지에가 그를 달래듯,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진정해, 보티스. 마락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의식을 치르는 게 아니야.”

“알아! 알고 있다고!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지! 연구소의 개들이 몇 마리나 기어들어 오든, 그놈들이 군대를 끌고 오든, 상관없을 정도로 완벽한 성채를 구축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의식을 시작했지!”


보티스의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근데, 146일? 147일? 네가 흘려주는 시약만 받아먹으면서 거의 반죽은 상태로 그 긴 시간을 보내고 있어!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단 한 번도!”


둘의 시선이 한동안 허공에서 부딪쳤다.


격정에 차 헐떡이는 보티스와 차분한 레라지에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레라지에의 파란색 눈동자가 그의 속을 꿰뚫어 보듯, 지긋이 응시했다.


“보티스, 분노는 우리의 감정이 아니야.”

“그래, 레라지에의 말이 맞아. 분노는 우리의 감정이 아니야.”


제삼자의 목소리가 레라지에의 말을 거들었다.


보티스가 눈을 치켜떴다.



제단 위에 정좌한 마락스의 눈꺼풀이 들리며 흑갈색 눈동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보티스의 눈이 마주쳤고, 마락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마락스, 너···!”

“오랜만이야, 보티스. 며칠 만이지?”

“146일 18시간 36분 19초.”


대답은 레라지에에게서 나왔다.


“하하하, 레라지에! 넌 여전하구나?”


그녀의 말을 들은 마락스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제단에서 내려와 보티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오랜만이야, 보티스.”

“마락스!”


둘은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어깨를 당겨 끌어안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 나는, 나는···.”


마락스가 그의 등을 토닥이자, 보티스가 변명처럼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감정을 통제할 수가 없었어···. 인간들과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바람에··· 잊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다시···.”

“괜찮아. 이젠, 내가 있잖아.”

“···고맙다.”


보티스의 감정이 진정되자, 둘의 몸이 떨어졌다.


“마락스, 동조에는 완벽히 성공한 거야?”


레라지에의 물음이었다.


마락스가 씨익 웃었다. 그는 지금 레라지에가 무엇을 묻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 지금 구축된 영지와 완벽히 동조된 상태야. 그리고···.”


마락스가 짝 손뼉을 쳤다.


그 순간, 그들은 전혀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 선홍빛 내벽이 맥동하듯 꿈틀댄다.


그것은, 동굴이라기보단 차라리 거대한 동물의 내장 속과도 같았다.


그들의 눈동자에 짙은 흥분감이 서렸다.


마락스는 마치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마술사처럼 과장되게 양팔을 펼쳤다.


“내 성총(盛寵)과 엮는 일도 완벽히 성공했다.”


마락스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제 이곳은, 설령 군대가 쳐들어와도 절대적으로 안전해.”


약 147일. 길고 길었던 의식의 종결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



김성훈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어두운 지하실.


굳게 닫힌 철문 틈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온다. 덕분에 사물의 윤곽을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었다.


8평 남짓 될까, 가구도 하나 없이 휑한 방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수는 김성훈 자신을 포함해서 총 여섯.


같이 교회로 온 노숙자들의 수와 꼭 맞아떨어졌다.


김성훈이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김상민이 교회에 딸린 조그마한 식당으로 데려가 식사를 대접한 것까진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뒤로는 필름이 끊긴 듯, 온통 까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면제라도 먹인 걸까.


알 수 없었다.


양손이 등 뒤로, 양발 또한 한데 묶인 자세에서 김성훈이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휘청이는 기색도 균형을 잡기 위한 작은 몸짓도 없었다. 그리고 팔과 어깨가 거꾸로 꺾이더니 뒤로 묶였던 손이 앞으로 넘어왔다.


일련의 과정이 마치 서커스와 같이 기묘했다.


마지막으로 소매에서 쑥 튀어나온 단검으로 손발을 구속한 청테이프를 잘라내며 묘기는 마무리되었다.


두어 번 손목을 돌리고, 김성훈이 문 앞에 섰다.


철컥.


철문은 굳게 닫혀있다. 손잡이를 돌려보았지만, 역시 잠겨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김성훈이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문을 쾅쾅 두드렸다.


“으악! 여긴 어디야!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저 돈 없어요!”


절박함도, 다급함도 느껴지지 않는 평이한 목소리. 하지만 소리는 충분히 커서 목적에 충실했다.


“왜 이리, 시끄러워.”


다행히, 어설픈 연기에 걸린 놈이 하나 있었다.


들리는 목소리는 하나, 발소리 또한 한 쌍이었다. 은신 상태의 감염자가 몇몇 더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있으면 어때?


김성훈이 반짝 눈을 빛냈다.


철커덩. 끼이익.


밖에서 자물쇠가 풀리고, 철문이 몸을 벌렸다.


광량이 급격히 증가한다. 빛이 따갑게 눈을 찌른다. 하지만 눈 한 번 깜짝하지 않는다. 빛에 적응하기 위해 동공이 한계까지 확장된다. 오로지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낼 상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한다.


광원을 등 져 음영이 드리운 상대의 얼굴이 드러난다.


창백한 피부, 색깔 없는 입술, 깔끔한 윤곽을 가진 눈썹.


감염자였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김성훈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빙고.”

“컥.”


그 즉시, 김성훈이 감염자의 목덜미에 단검을 쑤셔 넣었다. 한 치의 지체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칼날이 틀어박힌 위치는 천돌혈이라 불리는 쇄골 사이 움푹 팬 부분. 칼날을 깊숙이 밀어 넣자 감염자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끄르르.”


그저 피가래 끓는 소리만 낼뿐.


하지만 감염자의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있어 그가 아직 죽음에 이르기에 멀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김성훈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김성훈의 몸이 빙글 반 바퀴 돌았다.


어느새 그의 손안엔 또 다른 나이프가 들려있다. 체중을 실은 일격이 감염자의 관자놀이에 명중했다.


퍽!


칼날이 사라지는 마법!


흑복으로 강화된 신체능력과 몸을 회전 시켜 넣은 원심력으로 칼날은 부드럽게 두개골을 파고들었다. 감염자는 머리에 칼자루를 이어붙인 채 그 형형한 빛을 점차 잃어갔다.


뭐야 이건···?


감염자의 눈동자에 의문이 깃들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김성훈이 자신에게 몸을 누이는 감염자를 붙들었다. 재빨리 감염자의 시체를 방 안으로 밀어 넣은 다음 문을 닫았다.


철컥.


일단 하나.


김성훈이 감염자의 시체에 다가가 머리통에 박힌 칼자루를 빼어냈다. 주륵, 핏물은 사방으로 튀지

않았다. 다만, 불쾌한 회백색의 점액질을 꿀렁 토해냈다.


푹.


김성훈이 감염자의 미간에 칼날을 찔러넣었다.


가끔 머리가 박살 나도 살아나는 것들이 있었다. 미리 충분한 식량을 섭취한 감염자들. 그것들의 재생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때문에 확인사살은 필수였다.


푹, 푹.


그 뒤로 확인사실이 몇 번이나 이어졌다. 사방으로 머리의 내용물이 조각조각 튀었다. 차가운 돌바닥 위로, 민간인들의 머리 위로, 김성훈의 뺨 위로.


마지막으로 목에 박힌 단검을 빼어내자, 퓨숙 핏줄기가 낮게 솟구친다. 머리의 피를 미리 빼놓은 덕에 핏물을 뒤집어쓰는 일이 없었다.


김성훈이 단검을 감염자의 옷에 쓱쓱 문질러 핏물을 닦아냈다.


“흐음, 좋아 좋아.”


난도질당한 감염자의 머리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김성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깔끔한 처리였다.


그 순간.


“힉.”


짧게 공기를 들이켜는 듯한 아주 작은 소음이 들렸다.


김성훈이 홱 소리 나게 고개를 돌렸다.


드문드문 얼굴을 붉게 물들인 핏물과 희미하게 그의 얼굴을 비추는 불빛이 그 모습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귀기 어린 눈빛이 널브러진 사람들 사이, 한 남자에게 가닿았다.


“딸꾹!”


김성훈과 안면을 떴던 그 노숙자였다.


그가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자꾸만 새어 나오는 딸꾹질까진 막지 못했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김성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 아저씨?”


노숙자가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퍽 애처로워 김성훈이 싱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입술 위로 검지를 치켜세웠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쉿.”


김성훈 딴에는 그를 안심시키려 한 행동이었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는 전혀 설득력 없는 말이었다.


얼굴에 핏물을 덕지덕지 묻힌 채 눈을 반짝 빛내는 모습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딸꾹.”


노숙자는 필사적으로 딸꾹질을 억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김성훈이 핏자국으로 엉망진창인 상의를 벗었다.


벗은 옷의 안쪽으로 얼굴을 쓱쓱 닦아냈다. 손이나 목, 다른 신체 부위에 묻은 피까지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그리고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나머지 옷가지를 하나둘 벗어던졌다.


감염자는 전부 뛰어난 후각의 소유자이다.


특히 피 냄새를 잘 맡았다. 괜히 피 묻은 옷을 입어, 발각될 확률을 높일 필요는 없었다.


전신의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검은색 타이즈.


달랑 흑복 하나만 걸친 김성훈이 장비를 점검했다.


허리춤에 하나, 왼쪽 허벅지에 하나, 오른쪽 발목에 하나, 총 3개의 나이프. 이제 양쪽 겨드랑이 밑 나이프 홀스터에 손에 쥔 걸 하나씩 끼워 넣으면···


총 5개.


전부 이상 없었다.


툭, 툭툭.


장비를 전부 점검한 김성훈이 손목시계를 툭툭 두드렸다. 어떨 때는 짧게, 어떨 때는 길게, 경쾌한 격타음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졌다.


“잘 보내졌겠지?”


송신을 마친 김성훈이 작게 중얼거렸다.


상대방이 해석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워낙 똑똑한 후배님이니까 모스 부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이겠지.


문제는 김성훈 자신이었다. 과연 자신이 보낸 신호가 정확히 맞는 신호인지, 그는 확신할 수 없었다.


“뭐, 어련히 잘하겠지.”


김성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잘 해석하고 말고의 영역은 자신이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다.


“아.”


철문을 열어 적의 아가리 속으로 진입하려는 찰나, 김성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도 나름 공무원이었다. 게다가 아는 사람이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으니 괜히 신경 쓰였다.


“걱정 마세요, 아저씨. 괜찮을 거예요. 아마 하루 이틀 정도는 안 죽을걸요?”

“···네?”


그럼 그 후로는? 죽는다는 소리야?


석실의 어둠보다 안색이 시꺼메진 노숙자에게, 김성훈의 안심용 미소를 지었다.


끼이익.


그리고 철문을 열었다.


철컥.


밖으로 나온 김성훈이 문을 단단히 잠가 석실을 봉쇄했다.


그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하지만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부터 치미는 기대감을 숨기지는 못했다. 반짝이는 눈빛은 분명 들뜬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었다.


“감염자가, 얼마나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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