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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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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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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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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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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6화. 비젼교회

DUMMY

다음날, 경기도 광주시.


옛 중세 시대 신의 위업을 대변하던 건축물이 다시금 현대에 재현돼 있었다.


그만큼 교회의 규모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규모의 교회를 본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다.


전체적으로 교회를 치장하는 고딕(Gothic) 양식이 그 화려함에 방점을 찍어, 유럽의 대표 관광지라 속여도 깜빡 속아 넘아갈 정도이다. 건물을 올리는 데에 쏟은 돈과 정성이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진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 교회가 감염자들과 연관이 있다고?


여태껏 감염자라고는 폐창고, 폐공장, 야산 등의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장소에서만 마주친 그였다.


저렇게 민간인들에게 대놓고 공개된 교회와 감염자들의 연관성이 아무래도 상상이 가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지만, 딱히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교회 내부는 등록된 신자들에게만 개방된다 하여, 출입이 불가능했다.


이진호가 문득 길 건너편을 보았다.


편의점 앞 마련된 의자에 김성훈이 앉아 딸기 우유를 쪽쪽 빨고 있다. 시선을 느꼈는지, 김성훈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김성훈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이진호는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 속 편한 인간···.


현재, 김성훈은 가만히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속된 말로 짬질, 후배에게 할 일을 떠넘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김성훈의 휴식은 이진호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발단은 이러했다.


비전교회 근처에 도착했을 당시, 이진호는 저길 어떻게 조사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후배님, 가자.’

‘어딜 말입니까?’

‘당연히 저 교회지.’

‘오,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이 뭐 있어? 그냥 들어가서 다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예?’


이진호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때 김성훈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순진무구한 표정. 가증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렇다. 애초에 이진호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현장요원의 역할은 무력집행. 그들은 오로지 감염자 살해에만 특화된 살육병기들이었다.


조사?


여태껏 그런 건 할 필요가 없었다.


회사에서 가라고 한 위치에 가서 감염자들을 도륙한다, 그들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정보를 수집해라, 어디를 조사해라, 따위의 지시를 받은 적도 없었고 수행할 수도 없었다. 회사는 그들을 잘 드는 칼로 여기지, 흔히 불리는 멸칭(蔑稱)처럼 사냥개로 취급하진 않았다.


그러한 현장 요원 중 하나인 김성훈이, 정상적인 ‘조사’의 개념을 알고 있을까? 탐문, 취조, 수사. 이런 것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진호는 장담할 수 있었다.


아니오.


아마 김성훈뿐만 아니라, 이유영이나 다른 현장요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다들, 조사하라고 하면 무작정 쳐들어가 권총부터 들이밀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이진호는 이번 인선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에게는 다른 1팀의 요원들에게 없는 유일한 이력이 딱 하나 존재했다.


바로, 경찰 출신이라는 것. 그것도 강력계 형사 출신이었다.


김우혁이 그의 이력을 믿고 인선을 짠 것이 분명했다. 그가 김성훈과 같이 임무를 수행하게 된 까닭은, 김우혁의 심술이 아닌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던 것이다.


“근데 경찰 출신이면 뭐하냐고···. 1년도 못 채우고 이직했는데···.”


이진호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물론,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요원이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지, ‘회사’는 초법적 기관이다.


국정원의 것이든, 경찰의 것이든, 무엇이든 원하는 신분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고. 이유가 무엇이든, 시기가 언제든, 영장 하나 정도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적당한 신분과 영장, 그 두 가지를 내세우면, 교회 하나를 뒤집어엎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이 방법을 김우혁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마, 김우혁이 우려한 부분 또한 이진호와 같을 것이다.


타초경사(打草驚蛇).


만약, 영장이라는 수단까지 동원했음에도 꼬리를 잡지 못한다면? 괜히 그들에게 경각심만 심어주는 꼴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경각심을 가진 채 더욱더 철저히 숨어들 것이다.


영장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미뤄야 할 최후의 수단이다.


이진호가 머리를 감싸 안았다.


“팀장님···.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시련을···.”


괜스레 김우혁이 미워지는 날이었다.



***



와그작.


이진호가 초코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김성훈 또한 그의 것과 같은 초코바를 우물거렸다.


그들은 차량으로 복귀해 가볍게 식사를 때우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은 단순한 초코바가 아닌 초코바의 외형을 한 보존식이었다.


정식 명칭은 초고열량 완전보존식.


이래 봬도, 하나 섭취하는 것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대체 식품이었다. 열량이 매우 높고, 배변 활동과 이뇨작용을 억제하는 데다가, 미미하게 첨가된 초콜릿 향까지.


우물우물.


이진호는 연구소가 개발한 ‘초코바’에 꽤 후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요원은 그와 의견이 달렸다.


“선배님도 초코바 별로 안 좋아하십니까?”

“초코바···? 아, 이거? 나는 가리는 음식 없어. 근데, 유영 선배님은 이거 정말 싫어하더라.”

“맞습니다. 유영 선배님은 초코바 먹는다고 하면 정말 질색하십니다.”

“킥, 맞아맞아.”


그들의 유일한 공통분모, 그들의 사수였던 이유영이 화제로 언급되자 오랜만에 대화가 이어졌다. 상급자를 험담하는 건 언제 어디서나 흥미진진한 법이었다.


“선배님도 부사수였을 때 욕 많이 먹었습니까?”

“욕보다 먼저 주먹이 나오던데?”

“저도 많이 맞았습니다. 어제만 해도 두어 대는 이유 없이 맞은 거 같습니다.”

“회의실 앞에서 맞는 거 나도 봤어.”


김성훈이 키득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대화는 다시 단절됐다.


초코바를 우물거리는 소리와 포장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다시금 차량 안을 고요히 채웠다.


문득 김성훈이 정적을 깼다. 그가 꺼낸 소재는 정말 뜬금없고, 예민한 것이었다.


“후배님은 왜 나를 피해?”

“예?”


단도직입적인 질문이다.


이진호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가 김성훈에게 꺼리는 기색을 내비친 건 사실이지만, 이런 돌직구를 얻어맞게 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꾸 피하잖아. 나를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가 뭐야?”

“음···. 글쎄요···.”


이진호가 대답을 유보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진호는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굳이 감정의 호오(好惡)를 따진다면, 분명 호(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김성훈에겐 조금 께름칙한 면이 있었다.


그와 처음 만난 날,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자신을 찔러보라 말하던 그 모습은 결코 잊을 수 있는 종류의 기억이 아니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흑복’을 알고 그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다.


흑복.


현장 요원에게 기본적으로 지급되는 복장이었다. 그리고 흑복은 단순히 ‘옷’이 아니었다.


방검, 방탄, 피서, 피한, 피독, 충격흡수, 운동능력 보정 등등.


놀랍게도 전부 흑복의 기본적인 기능들이었다. 실로 소설 속에 등장할 법한 사기적인 능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이다.


고작 검은색 쫄쫄이에 불과한 옷이, 이런 사기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누가 믿겠는가? 눈앞에서 직접 보여줘도 납득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인 것이다.


그때의, 김성훈이 자신을 찌르라며 나이프를 쥐여준 행동.


그건 분명, 몸소 흑복의 탁월함을 보여주겠다, 라는 의도였으리라.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의도를 이해했다 해서, 그 기억까지 미화되는 건 아니었다.


김성훈과의 관계는 어찌 보면 첫 만남부터 틀어진 것이다.


김성훈이 재차 물었다.


“설마,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이진호가 몸을 움찔 떨었다.


정곡이었다.


하지만 굳이 거짓말까지 하진 않았다.


“하. 하. 그것도 있긴 한데···.”


왜 김성훈을 피하는가?


이진호도 스스로 의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이 께름칙한 감정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아무리 궁리해봐도 나오는 답은 항상 똑같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


이진호는 이 께름칙함의 원인과 정체를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으음~ 그렇구나.”


김성훈은 어떻게든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금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진호가 어색함에 몸서리치며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운전대 위로 양팔을 포개 턱을 기댔다.


창밖으로 멀거니 시선을 던지니, 초췌한 차림의 노숙자 한 명이 비척비척 교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어, 노숙자 아저씨다.”


김성훈도 같은 사람을 본 모양이다.


이진호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예···.”

“그러고 보니까···.”


김성훈이 곰곰이 무언가 떠올리는 시늉을 했다.


“감염자 놈들이 사람들을 납치해서 저 교회 건물에 가둬 둔다고 했잖아?”

“예. 팀장님의 추측대로라면, 그렇죠.”

“그럼, 내가 납치당하면 되는 거 아니야?”

“예, 그렇···. 예!?”


이진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내가 납치당한 다음, 저 교회 안에서 직접 확인하면 되잖아, 맞지?”

“···교회 내부에 몰래 숨어드는 방법도 있지 않습니까?”


김성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후배님도 알잖아. 감염자 놈들이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찾을 방법이 없다는 거.”


김성훈의 말이 맞았다.


작정하고 은신한 감염자를 그들을 찾아낼 방법은 없었다. 감염자의 위장을 간파하는 기술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연구소에서도 감염자의 위장 능력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고 들었다.


고로, 감염자에게 납치당하는 것으로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하지만 그 방법에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선배님이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피랍자(被拉者)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김성훈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예의 생글생글 웃는 낯이 아닌, 기특하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이에게 보일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후배님.”

“예.”


김성훈은 이진호를 자신 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이 아닌, 5개월 전에 입사해 자신의 막내 자리를 대신한 후배로 대하고 있었다.


“선배를 한 번 믿어봐.”


김성훈의 미소에, 이진호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그날 밤.


김성훈은 도심지의 한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복장은 단출했다.


원래 입고 있던 후줄근한 회색 후드티와 검은색 운동복 바지가 전부였다. 지금이 봄으로 접어든 4월이라곤 하나, 한밤중의 날씨는 꽤 쌀쌀했다. 노숙을 계획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복장이 꽤 부실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이진호는 운전석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의 눈은 김성훈에게 고정된 상태이다. 감염자에게 납치될 상황을 대비하여, 한 시라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김성훈은 공원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다가, 이내 벤치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밤이 깊어지고, 이진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첫날은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나갔다.



둘째 날.


늦잠을 잔 건지, 김성훈은 10시가 되어서야 슬금슬금 일어났다. 그리고 수중에 있는 현금 몇 푼으로 피시방에 들렸다.


그제서야 이진호는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김성훈이 피시방에 가면 이진호가 교대로 잠을 잔다, 미리 협의된 사항이었다. 시간은 하루에 3시간이었다.


정확히 3시간 후, 이진호는 눈을 떴고, 김성훈은 거리를 배회했다.


이진호는 끼니를 전부 초코바로 대체했고, 김성훈은 컵라면으로 때웠다.


밤이 왔다.


김성훈은 첫날과 다른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둘째 날도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나갔다.



셋째 날.


셋째 날도 둘째 날과 엇비슷했다.


김성훈은 10시쯤 되어서 일어났고, 피시방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정확히 3시간이었다.


다시 밤이 오고, 또 다른 공원에서 잠을 청했다.



넷째 날.


그간 씻지 못해, 김성훈은 적당히 꾀죄죄해졌다.


그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종이박스를 깔아놓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숙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노숙자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노숙자의 언성이 높아지나 싶더니, 차츰 진정되었다. 무어라 대화를 나누다가 둘은 함께 무료급식소로 향했다.


그날은 낮 시간에 피시방을 가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피시방으로 향했다. 정확히 3시간이었고, 김성훈은 공원을 배회하다가, 푸르스름 박명이 밝아올 때 잠이 들었다.



다섯째 날.


김성훈의 생활패턴이 바뀌었다.


11시 30분쯤 슬슬 일어나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밥을 먹고 나면 공중 화장실에서 대강 씻는다. 그리고 햇볕 잘 드는 곳에 신문지를 깔고 자리 잡아 꾸벅꾸벅 졸다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피시방에 들른 시간은 자정으로부터 40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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