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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님의 서재입니다.

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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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최근연재일 :
2021.10.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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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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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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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화. 회사 (5)

DUMMY

“아오, 더럽게 아프네.”


이진호가 투덜거리면서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다행히 그의 부상은 별것 아니었다. 가볍게 팔꿈치가 엇나간 정도?


보통이라면 부목을 대고 며칠을 끙끙거려야겠지만, 이진호는 지금 고통도, 거슬리는 감각도 더는 느낄 수 없었다.


놀랍게도 빨간약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게 아팠는데 효과가 없으면 정말 억울할 뻔했다.


딩동.


- 12층입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아까와는 다른 전경이 펼쳐졌다.


“지현아, 어제 남양주 건 파일 좀 보내줘!”

“예!”

“어제 탄약고 재고 파악한 새끼 누구야!”

“접니다!”

“너 일 똑바로 안 해? 뒤질래?”

“죄송합니다!”


12층, 지원팀 사무실은 부산스러웠다. 어느덧 모두 출근한, 업무 시간이 된 것이다.


이진호는 쭈뼛거리며 지원팀 사무실을 가로질렀다. 이내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인사를 건넸다.


“오, 막내! 잘 지냈어?”

“예!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진호다! 야, 너 오늘 테스트 통과했대며? 축하한다~”

“예! 감사합니다!”

“진호가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이야~ 빠르네?”

“예! 그렇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원팀은 대게 은퇴한 현장 요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1팀의 막내인 이진호는 여기서도 막내 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지원팀 모두에게 축하를 받으며 이진호가 부장실 앞에 당도했다.


똑똑.


“이진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방문을 열자 반쯤 시체가 돼, 축 늘어진 김우혁이 보였다. 그 또한 이진호를 보자마자 다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한다. 이제 정식이네?”

“예!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고생은 다 니가 할 텐데.”


왠지 농담같이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이진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하하 웃고 말았다.


“거기 앉아.”

“예.”


김우혁이 자세를 고쳐앉으며 물었다.


“몸은? 별문제 없고?”

“예, 빨간약 바르니까 나았습니다.”


이진호가 빨간약을 언급하자, 김우혁이 피식 웃었다.


“그거 아직도 존나 아프냐?”

“···예.”

“뭐 나아진 게 없네, 그쪽은. 아무튼, 어땠어? 혼자 외근 뛰니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습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네. 유영이한테 잘 배웠나 봐.”

“하하, 뭐 그렇습니다···.”


이진호가 어색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는 이유영에게 많은 걸 배웠다. 그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좋은 것만 배운 건 아니었다. 이유영의 가르침은 유익과 유해 사이, 그 어디쯤에 가까웠다.


“보고할 내용은?”

“민간인 상해는 전무합니다. 감염자들은 전부 사살했고··· 그 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감염자가 민간인들을 납치했고, 그들이 식인 행위를 저지르기 전에 이진호가 전부 사살했다.


특이한 것 없는 임무였다.


“흠, 그래?”


하지만 김우혁은 무언가 걸린다는 듯이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보고자 입장에서는 영 찝찝한 태도였다.


뭐지? 내가 놓친 게 있었나?


이진호는 자신이 실수한 게 있었나, 당시의 상황을 되새겼다.


“감염자 수는? 총 몇이었어?”

“다섯이었습니다.”

“다섯··· 다섯···.”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지, 김우혁은 계속해서 책상을 툭툭, 두드렸다.


“다섯이었는데, 별로 어렵지 않았다라···.”

“예?”

“아니야, 아니야.”


김우혁이 손을 휘휘 내젓고 축객령을 내렸다.


“피곤할 텐데, 빨리 가서 쉬어.”

“예, 알겠습니다.”


석연치 않은 태도였다. 이진호는 내심 불편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내 신경을 껐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김우혁은 손짓으로 이진호의 인사를 받았다.


이진호가 그길로 부장실을 빠져나가고, 다시 부장실엔 김우혁 혼자만이 남았다.


그의 책상 위에는 수십 개의 보고서가 산재해 있었다.


툭툭, 손끝이 책상을 두드렸다.


김우혁이 사무실에 묶인 지도 어언 2년째였다. 고로, 현장에 대한 그의 기억 또한 2년 전에 멈춰있었다.


다섯.


2년 전에 감염자 다섯이란 숫자는, 감히 요원 하나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감염자 다섯을 죽이려면, 최소 요원 예닐곱 명이 동원되어야 했다. 그것도 자동화기로 완전 무장한 요원이.


그때에는, 감염자를 소탕하기 위해서 건물 몇 채쯤 날리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그만큼 감염자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입사한 지 6개월도 안 된 애송이가 감염자 다섯은 손쉽게 죽인다. 감염자 대여섯 정도가 매일같이 무리 지어 다니고, 매일 밤 나타나는 감염자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은 늘었는데, 질은 떨어졌다라···.”


툭툭, 김우혁이 그 안에 숨겨진 진의를 찾으려는듯 한참을 고민했다.


그때였다.


한 남성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팀장님,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두고 가세요.”

“예.”


김우혁은 그를 보지도 않고 대꾸했고, 지원팀의 요원은 순순히 서류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물러섰다.


그가 나가자, 김우혁이 서류 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수십 장의 흑백사진들이 있었다. 화질은 썩 좋지 않았다.


슥슥, 무심하게 사진을 훑어보던 김우혁이 문득 의문성을 흘렸다.


“어?”


사진을 훑어보는 그의 손과 눈이, 점점 더 빨라졌다. 그리고 이내 김우혁이 억눌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이것들?”



***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한 귀퉁이를 차지한 옷장뿐인 5평 남짓한 방.


방금 샤워를 마친 이진호가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죽겠네···.”


피로가 급격히 몰려들었다.


이진호는 감겨오는 눈을 억지로 밀어 올리고 휴대전화를 보았다. 자기 전에 으레 하는 웹서핑이었다.


그가 휙휙, 초록 창을 넘기며 뉴스 기사를 뒤적였다.


역시나, 인구 난에 대한 기사가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 제2의 대공황, 그 이후 ], [ 노동가능인구의 절벽··· 내수경제의 위기 ], [ 세계 경제, 종말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 등등.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줄지어 있다.


“뭐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진호가 혀를 차고 카테고리를 넘겼다.


사회면의 기사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익숙한 장소가 눈에 띈다.


오늘, 그가 임무를 수행했던 장소였다.


휙휙, 스크롤을 넘기며 기사를 훑어봤다.


역시, ‘화재,’ ‘정신질환’ 등의 단어만 눈에 띄고, 달리 특이한 점은 없었다. 예컨대, 식인괴물과 같은···.


“당연한 건가.”


한숨과도 같은 중얼거림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제 이진호와 그의 선배가 했던 일을 평생 모를 것이다. 아니, 그들은 평생 몰라야 했다. 결코 그들의 무지가 깨어져서는 안 된다.


오직 그들의 무지를 지키기 위해, 이진호를 포함한 회사의 모든 요원이 제 목숨을 내던지며 임무를 수행한다.


사건사고는 많지만, 그들의 행적은 모두 조용히 묻힌다.


이진호가 휴대전화를 뒤집어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스르륵, 잠기운이 밀려왔다.



***



오후 8시.


일어나자마자 호출을 받은 이진호가 눈을 비비며 회의실로 들어섰다.


“헬로~”


방안으로 들어선 이진호에게 한 사내가 인사를 건넸다.


선이 곱고, 스물일곱인 이진호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이진호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다친 문 위로 대문짝만한 사무실의 문패가 보인다.


[ 국내 1팀 회의실 ]


이진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맞는데···?”


이진호는 결국 현실을 부정하지 못하고, 다시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이진호에게 인사를 건넨 남자, 김성훈이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반겼다.


“후배님, 오랜만이네? 아까는 왜 나갔대?”

“예···. 뭔가 보기 싫은 걸 본 거 같아서 그랬습니다···.”


이진호가 김성훈과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후배의 언행을 불쾌히 여길 만도 하건만, 김성훈은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여전히 속 모를 선배였다.


벌컥, 회의실 문이 열리며, 김우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이었다.


그가 칙, 담배를 하나 꼬나물더니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슬슬 운을 뗐다.


“너희들 전부, 최근에 외근 뛰어봤지?”


그들에게 외근은 임무이자 작전이었다.


이진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막 따끈따끈하게 단독 임무를 끝낸 상태였다.


“예.”


김성훈 또한 이진호와 마찬가지로 긍정을 표했다.


“너희들, 좀 이상한 점 느끼지 않았냐?”

“이상한 점이라면···.”


이진호가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감염자가 사람들을 납치하는 거야, 흔하디흔한 일이다. 외진 곳으로 슬쩍 끌고 가서 아무도 모르게 쓱싹, 그것이 감염자들의 사냥전략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오늘 임무는 뭔가 꺼림칙한 점이 있었다.


“그놈들, 납치한 민간인들을 해치지 않고 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김성훈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김우혁이 가만히 담배를 뻐끔 이다가, 대뜸 서류 봉투 하나를 밀었다.


스르륵, 책상 위를 미끄러진 서류 봉투가 이진호 앞에 멈춰 섰다.


“확인해봐.”


이진호가 서류 봉투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몇 장의 사진이 있었다.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이 섞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화질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공통된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전부 같은 모델의 승합차.


차량의 문 위로 무어라 글씨가 새겨져 있다. 역시, 화질이 좋지 않아 알아볼 순 없었다.


“의왕, 양평, 오산. 그리고 남양주까지.”


이진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남양주. 그가 오늘 임무를 수행했던 장소였다.


“최근 감염자를 소탕했던 장소에서, 모두 똑같은 차량이 발견됐다.”

“우연이지 않겠습니까?”

“단순한 우연···. 그래, 사실 우연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 나도 너와 똑같이 생각했어. 경기도는 넓고, 비슷한 차는 많으니까.”


툭툭, 김우혁이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생각이 깊어질 때 나오는,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근데 마침, 그 차량들이 전부 같은 시설에 속해있더라고. 그래서 며칠 전, 그 시설에 대한 관측 의뢰를 연구소에 넣어봤어. 똑같이 우연이 아닐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으니까.”


김우혁의 말은 타당했다.


우연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반대로 우연이 아닐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연관성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무엇을 얘기하든 추론일 뿐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 관측 결과가 나왔다.”


이진호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알 것 같았다.


“설마 감염자들이 우글대는···.”

“아니, 아무것도 안 나왔어.”

“예?”


예상과는 다른 흐름이었다. 이진호는 당혹감에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정확히는 관측 불가.”


회의실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연구소의 관측 불가 판정.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연구소의 기술력은 가끔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들의 기술력은 단순히 물리적인 수단을 뛰어넘기에, 일반적으로 그들의 시선을 피하거나, 막을 방법은 없었다.


즉, 관측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는 말은 저쪽에서도 물리적인 수단을 뛰어넘는 무언가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예컨대, 재(滓)의 마법 같은···.


“그래서, 내가 소설을 한 편 써봤어.”


툭툭, 김우혁이 책상을 두드렸다.


“감염자 놈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사람들을 납치하고 한 시설에 수용한다. 목적이 뭔지는 아직 몰라. 근데 그놈들이 갑자기 회개해서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모아 탁아소를 만들고 있을까? 개뿔. 아니라는 데 내 모가지를 건다.”


이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 또한 동의했다. 감염자가 회개하는 일은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염자가 식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 웃기는 농담이었다. 차라리 히틀러가 천국에서 보낸 천사라는 이야기가 더 신뢰 간다. 인간을 심판하기 위해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일으켰다고.


물론, 히틀러는 역사에 다시 없을 학살자였고, 감염자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잡아먹는 식인괴물이었다. 이 두 개의 명제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참이었으며,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 소설 대로라면, 수용소로 쓰이는 시설은 이곳.”


이진호가 사진을 들었다.


그나마 화질이 괜찮은 것이었다. 가늘게 눈을 뜨니, 어렴풋이 글자의 윤곽이 잡힌다.


광주 비전교회.


김우혁이 이진호와 김성훈, 그 둘과 차례차례 눈을 맞췄다.


“성훈이, 진호, 너희 둘이 직접 광주 비전교회를 조사해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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