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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웹소설 관련


[웹소설 관련] 통발의 테크놀로지

제가 대기근 웹소설에서 주인공의 첫번째 생존활동으로 통발을 만드는 것으로 했는데 제주 지역 어민들이 통발을 썼을까 안썼을까 고민을 좀했습니다.


우리야 TV나 너튜브로 쉽게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기술이지만 저 통발이라는 것이 어디서 만드는 것을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낚시나 그물과 다르게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물속에 미끼를 넣어두고 기다려야 하는 도구이다보니 더더욱 만들기 힘든 것이기도 하죠.


가령 우리가 새나 작은 동물을 잡는 덫을 생각해보면 원리도 알고 실제로 구조도 복잡하지 않는데 무인도 같은데 고립되었을 때 제대로 만들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둘 다 설치해놓고 최소 반나절은 기다려야 그 결과가 나오고 당장 배고픈 사람들 입장에서는 예전에 사용해 보지 않았다면 쉽게 시도해 볼 생각이 나지 못하거나 만들었더라도 실패할 경우가 더 많겠죠.


잘못만들면 미끼가 다 없어지기 일쑤고 통발을 놓는 위치를 잘못 잡으면 아예 못잡는 경우가 허다하니 여러개 설치했을 때 한 두개에서 고기가 나올 정도니 그것도 문제이고요.


그 당시 조선에서는 어량(魚梁, 漁梁) 이나 방렴(防簾)이라고 해서 함정 같은 것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는데 주로 육지 사람들이 대규모로 사용하던 방법이었고 제주는 바위가 많은 섬이고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으니 주로 잠녀들이 직접들어가서 잡거나 낚시나 그물을 주로 사용했을 것이고 함정어구는 사용하지 않았거나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경신 대기근에 제주섬 주민 절반 밖에 안남았다거나 삼분의 일이 굶어 죽었다등의 말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제주 주변에서 물고기만 잘 잡아도 오만명은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람을 잡아 먹을 정도까지는 갈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섬주민의 절반 정도면 이만 오천이고 다섯명에 통발 세개씩 넣으면 만오천개라고 볼 때 제주섬 둘레가 150,000미터라고 보면 10미터마다 한개씩 넣을 수 있으니 충분히 먹고 살만 합니다. 


육지에서도 조선 후기 후반이 되어서야 어업이 발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생각에는 경신 대기근에서 한번 당하고 을병 대기근 즈음부터 물고기가 중요한 식량자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통발 같은 것은 주로 내륙의 하천에서 장어잡이용으로 주로 사용하던 도구였는데 그때부터 알려져서 바다에서도 조금은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즉, 경신대기근까지만해도 생존형 어업이나 생존형 어로도구는 바다지역에서 보편화가 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경신대기근때 기록을 보면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섬이나 해안지역 사람들이 물고기를 곡물과 바꾸지 못해서 굶어죽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생존 어로도구가 보편화 되었다면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죠.


제생각에는 저기나오는 물고기는 홍어같은 비싼 물고기여서 육지에 곡물이 귀해지니 비싼 물고기를 먹을 사람들이 없어졌을 것이고 결국 곡물을 얻지 못해 굶어 죽은 것이죠.


몇년을 버티는 수준이 아니고 반년만 버티면 되는데 추운 겨울에 사용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어로도구는 통발인데 그것만 잘 써도 이틀에 한번 풀뿌리 나무껍질 넣어서 어죽을 먹으면 굶어죽지는 않을 것인데 굶어 죽었죠.


섬지역에 칡넝쿨도 많이 있었을 테고 소나무 껍질인 송기나 솔잎도 수확할 수 있으니 탄수화물인 전분성분은 어느정도 확보되고 결국 단백질원이 필요한데 통발이 보편화 되었다면 그것 열개만 만들어 섬 주위에 뿌리면 한 가족이 하루에 물고기 한마리는 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 시대에 서해 해안에 인구가 엄청 많았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지는 않았겠죠.


저시대 표류한 선원들도 마찬가지로 어지간히 살만한 무인도에서도 굶어 죽은 경우가 많은데 마찬가지로 통발을 아무나 잘 만들줄 알았다면 그런일이 없었겠죠.


저 시대의 어족자원이 지금보다 풍부하면 풍부했지 지금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인데 태풍이 와서 얕은 물의 물고기가 쓸려간 상태가 아니라면 통발이상 좋은 생존 도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시기에 통발은 상당히 고 수준의 테크놀로지(?) 였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고 장군이 통발을 처음 생존 도구로 선택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장군이 실제로 너튜브 본 것으로 통발을 저렇게 잘 만들 수 있었을까는 좀 의문인데 그것은 소설의 허용이나 주인공 버프 정도로 봐주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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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작성일
» 웹소설 관련 | 통발의 테크놀로지 2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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