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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068
추천수 :
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9.04 13:05
조회
249
추천
4
글자
12쪽

랠리

DUMMY

"너는 너보다 한참 윗사람한테 서중모가 뭐냐?"

"저쪽이 먼저 반말 하라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저기서 같이 집회를 하고 있네?"


서중모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고, 주말은 쉬는 날이므로 뭘 하든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늘 집에서 요리나 청소를 하던 서중모만 보다가, 저런 모습을 보니 생경했다.


"지금 저걸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닌데."


백규빈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분위기에 대해서는 하단우도 서중모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게요. 본인이 저한테 주의를 줘 놓고선."


최근에 있었던 총기사고 때문에 이 동네 사람들이 아시안에게 반감을 품고 있으니, 몸을 사리라고 했던 게 서중모인데.


저렇게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을 나서서 하고 있는 게 이해가 안 갔다.


집회 무리 중 한 명이 마이크를 잡고 동양인 차별에 저항하는 연설을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거리며 집회를 쳐다보았다. 그중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중모가 그걸 알기 때문에 참여한 걸 수도 있어."


백규빈의 말에 하단우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랠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거든. 최근 불거진 아시안 혐오에 대한 액션인 거지."

"하긴. 이유 없이 집회를 하진 않겠죠."


아시안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몸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발사된 탄환 때문에 아시안 전체가 살인자인 것마냥 매도되고 있다.


아시안을 혐오할 만한 구실을 찾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이곳 사람들은 순식간에 돌변하여 혐오감을 내비쳤다. 저 랠리는 이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모가 함께 하려고 나선 것 같아. 위험한 일이니까."

"위험한 일이라서 나섰다고요?"

"응, 사람들을 보호할 생각이겠지."

"서중모가 그런 성격 같지는 않던데요."


마켓에서 흑인에게 무조건 사과를 시키거나, 몸을 사리라고 경고를 주는 것을 보면 적극적인 성격은 못 되는 것 같았다.


화를 낼 시간에 돈이나 더 버는 게 낫다고 하던 사람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하단우의 말에 백규빈이 웃으며 말했다.


"중모는 안 보이는 데서 열심히 하는 타입이야. 아시안 무료 변호도 해주고 있고."

"무료 변호요?"

"응, 변호사거든. 지금은 쉬고 있지만."


서중모가 변호사라는 건 하단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료 변호라니. 그렇다면 서재에 처박혀서 하던 게 취업 공부가 아니라, 무료 변호 일이었던 건가.


백규빈과 잠시 연설을 들으며 서 있는데, 갑자기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회장 쪽으로 돌진하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란 하단우가 소리쳤다.


"뭐야!"


오토바이는 인도 위를 침범하면서 피켓을 든 사람들을 위협했다. 당황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오토바이를 피했고, 연설을 하던 서중모도 마이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오토바이는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뿔뿔이 흩트려 놓으며 집회를 망치려 하고 있었다. 하단우는 기가 차서 중얼거렸다.


"저건 뭐 하는 놈이야?"

"잠깐 여기서 기다리렴."


백규빈은 하단우에게 빵 봉투와 쇼핑백을 맡기고서 길 건너로 달려갔다. 백규빈이 달려가서 오토바이를 탄 사람에게 항의했지만 의미 없었다.


오토바이 때문에 사람들은 위험한 도로로 내몰리고, 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짜증을 냈다.


그러다가 결국 오토바이는 사람 한 명을 쳐서 쓰러뜨렸다. 도로로 내려갔다가 자동차를 피해 다시 인도로 올라온 젊은 여성이었다.


오토바이에 치여 쓰러진 여자는 고통을 호소했지만, 오토바이는 계속해서 굉음을 내며 사람들을 위협했다.


"저런 미친..."


하단우는 주머니에서 부채를 꺼냈다. 저깟 오토바이 따위 염동력으로 뉴욕까지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왜?"


내가 왜 저 사람들을 도와줘야 되지?


저들은 인간이고, 그와 상관없는 자들이다. 인종 차별을 당하든 말든, 위험에 처하든 말든, 그가 신경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신인 그는 인간의 일에 참견할 필요 없다. 이것은 명확한 사실인데도,


하단우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오토바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 백규빈과 눈이 마주쳤다. 백규빈은 하단우가 들고 있는 부채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력을 쓰지 말라는 뜻이겠지만.


"웃기지 마요. 도와 줄 마음도 없었으니까."


하단우는 부채를 다시 집어넣었다.


오토바이의 횡포는 집회 참가자들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여섯 명이 바닥에 쓰러지고 마이크를 못 쓰게 만들어 놓고 나서야, 오토바이는 자리를 떠났다.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도 확인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경찰이 오지도, 아시안이 아닌 누군가가 도와주는 일도 없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백규빈은 다시 하단우에게로 걸어왔다.


"아까 잘 참았어. 요력을 함부로 쓰면 안 되지."

"참기는 무슨. 도와줄 생각 없었어요."

"부채를 꺼내 놓고서 무슨 소리야."


부채는 반신의 무기. 그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가능하고, 반신의 요력을 증폭시켜주는 도구였다. 그 부채를 꺼내 쥐고 있는 것을 들켰으니 사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지만,


"제가 왜 인간 따위를 도와요."

"뭐야, 너 반신우월주의자야? 근데 넌 혼혈이잖아."


혼혈이라는 말에 하단우가 노려보자 백규빈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명호가 인간하고 결혼한 거 뻔히 아는데."


백규빈의 말에 하단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규빈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혼혈이면서 반신우월주의자는 또 처음 보네."

"그게 뭐 어때서요."

"한국계 미국인이 백인우월주의자인 느낌이라고. 이상하잖아."


하단우는 대꾸할 만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잠자코 있는데, 백규빈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보기에... 너는 반신우월주의자는 아닌 것 같은데."

"왜요?"

"네가 반신우월주의자면 순혈인 나한테 이런 태도로 대할 수가 없지. 나한테 잘 보이고 친해지고 싶어 해야 맞다고."

"재수 없어."


하단우의 혼잣말에 백규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그냥 화가 잔뜩 나 있을 뿐이야. 어디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단우는 백규빈을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갔다. 빨리 집이든 어디든 들어가서 혼자 있고 싶었다. 백규빈이 말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백규빈은 뒤에서 약을 올리듯 떠들어댔다.


"혹시 사춘기인 거 아니야? 사춘기가 스무 살 넘어서도 오나?"


그때 길 건너편이 다시 분주해지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피켓을 다시 집어 들고 스피커를 고쳐서 집회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저걸 재개한다고?"


그것을 보며 하단우가 어이없어하자 백규빈이 말했다.


"뭐 해. 도와주러 가야지."


하단우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집회 준비를 도왔다.


서중모는 어디에 부딪혔는지 팔에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오토바이에 치인 여자는 상태가 심각해 병원에 갔다고 한다.


여기는 미국이다. 백인들이 다수이며 힘을 가진 커뮤니티.


그 어떤 노력을 해도 동양인이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순혈 반신들 사이에서 혼혈 반신이 비주류이고 그것은 바뀔 수 없는 것처럼.


그냥 현실을 인정하면 될 것을.


차별하는 놈들 만나면 뒤통수 한 번 갈겨주고, 그러면 화가 좀 풀리니까, 그 정도로 끝내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일부러 나서서 위험을 감수해가면서, 무의미한 짓을 하는지.


하단우는 속이 답답해서 서중모에게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뭐가?"

"이런 거 해도 달라지는 거 없잖아. 네가 말했듯이 역사가 만든 사회적 구조야. 바뀌지 않는다고.'"


오랜 역사가 일구어낸 순혈 반신들의 철저한 연대.


유구한 순혈들의 역사는 반신 사회의 구조를 공고하게 구축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회에 불청객처럼 끼어든 인간의 피를 용납하지 않았다.


혼혈 반신이 차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단우는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서중모에게 말했다.


"너는 미국에선 당연히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어. 차별이 싫으면 한국으로 가야지."


혼혈 반신에 대한 차별이 싫으면, 인간으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처럼.


실제로 그런 선택을 해서 낙오자가 된 혼혈 반신도 많다. 하단우는 그 길을 알지만 선택하지 않고 반신으로 살기 위해 버텼을 뿐이다.


그러자 서중모는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연하게 차별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뭐?"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랐고 능력도 있어. 내가 왜 차별 때문에 도망쳐야 돼?"

"누가 뭐래? 그냥 네가 아시안이기 때문이잖아."

"내가 아시안인 건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나도 알아. 그건 너희 부모님 탓이지."


그가 혼혈 반신인 것도,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는 자식을 생각해야 했다. 자식이 겪을 고통과 불편함, 차별을 고려했어야 했다.


서중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래서 어릴 땐 아버지가 싫었어. 아버지만 아니면 나는 아무 문제 없었거든."


하단우는 피식 웃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그가 그의 어머니를 증오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서중모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근데 아버지를 원망해봤자, 결국 내가 나를 증오하는 것밖에 안 돼. 결국 나도 한국인이니까."


서중모는 자신의 가슴에 한쪽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억울하잖아.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인데, 사회 구조가 나를 증오하게 만들어."


서중모의 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그는 영어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로펌에서 좋은 실적을 냈다. 그는 누가 봐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여기서 도망칠 생각 없어."


서중모는 피켓을 주워 들었다.


"나는 아무 문제 없으니까."


그리고는 집회의 무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서중모를, 하단우는 한참 동안 서서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문제... 없으니까..."


그래서, 사회를 바꾸겠다는 건가.


그래서,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분노할 시간에 돈을 벌고, 부모를 원망할 시간에 무료 변호를 하고, 자신이 혼혈임을 탓할 시간에 집회에 참여하고.


"지독하네."


하단우는 피식 웃었다.


저 사람은 화가 나지 않는 게 아니다. 분노하지 않는 게 아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분노라는 감정에 쓰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감정적인 개입을 모조리 걷어내고 진실과 현실만을 보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진짜 싸워야 할 상대를 찾아냈다.


서중모의 타겟은 오로지 하나. 과거로부터 굳어진 이 땅의 사회 구조.


그것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지독하리만큼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하단우는 그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쉴 새 없이 차오르는 분노와 증오는 무엇에서 기인하는가.


나 자신인가, 타인인가, 아니면 구조인가, 역사인가.


알아야 할 진실은 무엇이고 바꿀 수 없는 현실은 무엇인가.


진짜 싸워야 할 상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 어느 때보다 머릿속이 맑았다.


분노와 증오를 걷어내니 예리한 이성이 고개를 든다.


하단우는 백규빈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소문을 수집하고 다니는 건가요?"


백규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아저씨조차, 뭔가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최강의 순혈 반신이면서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요력을 짓누르고, 파격적인 근로 조건으로 유망한 한국계 청년의 재기를 돕고, 아시안을 보호하기 위해 동네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고.


"단우야."


하단우는 자신을 부르는 백규빈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면."


백규빈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사 같은 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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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51구역 (1) 21.09.27 184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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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잠입 (1) 21.09.23 196 2 12쪽
90 생물공학정보센터 21.09.22 189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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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개방 21.09.16 225 4 11쪽
83 전세 역전 21.09.15 226 4 12쪽
82 반은 신, 반은 인간 21.09.14 223 4 11쪽
81 눈속임 장막 21.09.13 227 4 10쪽
80 탑 마스터 21.09.12 220 4 10쪽
79 제온 21.09.11 236 3 12쪽
78 서부지사 21.09.10 226 4 12쪽
77 비공식 대담 (2) 21.09.09 219 4 11쪽
76 비공식 대담 (1) 21.09.08 240 4 12쪽
75 재회 21.09.07 23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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