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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 님의 서재입니다.

어느샌가 이능력 사이언티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완결

민창
그림/삽화
제이지
작품등록일 :
2021.06.25 09:12
최근연재일 :
2021.10.06 13:05
연재수 :
104 회
조회수 :
51,120
추천수 :
892
글자수 :
532,633

작성
21.08.31 13:05
조회
283
추천
5
글자
12쪽

DUMMY

백규빈은 하단우에게 아예 방 하나를 내어주었다. 방 안에 화장실도 있고 텔레비전까지 있어서 지내기에 불편함은 없었다.


게다가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며 백규빈은 강제적으로 하단우의 핸드폰에 자기 번호를 저장해 놓고 갔으니, 원하는 것은 뭐든 요구할 수 있었지만.


하단우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침 일찍 서중모가 집으로 왔고, 백규빈은 출근하면서 서중모에게 하단우가 단독 행동을 할 경우 바로 연락하라는 요청을 하고 갔다.


다시 말해, 하단우에게 감시병이 붙은 것이다. 이 집을 탈출하면 서중모가 백규빈에게 연락을 할 것이고, 그러면 백규빈이 그를 찾으러 다닐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말이다.


"짜증나..."


하단우는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가만히 방 안에만 붙어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그때 밖에서 서중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점심 먹어."


아침은 아까 백규빈이 있을 때 함께 먹었고, 점심은 꼼짝없이 둘이서 같이 먹어야 했다. 그냥 안 먹고 건너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식탁에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서중모는 이미 앉아서 식사 중이다. 하단우는 서중모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서중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식사에 집중했다. 핸드폰만 볼 뿐 하단우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하단우는 서중모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했다.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젊어 보이고, 오빠라고 부르려니 낯뜨겁고.


일단 나이라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혹시 몇 살이세요?"

"역시 한국인은 나이 먼저 물어보네."


서중모가 피식 웃었다. 처음 만난 날에도 느꼈지만 어딘가 어리숙한 한국어였다. 그러나 대화가 어려울 정도는 아니어서 굳이 영어를 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나이를 알아야 그쪽을 부를 거 아니에요."

"그냥 반말해. 나 존댓말 불편해."

"아저씨한테는 잘만 쓰더만."

"그 사람은 고용주잖아. 잘 보여야지."


어눌한 한국어를 쓰면서 고용주라는 단어를 어찌나 정확히 발음하던지, 하단우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잘리기 싫은가 보네."

"응. 이만큼 페이 주는 파트타임 잡 없어."

"그렇구나."


하단우는 식사를 시작했다. 어제 저녁과 아침도 한식이었는데 점심도 한식이다. 어쨌든 미국에 와서 매 끼니를 제대로 된 한식으로 먹는 건 좋았다.


별다른 대화 없이 밥을 먹고 있으니, 벌써 서중모가 밥그릇을 비우고 일어났다.


"나는 마켓에 갈 거야. 너도 가자."

"나는 왜?"

"박사님이 너 혼자 있으면 안 된대."

"아... 진짜."


하단우가 투덜거렸지만 서중모는 듣는 체도 안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하단우는 감시당하는 게 기분 나쁘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답답한 집에서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



하단우는 서중모의 차를 타고 근처의 대형마켓에 도착했다. 마켓으로 들어간 서중모는 바로 그로서리 코너로 향했다.


식재료에 관심이 없는 하단우는 위스키나 와인 같은 것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꼼짝없이 서중모에게 붙잡혔다.


"내 옆에 있어. 다른 데 가면 박사님한테 전화할 거야."

"알겠어."


하단우는 입이 석 자가 튀어나온 채로 서중모의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서중모는 감자와 양파 등의 식재료를 카트에 넣었고, 하단우는 여자친구 쇼핑에 끌려온 남자친구 같은 표정으로 걸어 다녔다.


채소를 산 뒤에 육류 코너 방향으로 카트를 틀려고 하는데, 옆을 지나가던 흑인 남자가 말했다.


"헤이, 칭총?"


그 말에 하단우가 고개를 휙 돌리자, 흑인은 실실 웃으며 약을 올렸다.


"이 새끼가..."


하단우가 주먹을 쥐고 달려가는 순간, 서중모가 팔을 붙잡았다.


"하지 마."

"이거 놔!"


하단우는 서중모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서 흑인의 뒤통수에 주먹을 꽂았다.


"으아악!"


흑인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고, 하단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으로 다시 서중모의 옆으로 걸어왔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난 백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는 길거리가 아닌 대형마켓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마켓 직원이 달려와서 하단우에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하단우는 직원에게 영어로 말했다.


"저 남자가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어요."

"어쨌든 당신은 저 남자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것은 용서될 수 없어요."

"저 남자가 먼저 나에게 언어적 폭력을 가했습니다!"

"아니요. 이것은 명백히 당신의 잘못입니다."

"왜요!"


하단우가 소리치자 서중모가 직원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동생이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실수를 했습니다."

"저 남자에게 사과하고 합의를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예, 죄송합니다."


그리고서 서중모는 흑인 남자에게 다가가 잘못을 빌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단우는 기가 찰 뿐이었다.


"사과를 왜 해!"


씩씩거리며 서중모에게 걸어가자, 서중모는 하단우에게 강제로 사과를 시켰다.


남자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영어로 다섯 번이나 말했다. 싫다고 거부해도 앵무새처럼 말해대니 하단우는 어쩔 수 없이 흑인에게 잘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중모는 부디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며 흑인에게 부탁했다. 간곡하게 사정을 설명하며 여동생이 뭘 몰라서 그랬다느니 사실도 아닌 변명을 해댔다.


결국 흑인은 오케이, 하면서 사과를 받아 주었고, 서중모는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단우는 흑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난 잘못한 거 없어. 쟤가 시비 걸었다고."

"그렇다고 때리면 어떻게 해?"


서중모가 나무라자 하단우는 못마땅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밖에서는 그냥 도망치면 됐는데."

"설마, 니가 그 백인 남자 쓰러뜨렸다는 아시안이야?"


서중모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백규빈도 그러더니, 서중모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 사람 저 사람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단우는 대충 대답했다.


"그런가 봐."

"조심해야 돼. 요즘 여기 분위기가 안 좋아."

"무슨 뜻이야?"


서중모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네가 그 아시안 걸이라고 의심받을지도 몰라."


그렇게 하단우는 서중모와 함께 마켓을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타기가 무섭게 서중모가 말했다.


"일주일 전에 남부에서 총기사고로 사망자가 나왔어."


시카고 남부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다. 하단우도 남부를 지나왔기 때문에, 이곳과 남부의 분위기 차이를 알고 있었다.


"말다툼으로 시작된 사고야. 히스패닉 남자가 옆집 여자한테 총을 발사했어."

"그래서? 여자가 죽었어?"

"아니, 다행히 맞진 않았어. 여자가 위협을 당하자 여자의 남편이 총을 가져왔지."

"그걸로 히스패닉을 쏜 거야?"

"아니. 총을 들고 몸싸움을 하다가 발사된 총알에 히스패닉이 죽었어."

"실수로 발사된 거야?"

"응, 수사 결과 그렇게 결론이 났어."


하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총을 먼저 쏜 쪽은 히스패닉이니 크게 억울할 것은 없어 보였다.


아까 서중모가 요즘 분위기가 안 좋다고 말한 이유가 이 총기사고 때문인가 싶었다.


"총기사고 때문에 동네 분위기가 안 좋은 거야?"

"아니. 총기사고가 난다고 분위기가 달라지진 않아."


하단우도 한국에 있을 때 몇 번 뉴스로 접해서 알고 있었다.


총기 소지가 불법이 아닌 미국에서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총기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고 자체의 문제가 아님을 못 박은 서중모는 말을 이어갔다.


"히스패닉을 쏴 죽인 사람이 아시안이라는 게 문제지."

"뭐? 그건 정당방위잖아. 과실치사고."

"어쨌든 아시안이 살인을 한 거잖아. 그래서 요즘 아시안에 대한 적개심이 심상치가 않아."


하단우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그 아시안이 일부러 히스패닉을 쏴서 죽인 것도 아닐뿐더러,


설령 아시안이 살인을 했다고 해도 그건 단지 그 사람이 살인을 한 것일 뿐이다.


아시안 전체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질 근거가 없는데.


"그래서 아까 그 흑인이 나한테 시비를 걸었나 보네."


하단우는 시카고에 오기 전까지 그런 류의 인종차별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편의점 앞에서 만난 백인 남자도 그렇고, 오늘은 백주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마켓에서 시비를 걸다니. 확실히 이 동네 사람들은 동양인에게 날이 서 있는 듯했다.


"응, 이런 시기엔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야."


서중모의 목소리는 약간의 흔들림도 없이 건조하기까지 했다. 열받는 사실을 꼭 설명문 읽듯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단우는 서중모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런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게 기가 찼다. 그것도 천박한 인간들에게.


"감히 인간 따위가..."


하단우가 중얼거리자 서중모가 말했다.


"너도 인간이면서 무슨 말이야?"


서중모는 그가 반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단우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러자 서중모가 따지듯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런 말투 기분 나빠."

"뭐?"

"감히 동양인 따위가, 라고 하는 거랑 똑같은 말투야."

"다르지! 나는 피부색으로 사람 차별하지 않아!"

"그런 말투가 기분 나쁘다는 거야. 사람을 무시하는 말투잖아. 안 그래?"


한국어 잘 못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건 귀신 같이 알아듣고 핀잔을 준다. 하단우는 서중모의 말에 부정은 하지 못하고 등받이에 푹 기대며 말했다.


"너 좀 피해의식 있네."

"그럴 수도 있지. 난 아시안이니까."


서중모가 바로 인정하면서 대화가 끊겼다. 자동차가 달리면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하단우가 서중모에게 물었다.


"부모님이 한국인이야?"

"아니, 아빠만. 엄마는 미국인이야."

"그렇구나."


하단우는 대충은 예상을 했었다. 서중모의 외모가 완전히 동양인 같지는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서중모가 물었다.


"너는 미국에 살던 건 아닌 것 같고. 왜 여기에 온 거야?"

"네 고용주가 붙잡아 왔잖아."

"그게 아니고. 왜 미국에 왔냐고."

"가출했어."

"왜?"

"다 싫어서. 사람도, 한국도."

"뭐가 그렇게 싫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 자기들 멋대로 아이를 혼혈로 낳아 놓은 책임감 없는 부모.


노바 에볼루션. 이 자들은 인간과 동물을 가리지 않고 몰살시킬 뻔 해놓고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지켜낸 수만 명의 인간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 덕분에 살아남았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내 눈에 보이는 전부 다."


하단우의 말에 서중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나 있구나."


하단우는 서중모의 말에 또 부정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댈 뿐이었다.


하단우가 잠자코 있자 서중모가 말했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뭐가 안 달라져. 내 속이 후련해지지."

"그걸 변화라고 할 수 있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변화가 생기건 말건, 그게 화를 내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냥 현실을 말한 거야."


서중모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나 하단우에게는 전혀 개운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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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서부지사 21.09.10 22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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