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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순창사또 이성렬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대체역사

공모전참가작

연재 주기
급시우C
작품등록일 :
2021.05.12 11:14
최근연재일 :
2021.09.17 23:35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15,954
추천수 :
414
글자수 :
532,488

작성
21.07.0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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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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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63화. 확률이 아닌 희망으로 사는 것

DUMMY

“위원장 후보 여러분께 문제를 드리겠습니다. 스님이 100명 있습니다. 그리고 만두가 100개 있습니다. 큰 스님은 1사람 당 3개씩, 작은 스님은 3사람 당 한 개씩 만두를 먹어야 다툼이 없습니다. 큰 스님은 몇 명이며, 작은 스님은 몇 명인가요?”


성렬이 사또 의자에서 수제 대나무 마이크로 문제를 읊었다.


이방 수봉은 기장할매와 호방이 추천한 구씨에게 문제지를 나누어 주었다. 앞마당 돗자리에 앉은 호방 사령 구씨는 문제를 풀기 위해 산가지를 꺼냈고, 할매의 눈동자는 하늘로 향했다.


“이수신편 난법가에 나오는 문제랑께!!”

공개채용을 보러 온 사람들의 행렬 앞줄에서 호방이 구씨에 다급히 외쳤다.


조선의 실학자 황윤석이 1774년에 편찬한 이수신편(理數新編). 조선의 호조, 호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산술은 필수였다.


“큰 스님 25명, 작은 스님은 75명.”

암산으로 바로 풀어버리는 기장할매. 타고 난 수학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구경꾼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 속에서 목을 쭉 빼고 구경하던 아정은 손에 불이 나도록 박수를 쳤다. 그리고 설주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했다.


그 옆에서 대성도 설주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려 했지만 설주가 고개를 훽, 돌리며 외면했다. 머쓱하게 양 팔을 내리고 엄지손가락을 쓰윽 내미는 대성.

며칠 전부터 토라진 설주 때문에 흥미진진한 퀴즈쇼를 봐도 즐겁지 않다.


다음 문제를 발표하기 전, 설주는 대중 속에 몸을 숨긴 아정의 손을 잡고 행렬 맨 앞줄로 이끌었다.


“설주 아가씨, 나 여기서 볼래.”

“언니! 할매가 언니를 얼마나 예뻐했는데 이렇게 소심하게 응원할거야?”

“...”

“앞줄에서 손 흔들어주고 양손으로 엄지를 내밀어줘야지. 영어로 섬주 업!”


설주는 일전에 대성에게 배운 Thumbs Up을 구수하게 발음하며, 아정을 재촉했다. 마지못해 굼뜬 발걸음을 옮기는 아정. 적극적인 설주가 길을 트고 행렬 앞줄로 갔다.


관중 속에서 아정을 발견한 성렬.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괜스레 입술을 만져본다. 얼른 이 공개퀴즈쇼를 끝내고 아정의 두 눈을 보며 이것저것 이야기 나누고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일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줘야겠지.


“다음은 상속 유언장 문제입니다. 세 아들 보아라. 소 17마리를 상속한다. 첫째아들은 전체의 이분의 일을 갖고, 둘째아들은 전체의 삼분의 일을 가지며, 셋째아들은 전체의 구분의 일을 갖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상속한 소는 팔지 말고, 잘 길러 재산을 증식하여라.”


관청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사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위원장 후보 여러분, 세 아들에게 소를 분쟁 없이 나눠주는 것이 이번 문제입니다.”


문제를 낸 후 성렬은 관중석으로 눈을 돌렸다. 아정이 눈에 띄는 앞줄에 있으니 참 보기 좋았다. 위원장 후보들이 문제를 푸는 동안 성렬은 아정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급한 호방이 구씨 옆으로 갔다. 산가지를 들고 함께 나눗셈을 하였다. 성렬은 호방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17마리에 이분지일이면 8과 반마리가 되고, 삼분지일이면 5과 10분지6이고, 구분지일이면 1과 10분지8이 연속해서 이어지는디...”

“소를 반으로 쪼갤 수 있습니까? 사또, 문제가 이상합니다.”

구씨와 대화를 나누던 호방이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쪼갤 수 없습니다. 잘 길러서 재산을 증식해야 하니 소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마이크를 통해 성렬의 목소리가 마당 전체에 울려나갔다.


“그럼, 17마리를 어찌 나눕니까.”

구씨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뭐가 문제고? 내가 소 한 마리 빌려줄게. 18마리로 나누면 되지. 18마리에 이분지일이면 9마리, 삼분지일이면 6마리, 18마리에서 구분지일이면 2마리. 그라면 딱 떨어지고, 내가 빌려준 1마리는 남제? 남은 건 내가 도로 가져가면 다 되는 거제?”

기장할매가 커다란 귀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히 말했다.


할매의 현답에 구경꾼들이 “오~” 감탄사를 터트리며 박수 쳤다.


“우리 할매, 머리가 겁나 비상하단게.”

두 손을 꼭 모으고 할매를 지켜보던 아정이 활짝 웃었다. 곧이어 양손으로 엄지를 흔들며 기뻐했다. 동헌 의자에서 아정을 바라보는 성렬의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어쩜 저리 귀엽지?


“이 문제는 억지가 있습니다!”

호방이 이의를 제기했다.

“17마리를 나누어야 하는 것을, 18마리로 나누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호방의 말에 성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모에 달린 꿩깃이 천천히 흔들린다.


“지금까지 기장할매가 전부 문제를 맞추었는데도 이의를 제기하는 겁니까?”

젊은 사또가 나른하게 질문했다.


“그... 그.. 문제가 요상하게 꼬인 건디...”

호방이 추천한 구씨는 더듬더듬 말했다.


“수학은 호방에서 일하는 니들 죄다 모아도 내를 못 이겨. 우리 조상님 중에 9차 마방진을 기록한 분이 있거든. 니들 구수략은 아나?”

기세등등한 기장할매가 큰 소리를 쳤다.


마방진, 정사각형의 판에 가로 세로 대각선의 숫자를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그 합이 같은 값(마방진 상수)이 나오는 배열.

제일 쉬운 3차 마방진의 경우, 가로3칸, 세로3칸으로 그려진 총 9칸 위에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중복하지 않고 배열을 해 각 줄의 합을 15로 만들 수 있다.


마방진은 현대조합수학의 기초이며, 현대통신기술에도 응용되는데, 반도체에는 9차 직교라틴방진이 적용된다. 이러한 9차 마방진을 최초로 기술한 사람이 조선시대 유학자 최석정.


1776년 직교라틴방진 논문을 세계 최초로 발표했던 오일러는 6차부터는 마방진이 성립할 수 없다고 했지만, 최석정은 이 논문이 발표되기 60여 년 전에 이미 9차 직교라틴방진을 만들어 <구수략>에 저술했던 것.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빈곤했던 대한민국이 빠른 시일 내에 가난을 떨치고 반도체 산업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그저 우연은 아니겠지.


“할매는 나에게 산가지 알려준 분이여라.”

당당한 기장할매를 보고 아정이 빙긋 웃으며,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자랑했다.


구경꾼들의 마음은 기장할매에게 가 있었다. 호방은 마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구씨가 총명하다 주장했지만, 공개석상에서 문제를 척척 푸는 기장할매를 앞에 두고 쉽게 설득이 되지 않았다.


“사또, 이거 짜고 치는 거 아닙니까? 할매에게 위원장 자리를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호방은 상황이 그의 뜻대로 풀리지 않자 억지를 부렸다.


“그럼 호방께서 마지막 문제를 내 주세요.”

성렬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문제를 바로 양보했다.


호방과 논쟁할 시간이 아깝다. 저기 구경꾼 사이에 서 있는 아정과 대화를 나누고 싶을 뿐. 지난 가스 중독 사고 후 바쁜 일들이 많아 아정과 제대로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할매가 2승을 챙겼으니, 호방이 어떤 문제를 내든 설령 틀린다 해도 구경꾼들은 기장할매를 위원장으로 지지할 터. 턱없이 말도 안 되는 여론에 휩쓸리지 않는 한 말이다.


성렬은 호방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마이크를 잡은 호방은 주저했다. 만약 구씨가 틀리면 기회를 더 얻지 못할 것이다.


“사또, 막판 뒤집기 있습니까?”


“...”

대답을 망설이는 젊은 사또. 퀴즈쇼에서 흥미를 위해 앞서 차곡차곡 쌓아왔던 점수를 물리고 마지막에 점수를 와장창 몰아주는 게 싫다.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에게 인생은 한방이겠지만, 우리네 인생의 대부분은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아 업적을 이루는 거 아니겠는가.


기실, 매주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과 매주 적금을 넣는 사람의 10년 후를 비교하면, 적금을 부은 사람이 목돈을 쥘 확률이 높다. 세수 확보를 위해 복권 사업을 내세웠을 뿐 정작 사또인 성렬은 복권에 그다지 관심 없었다.


“그래라. 막판 뒤집기 하자.”

오히려 기장할매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평생에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은 복권이 결국 뭐야, 인생 한방의 꿈을 꾸게 해주는 거 아닌가.


작금의 조선 남정네들 대부분은 투기판에서 돈을 흘린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이유도 있고, 과도한 세금을 내기 싫어 일부러 난봉꾼처럼 살며 가난을 택하는 이도 있다.


결국 투기판으로 흘러갈 돈이나, 복권이나 별 차이 없다. 오히려 복권이 나아. 짓고땡은 눈앞에서 사라지는 돈에만 정신이 팔리게 하지만 복권은 당첨일까지 행복한 꿈을 꾸게 하니까.


할매는 복권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인간은 확률이 아닌 희망으로 사는 것 아니겠는가.


숫자 25개 중 5개를 맞춰 1등이 될 확률은 1,062,600 중에 1이다. 하지만 그 복잡함을 염두에 둘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당첨과 꽝, 이 두 가지의 결과로 받아들일 테니.


인간과 자연은 자로 잰 듯 똑 떨어지는 직선으로 살아가는 게 아님을 기장할매는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었다.


며칠 전 위원장 자리를 두고 일대일 면담하면서 젊은 사또는 이러한 기장할매에게 인문학적 소양이 있다며 문과, 이과 통합적 인재라며 추켜세웠다.


인문학적? 통합적?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낯선 단어들만 툭툭 내뱉는 저 별난 사또가 할매의 마음에 쏙 드는 건 아니지만, 지역민을 위해 구상하는 게 기특해 복권위원회에서 도와주고 싶었다.


기장할매가 막판 뒤집기에 동조하니, 호방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문제를 제시했다.


“흠흠, 소 6마리와 닭 2마리에 합이 20냥, 소 3마리와 닭 5마리에 합이 14냥인디, 소와 닭 한 마리의 값은 각각 얼마이겠느냐.”


호방 사령 구씨가 조선시대 수학의 정석 <구장산술>로 접했던 문제. 하지만 오래간만에 푸는 문제여서 답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잽싸게 산가지로 방정식을 푸는데,


“소 한 마리에 3냥, 닭 한 마리에 1냥.”

기장할매는 너무나 쉬운 문제라는 듯 재빨리 답했다.


또 다시 구경꾼들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문제에는 억지가 없죠?”

성렬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

호방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소가 3냥이면 너무 싼 거 아녀?”

구경꾼들은 소 값이 적당하지 않다고 소곤댔지만 기장할매의 위원장 자격에 불만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


복권위원회 위원장 공개채용에 구경 온 사람들은 관청 마당에서 가벼운 식사와 막걸리를 대접받았다. 위원장이 된 기장할매의 총명함을 두고 삼삼오오 이야기 나누었지만, 그것보다 복권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컸다.

복권에 대한 입소문이 순창뿐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빠르게 퍼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대성아, 그릇 잘 수거하고, 잘 마무리하고 와.”

“알았어.”

관아 정지간에 들러 숙수들과 인사한 아정은 대성에게 마무리를 당부했다.


이내 빠른 걸음으로 행랑마당의 가장자리를 지나 관아 정문으로 향하는데 설주가 아정을 붙잡았다.


“언니! 할매가 위원장 되었는데, 축하인사 안하고 갈 거야?”

“나중에...”

“할매, 지금 객사에서 사또랑 같이 식사하고 있대.”

“설주 아가씨... 나중에...”


아정은 설주의 손을 뿌리치며 관아를 빠져나갔다.


그때, 나졸대장이 급히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사또께서 천행수를 찾습니다.”


당황한 아정은 관아 대문을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모두 다 자신만 쳐다보는 것 같다.


“별장 어른, 사또께서 저를 왜...”

“물귀신으로부터 살려준 것에 대한 포상을 내린다 하십니다.”


작가의말

우리나라 조선시대 초기에 주판이 들어왔는데, 조선은 산가지를 이용하는 걸 더 선호해 주판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고 해요. 산가지로는 방정식과 제곱근 풀이가 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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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93화. 괴물은 아니야 +2 21.09.13 34 2 12쪽
93 92화. 누구냐 +1 21.09.10 41 1 12쪽
92 91화. 아름다운 구속 +1 21.09.08 48 1 12쪽
91 90화. 소망을 따라가는 선택 +1 21.09.06 36 1 12쪽
90 89화. 눈빛의 온도 +1 21.09.03 38 2 12쪽
89 88화. 편지할게요 +1 21.09.01 40 2 12쪽
88 87화. 이 감정의 목적지는 너였음 +1 21.08.30 43 2 12쪽
87 86화. 굽이굽이 이어진 길 +1 21.08.27 43 1 11쪽
86 85화. 얼레리꼴레리~ 정분났구나 +1 21.08.25 49 1 12쪽
85 84화. 사이비 +1 21.08.23 43 1 12쪽
84 83화. 같은 사또끼리 치사하게 +2 21.08.20 51 1 13쪽
83 82화. 이거 외교문제인가 +1 21.08.18 54 1 11쪽
82 81화. 거기서 거기, 도찐개찐 +1 21.08.16 51 1 12쪽
81 80화. 내 남자의 위기를 감지하는 촉 +1 21.08.13 61 1 12쪽
80 79화. 만신창이로 만드는 힘 +1 21.08.11 50 1 12쪽
79 78화. 독이 든 성배 +1 21.08.09 50 1 12쪽
78 77화. 누구나 계획은 다 있다 +1 21.08.06 51 1 13쪽
77 76화.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1 21.08.04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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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74화. 이때를 위함이라 +1 21.07.30 5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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